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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덕만] 연모 上

모래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11.05 16:54:11
조회 2570 추천 17 댓글 2


3편 안에 마무리 지으려고 시간흐름을 좀 빠르게 잡았더니 어이없는 설정도 간간히 있네 ㅋㅋㅋㅋ

그냥 가볍게 읽어줘 !!  댓글은 언제나 힘이 되 ㅋㅋㅋㅋㅋㅋㅋ 댓글주는 횽들 매번 감사감사~









무명지도의 비담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내였다. 자신의 사람도 아니며 미실의 사람도 아니었다. 모르고 지나치려 하여도 평소에는 기척도 없이 지내다가 이렇듯 비재나 사냥회가 열리는 날이면 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달포 전 있었던 사냥에서는 홀로 노루 두마리와 멧돼지 한마리를 잡아 공주에게 바쳤다. 화랑들의 검무를 살피고 그들의 수련결과를 확인하며 나아가 다음에 있을 풍월재 선발 비재에서의 결과를 예측하기도 하는 화랑비재가 석달에 한번씩 열리는데, 오늘 그 자리에서도 비담은 화려하게 자신을 알렸다. 그의 검은 예리하고 빨랐다. 들고있는 것은 목검이었지만 그가 휘두른 둥그런 목검 끝에 떨어지던 나뭇잎이 두갈래로 베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깐의 긴장감이 오가던 대련장에 보종의 기합소리가 단발마처럼 퍼지고 그의 검이 비담의 앞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보기 좋게도 엇나간 목검끝을 훌쩍 뛰어오른 비담의 오른발이 거칠게 내리 누르며 그 힘에 못이겨 우득, 부러졌다. 검이 없으면 몸으로 싸우면 된다. 보종은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체술도 뛰어난 화랑이었다. 금새 거리를 넓히고 비담을 노려보던 그는 바람소리를 내며 주먹을 뻗었다. 그렇게 빠를수가 없었다. 몸놀림이 제비 같았다. 보종의 주먹을 피하며 대련장의 중앙을 돌던 비담이 들고있던 목검을 휙 돌려 보종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고통은 어마무시 했을 것이다. 연이어 비담의 발길질에 명치를 얻어맞은 보종은 대련장에 둘러쳐진 경계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무명지도 비담랑 승! 풍월주 호재의 호령이 떨어졌다. 이로써 4승을 거둔 비담은 마지막 결승에 오를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자군요."

 

고운 미실의 음성이 바람을 따라 시원하게 들려왔다. 제 아들인 보종이 패 했음에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린 그녀는 아마도 이 비재의 승자를 이미 가늠했던 모양이었다. 연분홍의 암막같은 천을 길게 늘어트린 채 그 안에서 비담을 보고 있던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탐이나는 자가 아니냐. 그것은 기실 미실도 그렇게 느낄듯 했다. 하지만 탐이나는 동시에 위험하기도 한 사내다. 얻을 수 없다면 부러트려야만 한다. 공주 덕만이 눈을 가늘게 뜨고 미실을 흘겨 보았다. 과연 이 여자는 어떤 수를 내놓을까. 다른 이들에게 처럼 권력과 재력을 쥐어주고 필요에 의해 사람을 얻을텐가. 공주의 시선이 다시 대련장으로 향했다. 이제 그 대련장에는 비담대신 유신과 알천이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유신의 검은 여전히 파괴력이 어마어마 했다. 모래를 다지고 그 위를 평평한 나무로 지은 대련장 한곳이 유신이 내리친 목검에 의해 움푹패였다. 저 무거운 검에 맞았다가는 뼈도 못추릴 것이라 저들끼리 속삭이던 낭도들이 제쪽으로 날아오는 알천의 몸에 눌려 비명을 질러댔다. 접전이었다. 비등한 실력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지만 잠시 방심하여 손의 힘을 빼낸 알천에게 유신이 마지막힘을 쥐어 짜내어 그를 내리쳤다. 충격에 굴러간 알천의 몸이 대련장에서 구경하던 낭도들을 누르며 튕겨나갔다. 공주는 안타까웠다. 제 사람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은, 그것이 화랑들의 비재라 하여도 결코 보고싶지 않은 것이었다. 어찌하였든 유신이 승리한 것은 다행이었다. 알천과 유신의 비재가 너무나 격렬하여 유신은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그런 그와 달리 4합을 연속으로 치룬 비담은 지친기색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호재가 잠시 휴식시간과 함께 부상의 치료를 위한 시간을 내준다는 공주의 명을 전했다. 약 한시진의 시간이 남았다. 비담은 어차피 다시 땀으로 버물릴 몸이었으나 핏물이 튀고 먼지로 범벅이 된 몸을 씻고 싶었다. 그는 대련장 구석에서 무명지도의 산채로 몸을 돌렸다.

