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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ㅇㅇ(220.149) 2012.08.30 16: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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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2004년 1월 26일 오후2시.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밖은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몰아쳤다. 살해된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씨가 초췌한 얼굴로 증언석에 앉았다. 그 대각선 방향에 살인교사를 한 회장부인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앞을 응시했다. 그 옆으로 살인범인 김용국과 마기룡이 고개를 숙인 채 면도날 같은 신경줄을 펴고 상황을 감지하고 있었다. 재판장이 신문 전에 먼저 위로의 말을 전했다.

“딸을 불시에 잃으시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힘드시더라도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의택씨의 지치고 쉰 목소리였다. 검사가 묻기 시작했다.

“회장부인이 전문중매를 통해 판사사위를 맞아들이고 그 부모에게 7억원을 줬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그러다가 사위가 바람이 났다고 하자 회장부인인 저 여자는 3억원을 돌려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해서 도로 가지고 갔습니다. 판사사위가 제 조카지만 더러운 매매혼에 팔려갔습니다.” 법대위 판사들의 얼굴에 순간 모멸감이 스쳐갔다. 검사가 질문을 계속했다.

“계좌추적을 해 보니까 돌려받은 그 3억원으로 미행과 살인청부자금으로 한 것 같던데”
그때였다. “잠깐만요!”하고 손을 들면서 회장부인이 검사의 말을 잘랐다. 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여자였다.

“뭐죠?”
재판장의 표정에 얼핏 불쾌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저 사람 말 다 거짓말이예요. 어이가 없어서 말이지. 제 딸이 혼처가 세 군데나 나왔어요. 그 중에 지금 사위가 가장 적극적으로 대쉬한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시켰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줬다고 합니까? 그리고 인간이라면 어떻게 한 번 준 돈을 찾아올 수 있겠어요? 상식적으로 안 그렇습니까?”
회장부인이 앙칼지게 내뱉었다. 정의택이 맞받아쳤다.

“그러면 돈을 받은 판사 부모를 불러서 물으면 되겠네요?”
그때 회장부인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거들었다.

“이보세요 증인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매매혼이라고 단정을 하시는 거죠? 회장부인이 돈을 준 적이 없다고 하잖아요?” 정의택씨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무던히 애쓰는 모습이었다.

“저는 부모로부터 분명히 직접 들었습니다. 더러운 돈으로 판사사위를 끌어 들이는 게 매매혼이 아니고 뭡니까?”

“그게 어째서 매매혼입니까?” 회장부인의 변호사가 다시 다그쳤다.

“내 관점에서는 더러운 매매혼입니다. 변호사님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말이죠. 각자 어떤 현상을 보더라도 관점에 따라 평가는 자유롭게 할 수 있죠. 그걸 자기 잣대와 다르다고 비판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느냐 얼마나 있느냐로 가치를 평가했다. 자격증과 졸업장으로 포장만 잘되 있으면 명품인 세상이다. 그 무렵 나는 법조원로들의 한 모임에 참석했었다.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의 얘기가 잠시 화제로 떠올랐다. 사석이기 때문에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의견이 터져 나왔다.

“그 사건 말이지 일심에서는 잘못 선고한 것 같아. 사형을 선고하고 항소심에서 무기징역 정도로 내렸어야 하는데 일심 재판장이 징역20년으로 너무 인심을 써 버렸어. 항소심재판장이 입장이 곤란할꺼야” 수많은 사건을 재판한 경험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참석한 전직원로판사들의 의견이 대동소이했다.

“그 사위가 됐다는 판사가 사표 쓰고 나갔지?” 좌장격인 원로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직 나가지 않고 버틴답니다. 얼마나 힘들게 얻은 판사자린데 나가냐면서 지방으로 가서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숨죽이고 있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온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하기야 자기가 법적책임이 있는 건 아니니까 법관징계위원회에서 내보낼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사법부를 위해서는 본인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나가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들은 공통적으로 법관사회에 누를 끼친 젊은 판사를 탓하고 있었다. 그가 쓴 판결문은 신뢰받기 힘든 것이다.

“참 요새 사법연수원생들이 전문 중매쟁이에게 팔려가는 수가 많다는데 정말 그래요?”
참석했던 한 검사장출신이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전임 사법연수원장에게 쏠렸다.

“연수원에서 주는 박봉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카드 빚들이 삼사천만원씩 되는 연수생들이 많더라구요. 그렇지만 국가입장에서 보면 천명에게 한달에 사무관급 본봉의 월급을 주니까 엄청난 예산이죠. 내가 사법연수원장 때 보니까 카드 빚을 진 연수생들의 마음은 그 빚만 누가 대신 갚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죠. 너무 나쁘게 생각마세요.”
예나 지금이나 그런 매매혼의 악습은 있었다. 딸 가진 부자집들 계산에서는 많은 법률비용을 들이는 것 보다 사위를 법조인으로 들이는 게 주판알을 튕기면 더 이익일 수 있었다. 그래서 전문자격증을 가진 신랑감들이 고가에 매매되는 현실이다.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거물급 전문 중매쟁이들이 은밀하게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은 혼사를 성립시키기도 방해하기도 한다고 했다.

