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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그대는 천진난만한 밤의 희망 6화

미끄럼밧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8.22 03:38:25
조회 2000 추천 32 댓글 8
														


또 써 왔다.

새벽에 삘 와서 써내려가는데 시간이 순식간에 가네...

근데 또 쉬어가는 파트다보니 이걸 어떻게 진행시키는게 좋을까 고민하느라 시간 가는것도 꽤 크더라.

항상 부족한 글 써오는거 재밌게봐주는 블붕이들 고맙고, 재미있으면 개추랑 댓글 부탁하겠음.

25










열쇠로 된 문을 열고 객실에 발을 들인다.


두 사람 늘어서, 일행은 총 4명이 된 채였다.


"다녀왔습니다-!"


"여긴 호텔이지 않습니까, 복도에 다른 손님들도 있어서 시끄러울텐데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에이...세이아 짱, 모처럼 다 같이 모였잖아? 좀 더 들뜬 기분으로 있어도 좋지 않겠어?"


"당신은 그 들뜬 기분으로 있을 때가 제일 위험한 때라는걸 스스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자...두 사람도 정신 없었을텐데 빨리 짐부터 풀고, 둘 다 아직 점심 안 먹었으면 어디서 같이 식사라도 하는건 어때?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하나 있어."


부랴부랴 캐리어 백을 거실 구석에 옮겨놓은 두 사람이 방을 둘러보았다.


"...상당히 넓은 방이군요...의도한건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저희들도 같이 머무르기엔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방을 살피는 세이아의 모습은 마치 풍수사가 땅의 길흉을 점치기라도 하는 듯한 인상이였다.


"크흠...그럼 염치 없지만...저희들이 왼쪽 침실을 사용하는걸로 하겠습니다."


나기사는 계속 헛기침을 하면서 안쪽 방에 들어갔다.


...세이아가 한 말 때문에 어젯밤 이곳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계속 신경쓰고 있는걸까.


"식사라, 좋군요. 혹시 그 근처에 카페도 있나요? 서로 근황은 차 한 잔 하면서 나누는걸로 하죠. '티 파티'로서 말이에요."


"세이아 짱, 혹시 그거 개그?"


"이런이런...이건 언어유희라기보다는 운치있는 시적인 표현에 가까운 말이였습니다. 미카는 아직 갈 길이 멀군요."


"나, 아까 세이아 짱의 잔소리가 그리워졌다고 했던 말 취소하고 싶어지는걸?"


"두 분 다 말싸움할 시간 있으면 짐 정리하는 것 좀 도와주시겠나요?"


나기사의 잔소리에 두 사람은 '네에'라는 성의없는 대답을 내뱉으며 그녀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역시, 시간이 흘렀어도 저 세 사람은 여전하구나.


문득 그런 말을 중얼거렸던것 같다.


다소 북적북적해진 방을 빠져나와 식당에 들렀다.


4인용 좌석으로 들어가, 구석에 앉은 나의 옆에 미카가 앉았고, 마주보는 자리에 나기사와 세이아가 앉았다.


생각해보니 세 사람과 같이 식사하는 건 처음이였지.


평범한 패밀리 레스토랑인데, 어떤 음식을 시키려나.


"저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로."


스푼에 포크로 모은 면을 빙빙 돌려먹을 나기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바질 크림 리조또로 하죠."


입이 짧을 것 같은 세이아에게 어울리려나...


"나는 폭찹 스테이크 샐러드!"


"그럼 난...토마토 스파게티로 할까."


메뉴를 확인한 점원이 물러난 뒤, 미카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이렇게 두 사람이 여기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야? 아침에 메일 읽었을 때는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구!"


"미카 씨가 제 때 정기연락을 하기만 했어도, 저희 둘이 여기까지 오는 수고를 덜었을텐데 말이죠. 저도 놀랄 노자랍니다."


"아하하...그건 물론 내가 정신없어서 깜빡한거긴 하지만..."


"푸흡...!"


문득 물을 마시던 나기사가 숨 넘어갈 듯 연이어 기침을 했다.


"어? 나기짱 괜찮아?!"


"괘...괜찮습니다...잠시 사레가 들린 모양이군요...신경쓰지 마시길..."


나기사...아직도 '그 말'에 익숙해지지 못한건가.


"미카가 연락을 못 했던건, 정말로 그럴만한 일이 있었던게 맞아. 자, 그 얘기는 있다가 내가 들려줄테니...우선 지금은 밥부터 먹자."


우리 자리를 향해, 준비된 음식을 가져오는 점원을 확인한 뒤 세 사람에게 말했다.


