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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이변이 없는 낙원

Raisi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8.27 23:57:32
조회 426 추천 8 댓글 6
														

“오늘도 조심해서 다녀오렴, 요우무. 요즘 세상은 정말이지 흉흉해서, 선의로 행한 일도 최악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단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사람들 이목을 끌지 않게 조심하고, 불의를 보더라도 무시하라고 하고 싶지만, 네 성격상 그럴 것 같진 않구나. 그러니 부탁하건데, 린노스케만 만나고 바로 돌아와 줬으면 한단다. 알겠지?”


요우무는 밖에 나오면서 들었던 유유코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매번 외출할 때마다 듣는 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다지 중요하게 듣지 않고 한쪽귀로 흘려듣던 그 말이 지금 생각난 이유는,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눈밭 위에서 뒹굴어가며 쳐맞고 있는 누에가 눈앞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더러운 요괴가 우리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했다니깐요!”


“어린아이의 고기 맛이 그렇게도 맛보고 싶더냐? 이 더러운 요괴 녀석!”


누에는 보는 사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처참하게 발길질 당하고 있었다. 어째서 요괴 혐오가 득실득실 끓는. 진원지라고 불러도 될 법한 인간마을에 겁도 없이 요괴가 들어와서 매를 벌고 있는지 요우무는 알 수 없었지만, 요괴의 절에 속해있는 요괴가 사람을 잡아먹을 리가 없었다. 물론 술도 마시고 고기도 뜯는 답 없는 땡중들인 건 사실이지만, 최소한 그 술과 고기가 사람으로 만든 건 아니니깐 말이다. 요우무는 또 한번 유유코님의 말씀을 잠깐 곱씹어 보았다. 가능하면 불의를 보더라도 무시하라고 하셨지만, 요우무는 불쌍한 누에가 억울한 누명 때문에 얻어맞는걸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누에를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신명나게 발길질중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제 그만 그 요괴를 보내줍시다.”


“넌 누군데 또 참견이야? 이 요괴놈이 어린아이를 잡아먹을려고 했는데 겨우 이정도로 끝내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잠만... 저 여자애 주변을 돌아다니는 반령 보여....? 저년도 더러운 요괴년이야!”


“어쩐지 이놈을 감싸주더라니만... 일단 저 반령부터 혼내주자고!”


인간들은 누에를 때리는걸 멈추고 요우무에게 다가왔다. 요우무는 그들을 위협하기 위해 조심스레 누관검을 뽑아 인간들을 겨눴다.


“죽고 싶지 않으시면 얼른 물러나시는게 좋을겁니다.”


인간들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 느닷없이 웃음보를 터트린 후 말했다.


"요괴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면 어찌되는지 잘 알고 있을텐데?“


“무녀가 나타나 네놈을 죽여버릴거라고!”


“네놈 요괴들은 우리 인간을 절대로 못 건들여! 할 수 있으면 해봐!”


요우무도 질세라 맞붙었다.


“내 검이 당신들을 베는게 빠를까? 무녀가 와서 날 죽이는게 빠를까? 누가 더 당신들하고 가까운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텐데.”


그제서야 인간들은 서슬퍼런 빛을 띈 누관검을 보곤 살짝 겁을 먹은듯 수군거리며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어려울것 없어. 그냥 저 불쌍한 요괴를 놔두고 떠나면 되는거야. 그럼 피를 볼 일도 없고, 무녀가 올 일도 없겠지. 참 쉽지? 알아들었으면 얼른 떠나줄래?”


인간들은 머뭇거리며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하지만 그들도 딱히 별 수는 없었는지 궁시렁 거리며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요우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누에를 향해 다가갔다. 배를 바닥쪽으로 향한 채로 한껏 웅크리고 있던 누에는, 요우무가 오는걸 보고나서야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눈을 털며 일어났다.


“.... 고마워.”


“이름이... 누에 맞던가? 몸은 괜찮아?”


“응, 인간들이 때려봤자 간지러울 수준이지. 넌... 요우무였지? 명계에서 정원사 일을 하는 그 반인?”


“맞아! 정확힌 반인반령이지... 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지! 인간마을에서 뭘 하고 있던거야? 설마 술 사러 몰래 내려왔다던가 그런거야?”