여대생 살해사건에서도 한쪽에서 중매료를 내지 않자 괴 전화가 왔었다. 판사사위의 과거를 폭로하는 내용이었고 그것은 바로 청부살인으로 이어졌다. 그 거물급 중매쟁이의 별명은 ‘덕산 할매’였다. 덕산 할매는 수사기록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사건의 배경을 알고 있는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덕산할매의 정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연락처도 주소도 없었다. 덕산 할매를 안다는 그 업계의 거물을 대신 한사람 만났다. 간신히 만난 그 중매꾼은 명문여고를 나온 금년 62세의 부인이었다.

“덕산 할매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격이 뱀같이 차고 깐깐한 할매예요. 그 아래 여러 명의 남자들을 고용해서 사법연수원생들을 포섭하고 그 할매는 부잣집들의 사위주문을 받고 다녀요.”

그녀의 설명이 계속됐다.

“우리 중매꾼의 세계도 판사전문, 의사전문같이 분야별로 또 나뉘어지죠. 판사전문도 다시 사법연수생포섭담당과 부잣집담당으로 나뉘어지죠. 사법연수생담당은 인원명단과 성적까지 입수해서 연수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접촉해요. 술도 사주고 용돈도 주면서 자연스럽게 포섭하는 거죠. 사법연수원시절이라는 게 힘들 때잖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예쁜 여자 소개해 줄 테니까 한번 보지 않을래? 하고 슬쩍 말을 던지는 거죠. 그러겠다고 하면 연수원생 담당 중매꾼이 부잣집 딸 담당 중매꾼에게 연락을 해요. 그 쪽은 혼기에 찬 부잣집 딸들을 빠삭하게 꿰고 있거든요. 이런 전문 중매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조직으로 해요.”

“어떻게 그런 정보들을 얻나요?”

“그거야 한집만 알아도 아름 아름으로 금세 훤하게 되죠.”

“판사사위를 데려오면 몸값은 어떻게 내죠?”

“얼마 전 대구의 한 사업가 집안에서 판사사위를 맞아 들였는데 예단 외에 서울에 45평짜리 타워 팰리스를 사주고 현찰 2억원을 판사사위부모에게 줬어요.”

“현찰 2억원을 사위 부모에게 주는 건 무슨 뜻인가요?”

“그동안 공부시킨 값이죠.”
그 중매꾼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녀가 계속했다.

“저는 판사가 아니라 의사 전문이예요. 서울대를 나온 의사를 사위로 맞아들이는데 10억원은 있어야 해요. 병원을 차려줘야죠. 하여튼 그럴듯한 사위를 들이려면 빌딩을 준다 돈을 준다 해야 돼요. 겉으로는 모두들 부정을 하지만 중매꾼인 내가 본 현실은 겉이 번지르르하고 점잖은 척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욕심이 많고 은근히 돈을 바란다니까요.”

아들을 가진 부모가 먼저 자식을 상품화한다는 얘기였다.

“중개료는 어떻습니까?”
이 살인사건의 동기가 된 부분이었다.

“여자 측에서 남자 집에 가는 총 액수의 십퍼센트를 받아요. 그걸 받아서 중매한 사람들이 나누어 먹죠. 중매가 되지 않는 경우에도 얼굴만 한번 보는데 30만원을 받게 돼 있어요. 그 덕산할매는 판사후보 남자 한명을 아침에 호텔 커피숍에 오게 하면 하루에 여자를 세 명도 보이고 네 명도 보이고 그렇게 했어요. 그것만 해도 간단히 하루 일당이 100만원이 넘게 떨어지는 거죠.

중매가 안돼도 서로 만나게 하는 횟수만 늘이면 수입이 짭짤해요. 남자 하나가 괜찮으면 수백명을 보일 수 있고 모두 아낌없이 돈을 내요. 한번은 부모끼리 상견례를 하면서 남자부모가 여자부모에게 우리 아들이 좋은거냐 판사가 좋은 거냐하고 묻는 것도 봤어요. 그걸 경험하고 시집간 여자들은 자기가 애를 낳으면 더러워서라도 판검사나 의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그래요.”

“만약 중매료를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법적으로 인정되는 돈이 아니었다.