 

 

시원한 물소리가 바닥을 적시며 울렸다. 한겨울이었음에도 찬물을 몸에 끼얹어 그의 몸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사내의 몸은 이미 청년의 탄탄함을 넘어 연륜을 쌓은 몸처럼 아찔하게 선이 굳어 있었다. 건강한 구리빛의 몸에 잔근육이 꿈틀대었다. 멀쩡한 여인이 보았다면 대번에 매달렸을지도 몰랐다. 공주가 그를 보다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유신이 치료를 받은 후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에게 가보려는 발걸음을 돌리다 대련장을 벗어나는 비담을 보았다. 흙속을 뒹군 늑대처럼 거칠어보이던 그는 제 옷을 한번 펄럭거리더니 지체없이 발을 빨리 해 걸어갔다. 사내의 발걸음은 무척 빨라서 비담이 도착해 먼지를 씻어내는 동안에 겨우 근처에 도착한 그녀는 말을 건내기 전에 인기척을 먼저 낸 것이었다. 비담이 그녀를 보았다. 알고 있었는가.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거두고 먼지를 털어 둔 화랑복을 껴입곤 느릿한 발걸음으로 공주의 앞에 섰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예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낮은 그의 음성에 공주가 나지막히 말했다.

 

"아까 보종랑에게 얻어맞지 않았느냐. 다음 결승전에 몸에 이상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말해주러 왔다."

 

그것은 공주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변명이었다. 공주가 몸소 그런 것을 알려준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을 알려주려 직접 참가자를 찾아와? 공주가 제 변명에 화르륵 얼굴을 붉혔다. 비담은 그를 모른듯 했다. 공주의 말에 팔도 돌려보고 다리도 찧어보고 펄쩍 뛰어보기도 하며 몸상태를 가늠해 보더니 씨익 웃었다.

 

"별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 아이같은 웃음에 공주가 잠깐 넋을 잃었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내였나. 그러고보니 사적으로든 단 한번도 이렇게 마주 한 적이 없었다. 그는 화랑이었고 자신은 공주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와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비담의 성정이 그를 파악하기 더욱 힘들게 하는 이유였다. 공주가 젖은 비담의 머리칼을 보고 미간을 좁힌다.

 

"춥진 않느냐. 미련하게 한겨울에 찬물로 목욕을 하는이가 어디있더냐."

 

덕만이 혀를 차며 손을덮히던 장갑을 빼내어 비담의 손에 끼워 주려 하였으나 사내의 손은 무척 컸다. 손가락 끝에 아슬하게 걸려 더이상 들어가지 않자 무안함에 헛기침을 하던 덕만이 그것을 그대로 두고 몸을 돌렸다. 멍청하게 공주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비담의 입가에 기분좋은 웃음이 걸렸다. 슬쩍 돌아보던 덕만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려는 것을 간신히 붙잡았다. 소년같은 천진한 얼굴로 헤죽 웃어보이는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진이 빠지게도 못내 기대했던 비담과 유신의 결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슨 변덕에선지 비담이 먼저 기권을 선포했다. 화랑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며 귀족세력의 화랑들이 그를 욕했다. 공주는 아까 전 보았던 그가 아무이상없이 날을듯한 몸을 보여주던 것을 생각하며 미간을 좁혔다. 이로써 비재의 승리자는 유신이 되었다. 어부지리로 우승을 한 기분에 그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공주에게 승리를 치하하는 상을 받고 그녀의 덕담을 듣는 유신을 뒤쪽에서 바라보던 비담은 그냥 승부를 낼 걸 그랬나.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덕만은 하루에 한번은 꼭 천명공주의 빈소를 찾았다. 무뎌지기 시작한 제 마음을 다잡기도 위함이었고 그녀가 그리워서이기도 했다. 늦은 저녁쯤 공주의 업무를 모두 보고 난 후 자유의 몸이 되어 사당을 찾은 공주는 흠칫 놀라 몸을 숨겼다. 익숙한 검은 뒷모습이 보였다. 비담이었다. 그는 천명의 위패 앞에 묵묵히 서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영정을 보고 베시시 웃는다.  아아. 너는 언니의 사람이었던가. 덕만이 아찔하게 눈을 감았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질투? 시기? 미묘한 감정이었다. 저 완벽무결한 사내의 주인은 다름아닌 제 언니인 천명공주였다는 것을 덕만은 물론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비담은 천명이 죽고 난 후 계시와 일식을 이용해 공주의 자리에 오른 덕만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자신을 국선문노의 제자라 소개한 후 국선의 서신을 전했다. 그곳에는 분명한 문노의 필체로 비담 그를 화랑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거렁뱅이 같은 모습에서 환골탈퇴해 금새 화랑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무서우리만치 성장하며 무명지도의 이름을 높였다. 제 사람이 된다면 분명 어마어마한 힘이 될 것이다. 언니의 사람은 나의 사람이기도 하다. 덕만은 금새 공주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비담은 가끔 덕만에게 보내는 시선에 공주에게 받치는 충성이 아닌 다른 감정을 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늠할 수 없는 그것을 덕만은 미처 살피지 못했다. 덕만은 한가지 짐을 내려 놓은 기분이었다. 비담이라는 사내가 언제 어느때에 미실의 사람이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씻은듯이 지워졌다. 천명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미실의 편에 가담하지는 않을테다. 그것은 다시 말해 자신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런 뒷배가 없고 지켜야 할 것이 없는 비담은 덕만에게 가장 좋은 말이 되어줄 테였다. 덕만은 작정하고 그를 회유하기로 마음먹었다. 허나 그녀보다 미실이 조금 더 빨랐다. 비담을 궁으로 부른 미실은 제 앞에 앉아있는 사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미실이 사람을 읽을때면 내보이던 미소를 걸고 말했다.

