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메디먼트뉴스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메디먼트뉴스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개념글 리스트
1/3
- 'BTS 공연' 때 빈방 없다는데…해외 플랫폼엔 버젓이 판매 ㅇㅇ
- 싱글벙글 귀여운 게임 마스코트들..jpg ㅇㅇ
- 푸바오 다시 한국으로 오나…기후장관 "남자친구와 오도록 노력" ㅇㅇ
- ‘한쪽 팔 장애’ 갖고 태어난 아기 질식사 도운 산부인과 의사 징역 3년 수능디
- 이경규가 이제는 양심냉장고를 못하는 이유 ㅇㅇ
- 이재명이 말하는.. 이대남의 문제점 ..jpg 3dd
- 아직까지도 서로 긁는 남사친여사친만화 ND1998
- 롯시 메박 합병소식 유동닉
- "AI, 이미 통제 범위 벗어났다"…빅테크 수장들 잇단 '경고' ㅇㅇ
- 유럽, 美 확장억제 불신 속 자체 핵전력 강화 논의 ㅇㅇ
- 인터넷으로만 봤던 3천여자가 걸려 헤어졌다는 현대모비스 ㅇㅇ
- 뉴비 여행 갤럭시s21 첫촬영 지망생
- 싱글벙글 양육비 20만원 희망하는 사람 ㅇㅇ
- 파스타 안에 '이물질'…"담배꽁초 아냐" 손님 맞고소한 제주 식당 ㅇㅇ
- 사립대 등록금 줄인상에 학생들, 거센 반발 ㅇㅇ
싱글벙글 2차대전 당시 일어난 조선인 노동자 폭동사건..jpg
때는 일본제국과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건 격전이 벌어지던 1940년대, 미드웨이 해전 이후일본이 점령했던 태평양 대부분의 섬들이 미군에게 넘어감으로써일본 제국의 태평양 점령지는 매우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절망적이게도 미국의 해병대가 태평양의 섬들을 속속 탈환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의 해상보급로는 원천 봉쇄되었고, 그나마 군영과 고립된 편이 아니었던 섬들도 아시아 전역에서 징발해온 식민지인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투입되어 노동을 하고 있었기에 먹을 입이 배가 된 상태에서 섬 전체의 식량은 항상 부족한 편에 속했다.그러던 중 1944년 6월, 미군이 마셜 제도의 대부분의 섬을 점령한 후에는 미군의 봉쇄작전이 심해지면서 섬에는 식량 보급이 끊겼다. 그래서 일본군은 전투민족이자 동양의 강군, 사무라이의 후예답게 병력을 한곳에 모아두지 않고 섬 전역에 소규모로 분산시켜 가면서 자력갱생을 도모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우리 싱붕이들은 당연하게도 ‘섬이니 고기잡이를 하면 되지 않노?’라는 의문이 들테지만 당시는 전시상황이었고, 미군은 일본군 점령 하에 있는 섬 근해를 순찰하면서고기잡이를 하러 나온 일본군에게 기관총을 존나 갈겨댔던 터라일본군은 꼼짝없이 섬에 갇힌 채 쫄쫄 굶어가며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그러던 중 일본제국의 패전이 임박한 1945년 2월,남양군도의 한 일본군 점령지인 밀리환초에서 폭동이 일어난다.당시 밀리환초는 1942년 일본군이 군사기지를 건설한 이후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징용을 때려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인과 뒤섞여 노역을 하고 있었는데, 이 당시는 미군이 섬 주변을 포위한 상태라 섬 전체가 극도의 식량부족 사태를 겪고 있었다.그렇게 섬 전체가 말라죽어가던 어느날, 한 일본군이 섬내에 거주하던 조선인 노동자에게 선심쓰듯 고래고기를 먹으라고 주게 된다“배고프지? 이거 먹으셈 ㅎㅎ”“이기이기 쪽바리새끼들 갑자기 뭐노 ㅋㅋㅋㅋ 잘먹겠다 이기야.“그렇게 오랜만에 원없이 먹는 고기에 조선인들은 배를 실컷 채웠는데 며칠 뒤 섬을 수색하던 한 조선인이 충격적인걸 발견해버림(순화된 이미지)바로 산 깊은곳에 이곳저곳이 뜯겨 살점이 도려내진 조선인 노동자들의 시체가 쌓여있었고,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군이 줬던 고래고기가 사실조선인 고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게 됨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저새끼들한테 모조리 잡아먹힐 거라고 직감한조선인 노동자들은 1945년 2월 28일,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밀리환초 내의 체르본섬에 주둔하던일본군 감시인 11명을 살해하고 근방의 미 함대에 투항할 계획을 세우게 됨.