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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론
〈이자나기 물질〉의 분위기는 후기에서 ZUN이 ‘비봉클럽의 두 사람은 평소에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라고 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토리후네 유적〉에 비해 그것에서 이어지는 〈이자나기 물질〉은 다시금 미래 세계의 기만성과 그에 대항한 메리와 렌코의 연합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이자나기 물질〉은 동방이 환상향의 가치를 여전히 인정하며 그 결함을 직시하는 것이 모조 낙원의 공포 논리로 회귀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이자나기 물질〉은 〈몽위과학세기〉부터 〈대공마술〉까지 논의된 이야기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성숙한 언어로 반복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 논의와 동방의 변화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논리가 동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고 작동하는 지 그 예시도 엿볼 수 있다.
2.〈이자나기 물질〉에 나타난 바깥 세계
〈이자나기 물질〉에서 비봉의 미래 세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병도 대체로 치료법이 확립되어 있다. 절대로 치료할 수 없는 선천성의 병 등은 병이 아닌 개성으로 인정받아, 사회가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해 갔다.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트랙 1 ‘녹색의 새너토리엄’ 중에서)
이것은 〈몽위과학세기〉와 〈묘유동해도〉에서 그랬던 거처럼 기만적이다. 가장 직관적으로 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에서 메리가 배제되었단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 구도 자체에도 근본적인 기만성이 존재한다. 이 서술의 후반부는 반대로 보면 ‘사회가 적응하면 치료할 수 없는 병도 병이 아닌 개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귀결이며, 배리어프리 등의 논제에서 관점의 전환의 일환으로 종종 언급되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 어떤 사람의 몸뚱아리도 ‘완벽하지’ 않으며, 실제로 장애로 인지되지 않음에도 그 자체로서는 상당한 기능의 부재가 존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의 몸에는 장애의 여부가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단계가 쓰여 있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는 두 기능 부재의 사례가 사회적으로 하나는 장애로 여겨지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몸이 아니라 사회가 그것에 적응되었는가 여부에 있다. 그런 점에서 트랙 1의 논의는 타당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고칠 수 있는 병이 개성으로 인정받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는 왜 고칠 수 있는 병의 환자에게는 적응하지 않는가? 〈이자나기 물질〉에 나타난 사회상에서 이 성찰은 누락되어 있다. ‘고칠 수 있는 병’의 환자들은 완치라는 ‘완벽한’ 상태가 목표로 규정되며 그 이전까지 개성이 아닌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관리에서 벗어난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의 성질에 의해 메리는 신슈의 새너토리엄에서 요양이라는 이름의 격리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번에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연락이 있어 우사미 렌코가 마중 나온 것이다.(Ibid.)
또한 ‘절대로 치료할 수 없는’ 병들의 치료 방법이 ‘절대로’ 개발될 수 없다는 것은 누가 정했는가? 결국 고칠 수 있는 병과 없는 병의 구분은 자의적이고, 양자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서로의 논지는 각자에게 국한된다. 치료는 후자에 미치지 않고 개성과 적응은 전자에 미치지 않는다. 이것은 〈몽위과학세기〉에서 지적한 바깥 세계의 기만성이 구체화된 형태이다. 꿈과 현실은 ‘구분되지만 같은 것’이란 말로써 둘을 구분하지도 않고 같게 보지도 않으며 꿈을 무마했듯이, 〈이자나기 물질〉의 미래 세계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로써 더 이상 치료하려고도 하지 않고 적응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관리를 벗어난 것의 존재를 부정’(Ibid.)하는 데에 복무한다. 병과 장애라는 소재는 지모신, 노가쿠의 신, 별의 신, 양잠의 신, 장애의 신, 차별받은 자들의 신으로 소개되는 마타라 오키나가 등장하는 천공장에서 다시 등장한다.
〈토리후네 유적〉에 이어 인류는 이와 같이 모든 가치를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고자 한다. 그리고 그 바깥의 것을 두려워하고 부정한다.
지나친 환경보호주의는 도시를 겉보기뿐인 삼림으로 장식했다. 천연의 식물은 없는, 그야말로 그린 정글이다. 인간은 자연을 창조해 만물을 관리할 셈이었다. 관리를 벗어난 것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Ibid.)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메리는 광기로서 배제된다.