 

"네게 거래를 제안하마."

 

거래. 비담이 곱씹듯 뱉어냈다. 어째서인지 비담은 미실의 앞에 서자 예리한 기를 내뿜기 바빴다. 그것을 느낀 설원이 그녀의 옆에서 우직히 자리를 지켰다.

 

"네게 가장 필요하고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을 주겠다."

 

비담은 미실의 말에 조소를 터트렸다. 그러나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담의 얼굴을 살피던 그녀가 비담의 대답을 기다리듯 여유롭게 찻잔에 손을 갖다 대었다.

 

"새주께서 과연 제가 바라는 것을 주실 능력이 되겠습니까."

 

도전적인 대답에 미실이 고개를 갸웃하며 비담을 바라보았다. 괘씸한 언사를 했으나 그가 밉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개가 넘치지 않은가. 이런 사내다운 사내를 만난것이 언제였던가. 미실은 청아하게 웃었다. 능력. 물론이다. 이 신국에 너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는 이는 이 미실 뿐이다. 그녀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실로 그것이 미실이 갖고 있는 무기였다. 권력과 그것을 움직일 힘. 사람을 회유하고 얻는 것은 그녀의 특기였다. 소박한 공주와는 달리 미실은 늘 화려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세워야 했다. 적절한 화려함과 고귀함은 자연스레 사람의 허리를 굽히게 만든다. 사람을 부리려면 그에 합당한 위치가 필요했다. 미실이 달콤하게 유혹한다. 네가 바라는것이 무엇이든 이 미실이 줄것이다. 네게 온전히 안겨 줄 것이야. 비담의 입가에도 미실과 같은 미소가 걸렸다.

 

 

만약 공주가 더 빨리 결심을 하고 비담을 회유했다면 비담의 생각이 다르게 변모했을지도 몰랐다. 허나 그는 이미 생각을 굳혔다. 바라는 바는 제 손으로 이뤄야 하며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것은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위치보다 더 높은 곳. ​ 미실의 손을 잡자 그는 덕만이 채 손을 쓰기도 전에 빠르게 성장했다. 그 무시무시한 실력으로 풍월주가 되더니 얼마 안있어 황제의 직속 부서로 편입되었다. 일개 부원으로만 있을 그는 아니었다. 비담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영악한 머리로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그가 하는 일은 미실을 기쁘게 했으며 단 하나의 오차도 없었다. 결국 배속된지 몇달만에 그는 사량부의 수장자리에 앉았다. 사량부는 황권의 강화를 위해 진평제가 내세운 기관이었으나 미실이 가진 화랑의 세력과 병부, 예부, 조부의 압박에 눌려 본래의 활동을 하지 못한채 이름만 남긴 부서였던 곳이었다. 귀족의 세력을 견재하며 세력의 힘을 고루 평등히 하고 죄를지은 자와 그렇지 않은자를 은밀히 가려내며 신국의 정보를 움켜 쥐어 황제의 이름을 드높일 사량부의 수장이 미실의 사람인 비담이 앉았다는 것만해도 파장이 큰 일이었는데, 그동안 그가 사량부의 부원으로 해낸 일만 해도 실로 어마어마 했다. 이제 비담은 덕만은 물론 미실도 견제해야 할 정도로 그들의 세력을 한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너무나 커버린 그의 모습이 실로 자랑스러워 웃음이 가시지 않는 미실에게 설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권력을 쥐어주나, 그것은 새주의 아래에 두어야 마땅합니다. 비담은 손댈 수 없이 너무도 커버리지 않았습니까. 언제 마음이 변모해 새주께 칼을겨눌지 모릅니다."

