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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그대는 천진난만한 밤의 희망 4화

미끄럼밧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8.18 01:33:34
조회 1758 추천 30 댓글 23
														


2화랑 3화 사이에는 현생이 바빠서 시간이 좀 걸렸는데 이번엔 꽤 빨리 다음편 써 왔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선생 오리지널 서사가 좀 강한거라도 상관없다 싶으면 이번에도 재밌게 봐주고

창작러는 개추와 댓글로 창작욕구가 올라간다.....

36






애시당초 골목길의 드문 사람들의 발길이 지금 이 순간, 이 주변을 중심으로 증발이라도 한 듯 끊겼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태와 관련없는 일반인들의 발걸음이 끊겨버렸다.


어깨들이 사방으로 빙 둘러 싼채로 우리 두 사람을 포위했다.


미카는 어느새 한 손에 자신의 기관단총을 들고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 뒤에 있어."


그녀는 나를 벽에 앉혀놓고 너덜너덜해진 인형옷을 찢어버렸다.


인형옷을 입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둔 듯한 반팔 티셔츠와 짧은 청바지의 차림을 한 채였다.


그 들 각자의 손에는 사시미, 쇠파이프, 오함마등이 들려있었다.


총알이 안 통하니 저런 근거리 무기를 사용해보겠다는 셈인가.


새삼 며칠 전의 나의 '총이 안통하니 날붙이라면 어떨까'하던 부질없는 발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미카라면 몰라도, 헤일로가 없는 나로서는 이대로면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물론 그 이상으로 그녀가 여기 있는 녀석들 전부 저 세상으로 보내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 있지만 말이다.


"역시 분홍머리...네 년이 그 배신자 새끼와 편을 먹고 벌인 일이였군! 뭐 하는거야! 빨리 둘 다 조져버려!"


끝장내라는 호통이 내려온 모양이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우리 둘, 정확히는 그녀를 향해 덤벼들지 못했다.


자세히 보면 선두에 서 우리들을 포위하고 있는 녀석들의 팔다리는 사시나무마냥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 피떡져서 골골대고 있는 놈 하나랑 총 하나 들고 버티려 드는 계집 하나 없애는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들 가만히 있어! 당장 없애라고!"


"아하하! 선두에 선 너부터 나한테 목이 꺾일뻔 한데다가 지금도 그렇게 쫄아있는데, 부하들이 뭘 믿고 목숨을 걸고 나한테 덤비겠어? 당연히 못하지!"


그녀는 사방에 선 어깨들의 겁에 질린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나로서는 그녀의 등만을 볼 뿐이였지만, 그들이 순간적으로 동시에 움찔한것으로 보아 미카는 지금, 적들을 향해 강한 살기를 드러내고 있으리라.


"누구 하나 대표로 나와볼래? 장담할 수 있는데, 이 중 누가 덤벼도 난 한 발도 쏠 필요 없이 관절 구석구석을 평생 못 움직이도록 만들어 줄 수 있거든?"


총을 쏠 필요가 없다는 미카의 주장을 그녀 스스로가 증명하려는 듯, 총을 쏘기 위한 자세라기보다는 휘둘러 구타하기 용이한 자세로 전투를 준비했다.


"하나씩 덤벼서 안 될것 같으면 한꺼번에 덤벼보던가, 너희들이 총알을 쏟아부어도 상처하나 안났던 내가 그딴거 쑤셔댄다고 어디 생체기 하나라도 날지는 모르겠지만☆!"


"어이 거기 셋."


총을 든 남자가 앞에 선 이들 중 셋을 총구로 가리켜 부른다.


"너희가 대표로 저 년 죽여봐라."


굳이 총구로 가리켜 명령한다는건, 명령 거부의 대가는 머리통에 박힐 총알로 청산하리라는 의미겠지.


"뭐하고 있냐. 빨랑 안가면 한 발씩 머리통 뚫어버릴 줄 알아! 빨랑 가!"


"으...으아아아아아!!"


각각 쇠파이프, 빠따, 식칼을 들고있던 녀석들이 일제히 미카를 향해 덤볐다.


미카의 머리 위로 쇠 파이프, 등 뒤로 빠따, 정면으로 식칼의 날이 다가왔을 그 순간이였다.


그녀의 왼발이 식칼을 들고있던 녀석의 손목을 쳐냈고, 오른손으로 쥔 총의 개머리판으로 빠따를, 왼손으로 머리위로 내려오던 쇠파이프를 막아냈다.