새너토리엄에 간 이유도 정신이상이라고 판단되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르다. 물론 그런 일은 아니지만 사회는 이상한 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능력은 오컬트적인 것으로서 비밀로 해야 한다.
(트랙 3 ‘하트펠트 팬시’ 중에서)
이런 상황을 서술하면서 〈이자나기 물질〉은 상기했듯이 ‘두려워하는’(恐れる)이라는 표현을 쓴다.
관리에서 벗어난 것을 두려워하는(恐れる) 사회의 성질에 의해
(트랙 1 ‘녹색의 새너토리엄’ 중에서)
〈렌다이노 야행〉의 恐れ가 경계에 대해 단순하고 일방적인 것이었다면, 이 恐れ는 사회 자신이 갖고 있는 ‘성질’ 때문에 양자 간의 상호작용 하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과거에 공포 논리로서 존재했던 공포 정서가 이제 대결계 논리 하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를 보여준다. 〈토리후네 유적〉은 어느 세계와 같이 환상향도 갖고 있는 평범한 결함과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자나기 물질〉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거부와 그것의 배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보여준다.
〈이자나기 물질〉 트랙 9 ‘일본 안의 불가사의를 모아’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언제부터 신비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나.
어둠 속에 불의 구슬이 떠 있으면, 옛날에는 죽은 자의 무념의 혼이라거나, 여우가 사람을 속일 때의 불이라고 했다.
거기에는 깊은 상상력이 있었다.
과학이 발달해도 상상력이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과학의 태반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불의 구슬은 인의 자연발화라거나, 플라즈마라거나, 뇌의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고 상상력은 사멸했다. 정보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시대에 상상의 여지란 없었던 것이다. 불의 구슬의 정체는 주어진 정보의 바다 안에 반드시 답이 있다. 없다면 뭔가 실수한 것으로 치면 된다, 라고.
사람은 답이 있는 시비를 오락으로 즐기고 답이 없는 신비를 부정했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 신이 사라진 이유이다.
(트랙 9 ‘일본 안의 불가사의를 모아’ 중에서)
앞서 설명했듯이 패러다임은 그 과학자 사회가 채택한 이론과 방법의 총체로서의 사고의 틀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이미 받아들여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토머스 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와 질문을 위의 ‘오락’에 상응하는 ‘수수께끼 풀이’라고 묘사했다. 패러다임 하에서 사람들은 문제와 자료를 패러다임에 맞춰 해석하고자 한다. 이미 정해진 규칙을 따라 풀며 그 답도 패러다임 ‘안에 반드시 답이 있다.’ 예상된 답을 얻지 못한 경우에는 패러다임이 아니라 과학자 자신에게 ‘실수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상태는 수수께끼 풀이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쿤의 이러한 모델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에 맞춰 해석할 수 없는 문제와 자료가 점점 쌓이게 되면 그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안되며 기존의 합의가 깨어진다. 그리고 헤게모니 투쟁에서 사고의 틀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인정된 패러다임이 사회의 동의를 얻어 새로이 군림한다. 이와 같이 과학이 발전한다.
그러나 이 대통일장 이론이 완성된, 관측의 종말을 맞은 사멸한 상상력의 세계에서, 패러다임 바깥의 자료는 관측되지 않고, 그 밖을 상상하는 사람도 없다. 관리에서 벗어난 것, 답이 없는 수수께끼는 부정되고, 이자나기 물질은 연구되지 않는다.
「발견된 돌 조각이 아무리 봐도 사람의 손을 탄 모습을 하고 있던 거야. 그래서 학자들도 모두 흥미가 식어버렸어.」
(트랙 6 ‘이자나기 오브젝트’ 중에서)
굉장히 신비한 데도 아무도 제대로 연구하려고 하지 않아.
(트랙 10 ‘멋진 묘지에서 살아봅시다’ 중에서)
과학세기였더라면 2500만 년 전의 돌 조각에 대해 학자들에게는 학자들 나름의 상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메리와 렌코와 같은 이자나기와 신들의 흔적일 필요는 없다. ‘과학이 발달해도 상상력이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듯이, 과학에는 과학적 방법론에 따른 과학의 상상이 있다. 그러나 이 비봉의 시대의 과학자 사회는 몽시공에서 유메미의 이론을 ‘비웃으면서 믿으려고 하지도 않’은 것처럼(몽시공 치유리 대사 중) 이자나기 오브젝트를 무시하고 연구하지 않으며, 관리에서 벗어난 것으로서 부정한다.
