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말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나지만,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여자로서 나라를 통치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고 산전수전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겨 이 자리에 온 폐하이기에
아픈 가슴 누르면서 폐하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고 한다.
덕만도 비담을 연모하고 있었을 거야. 나를 위해 칼이 되어 어렵고 힘든 일들을 어두운 곳에서 해주는 남자.
눈만 바라봐도 온 영혼이 나를 향하고 있는 남자. 연모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서 밖은 유신, 안은 비담에게 맡기고 한 10년 동안은 미실의 색깔 지우느라고 열심히 곡식을 만들며 내실을 다졌던 게지.
그 동안에 아무래도 둘에 대한 애정은 비슷한 크기였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비담의 문제는 언제나 그거였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연모.
오늘 대사에서도 나왔지만..... 폐하는 비담의 연모가 무서웠던 거야.
"너는 내가 살필 것이다." 라고 말한 폐하였지만.....
손잡이 없는 칼인 비담, 자신이 죽고 나면 누가 그 칼을 살피고 손잡이가 되어줄 것인가.
인생에 있어 사랑이라고는 덕만 밖에 없는 이 딱하고 딱한 어른 아이 비담이
방향을 잃고 아수라 나찰이 되어 눈먼 칼로 신국을 상하게 하지 않을런지.
그 칼을 살피고 보듬어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무서웠겠지.
이미 10여년의 통치 동안 덕만은 이미 덕만이 아니라 폐하가 되었으니까.
왕이 아니었기에 부러웠던 미실처럼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만, 혹은 자식 대까지만 걱정해도 좋았다면,
연모하는 남자를 끌어안고 행복의 나날을 누려도 좋았겠지만.
천 년의 대업, 삼한일통을 이어받은 왕의 입장으로서는 연모를 위해 사후에 신국을 위협할 수 있는 비담을 그냥 둘 수는 없는 거지.
폐하의 입장이 되고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이미 남의 남자가 된 유신. 혼인을 여러 번 할 수 있는 시대였다고 해도, 이미 남녀로서의 마음은 그 혼인 때 떠나버렸고.
나만을 바라보는 비담. 철 없고 순진한 이 남자는 나를 가지는 순간 신국을 가졌다고 여기고 끝 간 데 없이 흘러갈 것이니 함께 할 수 없고.
그저 그냥 필부필부, 보통의 귀족 여인이었다면 두 남자 모두 사랑해도 좋았을 것을.
아니, 여왕이라 해도 그냥 통치만 해도 되었다면. 삼한일통 따위, 천년의 이름 따위 접어두고 그저 현재의 신국에 만족하며 살아도 되었다면
연모하는 두 남자와 함께 나날이 따뜻하고 번영하는 삶을 누렸을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폐하가 절대적으로 유신의 편이라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복야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토록 애쓸 필요 없이 황명으로 유신을 되돌렸어야 했겠지.
비담이 신국을 구하겠다고 했을 때, 신국을 구한 자에게 모든 자격이 있다고 한 말은 비담이 실패하기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닐 거다.
왕으로서 신국을 구하는 노력이 실패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거니까.
설원공이 승리하고 비담이 신국을 구했다면, 국혼을 하고 자격을 주었겠지.
어떻게 하면 폐하의 마음을 얻을까 하는 것밖에는 보이지 않는 딱한 남자지만, 끌어안고, 보듬고, 살아 있는 동안은 그 날카로움을 눌렀겠지.
폐하의 마음만 얻는다면 권력이 아니라 세상 무엇이라도 가져올 비담이니까.
설원공이 실패하고 주진공을 보내고자 했을 때에도, 폐하가 비담의 실패를 예상했다거나 바랬다고는 생각지 않아.
물론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했을지라도. 남몰래 유신을 회복하기 위해 복야회 문제를 정리한 폐하지만, 그건 왕으로서의 최후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였겠지.
그치만, 너무나 슬프게도, 비담은 미실의 운명을 많이 닮았다.
척살의 운명을 이겨내기 위해 모진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래도 원하는 대로, 거칠 것 하나 없었던 미실도
덕만을 만나고서부터는 되는 일이 없었으니까.
어째서 간자 제거도 한 발 늦고, 설원공도 실패하고, 주진공까지 실패하는가.
유신의 전략을 빼내기까지 하는 짓을 했는데도 어째서 번번히 모든 일이 어그러지는가.
하늘의 이라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이 이토록 가혹할 수 있는 것인가.
"너희들은 무엇을 했느냐! 누가 이 신국을 돌보았느냐! 이 미실이다!"
그래. 열심히 일했다. 수십년간을 무능한 왕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돌보고, 인재들을 키웠다.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을 수도 있지만, 그 누가 미실의 노력을 폄하할 수 있을까.
비담 역시도 그 10 여년 간의 노력을,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간자들을 색출해 내고, 폐하가 선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어두운 일들을 도맡아 한 비담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잔인한 하늘의 이라는 것은, 사람을 이토록 가려내는구나.
어쩌면 폐하도, 비담의 이런 운명이 안타까울 게다.
진흥제도 미실의 그 능력과 자질을 사랑했을 테지만, 그 재능을 다 쓰고 가지 못할 운명을 타고 났음을 알기에 척살하라고 명한 것이 아닐까.
덕만 역시 비담의 그 총명함, 대범함, 그리고 열정을 사랑했을 테지만,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는 그 운명의 가혹함을 알고 있을 테니까.
분명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울 게다...
한 번 쯤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 그토록 울던 어린아이에서 한 발짝도 자라지 못한 비담을 안아주고, 내가 너를 지켜주마 하고 싶었을 거다.
어쩌면 폐하가 죽는 날, 함께 죽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돌봐주지 못하니 함께 가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척살을 명하는 거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운명을 매듭지어주고 싶어서.
그리고 훗날에 따라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폐하의 이런 마음들이...... 안타까움과 미안함과 아픔들이 드러나질 않는다는 거.
인생에 단 한 사람에 모든 영혼을 바친 이 남자를 향해 그런 감정들을 좀 더 보여주지 않는다는 게 참 아프다.
망설임 없이 "척살하라" 가 아니라. 수많은 고민과 괴로운 마음을 다잡고 추스르며 "척살할 수밖에 없다" 라고 해주지 않는다는 게.
그게 참으로 아프고.... 아프다.
길고 긴 망글 혹시 다 읽었다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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