곧이어 왼발로 처음 식칼을 들고있던 녀석의 명치를 차 밀어 넘어트렸고, 파이프를 들고있던 녀석을 뒤차기로 쳐낸 다음 빠따를 들고있던 녀석의 머리를 붙잡은 뒤, 무릎으로 그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3명이 동시에 덤벼드는 공격을 전부 막아낸 뒤, 그 3명에게 공격을 막을 틈 조차 주지않고 한 순간에 제압시키는 과정은 길어야 5초 정도였을까.


물론 반격을 당한 녀석들은, 완전히 뻗어버린 채 더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 말이야, 진짜 피곤하거든? 선생님을 건드린 너희들을 전부 벌집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또 내가 너희들을 죽이면 선생님도 기분 안 좋아질테고...특히나 되도않는 총 들고 지 혼자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부하들이나 협박해서 시켜먹는 넌 직접 없애버리고 싶어지는데, 그 본인은 어떻게 생각해? 응?"


그녀의 장황한 이야기가 이어지려는 틈을 타 구석에 있던 어느 한 녀석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사시미를 들고 덤벼드는 그 순간이였다.


탕-!


휘두르기 위해 들려있던 미카의 손에 들려있던 총이, 비록 한 손으로 발사한 것이라고는 해도 사격을 위한 자세로서 고쳐져 그녀의 손에 들려있었다.


이미 한 번 총알이 발사된 총기에선 그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덤벼들었던 자의 손에 있던 사시미는, 총알을 맞고 날이 완전히 산산조각나버렸다.


"그 사람 몸에 벌레물린 것보다 작은 상처라도 나봐. 너희들 전부 태어난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마냥 그녀만을 걱정하기엔 내 꼴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며칠동안 잘도 버텼다만은, 빨리 이곳저곳 두들겨 맞은 몸을 치료하지 않았다간 금이간 뼈가 틀어져서 붙어버리거나, 몸 구석구석 어디에서 났을지 알 수 없는 내상 때문에 느닷없이 픽 하고 죽어버릴수도 있겠지.


뭣보다 세는 시간이 아까울만큼 구석구석에서 까진 상처들을 빨리 소독하지 않았다간 무슨 끔찍한 몰골이 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조금이라도 그녀를 보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 혼자서는 애시당초 멀쩡한 상태였다고 한들 그녀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내지 못한채로 발목만 잡는 상황이 돼 버릴 것이다.


다 죽어가는 채로 주저앉아있는 지금만큼 발목잡고 있기도 힘들겠지만 말이다.


한편 미카의 비아냥을 듣고서는 이마에 힘줄 두어가닥이 울그락불그락 올라오던 남자가 총구를 미카의 머리 정면을 향해 겨누었다.


"아까는 그 우스꽝스러운 인형옷이 방탄 비슷한 역할을 해 준 모양인데, 직접 벗어던져 준 시점에서 이쪽 수고를 덜어주셨군 그래?"


그는 곧이어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미카의 머리를 정통으로 명중했고, 그녀는 살짝 밀쳐져 맥없이 쓰러지는 옷가게의 마네킹마냥 바닥으로 드러누워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그들은, 이젠 내 차례라는 듯 떨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나를 향해 일제히 돌격해왔다.


이대로라면 나는 칼에 온몸이 도려진 채 단말마 몇 마디를 내뱉고는 이 세상과 완전히 작별해버리겠지.


지금 미카가 쓰러진게 정말로 총알을 맞고 머리가 뚫렸기 때문이라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헤일로를 단 키보토스의 학생과 싸운다는 행동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트리니티. 아니, 키보토스에서도 손에 꼽는 힘을 가진 그녀와 싸운다는 것의 의미를.


미카의 머리 위에서 그녀의 의식이 육체를 붙잡고 있음을 증명하는 초신성과 같이 빛나는 헤일로.


그 헤일로가 지금 이 순간 한순간의 빈틈없이 그 빛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그들이 스스로의 명을 재촉했다는 증거다.


"아하하☆! 그러니까...방금 말 했잖아~그 딴 거 몇 발 쏜다고 나한테는 생채기 하나 안난다니까?"


