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까지 선배(사부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랑 맞공으로 칠 때, 전 제가 분명히 한치수 정도 더 잘 친다고 확신했고 선배는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그렇다고 핸디를 줄 정도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던 터라 한 게임, 한 게임이 전쟁이었습니다. 

선배랑 저랑 게임하고 있으면 구경하던 당구장 사장님도 가벼운 농담을 못 건낼 정도로 분위기가 진지했는데, 저야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터라 그려려니 했지만(제가 뽀록이라도 내면 저건 공이 쫄아서 맞아준거라고 농담을 하는 대찬 후배도 있었습니다), 상냥하고 친절한 호인으로 유명한 선배조차 분위기가 싹 바뀌어서 덤벼드니 일타, 일타가 긴장의 연속이라 박빙으로 게임을 하고 나면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 정도 였습니다.

승률은 2:1정도로 제가 우위에 있긴했지만 저야 기가 확 죽을 정도로 이겨서 두세점 더 놓고 싶었고(바둑으로 치면 치수고치기?) 선배는 끝까지 한게임 잡으려고 드니 인터벌은 길어지고 신경전도 치열해져서, 선배가 딱 2득점(스트록 3번) 하는데 4분이 넘게 걸려 담배 한까치를 다 피운적도 있었죠.

당구장 사장님 曰 " 10/20만 죽빵도 그렇게는 안치겠다"라고 할 정도니...
 
가끔 지는 날에는 잠자리에서 한두시간 뒤척이는 건 물론이고(전 누우면 1분내로 잠듭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좋지 않아 가만가만 생각해보니 \'아... 어제 선배한테 당구 졌구나\'하는 일도 있었죠.

기술적인 부분은 연습을 하던 자주 쳐야 좀 좋아질 건데 그럴 사정이 못되니 멘탈부분을 좀 개선해보려고 골프 관련 서적 중에 멘탈리티에 관한 부분이나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되짚어 보니 1월 1일 이후 2:1정도 승률유지 

설날 직전 4연패
 
설날부터 20승 2패(첫항복, 이후 번복)

당구장 큐 교체하고 슬럼프가 와서 5연패 (큐적응이 너무 힘들었음)

회복하고 7연승(두번째 항복, 이후 번복)

이후 4:1정도로 승률유지 (세번째 항복, 제가 두점 더 놓기로 합의)

현재 두점 더 놓고(20:18) 4승 3패

더 이상 예전처럼 처절하게 게임을 하진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인터벌은 길고 신경전도 좀 있어서 40초 룰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대국용 계시기를 사서 써보려고 했는데 가격이 좀 비싸서 포기했죠. 싸구려 중국산이 있으면 사고 싶은데 보통은 10만원 정도 하더군요.

얼마 전에 선배하고 이야기를 해보니 한창 살벌하게 칠 때는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다더군요. 제가 봐도 저랑 치면 평소보다 훨씬 못 치니 보기 좀 안쓰럽기도 하지만 부담을 가지는 건 저도 마찬가지 였고 차이가 있다면 제가 스트레스에 대해 내성이 조금 더 강했다는 건 뿐이죠. 사실 어느정도 경기력이 되는 컨디션이면 저렇게 무너질 차이도 아닌데 저랑 치면 좋던 컨디션도 날아간다고 할 정도니 꽤 힘들었던가 봅니다.

항상 \'내가 더  잘 친다\'라고 주문처럼 되뇌이고, 상당한 점수 차에도 악착같이 득점하려고 신경쓰고, 기선제압을 위해서 가끔 생소한 라인으로 진행을 시키고, 득점에 성공하면 \'이게 바로 고급 당구죠!\' \'어제 저녁에 동영상으로 본 거에요\'등의 농담을 던졌던게 상당히 효과가 있더군요.

고만고만한 실력으로 재미로 하는 게임에 뭐 그리 진지했냐고 하신다면 뭐 딱히 대꾸할 말이 없지만, 비슷한 실력(제가 선배한테 당구를 처음 배웠으니 비슷하지는 않았네요)으로 당구에 대한 접근법이 다른 두 사람(전 좀 더 잘치고 싶었고, 선배는 좀 더 많이 이기고 싶었고)이 십여년에 걸친 혈투(그전에도 꽤 치열했습니다) 끝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부분이 괘 뿌듯한 부분이 있고 마침 아래에 있는 돌도끼님 글을 보고 생각나서 한 번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