“중매꾼들이 가만히 있지 않죠. 남자한테 동거하는 여자가 있다고 모략도 하고 어떻게 든 방법을 안 가리고 갈라놔요,”

“여대생 살해사건의 판사부모가 중매료를 내지 않았다던데?”
내가 마지막으로 핵심부분을 물었다.

“덕산 할매도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닌데 안받고 가만있을 사람은 아니죠.”

“이번에 범인들이 중국에서 잡혀온 그 여대생 살해사건 아시죠? 덕산 할매가 회장부인에게 중매했다던데--”

“그럼요 중매쟁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짜하게 퍼졌는데요. 소문으로는 회장부인도 나쁘고 덕산 할매도 나쁘다고 그래요.”

“그 덕산 할매에 대해 더 해 줄 말씀 없어요?”

“나이는 칠십이 넘었는데 빼빼하고 얼굴이 얄팍해요. 더 이상은 몰라요”
껍데기 수재들 중에는 새싹 때부터 그렇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치우는 경우가 많았다.

#10
재판은 계속됐다. 회장부인은 여대생살인청부를 부인했다.차 안에서 은밀히 둘만 얘기해서 증거도 없었다. 돈도 살인자금이 아니라 조카인 김용국을 도와준 돈이라고 했다. 미행하다가 실수로 여대생을 죽이고는 회장부인을 물고 늘어진 상황으로 변하고 있었다.

“남편의 외도가 살해의 동기라는 검찰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회장부인 공판담당인 민 변호사가 물었다.

“남편의 외도사실이 없었습니다. 가정에 대한 사랑이 돈독한 사업가 이십니다.”

“사건이 터진 직후 김용국이 찾아와서 협박한 적이 있지요?”

“네, 애들이 실수해서 사고가 났지만 고모가 미행시킨 거니까 돈을 달라고 협박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재판에서 불리할 거라면서.”

“그래서 돈을 주셨읍니까?”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집에 보관하던 현찰을 주었는데 액수도 기억이 안 나네요.”

“이상한 전화가 오고 나서 확인하기 위해 미행은 시켰지만 죽은 정혜경과는 어떤 감정도 원한도 없는 사이시죠?”

“그렇습니다. 사돈 집 처녀됩니다.”

“옆에 있는 조카 김용국은 어려서부터 어땠습니까?”

“학교 때부터운동도 하고 좀 껄렁껄렁했어요.”

“고모가 누구를 죽이라고 할 때 말을 들을 사람인가요?”

“상식적으로 그런 살해지시를 할 고모도 없고 그걸 들을 조카가 있겠어요? 있었다면 미친 사람이죠.”

“이 사건으로 집안이 어떤 피해를 입었나요?”

“제가 딸한테는 평생 죄인이 됐습니다. 엄마가 구속돼 있는 걸 알면 그 시부모나 남편의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요? 우리 딸 정말 순수합니다.”

그녀의 하소연은 계속됐다.

“정혜경양 아버지가 저를 고소했었어요.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을 때 혜경이를 만났는데 우리 사위가 사귀는 여자는 자기가 아니고 박미리라는 거예요. 또 정혜경양 아버지가 쓴 접근금지가처분신청서의 내용을 보면 우리사위와 그 박미리라는 여자와의 관계를 어떻게나 리얼하게 써놨는지 얼굴까지 붉어 지더라구요. 어찌나 거짓말을 잘하는지 신청서가 아니라 3류 소설을 써 놨어요.”

“이 사건에 대해 소감이 어떠십니까?”

“친조카인 김용국이 친고모인 제가 범행을 사주했다고 책임전가를 하는 것에 대해 분노와 허탈감을 느낍니다.”
진짜 같아 보였다. 다음은 김용국의 변호사인 내 차례였다.

“김용국 피고인!지금 회장부인이자 고모인 김귀숙 피고인이 하는 말씀을 옆에서 잘 들었죠?”

“그렇습니다.”
그가 푹 숙였던 고개를 들으면서 대답했다. 검은 뿔 테 안경 뒤로 보이는 작은 눈이 내 눈치를 살폈다.

“이 살인사건에 대해 피고인이 진정으로 속죄하는 방법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겁니다.”

그때 내 시선이 방청석 끝에 혼자 앉아있는 죽은 혜경의 아버지 정의택씨에게로 갔다. 초췌한 모습이었다.

“지금 방청석 뒤에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씨가 계시는데 어떻게 하는 게 그에 대한 바른 태도라고 생각하시죠?”

“진실하게 얘기하고 법대로 처벌받겠습니다.”
정의택씨는딸이 죽었어도 진실하면 용서하겠다고 했다.

“평소 옆에 있는 김귀숙 피고인을 어떻게 생각했었죠?”