바닥에 드러누웠던 그녀가 한 손을 바닥에 딛고 도약하여 다시 자세를 바로잡아 선 뒤, 나를 향해 덤벼오던 녀석들에게는 하나 둘 그녀의 무자비한 손길이 향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녀석은 개머리판으로 얼굴 정면이 찍혀버렸고,


그 다음으로 다가왔던 녀석은 뒤통수가 붙잡혀 그대로 땅바닥을 향해 꽤나 격렬한 입맞춤...아니, '얼굴 맞춤'을 선사하게 됐다.


발에 차여 보기 좋게 튕겨나가는 녀석들,


뒤통수를 얻어맞고 전원이 갑자기 끊긴 기계 마냥 툭 하고 멈추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는 그 자리에 쓰러지는 녀석들,


배를 가격 당하고 뭐라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웅크린 채로 주저앉아버리는 놈들 등등...


내게 덤벼들었던 녀석들은 가지각색의 방식으로 그녀의 손에 두들겨 맞았다.


"멀쩡히 있으면 쫄아서 뭐 어쩌지도 못하는 녀석들이라서 계속 그렇게 대치 상태로 있기엔 너무 귀찮기도 하고 시간 낭비란 말이지? 응! 그래서 죽은 척 했지!"


그렇게 대략 3~40명 되는 이들이 미소노 미카 1명의 손에 전부 당해버렸다.


"ㄱ..괴...괴물..."


"...맘대로 떠들어. 다른 녀석들은 적당히 입원하면 나을 정도로만 해줬는데, 너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안되겠어."


그녀가 마침내 선공을 하겠다는 듯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상대를 위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했던 권총을, 지금은 자신의 목숨을 붙잡아 줄 동앗줄 이라도 되는 마냥 그 이상 간절해 보일 수 없는 기세로 붙잡으며 눈물 콧물을 쏟아내고 있는 그를 향해서.


남아있는 녀석들은 이미 그녀의 살기에 압도당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조직 간부를 죽이려 드는 그녀를 막으려 들던, 그녀가 보호하려는 나를 해코지하려 들던, 어느 쪽을 택하던 그 순간 공포에 찬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끝날 것 이라는 걸 잘 알고있기 때문이리라.


"네가 감히 누구를 건드린 건지 상상조차 못하겠지..."


그의 목덜미를 다시 한번 그녀가 붙잡는다.


이번엔 되살아나지 못 하도록 꺾어 줄 때까지 두 번 다시 놓지 않겠다는 기세다.


"...컥...! 끄어어어억...!"


그녀는 그의 손에 쥐어졌던 권총을 가볍게 낚아 챈 뒤 그의 양 팔목, 양 발목을 향해 한 발 씩 쏘았다.


소음기에서 튀어오르는 불꽃과 팔 다리에서 한 순간 피어나는 검붉은 꽃과 목덜미가 붙잡힌 이의 목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이 되지 못한 쇳소리가 기묘한 화음을 이루었다.


"선생님이 너 따위를 죽이는데 내 손을 더럽히는걸 바라지 않으니까...응! 죽이진 않을거야."


그녀는 총으로 뚫어버린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목을 붙잡고 있는 한 손을 더욱 높이 치켜든 채 남은 한 손으로는 그의 양 팔목을 직접 꺾어버렸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보기 괴로울 정도로 잔인한 장면이라는게 꼭 살덩이가 베어지고 내장이 튀어나오는것 만으로 성립하는게 아니라는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의 팔이 있어서는 안되는 위치로 향해버리는 광경은 나를 충분히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다.


"대신 평~생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줄게. 걷는것도, 물건을 잡는것도, 음식을 먹는것도, 살아가는 모든 순간, 당신이 저지른 짓 때문이라는걸 뼛 속까지 새겨두도록 해."


어느새 정신을 잃은 그를 툭 하고 떨어트려버린 미카는, 양 쪽 발목도 직접 밟아서 으깨버리다시피 해놓았다.


"흠...이 정도로는 아직 분이 안 풀리는데...이걸 직접 밟아서 처리하기에는 내 비위가 상할것 같으니까~☆"


그녀는 권총에 남아있던 총알을 모두 쏟아부을 기세로 바닥에 쓰러진 이의 어딘가를 향해 발사했다.


어디로 쏘았는지는 차마 생각하기도 두려웠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그 광경은 나를 포함해서 남아있던 녀석들 모두 다리를 움츠려들게 만들었다.