이런 비봉의 미래 세계의 젠코지의 전통은 침체되고 박제되어 있다.
관광객이 붐비는 나카미세도리(경내의 상점가)에 신선함은 없다. 기념품 가게는 전통에 묶인 채로 백 년 이상은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다.
(트랙 2 ‘소에게 이끌려 젠코지 참배’ 중에서)
〈이자나기 물질〉은 이제까지 간접적으로만 제시되었던 바깥 세계와 패러다임 비판을 이와 같이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제시한다.
3.〈이자나기 물질〉에 나타난 환상과 전통
향림당 3화 ‘환상의 내’에서 린노스케는 따오기의 환상들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환상과 공상이 다르다고 말한다. 한편 메리는 젠코지의 지진 기둥을 보며 ‘기둥이 뒤틀릴만한 무서운 지진의 광경’을 본다.
「이것이 젠코지 지진이 할퀴고 간 자국이라고 되어 있어.」
(중략)「지진으로 기둥만 어긋났다는 거야? 그럴 수가 있으려나.」
「사실은 말이야, 이건 기둥이 시간이 지나서 건조되며 뒤틀린 것이라고 밝혀졌어. 하지만 그보다는 지진기둥이라고 부르는 쪽이 지진의 무서움을 후대에 전할 수 있다고 모두가 판단해서 정식 명칭이 된 거야.」
메리에게는 보이고 있었다. 기둥이 뒤틀릴만한 무서운 지진의 광경이.
(트랙 2 ‘소에게 이끌려 젠코지 참배’ 중에서)
그리고 메리는 2500만 년 전 이자나기 플레이트의 자취인 돌 조각을 보고 이자나기를 비롯한 기기신화의 신들을 본다. 메리의 환상의 시야는 단순히 신비로운 것이나 상상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트랙 9 ‘일본 안의 불가사의를 모아’는 ‘상상력이 사멸’하고 ‘답이 없는 신비를 부정’한 ‘신이 사라진’ ‘이 나라’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지금은 이미, 일본은 신들의 무덤이다.
(트랙 9 ‘일본 안의 불가사의를 모아’ 중에서)
그리고 이 무덤은 비봉클럽의 상상력 앞에 생명력을 얻는다.
두 사람의 상상력은 멈출 줄을 모른다.
(중략)신들의 묘지가 사실(史実)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랙 10 ‘멋진 묘지에서 살아봅시다’ 중에서)
트랙 10의 제목 또한 이 생명력과 묘지의 역설적인 결합에서 일맥상통한다. 이 묘지는 〈대공마술〉에서 보인 ‘환상세계가 죽음을 보일 때야 말로 나타나는’ 네크로판타지아이다. 이 환상의 묘지는 바깥 세계에서 죽어있을지, 환상으로서 ‘멋진 묘지’가 될지 기로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메리가 지옥이라고 생각한(트랙 4 ‘60년만의 동방재판 ~ Fate of Sixty Years’, 트랙 5 ‘아갈타의 바람’) ‘신들의 세계’는 저승이란 의미에서는 지옥이 맞는 것이다.
죽음을 맞은 세계로서 무덤을 가진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것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 있었던 것만이 죽음을 맞아 무덤을 갖고, ‘멋진 묘지’로서 살아날 수 있다. 환상과 공상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공상은 살아 있었던 적이 없다. 살아 있지 않았던 것은 무덤을 가질 수 없다. 이렇게 〈이자나기 물질〉의 죽음과 지옥의 모티프(원래 신화에서 이자나기는 저승에 다녀왔으며, 그 과정에서 사용한 식물들이 앨범 커버에 그려져 있다)는 〈토리후네 유적〉의 생명력과 연결된다. 환상은 생명력을 가졌던 (그리고 어쩌면 가질) 상상이다.
이것이 대결계 논리에 있어서 전통의 의미이다. 상상과 옛 상식은 전통으로서의 가치를 통해 그 생명력을 증명한다. 사실 가치가 곧 생명력이다. 그것은 언제나 살아 있을 준비가 되어있으며 죽은 것은 보는 이의 상상력이다. 〈이자나기 물질〉은 젠코지의 나카미세도리를 냉소하면서 〈묘유동해도〉에서와 마찬가지로 바깥 세계가 자의적으로 재단한 전통을 비판한다. 그리고 바깥 세계가 부정하고 배제하고 있는 전통 그 나름의 가치를 긍정한다. 〈이자나기 물질〉의 알레고리는 이런 점을 보여준다.