“재산도 많고 자식들 학벌도 좋고 판사가 사위라 우리 집안의 중심인물로 모시는 고모님이셨습니다. 부모같이 존경하고 항상 우러러보면서 순종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내가 물었다. 실망하고 분노해야 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속으로 놀랐다. 그때 옆에 있던 회장부인이 독 오른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니?”라며 내쏘았다. 김용국이 주눅이 든 채고개를 푹 숙였다.

“십 오년 전 결혼식 때 고모가 왔었어요?”

“그때 바쁘셔서 오지 않으셨습니다”
조카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다면 정이 흐르는 사이는 아니다.

“미행이나 살인에 관여하기 전에 십 오년 간 고모님으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은 사실이 있어요?”

“전혀 그런 적 없습니다.”

“옆에 있는 고모님은 준 돈이 살인자금이 아니라 김용국씨 집을 사는데 도와준 것이라고 하는데 누구 말이 맞나요?”

“단 한 푼도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집 사는데 돈을 도와줄 고모님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죠.”
주눅 들었던 그가 애써 반항하는 어조였다.

“김용국씨는누가 돈을 대서 일심변호사를 선임해 줬죠?”
사무실을 찾아온 그의 처는 회장부인이 댔다고 했다.

“모릅니다”
김용국이 갑자기 또 말을 흐렸다. 그는 분명치 않았다.

“고모로부터 여대생 정혜경을 없애줄 사람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받은 건 분명합니까? 옆에 있는 고모는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았다. 회장부인인 김귀숙이 순간 고개를 돌려 김용국을 노려보았다. 김용국이 그 눈길을 외면하면서 대답했다.

“전 분명히 그런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낯도 모르는 여자에게 그런 일을 하겠어요?”
그의 옆에서 마기룡이 뭔가 심각히 저울질 하는 표정이었다.

“옆의 마기룡은 돈이 아니면 그 여대생을 해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죠?”
순수한 살인청부라는 의미였다.

“그렇습니다.”

“중국에서 잡혀와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을 때 복도에서 친척을 만난 적이 있죠?”

“-----!!------”
순간 김용국이 또 당황했다. 내게 말했어도 공개하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그걸 숨기면 진실이 아니었다. 재판장과 방청석의 눈길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왜 대답을 하지 않죠?”

“그,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말을 더듬으면서 완연히 흔들렸다. 옆에 있던 회장부인이 핏빛 눈길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했는데요?”

내가 물었다.

“손을 뒤집어 보였어요. 그건 고모의 진술에 맞추어 주라는 싸인 이었어요.”
갑자기 회장부인의 악쓰는 소리가 법정 안을 울려 퍼졌다.

“재판장님 이게 고모를 존경한다는 놈이 하는 소립니까?”
그녀는 거의 발광 직전까지 이르렀다.

잠시 후 여대생을 사살한 마기룡의 국선변호사 권성희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갈색정장에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피고인 마기룡은 어떻게 용의자가 되어 추적을 받았죠?”
권변호사가 묻기 시작했다.

“죽은 혜경양의 아버지에게 주었던 명함이 단서가 되서----”
동정을 구하는 듯한 낮고 힘 빠진 목소리였다.

“살인청부를 받은 대상인 여대생이 어떤 사람이었어요?”

“회장 집 사위 김 판사가 과외지도를 했던 여학생인데 한 때 둘이서 연애를 했다가 김판사가 고시에 합격하고 부잣집에 장가를 들자 원한을 품고 김판사의 가정을 깨고 자기와 다시 결혼하려고 하는 나쁜 여자라고 김용국이가 말했었습니다.”

“정말 그런 여자였나요?”
권변호사가 물었다.

“죽이고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까 김판사와 정혜경은 이종사촌간이라 연애할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걸 알았더라면 당장 혐의가 올 이 사건을 맡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살인을 청부받은 겁니까?”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얼마나 돈을 주면되느냐고 묻는 바람에 진담이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심코 2억원을 불러봤는데 계약이 성사되는 바람에 현실이 됐습니다.”

“돈을 받은 이후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사실 착수금을 받은 그날부터 거의 개인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24시간 스탠바이상태에서 새벽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김용국이 지시에 따라 미행하라면 하고 누구에게 린치를 가하라면 즉각 그걸 이행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성과는 없자 김용국이는 매일같이 고모인 회장부인에게 야단맞는 눈치였습니다. 받은 돈을 다 써버려 그만두지도 못하고 정말 괴로웠습니다. 한번은 연락을 끊고 도망을 했는데 용국이가 핸드폰 메시지로 네가 안나타나면 어르신이 칠성파를 동원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고 했어요.”


“어르신이라는 사람이 누구죠?”
권변호사가 물었다.