“... 으.. 응? 응! 맞아! 맞아! 당연히 술 때문이지! 우리 요괴 절 요괴들이 술 아니면 인간마을로 내려올 일이 뭐가 있겠어? 우리 주지스님껜 비밀로 해줘, 이번에 또 걸리면 단순하게 설교로 끝나실 것 같진 않으니깐 말이야. 그러는 넌 왜 인간마을에 있는거야?”


“향림당에 가는길이였어. 그런데 맨손으로 가긴 좀 그래서, 간단하게 음식이라도 사갈려고 와본거야.


누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요우무의 몸을 구석구석 흝어봤다.


“아... 하. 그리고 그 어디에도 짐 같은건 안 보이는것 같은데 그렇다는건...”


“맞아... 가는 가게마다 전부 문전박대 당했어. 어떤 집은 내가 들어오는걸 보고 소금까지 뿌리더라니깐. 뭐, 짱돌 안 맞은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지.”


“인간놈들이 그렇지. 저놈들은 자기들하고 조금만 달라도 혐오감을 내비치는 놈들이야. 미개하기 짝이 없고, 멍청하기가 요정수준에다가, 결정적으로 도교를 믿지. 내말이! 도교를 믿는다니깐! 도교 놈들은 방화범에, 네크로필리아에, 관음ㅈ......”


누에는 밑도 끝도 없이 도교를 까대기 시작했다. 가만히 놔두면 해가 질때까지 떠들어댈 기세였기 때문에 요우무는 한참을 떠들어대던 누에의 말을 끊었다.


“그럼 난 향림당에 가보도록 할게. 린노스케씨를 기다리게 하고 싶진 않아서 말이야. 인간마을은 위험하니깐 너도 빨리 돌아가는게 좋을거야.”


하지만 급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요우무는 누에에게 오른손을 잡혀 멈출수밖에 없었다.


“나도 같이 가줄게.”


“뭐...?”


“너가 방금 말했잖아. 인간마을은 위험하다고. 향림당까지 갈려면 꽤 걸릴텐데, 아까 사람들을 화나게 한 이상, 혼자 다니는건 위험해. 그러니깐 내가 향림당까지 가는동안 보호해줄게! 믿어도 돼! 이래뵈도 대요괴라서 약하진 않아!”


“어... 뭐.. 그래... 너가 정 그러고 싶다면야.”


눈을 반짝이며 양 날개를 꼬물거리는 자칭 ‘대요괴’인 누에의 눈빛을 요우무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마침 가는동안 지루하기도 하고, 누에 말마따나 사람들이 복수라도 할려고 찾아오면 도움이 되긴 싶겠지 라는 생각에 요우무는 무심코 승낙해 버렸다. 승낙을 하긴 했지만 꽤나 어색한 사이였던 둘은, 한참을 침묵을 유지한채 걷기만 하였다. 결국 침묵을 참을 수 없던 누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위험한 인간마을을 들어가면서까지 먹을걸 사갈려고 하다니, 린노스케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나봐?”


요우무는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잠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녀는 고개를 올려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린노스케씨는 신사적이시니깐, 언제나 멋지시고, 친절하시고, 배려심도 있으시잖아!”


“엨, 그 바가지나 씌울 줄 아는 장사꾼이?”


“응! 언제나 가면 녹차와 간식을 주시는데, 그것들을 앉아서 먹으면서 향림당 내부를 구경하고 있으면 정말 행복해진다니깐!”


“나즈린은 언제나 쇼우가 보탑을 잃어버리면 매번 보탑이 향림당으로 가 있어서 바가지를 당하면서 가져와야 한다고 불평해대던데. 그런 신성한 물건을 돈 받고 팔 생각을 하다니 불경한거 아니냐면서 말이야 킥킥”


“넌 아직 한번도 린노스케씨를 못 만나본거야? 그럼 너도 같이 향림당에 가자! 거기엔 신기한 물건이 정말 많아서 지루할 틈이 없을거야!”