각자의 자리에 주문한 요리가 올라왔고, 서로 식사를 이어가던 그 때.


"자, 선생님! 아-앙!"


"...미카?"


나 뿐만 아니라 나기사와 세이아까지 식기를 든 채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스테이크를 한 입 크기로 썰어 포크로 집어 나를 향해 내밀었다.


내 감이 맞다면, 과장되다시피한 그녀의 눈 깜빡임은'어서 먹어줘'라는 신호일 것이다.


...이대로 그녀를 무안하게 만들수는 없겠지.


"...크흠, 아아..."


부끄러움을 무마하고자 헛기침을 한 뒤, 순순히 입을 벌렸다.


부드러운 듯 강렬하게, 한 입 정도되는 크기를 씹었을 뿐이지만, 스테이크는 입 안에서 인상적인 맛과 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금 나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있는 미카의 표정처럼 말이다.


"정말이지...미카 씨는 못 말리겠네요."


"미카, 공공장소입니다. 과한 애정행각은 삼가해주세요."


"내가 뭘? 그냥 선생님한테 한 입 먹여줬을 뿐인걸?"


굳이 무슨 일을 한건지 상기한 미카 덕분에, 헛기침을 하지 않고선 창피해서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시 나기사와 세이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도, 너무 미카의 어리광을 받아주기만 하지 마세요."


함께 차를 마시기에 '티 파티'라고 했던가.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여전히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세 사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실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지금 이 모습, 가족과도 같은 유대가 느껴지는 이 세 사람을 '패밀리'라고 부를수도 있겠지.


그렇게 식사를 끝마친 뒤, 카운터로 가서 비용을 지불하려 했을 때 였다.


"이번엔 저희가 내게 해주세요, 선생님."


나기사가 점원에게 음식값을 지불하려는 나를 제지했다.


"그동안 신세진것도 있고, 앞으로 한동안 또 신세질 것 같으니 말이죠. 한참 부족하겠지만, 옛 제자들의 보은에 대한 노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세요."


제자들의 보은이라.


어젯 밤 미카가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나,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어 웃음짓게 된다.


"그래. 그럼 오늘 점심은 내가 잘 얻어먹은걸로 해둘게."


계산을 위해 지갑을 꺼내던 나기사가 잠시 멈칫했다.


"무슨 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 그럼 여기 계산을..."


나기사가 현금을 내밀어 직원에게 계산을 받고 거스름돈을 받아든다.


"얻어먹은게 정 신경쓰이신다면, 카페에서는 저희들에게 차 한 잔 씩 사주시는건 어떤가요, 선생님?"


세이아 답지 않은, 조금 나쁘게 표현하자면 염치없는 행동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요 녀석. 내가 나기사를 무안하게 만들기 싫어서 호의를 받긴 했지만, 제자에게 얻어먹은 꼴이 돼서 신경쓰고 있다는걸 눈치챈건가.


솔직히 말 해서 이 정도면 감이 좋은걸 넘어서 독심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봐도 이상할 것이 없을 지경이다.


찻잔을 내려놓을 때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카페에서 들려올법한 은은한 음악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분이다.


식당에 있을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마주앉은 테이블에 얼그레이 홍차 1잔, 다즐링 홍차 1잔 로열 밀크티 2잔이 올라온다.


얼그레이 홍차는 나기사, 로열 밀크티는 미카와 세이아, 내 자리엔 다즐링 홍차가 왔다.


그 뒤로 서로 차를 홀짝이며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선 나의 이야기부터.


"...그랬군요. 미카 씨가 선생님을..."


"그 때 미카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난 그 고문실에서 죽었겠지. 내가 지금 두 사람을 만나고 있는것도, 다 미카 덕분이야."


"에헤헤...나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을 한건가..."


"그나저나...두 사람이 말해준 이야기도 그렇고, 직접 와서 눈으로 보았기에 더 와닿는게 있군요. 여긴 비교적 시외라서 정도가 덜 한 편입니다만, 아까 기차역에서부터 시내를 빠져나오기 전까지, 거리의 치안은 굉장히 불안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불안감이 노골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맞아. 특히나 요즘은 조직끼리 싸움의 여파가 민간인 측 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거든. 상권이나 거주민에게 뜯어내는 보호비가 악랄해지는 것 이상으로, 밤에는 거리로 빠져나와서 민가까지 박살내면서 서로 싸워대기도 해. 가끔은 낮에도."


"아, 전에 내가 옮겨다녔던 호텔 방 중 하나도, 창문이 다 부숴져서 엄청 보기 흉흉하더라."


"호텔도 비슷하지, 도피중인 조직의 간부가 습격당해서 몸싸움을 벌이거나 하는 일도 부지기수거든."