“김용국이는 고모인 회장부인을 어르신이라고 했어요. 회장부인에게 여섯달 동안 지독히 시달려서 납치하자마자 삼십분만에 바로 죽여 버렸습니다.”

“살인 후 심정이 어땠어요?”

“이런 소리 하는 거 어떤 가 모르겠는데 도망을 다닐 때 하루 밤에는 꿈에 제가 죽인 정혜경이 나타났습니다. 열 살 정도 소녀의 모습으로 드레스를 입고춥다고하면서 저를 따라 왔어요. 언제나 불안하고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일심에서 변호사가 있었어요?”

“회장부인이 보내준 사선변호사가 있는데 뭐라고 부탁 말을 하는데 내가 거절했습니다.”
사채시장에서 활동하던 살인범 마기룡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재판은 사기극일 수 있었다. 변호사들은 출연료를 받은 조역배우로 전락할 위험성도 많았다. 거액이 오가면 아예 총연출을 맡기도 했다. 그들 간 재 타협이 되면 나와 국선 변호사는 퇴장 할 운명이었다.

#11
공판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치 그들의 거짓말 대회를 보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김용국의 처 가 따라왔다.

“남편이 진실하지 못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어요”
긴장한 얼굴이었다. 가난해도 정직한 사람을 보면 맑은 샘물을 본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남편 김용국이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숨기는 걸 느끼고 있었다. 재판장도 계산된 정직성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오늘 방청 온 회장 측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내가 궁금해 하면서 물었다. 연극 같은 법정보다 그 뒷 무대가 그들의 저의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님이 부리는 사람들이 전부 출동했어요. 법정 내려오는 계단에서 회장님을 만났는데 저보고 ‘좋은 변호사 구했구만 잘 해봐’하고 빈정 대시더라구요. 회장님이 뒤에서 전체를 지휘하고 계시는데 친척들 말이 로펌에 거액을 줬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은 무죄로 빠져 나간대요. 로펌의 높은 변호사들이 뒤에서 검찰과 법원 고위층까지 움직일 거래요.”

요즈음 로펌은 고위직에 있던 법조인을 영입하기도 했다.

“남편 김용국씨를 위해 증언해 줄 친구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회장부인이 지난번 너무 나쁘게 말했다. 그걸 희석시켜줄 어렸을 적 친구가 필요했다.

“남편이나 마기룡을 다 아는 고등학교 동창 한 분이 보일러기사로 있어요.그렇지만 여기 올 시간은 없을텐데.”

“그럼 내일 같이 가 봅시다.”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발로 뛰어야 한 사람의 얘기라도 더 들을 수 있다. 그들의 고교시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다음날인 토요일 인천 쪽으로 가는 오후의 지하철은 붐볐다. 나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김용국의 처에게 물어 보았다.

“회장부인과 싸운 적이 있어요?”
수사기록 중에 간단히 그런 내용이 있었다.

“남편이 잡혀 오기 전이었어요. 회장부인인 고모님이 울산의 분식점 앞에서 저를 보자고 했어요. 어떻게나 치밀한 여잔지 고모는 그때도 기록이 남는 비행기는 절대 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자기 차도 타지 않고 버스로 다녔어요. 분식점 앞에 대놓은 빌린 친척차 안에서 만나자고 해서 그 차 안으로 들어갔죠. 모자를 쓰고 커다란 썬글래스를 쓰고 있더라구요.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있는 거예요. 차안에 들어가 인사를 했는데도 도무지 말을 안 해요. 녹음이라도 할까봐 그랬나 봐요. 그때 저는 정말 화가 났어요. 남편이 베트남까지 도망을 갔는데 고모인 회장부인은 뭔가 설명이 없는 거예요. 전 그 치밀한 성격을 알기 때문에 멍청한 남편이 이용당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 집 파출부를 좀 해봐서 인간성을 알아요. 제가 막 따졌죠. 이렇게 된 판에 이젠 고모라던가 회장부인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제가 남편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어요. 진실이 뭐냐구요? 그랬더니 고모가 자기는 모른다는 거예요. 그 말에 제가 모를 리가 있느냐 뒤에서 다 시켜놓고 같이 일한 걸 아는데 그렇다면 어디 경찰서에 가서 진실을 같이 따져보자고 덤볐죠. 말하는 도중에 고모가 나보고 도대체 조카며느리라는 게 어디 이따위 버릇이 있느냐고 뺨을 한대 갈기더라구요. 저도 그동안 쌓였던 게 폭발해서 같이 덤벼 들었어요”

어느새 차창 밖으로 부천역이란 간판이 보였다.

“그 다음은 어땠어요?”
회장부인은 김용국의 처가 산통을 깨지 않을까 걱정을 했을 것이다.

