아직도 플라비우스 증언 갖고 드잡이질 해댈만큼 텍스트비평쪽은 성서비평학이 워낙 전문인지라 같은 방법론을 적용할수 있을것 같아서 왕년에 성서비평학 좀 깔짝댄 짬바로 지금 갤을 불타게 만드는 조만전 논란에 한번 발을 담궈봄.

일단 지금 논란이 조만전, 위소의 오서, 진수의 삼국지 중 가장 우선 쓰인 기록이 뭐냐지?

내가 검색해본 바와 여기서 논쟁하는거 찬찬히 살펴본 결과 조만전은 일단 정확한 저술시기는 알수없이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이 지은걸로 추정되고 위소의 오서는 위소가 272년에 사망, 진수의 삼국지는 280~289년 사이에 완성된걸로 나오는데 그럼 일단 위소의 오서가 먼저, 진수의 삼국지는 나중이란건 확정이지.

그럼 이제 조만전은 이들보다 앞서냐 아니냐가 문제인데 저자가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이란거 말고는 특정할 여지가 없으니 여기서부터 텍스트비평을 해볼거임.

우선 각각의 기록들부터 확인해보면

태조(조조)가 당도하여 사수(泗水)에서 남녀 수만 명을 갱살(坑殺)하니 이 때문에 강물이 흐르지 못했다. 도겸이 그 군사를 이끌고 원무(팽성 원무현)에 주둔하자 태조는 진격할 수 없었다. 군사를 이끌고 사수 남쪽을 따라 취려, 수릉, 하구의 여러 현들을 공격해 모두 도륙하니, 닭이나 개조차 다 없어지고 폐허가 된 읍에는 다시는 행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조만전

태조가 팽성(彭城)으로 진격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자 도겸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저항하였고, 청주자사 전해(田楷)가 와서 도겸을 구하려고 하니 태조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오서

초평(初平) 4년 (AD 193)에 조조(太祖)는 도겸을 정벌하고 십여 개의 성을 공격하여 취했으며, 팽성(彭城)에서 도겸과 크게 싸웠다. 도겸의 군대는 패한 후 도주하였는데, 죽은 자의 수가 수만 명이나 되었으며, 사수(泗水)는 시체로 막혀 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도겸은 물러나 담현(郯)을 지켰다. 조조는 양식이 부족하였으므로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삼국지

세 기록을 나란히 보면 한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음. 

삼국지와 조만전에서 나오는 수만명이 죽어 사수가 그 시체로 막혔다는 부분임.

죽인 대상과 살해방법에서 차이는 있지만 분명 수만명이란 집계와 사수란 장소, 시체로 막혀 물이 흐르지 않았다는 묘사가 동일한데 이건 둘 중 어느 한쪽이 한쪽을 보고 배꼈거나 같은 출전을 인용했거나 둘 중 하나란 소리임.

그리고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분명하게 연관성이 확인되는 조만전과 삼국지의 기록이 정작 전체 내용은 서로 거의 반대라고 할 정도로 차이를 보이는데 반면 오서는 사건전개 순서가 조만전과 동일하면서 삼국지의 기록과는 교차되는 부분이 거의 없음. 

즉 오서 또한 조만전과 한쪽이 배꼈거나 동일 출전을 인용한 관계임. 그리고 만약 오서와 삼국지가 타 기록을 인용한거라면 이 둘이 사용한 출전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됨.

그럼 출전이 없이 세 기록이 서로간에 배낀 경우를 먼저 따져보자

이 경우 누가 누구를 배낀걸까?

①조만전이 먼저고 오서와 삼국지는 조만전을 배꼈다?

삼국지는 그냥저냥 넘어간다해도 오서에서 조조의 악행을 축소할 이유가 없다는 문제가 발생함.

조조가 팽성으로 오면서 학살을 벌였다는 것을 언급할 정도로 조조에게 반감을 가진 오서가 왜 사수 남쪽에서의 조조의 만행을 누락하고 시체로 강물이 막혔다는 묘사를 삭제할까? 

게다가 오서와 삼국지의 기록은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듯 조만전의 기록을 겹치는 부분 없이 깔끔하게 나눠가져 갔음. 똑같은 기록을 보고 배끼면서 마치 서로 다른 기록을 참조한 것처럼 겹치는게 하나 없이 적을수 있을까? 일부러 그랬다면 그래야 할 이유가 대체 뭐지?

②오서와 삼국지가 먼저고 조만전이 둘을 배꼈다?

이럴 경우 크게 문제될만한 요소가 없음. 

조만전은 조조를 까려고 만든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지닌 기록이니 조조에게 불리하게 적힌 오서의 서술을 기반으로 반감을 더욱 더 자극하기 위해 삼국지에서 전투에서 벌어진 묘사를 민간인 대상으로 벌인 학살로 바꾸고 추가로 사수 남쪽에서의 만행까지 붙인 것이라고 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함.

그리고 애초에 전혀 다른 기록인 오서와 삼국지를 조만전에서 이어붙인 것이기 때문에 오서와 삼국지간에 일치되는 서술이 없는 문제도 설명가능해짐.

만약 서로 배낀게 아니라 출전이 겹친것 뿐이라면?

이 경우 각 기록간 저술 시점을 따지는 의미가 없어짐. 셋 다 똑같이 다른 책 배낀건데 그 배낀 기록들 간의 순서가 어떤 의미를 가짐? 

조만전의 순서를 중요하게 따진 이유가 조만전은 위까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지어진 기록인데 그런걸 후대 기록들이 무분별하게 배꼈기에 문제라는 거였잖아? 

근데 그 조만전의 기록이 사실 원본이 따로 있었고 오서와 삼국지는 그 원본들을 배낀거라면 그 원본들이 어떤 성격의 저술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 프로파간다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고 오서와 삼국지는 원본들을 보고 배낀거지 조만전을 배낀게 아니므로 무분별한 답습이라고 할수도 없음.

결론적으로 텍스트비평의 측면에서 보자면 오서와 삼국지가 조만전을 배꼈다고 보기엔 너무 무리수가 많고 오히려 그 역이 더 가능성 있다는거임.

설령 조만전이 오서와 삼국지보다 더 빨리 저술되었다 한들 원 레퍼런스를 직접 인용한것으로 추정되므로 조만전을 인용했다고 보기가 힘들다는 거고.

물론 이건 학자들이 정식연구한 내용이 아니라 내가 그냥 텍스트비평적 방법으로 간단히 따져본 것 뿐이니 맹점이 있을수도 있음.
반박은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