"선생님, 어떻게든 이 도시에서 벗어나시는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선생님께서 키보토스를 나와서 이런 흉흉한 곳에서 지낸다는게 알려지면 키보토스의 모두가 경악할겁니다."


"한번 조직에 몸 담았던 삶을 청산한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거든. 원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였지만...미카가 내가 있던 조직의 주요 인원을 거의 박살내다시피 했으니, 조직도 나 하나 쫓겠다고 더 뒤를 캐는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하겠지."


잠시 차를 한 모금 들이마신 뒤, 이번엔 세 사람의 근황에 대해 물을 생각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는 이 쯤 해두고, 세 사람은 어때? 정신 없어서 그동안 잘 지냈는지도 못 물어봤네."


"아, 저희도 선생님의 일을 신경쓰느라 저희들의 이야기를 할 겨를이 없었군요."


나기사가 입을 가리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2개월 뒤...저와 미카 씨와 세이아 씨 모두, 무사히 트리니티를 졸업 했답니다."


나기사가 그 날의 추억을 되새기고픈 듯, 핸드폰의 갤러리를 열어 내게 보여주었다.


"아! 이 사진! 뒤에 코하루 짱도 찍혔었지! 축하 폭죽 뿌리려다가 넘어진것좀 봐! 귀여워!"


미카가 사진의 오른쪽 구석을 가리키며 웃었다.


"저와 나기사는 트리니티 지부에 방을 잡아두고 근처 대학에 입학했답니다. 전 심리학과, 나기사는 경영학과쪽으로 다니고 있죠."


대학교 캠퍼스로 보이는 건물에서 사복차림으로 식사하는 두 사람의 사진도 있었다.


샌드위치를 손에 든 채로 과제로 보이는 책을 펴둔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과제에 쫓기는 대학생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럼 두 사람만 대학 진학을 한거니?"


항상 뭉쳐다닐거라고 생각한 셋이 학교를 졸업한 뒤 떨어져나간 구성원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신경쓰였다.


하물며 인간관계에 깊은 애착을 갖는 미카가...


"아-! 선생님, 설마 나 혼자 떨어져나가서 외롭게 지내고 있을까봐 걱정한거야?"


미카가 내 한쪽 팔을 끌어안는다.


"그러게, 두 사람이랑 떨어져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걸까 싶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연락이 끊긴 너를 걱정해서 이 먼 길을 찾아와준걸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네?"


"난 키보토스 바깥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어. 그게..."


미카가 갑자기 말을 아끼려는 듯 우물쭈물대기 시작했다.


"오? 바깥에 있는 대학으로?"


굳이 바깥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할 정도면, 그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을 터이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목표로 하는 진로가 생겼다는 사실에 흥미가 생겼다.


"미카는 교대에 진학했답니다. 키보토스 내에는 제대로 된 여건이 준비되지 않은 터라, 아마 대학 캠퍼스 근처에 머물 집을 알아봤다죠?"


교대?


미카가 교대에 진학을 했다는 말인가?


그럼 미카는 교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건가?


미카가 그런 선택을 한게 의외라고 해야할까, 내 제자중에 교대를 진학하려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해야 할까.


"정말이니 미카? 아침에 말 했을 때는 그 얘기까지는 안 했잖아."


"아아...정말! 세이아 짱, 그 얘기는 내가 선생님한테 직접 말하고 싶었다구-!"


"누가 이야기하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제가 이렇게 먼저 이야기한것도, 미카 당신이 선생님께 이야기하는데 괜히 어물쩡거리는게 보기 답답해서 대신 이야기 해드렸을 뿐이랍니다."


"이런 서프라이즈는 분위기가 무르익을때까지 준비하는게 중요한거라구!"


"굳이 서프라이즈가 필요할 일이였나 싶습니다만...아무튼 그렇습니다 선생님. 미카는 한창 교대에 다니면서 교원 자격 취득을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이죠."


"혼자 떨어져 사는 미카 씨가 신경쓰여서 때때로 저나 세이아 씨가 미카 씨가 있는곳으로 찾아가고 있긴 합니다만, 생각보다 저희와 만나는것 이상으로 공부에 열심인것 같아 친구로서 조금 섭섭할 정도랍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기사...아무래도 미카가 그런 진로를 결정하게 된 것에 있어 꽤나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사람이, 미카에게 저희들 이상으로 소중한 사람이라 그런거겠죠?"


그 말을 듣고 미카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채 고개를 숙여버렸다.


"......"


무어라 말 하고 있는 듯 한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선생님. 제가 듣고 전달해드리죠."


세이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미카의 얼굴에 귀를 갖다대었다.