“며칠 후에 시누남편을 통해 연락이 왔어요. 제 남편이 총대를 메주면 50억원을 주겠다는 거예요. 회장이 시누남편에게 그렇게 얘기했대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 했어요”

“나이 많으신 고모님이 죄 값을 받으시고 젊은 조카인 우리남편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면서 거절했어요.”

“그 돈을 받고 싶은 유혹이 없었어요?”
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거절하기 힘든 금액이다.

“회장부부는 철저하게 남 줄 돈 안주고 해서 부자 된 사람인걸 제가 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또 속아보세요. 평생 얼마나 한이 남겠어요? ” 그녀는 회장부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참 변호사님”
그녀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죽은 정혜경이 머리에 총을 여섯 발 맞고 죽었잖아요?”

“그랬죠”
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총을 여러 발 쏜 건 원한의 표현이 아니겠어요? 저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처음에 회장부인이 쏜 걸로 알았어요.”
일리가 있었다. 마기룡은 프로가 아닌 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침착하게 죽이기가 힘든 것이다.

“사위여자관계를 폭로한 처음의 그 전화는 어디서 온거죠?”
내가 물었다. 괴 전화를 한 사람도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사귀던 여자 아니면 중매쟁이라고 해요.”
“그 외 이 사건에 대해 생각나는 게 없어요?”
그들이 흘려버린 한조각의 진실이라도 발견해 내고 싶었다.

“한참 나중에야 이해한 사실이 있어요. 회장부인이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그게 맞냐? 확실하냐? 그런 소리들을 자주 하는 걸 옆에서 들었어요. 전 그때 그 소리가 뭔지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건 독극물 얘기인 것 같았어요. 살인교사가 틀림없어요.”

지하철이 어느새 중동역 플랫폼에 들어서고 있었다.

김용국의 친구가 보일러 일을 한다는 역 근처의 허름한 빌딩은 한산했다. 3층의 제약회사 빈 사무실에서김용국 마기룡의 고교동창이라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국이나 기룡이는 다 고향친구고 동창이죠. 용국이 하곤 어려서부터 불알친군데 그렇게 죄를 질 독한 애는 아닌데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음이 넉넉한 편이었어요. 동창들 모두 뉴스를 보고 놀랐죠.”
그의 표정과 말에서 진실이 느껴졌다.

“김용국은 학교 때 껄렁껄렁하고 싸움을 잘했다면서요?”
고모인 회장부인은 법정에서 그렇게 몰아쳤다. 살인을 할 수 있는 성질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용국이 원래 싸움 못해요. 전혀 그런 소질이 없다니까요.”

“그럼 마기룡이는요?”

“기룡이는 덩치도 좋고 싸움도 잘하는 편이었죠.”

“김용국을 근래에 만나 무슨 얘기를 나준 적이 없어요?”

“글쎄요 한번은 와서 자기가 미행을 하는데 같이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근무 중인 사람이 어떻게 가느냐면서 안된다고 했죠. 아마 또 다른 친구가 미행할 때 몇 번 따라갔을 거예요. 뭐라더라? 돈 받을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마기룡은 어떤 사람이죠?”
난 그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알고 싶었다.

“2002년 2월인가 동창회에서 본 일이 있어요. 기룡이가 잠깐 있더니 일이 있어 가야한다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저보다는 용국이가 기룡이하고 더 친한데서로 아웅다웅하기도 했어요. 서로 어음을 빌려주기도 한 사이고요. 그런데 기룡이는 사채일을 하면서는친구들을 잘 만나지 않았어요.”

“마기룡씨 성품은 어때요?”

“글쎄요 용국이 보다는 좀 사기성이 있다고 할까? 순진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허풍이 엄청 세요. 항상 말이 일이백만원이 아니라 몇 억 몇 십억 해요. 보일러공하는 나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 기가 죽어요. 말이 안 통하는 거죠.”

“마기룡씨는 무슨 일을 한다고 합디까?”

“어디 가서 빚 받아내는 게 전문이래요. 그것도 용국이가 전한 말이지 기룡이는 자기가뭘 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평소 선한 사람은 그런 일 못하잖아요? ”

“두 사람 성격을 비교한다면 어때요?”

“글쎄요 마기룡이는 책임을 전가하는 성격은 아니예요. 자잘한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김용국일 겁니다.”
그가 옆에 있는 김용국의 처를 보면서 멋쩍은 듯 말했다. 처는 아무 말 없었다. 긍정하는 표정이었다.

삼십분 후. 나와 김용국의 처는 역 부근의 허름한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남편이 착한 성격이라고 친구가 그러는데 왜 이 사건에 말려 들었을까요?”

내가 물었다.