 

미실이 설원을 따듯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그리곤 살벌하게 웃어보였다.

 

"그가 가진 것들을 하나하나 가져와야겠습니다."

 

뿌린씨를 거둘때가 되었다. 미실은 비담으로 하여금 마지막 남은 성골의 씨를 모두 거둘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저 왕이 헛수를 두지 않고 얌전히 제게 목을 바치게 만들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명분이 필요했다.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갈 명분!

 

 

비담은 나흘째 연이어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삭막한 사량부에는 작은 뒷뜰이 있었는데, 비담은 그곳에 작은 열매나무를 심었다. 겨울이 되어 아직 새싹이었던 나무가 시들해져 눈에 덮이는 것을 지켜보던 비담은 오랜만에 연무장에 나가 몸을 풀어볼까 싶었다. 어두운 밤이 되면 몰래 그렇게 나가 화랑이었을때를, 더 되감아 바람처럼 산을 누빌때를 떠올렸다. 태백산의 한자락에 울리는 여인의 비명소리가 귀를 찔렀다. 스승님께 야단을 맞아 풀이 죽어있던 비담은 부리나케 그곳으로 달려 내려간다. 여름의 긴 해에도 어둑해진 산기슭에 여인과 사내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 물어보지 않아 도 되지. 비담의 칼은 사내의 등을 단번에 베었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 사내의 등을 밟고 건너온 비담이 여인을 바라본다. 넌 누구야? 비담이 물었지만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 떨어댈 뿐이다. 컥컥대며 귀를 시끄럽게 하는 사내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잠잠해진 아래를 보고 히죽거린 비담이 털석 근처의 바위에 걸터 앉았다. 돌이 들어갔는지 아까부터 쑤시는 발바닥에 신을 벗어 털어내며 말한다. 여기는 여자가 들어올 곳이 못되는데. 신발을 다시 신고 벌떡 일어난 비담이 여인에게 다가간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 코를 킁킁댄다. 그리곤 헤죽 웃었다. 헤.. 좋은냄새. 비담이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스승님이 여인은 늘 경계해야 하는 거라 했는데. 그럼 너무 손해일것 같다. 비담의 손이 그녀가 쓰고 있던 갈색 중모를 벗겼다. 안으로 쓸어올린 머리가 비단처럼 풀려 아래로 흘렀다. 묘하게 아름다운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던 비담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에 쥐었다. 그때, 여인이 호통치듯 말했다. 무례하다. 목소리는 근엄하기 짝이없었다. 스승이 여자가 된다면 딱 그럴 것 같다. 딱딱하기만 할것 같던 여인의 얼굴에 일순 미소가 번졌다. 목숨을 살려준 것은 고맙다. 그 고운목소리로 고맙다고 전한다. 비담의 머리가 댕 하고 울렸다.

 

먼 옛날의 꿈같은 추억을 되살리니 살벌하기만 하던 비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연무장으로 가는 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바닥에 쌓인 눈을 제때 치우지 않아 꽁꽁 얼어붙어 잘못 발을 디디면 그새 미끄러질 것 같았다. 아무래도 관리자의 목을 쳐야 겠다.

 

"비담랑."

 

가까이서 여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담은 퍼뜩 고개를 돌렸다. 비담이 사량부에 배속 된 때 부터 볼 일이 없던 덕만이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은밀히 움직이는 미실의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낮보단 밤에 활동하기를 즐겼다. 가까이 다가오던 덕만이 그에게서 한발자국정도를 남겨두고 미끄러운 바닥에 발을 헛디뎠다. 무너지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딱딱한 얼음위에 넘어질 뻔 한 그녀에게 비담이 급히 몸을 날렸다. 피로 얼록진 고문을 행하던 비담의 커다란 손이 덕만의 고운 여인의 손을 잡는다. 사내의 힘이 그같이 강할줄은 몰랐다. 덕만이 얼떨결에 그를 빤히 바라보자 비담이 입을 열었다.

