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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쌍권총 - 아이폰, 블랙베리

운영자 2010.07.05 18:46:33
조회 2900 추천 3 댓글 5

아이폰으로 트위터를 하고 진보신당 중앙당 당직자들에게 아이폰을 선물하자 나에게 별칭이 하나 더 붙었다. 얼리 어답터. 신제품을 남보다 빨리 구입해 사용해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아직까지 MP3조차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얼리 어답터라는 별칭은 과분하다. 그렇다면 아이폰 출시예고가 나오자마자 예약하여 구입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답은 간단하다. 업무의 효율성과 IT정책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사실 1990년대 초반 핸드폰이 처음 한국에 등장했을 때 나는 당시의 이른바 운동권에서 최초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지고 다니는 손전화! 얼마나 편리하고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인가? 나는 사업을 하는 후배에게 백 5십만원 가량 하던 모토로라 휴대폰을 사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그 후 나의 꿈은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은 이미 정보의 바다요, 여론형성의 광장이고 대화와 소통의 천국 아닌가? 이 인터넷을 사무실과 집의 책상에 앉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면 이처럼 답답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90년대 말 정부가 IMT2000정책추진을 발표했을 때부터 나는 꿈이 현실로 되는 날을 기다려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꿈은 날로 커지고 구체화 되었지만 현실은 멀기만 했다. 국정감사 중에 엉뚱한 답변을 반박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싶었지만 핸드폰 문자로 보좌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인내에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거액을 들여 소형 노트북인 넷북을 구입했다. 무선 모뎀도 장착하였다. 지방 출장 중에 KTX 안에서 때로는 승용차 안에서 글을 써서 보내고 이메일을 읽었다. 그러나 내 손안의 인터넷은 멀기만 했다.

미국에서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졌다. 인테넷 초고속망 보급률이 세계 최고수준이고 핸드폰 보급률과 수출액이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휴대폰을 통한 인터넷 접속은 더디고 느리고 비싸고 힘들기만 했다. 다른 나라에서 인터넷과 모바일 사이에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있는 동안 한국에선 이 둘 사이에 비포장도로만 놓여 있었고 더구나 비싼 통행요금까지 받고 있었다. 인터넷 강국이라던 한국이 OECD국가 중에서 무선 인터넷 이용율이 가장 낮다는 치욕적인 통계까지 보도 되었다.

뉴욕시민들이 출근하는 길거리에서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해보고 답장을 보내며 업무처리를 하는 동안 서울 시민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휴대폰으로 DMB를 보거나 고화질의 사진찍기에 열중하는 등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 삼성 제트폰 출시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랜 꿈이 실현되는 날이 드디어 오는구나 하는 기대감에 설레였다. 15년 전 모토로라 휴대폰을 처음 손에 쥔 이후 나는 삼성폰만을 사용해 왔다.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성능이 우수하고 한글입력시스템이 나에게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로 삼성 제트폰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무선인터넷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근거리 통신망 Wi-Fi 접속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는 삼성 제트폰을 정작 국내에선 만날 수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던 나에게 들어온 소식은 삼성 제트폰에서 Wi-Fi기능을 빼고 대신 액정과 카메라 성능을 다소 높여 다른 이름으로 국내에 출시된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된 것은 국내 이동통신사의 요구 때문이며 핸드폰 제조사는 이동통신사의 요청을 거절하기 힘들다는 말까지 하였다.

나는 오랜 미련을 버렸다. 즉각 블랙베리를 구입하였다. Wi-Fi 기능이 우수한 아이폰은 낡은 수익모델을 고집하는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사보타지로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블랙베리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버튼을 한번 누르면 바로 이메일을 읽고 답장을 보낼 수 있었다. 트위터를 시작한지 한달째인 나에게 단추 한번 눌러 트위터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오바마가 대통령선거에서 백만명이 넘는 팔로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능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블랙베리를 쓴다니까 비싼 요금제도로 인한 요금폭탄을 조심하라는 충고도 많았다. 충분히 사용하여 요금폭탄도 경험해 보기로 했다. 스마트폰 카페에도 가입하고 아이폰 출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카페에도 가입하였다. 그들은 단지 아이폰 출시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폰이 왜 출시되지 않는지를 궁금해 하다가 그들은 한국의 IT산업정책의 문제점에 접근하게 된 상태였다. 한국의 비싼 요금제도, 이동통신사들이 낡은 수익모델을 고집하느라 무선 인터넷망을 협소하게 설정함으로써 소프트웨어산업이 위축되는 등 IT의 갈라파고스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들 카페는 뜨거웠다. 아이폰 출시가 지연되자 외국에서 직접 아이폰을 구입하여 들여온 뒤 개인인증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뜨거운 상태를 넘어서서 폭발직전이었다.

오랫동안 이동통신사들의 독과점 이윤을 보장해주는 데 급급했던 정부당국이 이 폭발을 예방하고자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이 바로 아이폰 연내 출시 허용이다. 위치정보가 어떠니 하면서 내세웠던 아이폰 출시 불가 사유들은 한순간에 없었던 일이 되었다. 즉각 아이폰 예약을 하였다. 당분간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둘 다 쓰기로 했다. 이찬진 대표는 시간이 지나 블랙베리 중고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처분하라고 충고를 보내왔다. 실제 요금부담이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좌사우포 즉 왼쪽엔 사과(애플사의 아이폰) 오른쪽엔 포도(블랙베리)라는 쌍권총을 차기로 했다. 왜곡된 한국IT 정책의 폐해를 체험하고 무선통신 세계의 변화와 발전을 체감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 트위터 사용자들의 이웃돕기 기부모임에 가서 나는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나 스스로 진화하였다는 고백을 하였다. 트위터 번개를 통해 평소 도저히 만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알게 되고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한국IT정책과 산업의 문제점도 알게 되었다. 아이폰이라는 빈 건물에 입주한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응용소프트웨어)을 보면서 왜 삼성전자가 아이폰보다 스무배 더 많은 휴대폰을 팔면서 영업이익은 두세 배 적게 나는지 그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쌍권총을 차고 집을 나선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간밤에 들어온 메일을 모두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필요한 것은 저장하고 함께 공유해야할 블로거의 글은 동료들에게 바로 전송한다. 서울시청 앞에서 동절기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주민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이분들 사진과 사연을 바로 트위터에 올리니 수백명의 트위터 친구들이 이를 다시 확산시킨다. 용산참사 연내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만난다고 글을 올리니 바로 격려와 유의해야 할 사안을 보내온다. 인터넷접속권이 이젠 국민의 기본권이 되어야 하며 서울 어디서나 무선인터넷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자 격려가 쏟아진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아이들 앞에서 아이폰으로 오카리나 연주를 할 계획이다. 진화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려 한다. 그렇다. 나는 진화한다. 쌍권총을 차고서!


200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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