"자~이 쯤 했으면 충분히 됐을것 같은데, 혹시 '이 정도로 싸웠으면 저 년도 꽤 지쳤을테니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자신의 총을 사격하기 위한 자세로 고쳐쥐고서 쏘아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나도 꽤 귀찮아져서 말이야. 지금부터 덤비는 녀석들한테는 수고 들일것 없이 바로 머리통에 한 발씩 쏴버릴 줄 알아."


그녀의 위협은 남아있는 녀석들의 전의를 완전히 상실시키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열 명 남짓한 숫자의 남은 이들은, 무기를 버리고 양 손을 든 채로 뒷걸음질 치더니 각자 어딘가로 정신없이 달아나버렸다.


긴장이 풀린 나는 그제서야 주변 광경을 바라본다.


50명 가까이 되는 건장한 깡패들을 단신으로 제압했다.


총은 사실상 발사하기 위함이 아닌, 휘두르기 위한 둔기 용으로만 사용한 채.


단순히 강함만이 다가 아니다.


나의 옛 제자 미소노 미카는, 적대하는 이에게 한 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였다는걸 다시금 실감한다.


하지만 이번 일에 있어서는 그녀의 그 잔인함 덕분에 내 목숨도 건질 수 있었다.


"미카, 너 괜찮..."


상황이 끝난 뒤 그녀의 안부를 물으려던 찰나,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미카는 스스로의 총을 지팡이마냥 기대려다 주저앉는가 싶더니, 그대로 의식이 있음을 의미하는 헤일로까지 사라진 채 쓰러져버렸다.


"미카!!!"


팔다리의 상처에서 터져나오는 아픔조차 망각한 채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얼굴을 살펴보았을 때는, 환자 특유의 새빨간 얼굴이였다.


감기에 걸렸을 때나 들을법한 쌕쌕거리는 숨소리에 황급히 이마를 짚어보았다.


"...완전 불덩이잖아."


나도 어딘가에서 빨리 상처를 치료받아야 한다.


여기가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골목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 머릿수가 만신창이가 된 채로 뻗어있다.


경찰이 몰려드는건 시간 문제겠지.


최우선시해야 될 사항은 이 자리를 뜬 다음 그녀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고 나도 내 부상을 치료해야 된다는 것이다.


우선 그녀를 업고 일어섰다.


그 다음은 내 차고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


차키는 없지만, 지문으로 시동을 걸 수 있는 차가 있으니 그 차를 이용해서 시외로 향한 뒤 그곳에 있는 병원에서 내 상처를 치료하고, 그녀도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직에서 있을 곳이 없어진 내가 이 뒤로 어디를 향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차라리 자수를 하고 감옥에 갇혀버리는게 나을지도 모를 일...


"...선생님, 또 나쁜 아이한테 속아버렸네."


귓가에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


"미카...너...!"


퍽 하는 둔탁한 소리.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의식의 끈은 마치 기름을 바른 동앗줄처럼 내 정신을 저 너머 밑바닥으로 떨어트린다.


바다속에 잠기듯, 저 아래로...




눈을 떴을 때는 상당히 낯선 천장이였다.


팔다리의 아픔은 희미해졌고, 들이마쉬고 내쉬는 호흡이 상당히 편안하다.


하지만 이곳이 병원이라기에는, 한낮에는 전기를 아낀다는 모토라도 있는 모양인지 천장의 전등이 꺼져있는 상태였다.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어딘지 살피기 위해 몸을 일으켜보았다.


역시 병원이라기에는 상당히 아늑해보이는 침대. 생활을 위해 준비된 듯한 문 너머 부엌의 풍경과 거실의 광경.


"여긴...어딘가에 있는 호텔인가?"


"...일어났나보네 선생님."


바로 옆에 의자에 퀭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미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카, 너 그 때 쓰러졌던건..."


"선생님 끌려간거 확인하고 며칠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구할 방법 알아보다가 그 날까지 쉬지도 않고 무리해서 움직였다가 그렇게 됐대."


"그럼 지금은..."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다 나았어. 선생님은 일주일 정도 거기 누워있다가 목숨엔 지장 없다고 확인 받은 뒤에 퇴원해서 내가 여기까지 데려온거고."


"...병원까진 어떻게 갔어...?"


"...선생님 개인차고에 있는 차에서 선생님 지문으로 시동걸어서 시외까지 빠져나왔지."


"운전...할 줄 알아?"


"졸업하고 바로 면허 땄어."