누에는 혼잣말로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구나 하고 중얼거렸지만, 요우무는 듣지 못했다. 둘이 한창 향림당의 골동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걸어가자, 이윽고 향림당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요우무와 누에는 신이 나 순식간에 달려갔지만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향림당의 벽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고, 밖에 내놓은 항아리들은 전부 산산조각 나있었다. 문은 완전히 나가떨어져 경첩만이 삐걱거리고 있었다. 요우무는 누에가 눈치 채기도 전에 향림당 안쪽으로 뛰어들어갔고, 곧 절규 섞인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따라들어간 누에가 본 것은 정말, 정말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향림당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선반에 있었을법한 물건은 전부 바닥에 떨어져 발 디딜 틈을 주지 않았고. 서랍이란 서랍은 죄다 열려있었다. 그리고 방 한쪽 구석엔 린노스케가 수많은 창에 꿰뚤려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있었고, 요우무는 그 옆에 주저않아 신음 섞인 울음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누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요우무가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밖으로 나왔다. 밖에선 요우무의 슬픔을 대변하듯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요우무는 생각보다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한손에 삽을 쥐고.


“요우무, 이젠 괜찮아? 웬 삽이야?”


“.... 린노스케씨를 위한 무덤을 만들어 드릴거야.”


“그거라면 묘지로 가져가서 하는게...”


“린노스케씨는 반요야! 어디에 묻히던 환영받지 못한다고! 인간들의 묘지에도, 요괴들의 묘지에도!!! 린노스케씨가 편히 묻힐 수 있는 곳이라면 여기, 향림당 말곤 없어.”


요우무는 입을 닫고 삽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어붙은 땅은 삽을 너무나도 쉽게 튕겨냈다. 요우무가 슬슬 힘에 부쳐갈 때, 누에가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한손에 삽을 쥐고. 둘은 말없이 무덤을 묵묵히 팠다. 린노스케씨를 묻고 나서, 무덤을 한참 처다보던 요우무가 입을 열었다.


“어이없게 죽은걸로도 모자라 묘비도 없는 무덤에 묻히시다니. 린노스케씨는 이런 대우를 받으실 분이 아니야.”


“말 나온 김에 린노스케의 죽음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뭔데?”


“린노스케는 아마 분노한 인간들에게 당한것 같아. 서랍이란 서랍은 죄다 열려있고, 린노스케도 창..... 으로 잔뜩 찔러져서 죽은걸 보면. 아마 요괴놈이 혼자서 금은보화를 잔뜩 쌓아놓고 사는 줄 알았겠지. 실상은 전혀 아니었겠지만 말이야. ....후 미안, 지금의 너에게 하기엔 그다지 좋은 소리가 아니였네.”


죽은 린노스케를 추모하기라도 하듯 잠깐의 침묵이 한번 더 돌았다.


“린노스케씨는”


“응?”


“린노스케씨와 나는 비슷한 처지였어. 반인반령인 나나, 반요인 린노스케씨나 둘다 애매한 정체성 때문에 인간에게도, 요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어. 인간은 우릴 요괴라 부르며 싫어했고, 반대로 요괴들은 우리보고 인간이라며 싫어했지. 그런 환경에서 우린 서로를 지탱하며 버텨가고 있었어.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고... 하지만 린노스케씨가 죽은 지금. 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 난 이제 어디에도 낄 수 없게 되어버린 거야. 흑백의 세계에서 난 혼자 회색인거지...”


누에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우물쭈물하다 결심을 한 듯. 요우무에게 말했다.


“묘비 그까짓거. 하나 만들어서 박아주면 되는거지! 명런사로 가자!”


“명련사...? 거긴 요괴들을 위한 절이잖아. 내가 가봤자 그다지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텐데...”


“뭐? 그게 대수야? 넌 날 구해줬잖아! 그 정도면 충분해! 우리 명련사의 요괴들은 너가 날 구해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널 환대해 줄거야! 주지스님이야 말할것도 없지! 히지리님은 인자하시니깐 애초에 너가 요괴든 인간이든 신경 안 쓸거야. 무엇보다, 린노스케의 무덤에 묘비 하나쯤은 박아주고 싶다며? 운잔이 비석 만드는 실력 하난 끝내주거든. 운잔이 만든 묘비을 무덤에 박아주면, 린노스케도 편히 성불할 수 있을거야. 어때 갈거지?


요우무는 명련사에 가고싶진 않았지만, 운잔이 만든 묘비 하나면 린노스케가 그나마 편히 갈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자...”


