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전집과 관련해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글제목이 베토벤 전집이라고 해서 음악 얘기는 아니고 그냥 제 마음속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괴로워한 문제라고나 할까요..
흠.. 한 두달전쯤에 제가 그렇게나 사고싶은 베토벤 전집 씨디를 모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습니다.
가격은 한 65000원 정도 해서 이 정도 가격에 베토벤의 거의 모든 곡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게 됐습니다.
사고 나서 책상 한켠에 자리잡은 베토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베토벤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전집 박스를 보고 있을때면 웬지모를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음악 전집을 가지고 있으니까 마치 베토벤이 가까이라도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죠.
이 전집 말고도 굴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도 어느 정도 싸길래
이것도 나중에 사게 됐습니다.
이 전집들이 제가 가지고 있는 피아노나 그동안 모은 책들 말고도
제게 있어 보물에 가까운 존재가 됐죠.
그리고 이런 베토벤의 전집류를 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지하철 역 외부에 있는 계단에서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두발을 내논채 구걸을 하고 있는 어떤 노인을 보고 전 지갑에서 몇천원을
꺼내 적선했습니다.
그리고 집근처 테크노 마트에 간적 있었을때 그 근처에서 양쪽 다리가 불구가 되서(자세히 보니까
다리고 없는)마이크를 들고 구걸을 하고 있는 어떤 늙은 사람을 보고 이때도 전 몇천원을 꺼내
적선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왜 이런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제가 몇천원을 준 얘기가
얼마나 웃긴 행동이었는지 말씀드리죠.
이런 일이 있은 후 전 잠자기 전에나 책을 읽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몇번씩이나 떠올라 저의 뒷통수를 강타하더군요.
\'그래! 구걸하는 사람들한테 고작 몇천원을 적선하고 이와 비교해 베토벤
전집을 살때는 아낌없이 몇만원을 주고 사는게
과연 마음속에는 어떤 괴롭다거나 거리낌 같은게 전혀 없나? 한번 말해봐! 안태정.\'
베토벤의 모든 음악이 이상으로 하고 있고, 그 정점에 올라선 작품이 바로 9번 교향곡이다.
그리고 이 음악에는 다음과 같은 실러의 시를 음악으로 이상화했지.
지금의 세상에 횡행하는 자가 엄격하게 나누었다 하더라도
그대의 신비한 힘이 다시 결합시켜 주리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멈추는 곳
인간은 모두 형제가 된다.
\'그래! 이런 베토벤의 음악에 나타난 구절처럼 \'인간은 모두 형제가 된다.\' 라고 했는데,
이 의미를 이해했으면 왜 구걸하는 사람들한테는 고작 몇천원밖에 적선하지 않았을까?
\'인간은 모두 형제가 된다\'라는 의미를 내포한 음악 씨디를 살때는
아낌 없이 몇만원이라도 주고 샀으면서
이 음악을 의미를 따져볼때는 분명 그 구걸하는 사람도 안태정 너의 형제일지도
모르는데 왜 구걸하는 사람한테는 많은 돈은 아닐지라도 베토벤의 음악씨디를
산것만큼의 돈을 적선하지 않았을까?
이거 정말 웃기지 않나?
\'인간은 모두 형제가 된다\'라는 베토벤의 이상의 기초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베토벤의
음악이 담겨 있는 베토벤의 전집을 구입해 들으면서 그 어떤 감동과 감흥을 느끼면서
왜 길거리에서 두 다리를 잃은 구걸하는 사람한테는 고작 몇천원밖에 안되는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것일까?
왜? 왜? 왜?
혹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들을때의 감정과 구걸하는 사람한테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어쩌면 구걸하는 사람은 베토벤의 음악에 나타난 것처럼 나의 형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베토벤의 전집을 살때는 돈이 아깝지 않지만 구걸하는 사람한테 적선하는 것은
웬지 모르게 돈이 아깝다.
단 몇천원일지라도..
그냥..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나 장엄 미사같은 고귀하고 훌륭한 감정이
담겨 있는 음악을 들을때만,
이때만 그런 이 세상의 수많은 고통받는 인류와 형제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싶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때만..
그럼 현실에선?
에이.. 현실하고 이상은 다르지..
그냥 현실은 무시하고 이상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되지..
대체 누가 알겠냐고?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현실은 무시하고 베토벤의 음악만 이상으로 가지고 있을지 대체 그 누가 알겠냐고?
위에 말한대로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한번 말해봐! 안태정! 정말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이런 생각이 베토벤의 전집을 사고 나서 제 뒷통수를 강타해 머리속에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머리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저 자신을 스스로 발가벗기우는 생각을 한 뒤로 베토벤의 전집 박스를 처음 바라봤을때의
그 흐뭇함, 편안함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리고 저 자신이 베토벤의 음악으로부터 몇천만 킬로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라고 부르짖었는데 과연 현실은?
과연 현실에서는 나는 그런 구걸하는 사람한테서 형제애를 느꼈는가?
만약 그런 사람한테 절실한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뭐하러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까?
대체 뭐하러? 대체 왜 듣냐고?
이전에도 말한 것처럼 마음의 선량함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나
현악 4중주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어떤 감정을 느껴 현실에서 이런 감정이 선량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뭐하러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현악 4중주를 들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저 자신이 완전무결할 정도로 베토벤의 전체 음악과 유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전 예전부터 극과 극을 연결시켜 극한으로 저 스스로를 내모는 버릇이 있는데 이때도
이런 버릇이 유감 없이 발휘되더군요.
형제애를 이상으로서 한 베토벤의 음악 그리고 현실에서의 구걸하는 사람에서
진정한 형제애를 전혀 느끼지 않는
감정, 바로 이 대조되는 현상..!!
이 대조되는 현상이 불현듯 제 머리속에서 떠오른 것입니다.
아.. 괴로워.. 이 미칠듯한 괴로움..
더 이상 베토벤의 음악을 편안하게 들을 수 없고 베토벤의 강렬한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열광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이 상황..
베토벤의 전집이 책상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그 내용물인 베토벤의 음악은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와 어떤 부자 사이에 가로놓인 도저히 측량할 길 없는
무한의 거리가 놓여져 있음을 알게 됐을때의 이 비참한 심정.
이런 괴로운 생각 말고도 문득!!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런 구절이 머리속에 용케도 떠오르더군요..
(다음편에 계속....)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