"음음...그렇군요...흠흠...나 참, 이렇게 대언자를 필요로 할만큼 부끄러워 할 줄이야. 미카 당신에게 이런 소녀스러운 면이 있을줄은 몰랐습니다?"


"...세이아 짱, 한 대 때린다?"


미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처럼 선생님께 잘 보일만한 요소를 신경써서 어필해 드렸건만, 스스로 분위기를 망치지 마세요. 흠흠...아무튼, 원래 미카는 졸업 후 마땅히 하고싶은 일이 생각 나지 않았는데, 선생님의 이런저런 멋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싶다고 생각하게 됐다는군요. 저도 참 놀랍네요. 미카가 고집이 센 건 맞지만, 또 그만큼 빨리 싫증을 내는 성격이였던지라..."


"세이아 짱, 잘 보일만한 말 한다면서 은근히 나 까고 있지 않아?"


"그럴리가요. 그런 결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말하려던 참이랍니다."


'미카가 '선생님'이 되고 싶어한다'라...


하물며 그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한것은 나 자신...


'선생님'이 되는것을 꿈꾸었고, 그 꿈이 좌절되고, 엉겁결에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꿈을 지켜보고, 그들의 성장을 응원해왔다.


그 역할을 모범적으로 해왔는지는, 아무리 학생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나 스스로 실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카는, 가면을 쓴 채로 스스로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어왔던 내게 다가와 내가 그들에게 해주었던 것들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그런 그녀가 나의 모습을 동경하고, 그로 인해 나처럼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꾼다.


그 사실을 실감하자, 또 가슴 속에서 무언가 뭉클한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서...선생님, 또 울어? 왜 그래?"


미카가 당황하며 내 안색을 살폈다.


"아, 아냐...그냥 좀 놀라서 그래...솔직히 기쁘기도 하고, 실감이 안되네, 나를 보고 '선생님'이 되는걸 꿈꾸는 제자가 있다니 말이야..."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몇 번이고 닦아내 보았다.


잘 닦이지 않는걸까, 어째선지 눈망울의 촉촉함이 가시지 않는 기분이다.


"항상 고민했거든. 내가 잘 하고 있는걸까. 어쩌면 모두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 말이야. 그런데 어제 오늘 미카나 세이아, 나기사가 해준 말들을 들으니까, 조금은 그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아."


아아...어제부터 왜 이리 감성적인 기분이 드는걸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닦이는 듯 하던 눈물은, 어느새 점점 더 거세게 몰아쳐, 우러나오는 감정까지 담아 모두 쏟아내게 만들었다.


"미카, 세이아, 나기사...셋 다...정말 고마워. 이렇게 잘 커줘서. 이렇게 찾아와줘서."


"찾아오는거야 당연하지! 선생님도 참, 눈물이 많다니까~"


"미카, 이럴때는 저희도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 때입니다...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희들 뿐 아니라 키보토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항상 선생님께 감사하고 있을 거랍니다."


"세이아 씨가 제가 드릴 말씀까지 대신 해버렸습니다만, 저도 같은 마음이랍니다. 그러니 지금은 기뻐해주세요, 선생님."


평소답지 않게 왜 이렇게까지 울게 되는걸까.


옛 제자들이 찾아와주었기 때문일까.


스스로를, 제자들을 기만해왔다고 여겼던, 그 때의 마음 속 어둠을 조금은 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까.


부쩍 성장해서 어른스러워진 그들로 하여금, 내게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게 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모든것이 내가 지금 더할나위없는 기쁨을 느끼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카페를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곳에 온 이후로 미카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가 갑작스레 폭탄 발언을 하듯 던진 제안의 연장선.


"그럼, 정말로 미카 씨네 집에서 지낼 예정이신가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은 나기사가 내게 물었다.


"꽤 놀랍군요 미카, 아깐 얼굴이 홍당무가 되다 못해 토마토가 되다시피 빨갛게 변한채로 아무 말도 못했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런 용기있는 행동도 할 줄 알았다면 제가 대신 말해줄 수고도 덜었을텐데..."


"세이아 짱-!! 그만 놀리라니까-!!"


미카가 얼굴을 부풀리며 세이아의 한쪽 어깨를 통통 두드렸다.


"선생님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주셨다니 다행이군요. 키보토스에서 꽤 멀리 떨어져 지내시는것과 별개로,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라는걸 알았을 땐 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답니다."


"하하...나기사가 그렇게까지 걱정해주니, 나도 빨리 짐 싸고 이 동네랑은 영원히 안녕해야지."