그렇게 조선인 장정들은 총을 들고 섬을 감시하던 일본군 11명을작업에 문제가 생겼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숲으로 유인한 뒤집단으로 달려들어 죽여버리는데 절망적이게도11명 중 7명만을 죽이는데 성공했고, 살아남은 일본군 4명은죽창을 든 미친 조선인들에게서 탈출해버림….결국 다음날 긴급 구조요청을 받은 일본군 15명이 기관총을 들고체르본섬에 상륙해 폭동을 일으킨 조선인 100여명을 전부 학살해버리면서조선인 식인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조선인 폭동은 하루 천하로 끝나버리게 됨여담으로 조선인들도 일본 제국군에게 죽을 바에는 저항이라도 해보자는 심산으로 곡괭이와 둔기, 단검 등으로 죽기살기로 저항했지만기관총으로 무장한 정규군에게 상대가 될리 만무했기에 결국 전부 몰살엔딩으로 끝나게 됨+ 거기에 밀리환초 학살의 최악의 피해자였던 체르본섬 원주민들은조선인 폭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일본군한테 부족 전체가 싸그리 몰살당해 일가실각해버렸다고 한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이슬람 난민들을 일본이 안 받는 이유
살만 루슈디라는 시인이 1988년에 "악마의 시"라는 책을 냄.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이 반이슬람성향의 내용이었고 선지자인 모하메드를 모욕했다고 이란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살만 루슈디에게 궐석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함... (호메이니의 사진) 그리고 악마의 시 출판에 관여한 놈들을 응징하라고 파트와(fatwa)를 내림 파트와는 종교지도자의 "권고"인데 사실상 악마의 시 출판한 사람들 테러하라고 대놓고 지시내리는 것임 그래서 살만 루슈디는 암살자들을 피해 영국으로 도망치고 거기서 난민 지위를 받아, 죽을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음 (하메네이의 사진) 그 뒤 호메이니의 뒤를 이은 하메네이는 더 강력한 파트와를 내림... 악마의 시를 번역하거나 언급한 놈들도 응징하라고...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이슬람교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이 시집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살해를 당한 사람이 생겨버림(살해당한 이가라시 교수의 사진) 1991년 7월12일, 이가라시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수차례 칼에 찔린 채 살해당함. 그런데 일본 경찰이 용의자를 찾다가 이가라시 교수의 조수들 중에 방글라데시인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고, 행방이 묘연해 수사를 진행했음 그러나 그 방글라데시인은 이미 해외로 출국한 후였던터라 일본경찰로선 할 수 있는게 없어짐... 일본경찰은 방글라데시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방글라 정부는 거부함 결국 용의자가 잡히지 않은 채로 수사는 종결되고 일본사회와 일본법조계는 무슬림들이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 비로소 깨달음. 그래서 일본은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연관이 없다는 증거가 없는) 이슬람교도에 대해서는 절대로 난민 지위를 주지 않음. 돈 없고 뭔짓을 할지 모르는 새끼들은 애초에 일본에 오지말라는 소리임.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로부터 10년전에 이미 이슬람교에의한 살인테러가 일어났던거임... 이렇게 일본과 미국은 이민자들로인해 테러를 당한 이후부터는 섣불리 이민자들의 귀화를 받지 않았음 특히 미국은 동양권 국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주권을 주지않는 일이 비일비재했음 그래서 미국에서 활약하는 각종 슈퍼스타들조차 영주권을 따려고 노력했음... 배우나 운동선수... 