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일 년 반의 기다림

 히라가(平賀) 가의 문패에는 세 개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주택가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 2층 주택.  
 특별한 점이라고는 아이의 방일 터인 2층 방의 불이 어느샌가 켜지지 않게 되었다는 점 뿐이다.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보이는 주택의 거실에는 언뜻 초췌해 보이는 여성이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인터넷 사이트의 메일 창이 떠 있었다.  수신 날짜는 다섯 달도 더 되어 수신 메일함에서는 다른 메일에 밀려 한참 뒤에 자리잡고 있던 메일이었다. 
 여성은 몇 번이나 읽어 이미 외워버린 메일의 내용을 또 다시 처음부터 되새기듯이 읽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도 메일의 내용을 따로 보관하는 일 없이, 다시 읽을 때면 인터넷 사이트 창을 열어 메일에 이르기까지의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하면 메일을 보낸 사람과 어딘가에서 이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 년 반 전 돌연히 실종된 아들이 다섯 달 전 보낸 메일이었다. 

 노트북을 든 채로 실종되었기에 혹시 메일은 받아볼 수 있을까 싶어 하루마다 몇 통씩 보낸 메일 중 일부가 수신확인으로 바뀌고 난 후 단 하나 도착한 메일이었다. 

 메일을 반복해서 읽는다고 실종된 아들이 돌아올 리는 없다. 하지만 좌절과 절망 속에서 단 하나 발견한 희망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성은 메일의 텍스트를 드래그하면서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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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깜짝 놀라시겠지만, 사이토입니다.  
말없이 집을 나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사실은 말없이 나온 게 아니지만...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실 것 같으니, 그냥 그런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어쨌든 죄송합니다. 
메일 고맙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금 전에 잠깐,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조금 야위셨기에 슬펐습니다. 식사는 제대로 하시나요?  
걱정 때문에 식욕이 없으실지 몰라도, 식사는 꼭 챙겨 드세요. 
저는 살아 있습니다. 
무사하니까 안심하세요. 
저는 지금 지구와는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정말입니다.  
머리가 이상해졌다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지만... 정말입니다. 
여기서는 지금 저의 친구와 소중한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갈 겁니다. 
선물을 가지고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와 모두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두서 없는 글이라 죄송합니다. 급하게 쓰고 있거든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법 힘들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다시 뵐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히라가 사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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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당무개한 내용이었다. 지구와 다른 세계라니. 
 하지만 사이토의 이메일로부터 송신된 메일인데다 사이토가 보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메일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메일을 수신하기 얼마 전, 현관문 앞에 떠 있는 빛나는 거울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눈을 몇 번 깜박거리는 사이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잘못 본 것처럼은 생각되지 않았다. 빛나는 거울 너머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잠깐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는 메일의 내용에서, 그것이 사이토였다고 깨달았다. 
 정말로 사이토는 다른 세계에 있어서,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모종의 수단으로 자신을 지켜보고서는 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하지만 확신을 가졌어도 그것을 남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했다.  
 사이토를 찾기 위해 경찰서를 포함해 사방팔방 돌아다닌 남편도 메일을 읽고서는 사이토가 보낸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메일의 내용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메일 한 통으로 그간의 좌절과 절망을 누르고 희망을 부풀렸지만, 다섯 달 째 별다른 소식이 없자 처음 사이토가 집에 돌아오지 않게 됐을 때와 같은 초조함과 불안이 다시금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이제 그만 포기하고 잊으라는 소리도 여럿 나왔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그들도 헤아렸지만 갈수록 초췌해지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탓일 것이다. 
  하지만 잊을 수 없다. 몇 년이고, 몇십년이고 기다린다. 이것은 다짐도 각오도 아니었다.  
실낱 같은 희망 조차 없었어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아들의 행방을 찾으며 한편으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가망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포기하자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사이토가 소식을 보내온 지금,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니, 사이토.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만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안심하며 너를 그릴 수 있을 텐데. 하루에도 몇번이고 생각한다. 사이토가 평소처럼 현관 문을 발칵 열고 습관적인 인삿말로 다녀왔다고 인사하고는 재빨리 2층으로 뛰어올라가는 모습을. 
  턱끝에 맺히기 시작하는 눈물을 닦고자 습관적으로 책상의 티슈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려퍼졌다.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 요즘에는 거의 듣지 못했던 초인종 소리가 약간 낯설게 느껴졌다. 집에 찾아오기로 약속돼 있는 사람은 없을텐데 누가 찾아온 것일까. 어쩌면 실종 사건 담당 형사가 무언가 실마리를 잡고 알려주러 온 걸지도 모른다. 곧 배신당하고 말 터인 몇 번째일지 모를 기대를 품으면서 그녀는 초조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겨우 현관문에 도착해 체인을 풀고 연 그곳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