“회장부인인 고모가 남편에게 자기말만 잘 들으면 뭔가 해 줄 것처럼 남편을 꾀었을 거예요. 순진한 남편이 그 말을 믿고 한 면도 있을 거구요. 그렇지만 전 돈 한 푼 받아본 적 없습니다. 지금 생활비도 제가 파출부일을 하면서 법니다.”

그녀는 내가 돈에 대해 의심할까봐 미리 막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회장부인이 무기징역이라도 받으면 가장 좋은 사람이 첩일 거예요. 지금 애가 학교 갈 때가 됐는데 정식으로 그 집 사모님이 될 위치니까요. 그런 면에서 회장부인 김귀숙도 알고 보면 불쌍한 여자예요. 사랑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니까.”

그 말에 난 문득 짚이는게 있었다. 회장의 변호방향이었다. 재판장은 이미 노골적으로 유죄의 심증을 나타내고 있었다. 로펌의 변호사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회장측은 김용국 부부와 마기룡 그리고 심지어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 까지 오히려 자극하고 있었다. 정의택과 김용국의 처가 다음증인으로 결정되었다.


#12
2004년 1월 29일 오후2시 40분. 창문하나 없는 법정 안은 묵지룩하고 불쾌한 기운이 흘렀다. 미리 법정에 온 나는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붉은 얼굴의 회장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앞으로 회장부인의 자매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명이 나와 눈길이 부딪치자 입을 삐죽거리고 흰눈을 치켜 올렸다.나는 내가 발견한 진실을 글로 적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사역시 그가 알아낸 진실을 법대에 올려놓는 것이다. 판사들은 그 싸움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회장부인과 내 의뢰인인 김용국과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난 회장 측에서 돈으로 입을 막으려는 그 사실자체도 글을 통해 폭로했다.

회장은 재판이 끝나면 나를 고소하겠다고 김용국의 처를 통해 협박해 왔다. 청부살인도 하는 사람들에게 협박은 아무것도 아닐지 몰랐다. 이왕 나선 김에 김용국의 처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이차로 공개적으로 확실히 할 계획이었다.

방청석 반대편에 그들이 죽인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이 고개를 떨 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피해자인데도 방청석의 대다수인 회장 측 사람들은 자기네를 피해자로 착각하고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이제 재판시작 5분전이었다. 무료한 듯 서기가 책상 앞에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다른 손으로 주무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속기사가 모니터를 보면서 공상에 잠겨 있었다.

법정 벽 위에 매미같이 달라붙은 시계의 바늘이 정확히 세시를 가리켰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법정으로 등장했다. 벽 쪽의 문이 열리면서 회장부인의 찡그린 얼굴이 보였다. 절룩거리면서 나오는 그녀는세상의 고통을 혼자 다 진 표정이었다. 그 뒤를 따라 구깃한재소자복을 입은 김용국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 역시 입이 잔뜩 부어있었다. 바로 뒤에 마기룡이 붙어있었다.

마기룡은 허리를 낮추고 본능적으로 주위의 공기를 살폈다.

이윽고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씨가 증인석에 올라와 앉았다. 정말 치밀한 공작을 하려면 회장은 설사 살인교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를 설득해야 했었다. 그러나 반대였다.회장부인의 공판담당 변호사가 일어나 정의택에게 물었다.

“증인은 진실을 밝혀 죽은 딸의 영혼을 밝힌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돈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죠?”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해서 이 사건의 일심판결이 나기도 전에 회장부인을 상대로 24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전 재산을 압류했죠?” 변호사는 정의택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죽은 딸이 발견됐을 당시 범인들은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그런 상태에서는 회장부인을 살인죄로 걸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전 독자적으로 살인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검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민사로라도 진실규명을 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그런 목적인데 그렇게 거액을 청구하신건가요?”
변호사의 어조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제가 상담한 변호사는 회장부인 같은 그런 여자는 미국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천억이나 이천억이라도 받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서 그걸 다 빼앗아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증인은 회장부인에게는 그렇게 민사배상을 청구했으면서도 김용국이나 마기룡은 그냥 놔두셨던데 왜죠?”

“저 두 사람은 회장부인의 돈으로 망가진 불쌍한 살인도구들입니다. 내가 그런 인간들에게 돈을 청구하기 싫었습니다.” 회장측은 철저히 그를 매도했다. 나도 김용국의 변호사였다. 한번쯤은 회장 측의 시각으로 정의택을 의심해 봤다. 그러나아니었다. 그는 무관심한 권력과 거대한 금력 앞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수사해 달라고 사정하는 초조한 아버지한테 술과 뇌물을 얻어먹으면서 탐욕의 눈길을 번들거리던 형사들을 증오했다. 차라리 시골의 순박한 형사가 조사를 다 해주었다고 했다. 그랬다. 돈은 경찰도 검찰도 변호사도 그 누구도 마취시켜 사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증인 한 가지 다시 참고삼아 묻겠습니다.”
검사가 끼어들어 물었다. 그는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집요한 수사의지로 회장부인은 공판정에 선 것 같았다. 변호사지만 속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회장부인인 김귀숙은 정의택씨가 언론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자기가 억울하게 범인이 됐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회장부인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언론플레이라는 말을 쓴 자체가 순수하지 못한 정치성을 느끼게 했다.