다른 질문도 정신없이 해댄 상황이지만, 처음 그녀에게 했던 그녀의 몸상태에 대한 질문의 답이 단순 몸살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 나는 요 몇 년간 그 어느때보다 철렁했던 마음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아......다행이다..."


"...뭐가 그렇게 다행인데?"


그녀는 퀭해보이기도 하고 어딘가 단단히 화가 나있는 듯 하기도 했다.


"...네가 별 탈 없다는 거."


"...그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 이제 선생님 말 못 믿겠어."


"......"


외통수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녀에게 상당히 험악하게 굴었던 것도 모자라서 상처가 될 만한 말들로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팠으니, 그 부분에선 변명할 여지가 없다.


"...괜찮다면, 내가 키보토스에 가기 전까지 있었던 일, 들어줄래?"


"...좋아."


화가 난 듯 하면서도 그녀는 바로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갖췄다.


그녀를 험하게 대한 일은 그 어떤 일로도 해명할 수 없겠지만, 이곳에서의 나와 키보토스에서의 내가 보여준 모습의 괴리.


적어도 그 차이가 발생했던 이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납득을 위한 변명 이라기 보다는, 그저 이야기하지 않은 채 홀로 짊어지고 가는것에 지쳐버려서 저지른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그 충동이, 지금의 미카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를 일이지.


한심하다.


그녀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그녀가 품고있는 나에 대한 환상을 무너트려서 나에 대해 환멸 하게끔 만들고 떠나게 만들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그녀가 나로 인해 상처입는 모습을 봐버리자 한없이 마음이 약해져 버린다.


상당히 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내가 기억하기에 있어서는, 가장 처음 이야기부터.


부모의 품도 기억하지 못 한 채로 뒷골목을 떠돌던 아이.


이런저런 어른들 사이에서 매를 맞아가며 악착 같이 일하면서 벌어 모은 돈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공부했다.


하지만 고아라는 신분은, 아무리 먹고 마실 것을 줄여가며 공부에 몰두해도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과도 같았다.


한창 꿈을 품은 혈기 왕성한 시기에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한 나는, 그대로 산을 오르려다 계곡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기세보다도 맹렬하게 삐뚫어졌다.


꿈을 높게 잡은 만큼 삐뚫어 졌을때도 그 반작용의 기세를 탄 것일까, 좌절당한 꿈으로 인해 쌓인 분노를 과감하게 쏟아부을 수 있던 덕분일까.


불량배들 사이에서도 순식간에 이름을 쌓은 나는, 그대로 범죄 조직의 눈에 띄게 되었다.


나의 폭력성을 눈 여겨 본 간부는 곧바로 그에 어울리는 일을 맡겼다.


주변 시민들을 향한 폭력적인 통제, 적대 조직 궤멸.


그 외에도 온갖 손을 더럽히는 일들을 맡겨왔고, 나는 무엇을 위한 분노인지도 망각한 그것을 어딘가를 향해 쏟아부었다.


스스로가 품었던 꿈과 지금의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의 괴리는 나를 더욱 깊은 분노 속으로 빠트렸다.


처음 나는 나 자신의 마음을 꿈에 기대어 살아왔다.


하지만 그 꿈이 좌절된 나는 그 이후 스스로의 분노에 마음을 기댄채로 살았다.


그러나 처음 나 자신이 품었던 꿈과의 괴리를 떠올린 이후, 내 마음은 무엇에도 기대치 못한 채 이 망망대해같은 세상을 해매게 됐다.


그러던 와중, 비가 잔뜩 쏟아지던 어느 날이였을까.


범죄자들이 날뛰는 이 회색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하늘빛 머리의 소녀를 만났다.


팔에 상처를 입은 채 지쳐있던 그녀를, 답지않은 변덕이 들끓었는지 나의 방까지 데려와서 간호했다.


천사를 연상케하는 헤일로를 머리에 달고다니던 그녀는, 자신이 키보토스라는 연방 학원도시에서 왔으며, 그곳에서 선생님으로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왔다.


조직원이 조직을 버리고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였기에 당연히 거절하려 했지만, 그 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내 마음속에서 뭔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습격을 받고 실종된 채 사실상 죽은거나 다름없는 정황을 꾸민 뒤 그녀와 함께 도망치듯 키보토스로 향한 나는 학생들의 선생님으로서 나 자신을 '상냥한 선생님'의 가면 속에 가두었다.