영주권을 얻음으로써 얻는 혜택이 상당했기에 세금과도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당연하게 영주권을 취득했었음 근데 그런 영주권을 아예 받을 생각도 안 한 사람이 있었음 그게 누구냐면 바로 박찬호임 박찬호는 영주권을 얻으려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음 전성기였던 LA다저스시절, 군복무 문제 때문에 다저스 측에서 귀화제안까지도 했었으나 박찬호는 거부했음 그렇게 군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면 강제적으로 한국으로 와야하는 상황 속 열린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박찬호는 결승전인 한일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콜드승을 따내 대한민국 야구국가대표 역사상 첫 금메달을 만들어냈었고 군면제가 된 박찬호는 더 이상 국가대표로 한국에 올 필요가 없었음 그러나 박찬호는 한국을 저버리지 않았음 99년, 26살의 나이로 한국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기 시작해 악플로인해 자살을 생각했었던 2007년에도 야구선수로서 꿈의 무대인 월드시리즈에 뛰며 팀의 우승을 도왔던 09년에도 일본에서 뛰었던 11년에도... 6억을 기부하며 무급으로 고향팀 한화이글스의 옷을 입고 뛰었던 12년에도... 은퇴하고 현장에서 물러났던 16년에도... 25년이 지난 24년 지금도... 박찬호가 기부하는 이유는 별 다를게 없었음 기부를 시작한 99년에 기자가 왜 기부를 하냐고 물어보자 박찬호는 “어렸을 적 ‘만약 내가 프로에 가면 후배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교포 어린이들에게 편지를 많이 받았다. 그들은 야구를 통해 한국인임을 주위에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곤 했다. 재미 한인사회를 위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라는 이유로 25년째... 매년 몇억씩 기부를 하기 시작했음... 비단 야구 유소년들에게만 기부를 하는게 아님 심장병을 가진 어린이를 위해 기부를 한다던가... 고향의 불우한 노인분들을 위해 치료비를 기부한다던가... 다문화 아동을 위해 기부를 한다던가...자신과 상관이 없는 나라에도 기부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음... 그러는 와중에도 박찬호는 국가대표로 나갈 수 있을 때마다 스스로 나가고 싶다 할 정도로 진심이었음... 국가대표 방어률 0점대... 거기에 실점한 2실점도 알루미늄배트를 사용한 대회인지라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기록임... (현재 야구에서는 알루미늄배트 사용을 금지하고있음. 타자에게 극단적으로 유리하기에...) 특히 06WBC에선 당시에 부진한 박찬호였기에 패전조로 시작하다가 마무리투수, 그 뒤 일본전 선발이라는 에이스자리까지 스스로 올라갔음... 거기에 결승전 상대가 미국으로 확정나자, 김인식 당시 국가대표감독은 결승전 선발을 박찬호로 확정하고, 4강 한일전에 박찬호를 제외한 모든 투수를 출격대기시킬 정도로 박찬호에게 많은 기대를 한 상황이었음... (그러나 팀은 4강전 일본에게 패배) 이후 박찬호는 베이징올림픽 지역예선이라는 사소한 대회, 메이저리거는 오지도 않는 대회에서도 스스로 차출을 자청해 대만전 3이닝 무자책으로 세이브까지 기록함 (이때 선발은 6이닝을 소화한 류현진, 대만전을 류현진-박찬호로 끝냄) 박찬호의 국가대표 통산 방어률 0점대가 말이 안되는 기록인 이유는 코리안몬스터 류현진이 3.51 국대에서 미친듯이 잘한 윤석민이 1.39 10년대 좌완에이스를 맡은 김광현이 3.92 양현종이 3.1을 기록할 정도였으니... 더더욱 박찬호가 상대한 06wbc 상대들은 현역 메이저리거가 총출동한 호화군단을 상대로 한 기록이라 더 값진 기록이었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왜 굳이 일본에서 주는 연봉 24억을 포기하고, 2400만원만 받고 선수생활의 마지막1년을 한국에서, 그것도 최약체인 한화에서 마무리를 했냐고 의문을 가질 사람도 있을텐데 이유가 별게 아니었음 팬들에게 자신의 경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작성자 : ㅇㅇ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