 

"이젠 사량부령입니다."

 

비담과 덕만의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걷는 내내 나란히 있던 그들 사이에는 의미모를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덕만은 비담이 미웠다. 자신이 아닌 미실을 선택한것이 서운했으며 제 사람이 아니면 부러트려야 한다는 옛날의 다짐도 무너져 내릴 만큼 그에게 관심이 가는 이유를 몰라 매일밤을 허덕였다. 천명의 사람이었을까. 천명의 남자였을까. 덕만은 몇달 전 묻고 싶었던 질문을 이제서야 밖으로 꺼냈다.

 

"천명언니와, 삶을 약속 하였습니까."

 

비담의 시선이 우뚝 덕만에게서 멈췄다. 눈바람은 거셌지만 역방향으로 선 비담이 그것을 모두 막아주고 있었다. 공주는 목이타는 것을 느낀다.

 

"아니요."

 

대답은 쉬이 나왔다. 아니다. 덕만은 일순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제 생각이 잘못된것이 허망하기도 하고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약조를 하나 받은 것이 있습니다."

 

비담이 서서 내내 눈을 맞은 덕만의 머리위에 손을 내렸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눈을 털어내고 가지런히 어깨위에 자리한 덕만의 머리칼을 손가락에 꼬았다. 장난치는 듯한 그 손가락질을 덕만은 신경쓰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간지러운 손놀림은 곧 거두어졌다. 못내 아쉬워 숨을 크게 들이마신 덕만에게 비담이 살풋 웃어보였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덕만이 물었다. 비담은 그녀를 여전히 아련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그 눈이 내리던 날 밤을 기점으로 덕만은 비담과 꽤 여러번 마주쳤다. 왕을 뵈러 가는 길에서도, 화랑회의에 가는 길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공주궁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도 그와 마주쳤다.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까. 그것이 비담의 계산안에서라는 것을 공주는 몰랐다. 순진하기 짝이없는 어여쁜 공주가 이제는 자신이 조금 가깝다 느껴졌는지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는 웃는다. 그러다가도 제 위치가 생각난 듯 금새 그 웃음을 거두었다. 아쉽군. 비담이 입맛을 다셨다. 씁쓰름함과 함께 곧 올 그 날이 머지 않음에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죽여왔던 눈물은 비담에게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비담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살벌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제 사람들이건 그렇지 않건 모두에게 평등하게 죄목을 물었다. 일찍이 그것을 견제했던 설원이었지만 미실이 그를 믿고 있음으로 그의 권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종의 인사건에 대해 미실에게 합당하지 않다 논의를 하였을 때에는 아비의 부정아래 비담의 권위를 넘어선 혀놀림을 가만히 두고보지는 않았다. 설원은 미실에게 비담을 쳐내야 한다 시시때때로 간언했다. 그러나 미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은 깊은 듯 보였으나 설원이 보기에 그녀는 자신의 생각보다 비담을 더욱 믿는 눈치였다.  보종은 지난 풍월주비재에서 우승함으로써 풍월주자리에 올라 있었는데 비담이 그러했듯 미실은 그의 아들을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올려 놓으려 했다. 예부는 미생이 장악을 하고 있으니 병부와 조부의 합당한 자리가 있다면 그곳에 올려줄 요량이었다. 그러나 비담의 정보와 눈치가 조금 더 빨랐다. 그는 그리 무리한 인사안을 작성하게 되면 다른 귀족들과 그의 아래가 뿌리채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원채 권력의 이동이란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 합당했다. 비담의 경우는 그 자신의 능력으로 그것을 뒤엎었지만 미실이 보기에도 보종은 그럴만한 능력은 없었다. 미실이 물었다. 그럼 어찌 했으면 좋겠느냐. 비담은 입꼬리를 올려 음산하게 웃었다. 그리곤 곧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보종을 아막성으로 보내십시오. 아막성! 설원은 잠시 비틀거렸다. 근래에는 백제와 왜척의 난입으로 신국이 시끄러웠던 참이었다. 아막성은 백제쪽의 군사와 접전의 접전을 거듭하는 최전방이었다. 비담은 보종이 그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면 그에 합당한 치하와 골품을 주어 매끄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맞는 말이긴 하였으나 너무나 위험하기 짝이없는 일이었다. 죽는가 사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미실이 묘호한 얼굴로 비담을 바라보았다. 비담. 네가 정녕 나를 흔드려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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