노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그동안의 설움이 담긴 한숨이기도, 이제야 이 장소를 완전히 벗어난다는 해방감이 담긴 안도의 한숨이기도 하다.


"그래...이제 정말로 끝내야지."


호텔 건물에 도착한 뒤, 기간 연장을 위해 프론트 데스크에 잠시 들러 직원과 대화하는 동안 세 사람을 먼저 올려보냈다.



낮에도 그랬건만, 머리위로 올라와있는 귀가 유독 간지럽군요.


나기사나 미카는 상관없는 모양이지만, 이 호텔의 청소 상태가 그닥 좋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흡사 여우의 것을 닮은 이 귀는 소리를 보다 예민하게 듣는 일에 도움되기도 하지만, 그 예민함 때문에 도리어 저를 이런저런 트러블에 휘말리게 만들기도 해왔죠.


"보아하니, 미카 씨도 선생님께 지금의 키보토스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은 모양이군요."


차라리 다행입니다. 우리들도 어른이 된 입장에서 언제까지고 선생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으니.


"말 못 했어. 선생님, 스스로의 일로도 엄청 힘들어하고 있었으니까."


미카의 서툰 배려가...아니, 이번 상황에 대해서는 서툴다고 할 수도 없겠군요.


도리어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 스스로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지금은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준비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말이에요.


"잘 한겁니다, 미카. 선생님께도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꽤 오래 필요할겁니다. 총학생회장도 건재한 지금, 선생님을 또 수고스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에요."


"정말로 나랑 선생님이 바깥에서 지내도 괜찮겠어? 차라리 지금이라도 내가 휴학신청을 하고 다시 트리니티 쪽으로 가는게..."


"말도 안되는 소리 마세요, 미카. 당신은 모처럼 입학한 교대, 교원 자격 취득까지는 그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게 최선입니다. 당신이 돌아오면, 그 집에 선생님 혼자 둘 생각인겁니까? 아니면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의 키보토스에, 다시 선생님을 불러들이시려구요?"


"아, 아니...두 사람한테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신경쓰여서 그랬지..."


"미카 씨. 지금 키보토스에는 저희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으니, 그 이상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답니다."


선생님께 넘겨받은 객실 열쇠로 문을 열고, 저희는 현관 앞에 선 채로 조금 더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선생님 곁에 있어주세요, 미카. 지금 선생님은 다른 누구보다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는듯 하니 말이에요."


"...크흠, 그건 내가 알아서 잘 해낼거라구!"


헛기침을 할만큼 부끄러운 의미의 무언가를 의식하라는 의도로 전한 말은 아니였습니다만, 그녀가 알아주었다면 더 말을 보탤 필요는 없겠죠.


"미카가 그래준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저희는, 최대한 빨리 돌아갈 기차편을 예약해보도록 할까요."


"에? 그렇게 일찍 가려고?"


"원래 선생님을 찾는걸 도와야 한다고 가정하고 온겁니다. 그런데 당신의 연락이 끊기는 바람에 저나 나기사가 이런 수고까지..."


"아,알겠으니까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해!"


"세 사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속닥거리고 있어?"


어느새 선생님이 뒤에서 나타나 우리 셋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에? 아-! 잠깐 여자들끼리의 걸즈 토크 시간이였어! 선생님이 왔으니 일단 이 얘기는 끝! 자자, 모두 들어가자고 들어가!"


미카가 어색하게 저와 나기사를 방 안으로 밀어냈습니다.


선생님도 우리 셋의 이야기를 듣지는 못하셨는지, 굳이 더 추궁하려는 분위기는 아닌 듯 하군요.


"그럼, 저부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어느새 나기사가 제법 빠른 걸음으로 거실에서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걸 실례한다고 말하다니...대체 무슨 일일까요...


"...나기사한테 무슨 일 있니?"


미카가 고개를 갸웃하며, 전혀 모르겠다는 의사를 보였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흐른지 얼마나 지났을까요.


"꺄아아아아악!!!"


방 안으로 들어가는가 싶던 나기사가 잠시 후 비명을 질렀습니다.


"나기사! 무슨 일이야!"


"나기 짱! 괜찮아?!"


나와 미카, 선생님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을땐, 방 안은 난장판이 돼 있었고, 나기사는 자신의 캐리어 백 앞에서 아연실색하는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미카...세이아 씨..."


"대체 무슨일이야? 갑자기 비명을 다 지르고."


낮에 식당에서 선생님 대신 계산하기 위해, 그녀가 지갑을 꺼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잠깐 멈칫 했었죠...설마 무언가 잃어버린걸까요?


"저...아무래도..."


나기사가 창백해진 채 말까지 더듬거리더니, 마침내 힘겨운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여권을...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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