그렇게 둘은 린노스케의 무덤을 뒤로 하고 명련사로 터덜터덜 향했다. 명련사에 도착해 들어가자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요괴들이 명련사에 모여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요우무는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요괴들이 한 장소에 모인걸 본 적이 없어서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요우무가 멍하니 요괴들을 구경할동안 누에는 무라사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나눴고, 대화를 마친 무라사는 요우무를 크게 환영하며 히지리에게 안내했다. 히지리는 커다란 불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린노스케의 부고 소식을 듣곤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런... 린노스케씨가 그런 일을 당하다니... 정말 안타깝네요. 저희도 향림당의 단골이었습니다. 상심이 크시겠네요.”


“대부분은 잃어버린 보탑 사오는 일이였지만 말이에요. 낄낄.”


하지리는 실없는 발언을 한 누에를 째려보았다. 히지리의 눈빛이 어지간히도 무서웠는지 누에는 순식간에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였다. 요우무는 그런 히지리에게 조심스레 묘비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린노스케씨를 위해 묘비 하나만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머! 당연하죠 요우무님! 다만 지금 당장은 이치린과 운잔이 밖에 나가있어서 힘들겠네요. 오늘 저녁쯤에 오시면 바로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때 오시겠어요?”


“네, 그럼 그때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헌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나요?”


“네, 당연하죠. 궁금한건 전부 물어보도록 하세요.”


“저기..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요괴들이 그렇게 많은건가요?”


“아, 불쌍한 자들이죠. 도를 넘은 인간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겨 갈 곳을 잃은 요괴들이에요. 그런 요괴들을 저희 명련사가 받아주고 있는거에요.”


“여기 명련사는 인간들로부터 안전한건가요?”


“당연합니다. 저와 쇼우가 있는 이상. 이곳엔 절대로 악의를 가진 인간이 들어올 수 없어요.”


히지리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덩달아 옆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누에도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하지만 그 직후 히지리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우무님. 요우무님은 지금 인간들이 어떤것 같습니까?”


요우무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린노스케가 떠올라 주먹을 꽉 쥐었다.


“광기가 날이 갈 수록 심해지는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지금의 인간들은 도를 조금씩 넘고있습니다. 그들의 요괴혐오도 날이 갈 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혐오가 그냥 생기는건 아니죠. 그럼 누가 이런 혐오를 부추기는걸까요? 대충 예상하셨겟지만, 요괴혐오를 부추키는건 다름 아닌 도교입니다! 그들은 요괴가 없어져야지만 환상향이 깨끗해진다고 믿는 작자들입니다. 그들이 무지한 인간들을 선동했기에, 인간들이 점점 광기에 휩싸여 가는겁니다. 이대로 계속가다간 제2, 제3의 린노스케가 나올 겁니다! 다름 아닌 도교 때문에!!


요우무는 누에의 그 광적인 도교혐오가 누구로부터 옮았는지 알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말을 끊고 일어섰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전 이만 할 일이 많아서 저녁때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요우무는 명련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누에도 찰거머리처럼 자연스럽게 따라나왔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저기, 저기 요우무! 이젠 어디로 갈 생각이야?”

 

머릿속이 복잡했다. 히지리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나왔었지만, 계속해서 제2 제3의 린노스케가 나올거란 그녀의 말이 요우무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차마 린노스케 같은 희생자가 더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무녀에게 갈거야.”


“무녀? 설마 레이무 말하는거야?”


“맞아. 레이무에게 말해야 해. 이대로 계속 가다간 무고한 희생자만 계속 나올거라고 말이야!”


“나도 따라가도 괜찮지? 웬지 재밌을것 같아서 말이야.”


"마음대로 해, 하지만 무녀에게 퇴치당해도 난 모른다?“


둘은 하쿠레이 신사로 빠르게 날아갔다. 오랜만에 방문한 하쿠레이 신사는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낙엽이 채 썩지도 않은 채 눈과 함께 섞여 나뒹굴고 있었고 신사의 문은 꽉 잠긴 채 무녀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사 문이 굳게 닫혀있는걸 보면 신사 안에 레이무가 있을거라 생각한 둘은 신사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계속해서 불러대자 신사의 문이 신경질적인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크서클이 짙게 낀 레이무가 기어나왔다. 레이무는 요우무와 누에를 흝어보더니 불제봉을 높게 들어올렸다.