4.결론 및 제언
〈이자나기 물질〉의 서사는 다소 당혹스러운 면이 있다. ‘이 나라의 창세와 관한 무언가 터무니없는 비밀’(트랙 5 ‘아갈타의 바람’ 중에서)이라거나, ‘역설적으로 날조는 아닌’ 2500만 년 전의 인공물(트랙 6 ‘이자나기 오브젝트’)이라거나, ‘이자나기가 실재…’라고 중얼거리는 메리의 모습이 그렇다.(트랙 7 ‘요괴 뒤 참배길) 이자나기가 실존한다고 받아들인다면 동방의 세계는 커다란 화석은 작았던 것이 커진 것이고, 산에서 조개가 발견되는 것은 그곳이 바다였기 때문이 아니라 용이 부활하기 위한 배경으로 설치된 것인 신비주의적 세계가 되는 것이 아닌가?(향림당 15화 ’이름 없는 돌‘) 사실 렌코도 메리의 이 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에? 오늘 메리 뭔가 이상한데? 갑자기 불안해지고, 갑자기 자신만만해지고.」
(중략)「에? 무, 무슨 말이야? 역시 이상해진 거야?」
(중략)렌코는 어쩐지 흥분해 있는 메리를 관찰했다. 무슨, 이자나기가 실재…등 중얼중얼대고 있다. 뭔가 조금 멀리 가버린 것 같아서 쓸쓸하다 생각했다.
(중략)렌코에게는 메리가 그런 요괴와 같은 레벨에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트랙 7 ‘요괴 뒤 참배길’ 중에서)
그러나 앞서 트랙 9 ‘일본 안의 불가사의를 모아’에서 보였듯이 〈이자나기 물질〉은 과학적 상상력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이 평가한다. 이자나기 오브젝트에 대한 메리와 렌코의 해석의 의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비봉클럽, 신비를 받아들인 자만이 볼 수 있는 다른 일본의 모습이었다.
(트랙 10 ‘멋진 묘지에서 살아봅시다’ 중에서)
이것이 〈토리후네 유적〉에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상을 보던 메리와 렌코에게 그것이 각각 현실 혹은 꿈이었던 것보다 더 신비주의적일 이유는 없다.
저번의 토리후네 유적 때도 그렇다. 렌코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꿈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현실과 다름없다. 그러니 그녀만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트랙 3 ‘하트펠트 팬시’ 중에서)
이상한 세계에서는 요괴 같은 자와 마주치는 일도 있다. 렌코에게 있어서는 그건 단순한 환상이지만, 메리에게는 현실인 것이다.
(트랙 7 ‘요괴 뒤 참배길’ 중에서)
렌코는 이 차이를 호기심과 관측에의 열망을 통해 〈대공마술〉에 이어 다시 한 번 극복한다.
렌코는 대단하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어떻게든 자기도 그 영상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나도 보여줘― 그 영상.」
(트랙 8 ‘언노운 X ~ Unfound Adventure’ 중에서)
이 ‘시야’는 불안정하지만, 어쨌건 렌코는 메리의 시야를 공유한다.(트랙 10 ‘멋진 묘지에서 살아봅시다’) 어떤 의미에서 〈이자나기 물질〉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우리들은 바깥 세계의 상식에서 , 바깥 세계의 방법론에서 동떨어진 메리의 환상을 광기가 아닌 신비로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편 메리는 트랙 4 ‘60년만의 동방재판 ~ Fate of Sixty Years’를 전후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언젠가 반드시 가게 될’ 지옥을 두려워한다. 이 공포는 분명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것이다. 〈토리후네 유적〉과 〈이자나기 물질〉은 전반적으로 공포 정서를 여느 사회의 양면성으로서 대결계 논리에 최종적으로 결합시키지만, 이런 부분을 통해서는 개인적 차원의 공포의 단초를 보여준다. 물론 이 개인적 공포는 과거와 같은 모조 낙원이 아니라 보다 정제되고 구체화된 기반 위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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