불합리한 환경에서 자라 겨우 품었던, 덧없이 좌절당한 삶에 대한 꿈.


그 감정에 대한 미련이였다.


다른 누군가를 흉내내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미련으로 만든 가면이였던 만큼, 가면을 쓰는것에 있어 큰 지장은 없었다.


다만 한가지 괴로운 것이 있다면.


"선생님이 계셔주셔서 다행이에요."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법은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아리스를 행복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내게 감사를 표하는 수많은 학생들의 호의.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꿈을 응원해준 마음에 손톱 만큼의 기만이나 거짓이 없었다고 다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격려는 한창 순수한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배워나가는, 청춘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을 위한 이야기.


진흙탕같은 곳에서 삶을 시작한 채 마음속에 품은 꿈마저, 청춘마저 어른들의 악의에 덧없이 꺾인 내게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돼 버린 것이다.


키보토스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희망을 바라보며, 나 또한 그들에게 동화된 채로 살아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이 본인의 자리에 돌아온 뒤, 이곳에서 나의 역할을 다 했다 생각한 나는 특별히 챙길 짐도 없이 도망치는 심정으로 키보토스를 빠져나왔다.


"...큰 잘못을 저지른 미카가 다시 일어서는 걸 응원해줬을 땐, 나 스스로도 너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는게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선생님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거야?"


"응...부모님도 없이 길거리를 떠돌아다녀야 했던 내가 가장 절박하게 원했던건 교육이였거든. 형편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과 지혜를 품을 수 있게 해주는, 비록 세상의 음지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양지를 바라보며, 그곳을 향해 걸어나갈 수 있다고 알려주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어."


그 날 총학생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다시 생각해보면 '선생님'으로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


그 한 마디가 오랜 시간동안 꺾여 바스라져가던 나의 꿈을 다시 타오르게 해줄 불씨가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선생님은 이미 꿈을 이룬거잖아."


"...뭐?"


"선생님이 말한 대로라면, 비록 선생님은 스스로에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도 나나 다른 모두에겐 꿈을 쫓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우리들을 지켜봐주고 우리들을 응원해준거잖아."


"선생님의 그 마음이 진심이였으니까, 우리들이 밝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진심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어엿한 어른이 돼서 선생님이 있는 곳까지 올 수 있었어. 선생님은 이미 나나 나기짱, 세이아짱을 포함한 모두에게 있어서 어엿한 '선생님'으로서 있어줬는걸?"


"그 진실된 마음이 우리들로 인해서 결실을 맺었으니까, 선생님이 '선생님'이 되고싶었던 이유를 실현시켰으니까, 더 이상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해주었던 모든 것들이 스스로나 우리들을 향한 기만이라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러니까...그 이상 스스로의 진심을 부정하면서까지 나를 밀쳐내지 말아 줘."


한 순간 볼을 타고 낯선 감각이 흘러내린다.


눈물을 흘린것이 얼마만일까.


잠시나마 방심하고 털어놓은 순간, 그녀는 내 마음속 가장 깊숙히 들어와서는 내 마음에 울려퍼질 한 마디를 던졌다.


"갈기갈기 찢어졌다면 그만큼 악착같이 모두 찾아서 붙일거야. 갈갈이 찢어진 선생님의 마음의 조각 한 톨도 빠짐없이 내가 모아서 붙혀서, 고쳤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거라구."


그녀가 내 어깨를 잡은 채 다가온다.


이토록 그녀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던가.


은하수처럼 빛나는 머릿결.


봄 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피부의 온기.


우주를 담은 듯한, 그 너머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


그녀의 눈에서도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새빨간 그 입술에 담겨있을, 마음속에 담겨있을 감정.


그 마음을 알고싶어진다.


그렇구나, 지금의 나는 그녀를...




"선생님...나는, 선생님을..."


아아. 정말...


그녀는 왜 이렇게 비겁하게 자란걸까.


그녀가 내 마음 속에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온 이 순간.


내게 그녀를 거절하는 것으로 그녀를 상처입힐 용기가.


상처입은 그녀의 슬퍼하는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밀쳐낸 뒤 다시 혼자 남아버리는 상실감을 견뎌낼 용기가.


이 회색도시의 어둠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등 떠밀어 준 천진난만한 밤의 희망에게서 등 돌릴 용기가.






"그래. 나도 사랑해. 미카."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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