“요괴 두놈이 겁도 없이 여길 왔구나. 그런 겁대가리를 상실한 요괴는 죽여야겠지?”


“레이무. 린노스케씨가 죽었어.”


“어...? 린노스케가..??”


요우무가 조심스레 린노스케의 부고 소식을 전하자 레이무의 생기를 잃은 눈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레이무, 린노스케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요괴혐오가 극에 달한 인간들이 향림당으로 쳐들어가서 창으로 찔러 죽였어! 인간들이! 린노스케씨는 아무런 짓도 안했는데 말이야. 분명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건 린노스케씨 혼자만은 아니겠지. 심지어 지금도 제2, 제3의 린노스케씨가 나오고 있을 수도 있다고! 레이무! 이건 장난이 아니야.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멈춰야 한다고!


레이무는 열심히 말하는 요우무를 반론도, 긍정도 안 하고 그저 우두커니 서서 떨리는 눈으로 멍하니 한참을 쳐다봤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요우무에게 말했다.


“요우무. 알고 있었어?”


“뭘 말이야...?”


“마리사가 죽었어. 꽤 예전에 말이야. 전혀 모르고 있었지?”


“마.. 마리사가? 어쩌다가...?”


“요괴들이 일으킨 이변을 해결할려다가 요괴에게 당해서 죽어버렸어. 그래, 지긋지긋한 요괴놈들에게 말이야. 요괴놈들이 지들 분수를 모르고 이변을 일으키고 난리치다가! 마리사가 죽어버렸다고!! 내 눈 앞에서 말이야!”


“오.. 이런 난.. 난..”


“요우무 넌. 우리 둘이서 힘들게 이변을 해결하고 있을땐 뭘 하고 있었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지! 그저 명계에 처박혀 쓰레기 같은 풀때기나 열심히 자르고 있었겠지! 내가 눈앞에서 마리사가 죽는걸 두눈으로 똑똑히 볼때 말이야!”


마리사가 죽었었다니. 요우무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활기찬 아이가 허무하게 죽어버리다니.


“마리사가 죽은 이후로. 곰곰이 생각해봤어.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이 뭔줄 알아? 이변을 일으킬만한 요괴들을 전부 잡아서 죽이면, 이변이 일어날 일도 없다는거야! 그리고 내 생각대로 해봤더니 쨘! 봐봐 이젠 이변 따윈 없어. 이변으로 환상향이 고생할 필요가 없어진거야!


“레이무... 마리사가 죽을 때 그 자리에 없었어서 정말로 미안해... 아마 그때의 기분은 나로썬 상상도 할 수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녀의 본분을 잊으면 안돼! 이젠 이변따위 일어나지 않는다고? 틀렸어! 이미 이변은 일어났어! 그 어느때보다도 인간과 요괴가 서로를 증오하고 목덜미를 물어뜯지 못해서 안달인데. 이게 이변이 아니면 뭐야!”


레이무는 대청에 털썩 주저않아 땅바닥만을 바라보았다.


“레이무... 큰 부탁 안 할게, 스펠카드를 다시 써줘. 하쿠레이의 무녀인 너가 스펠카드를 다시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스펠카드를 쓰게 되겠지. 어떤 응어리가 생겨도 스펠카드로 풀어내던 그 시절이 그립지 않아 레이무..?”


“흥!”


레이무는 콧웃음을 쳤다.


“저기 요우무. 아직 넌 어린애구나. 나도, 너도 스펠카드 같이 유치한 놀이를 할 나이는 한참 지났잖아. 더 이상 말싸움하기 싫어. 그만 돌아가 줘.“


“그거 알아 레이무? 지금 이 별것 아닌 일로 서로를 차별하고 증오하고 미워하는 이 상황이 스펠카드 놀이보다 훨씬 더 유치해!


결국 요우무와 누에는 소득없이 돌아갔다. 저녁이 되자 요우무는 명런사로 가 묘비를 받았고, 린노스케에게 제사를 지내줄 수 있었다. 이후의 환상향이 어찌 될지는 현자님들만이 아시리라.


-끝-


쓰다가 시간 다 되어가서 걍 여기서 끊고 올림... 절반정도밖에 못 썼지만 참가에 의의를 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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