“사건이 터지고 수많은 기자들이 접근하고 인터뷰하자고 했습니다. 제 딸이 살해된 게 뭐가 그렇게 명예로운 일이겠습니까?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한번은 동아일보에서 ‘여대생이 알고 지내는 남자의 장모 구속’이라는 제목을 봤습니다. 피가 끓어올라 제가 그 기자에게 항의했습니다.이종 사촌 오빠를 알고 지내는 남자로 표현하느냐고 말이죠. 그런 식이면 당신 외삼촌은 알고 지내는 여자의 동생이냐고 물었죠. 다음부터 그런 원색적인 제목은 없어졌습니다. 애비로서는 정말 언론과는 얘기도 하기 싫고 힘들었습니다. 지난 설날 모란공원에 뼈로 차갑게 남아있는 딸을 보고 왔습니다. 한창 즐거워야 할 청춘에 우리애가 왜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합니까?”

그는 특히 문제의 발단인 조카 김판사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얘기해 주는데요 김판사 자기 때문에 내 딸 혜경이가 살해당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얼마전 법원부장과 김판사 그녀석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김판사는 이 사건을 너무나 남의 일 같이 생각하는 태도라는 겁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놈이라 대학때부터 이종사촌인 우리 혜경이가 좋아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은 그런 놈을 판사로 쓰고 있습니까?”

그의 분노가 재판부의 가슴에 투사되고 있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제가 이 재판 전에 이 글을 한부 드렸는데 읽으셨습니까?”

“읽었습니다.”
나는 내가 발견한 진실을 기도하고 적었었다.

“잘못 쓰거나 진실에 어긋난 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일단 진실은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게 태도라는 생각이다. 변호사가 돈에 취해 사실을 왜곡하면 그건 또 다른 범죄다.

“딸의 시신을 처음 봤을 때 감정을 얘기해 주시죠.”

“우리 혜경이가 죽은 지 열흘이 됐는데도 내가 갔는데 눈을 한쪽 번쩍 떴어요. 그리고는 입을 씰룩거렸습니다. 저는 그런 걸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한 맺힌 딸의 영혼이 가지 못하고 나를 기다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허억”하고 마른 울음을 터쳤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그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는 철저히 침착하려고 애를 쓰면서 말을 계속했다.

“죽은 딸의 하얀 얼굴을 보고 처음에는 총에 맞은지 몰랐습니다. 양미간에 구멍이 보여서 굵은 송곳에 찔린 줄 알았어요. 이미 경찰이 얼굴에 피를 닦아 놓은 것 같았어요. 판사님들은 수사를 하지 않으면서 민적거리는 형사반장이나 죽은 애 아버지가 사주는 밥과 술을 느긋하게 쳐 먹는 제 마음을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차마 제가 세부적인 사항은 말씀 못드리겠습니다만 인터폴에 협조하는 것 까지 저 아니면 이 사건 밝히지 못했을 겁니다.”

“이 넥타이를 보세요”
그가 자기가 매고 있는 포도주색 넥타이를 가리켰다.

“이건 죽은 딸 혜경이가 선물한 겁니다. 저 악마 같은 더러운 여자가 끝까지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 따라가서 우리 혜경이 복수를 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재판이 열릴 때마다 이 넥타이를 매고 나옵니다.”

그가 한 맺힌 얼굴로 고개를 돌려 회장부인을 바라보았다. 기세등등하던 회장부인이 순간 움찔했다. 나는 다음질문으로 들어갔다.

“증인역시 살해되실 뻔 했죠?”
그 말에정의택씨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야! 이 놈!”
순간 마기룡의 목이 자라같이 들어갔다.

“네가 날 죽이려고 할 때도 내가 험하게 대하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내 딸을...”
정의택이 울부짖었다. 그가 재판장을 보면서 절규했다.

“재판장님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을 바쳐서 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싶습니다.”
법정에는 냉냉한 법만 아니라 그런 피해자의 격분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사회적분노도 판사들의 가슴에 저며 든다.  나는 그 순간 회장부인에게로 무심코 시선이 갔다. 기가 죽을 만 한데도 회장부인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검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녀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재판장이 허락하거나 말거나 그녀가 소리쳤다.

“저 사람은 말이죠. 소설을 쓰고 있어요거짓말입니다.”
나는 악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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