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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은 反日일까?앱에서 작성

ㅇㅇ(175.223) 2022.02.01 19:36:12
조회 1958 추천 47 댓글 11

한국인의 반일의 원인으로는 첫번째 '반일교육'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반일교육의 실태란, 철저한 '일본에 의한 피해자 교육'이다. 한국이 피해자라면, 일본을 비롯한 외세는 모두 '악'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한국 민족의 '진실'이나 '입장', 그리고 '한'에 합치하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의심할 여지는 없다. 이것이 한국인의 '반일활동'의 원천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왜 반일교육을 하고 있는 것일까.
 
 
비참한 역사를 숨기기 위해
 
 
조선은 과거로부터 계속 중국의 속국이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기록이나 물적 증거도 셀 수 없이 남아 있기 때문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조선의 왕의 적색의 예복은. '중국의 황제를 충실히 섬기는 신하'를 의미한다. 참고로 의복의 색은, 황제는 황색, 왕이나 태자는 등색, 노신은 백색, 충신은 적색이나 녹색 등이었다. 용의 수는, 황제는 9마리, 황족은 8~7마리, 대신은 6~5마리, 지방의 장은 4~3마리였다.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 태극기. 무엇보다 '大清国属'이라고 적혀있다. 여담이지만, 이것이 발견되었을 때, 한국 국내의 뉴스에는 '大清国属'이라는 문자를 잘라내고 보도했다. 상황이 그런만큼 보통의 한국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그로인해 아래와 같은 우스운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中国朝鮮商民水陸貿易章程(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그 일부에는 '고대부터 속국이었으므로, 清国 정부와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교통의 규범은 고정되어있으므로, 변경할 필요는 없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 밖에도, 과거 조선이 清에게 받았던 대우는 다음과 같다.
- 조선 국왕은 清의 황제에 의해 임명되었다.
- 조선 국내의 사건은 모두 清의 황제에게 보고해야 했다.
- 조선 국왕은 清의 사신을 성문까지 마중나가야했다.
- 조선 국왕의 지위는 清의 조정 대신보다 아래.
- 조선 정부는 清에 정해진 공품(貢品) 이외에도, 매년, 소 3000마리, 말 3000마리, 미녀 3000명을 헌상해야 했다.
 
 심지어 조선이 清과 주종 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조선 국내에도 그 자취가 남아 있다. 현재의 '독립문(独立門)'이 있던 장소에는 원래 '영은문(迎恩門)'이라는 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조선의 왕이 清의 사신을 맞이하던 문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마중이 아니고, 엎드린 채 땅에 머리를 9번 부딪혔던, 그야말로 굴욕적인 예속의 상징인 문이었다.
 
 이렇게 속국의 역사를 걸어온 한국이지만, 이러한 역사는 과거를 누구보다 자랑하고 싶어하는 조선인들에게는 너무 비참했다. 아마 그들에게는 스스로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속국이었던 과거'를 지워 없애기로 했다. 그리고 독립 후,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애국 교육'을 내세워, '우리나라는 5000年 동안 한번도 타국에 지배된 적이 없는 독립국이다'라는 '거짓된 영광의 역사'를 마치 진실처럼 국민들에게 철저히 가르쳤다. 이것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한국의 역사 날조의 서곡이었다.
 
 
반일교육의 실태
 
 
민간이 교과서를 만들어 각 학교가 독자적으로 채택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정부가 만든 것 이외의 역사 교과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 교과서는 한국에게 유리한 부분은 부각하고, 불쾌한 부분은 삭제해 버리는 것은 물론, 근거가 없는 내용을 게재하거나 없는 사실을 날조하기도 한다. 실은 한국의 감정적인 반일 문제도, 이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본은 조선 병합 이후, 조선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지만, 한국의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을뿐,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병합전 조선의 한양의 모습은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수도인 한양조차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참한 과거는 한국에서는 은폐되고 있다. 영국인 여행가인 lsabella.L.Bird는 이조 말기의 조선을 '길이 나쁘고, 화폐 제도도 없고, 악취가 진동하는 도시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궁핍할 것 같았던 조선에도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빛은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빚을 인수해 없던 것으로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돈을 들여 조선을 발전시켰다.
 
병합후 조선은 놀라운 성장을 이룩해갔다. 누가 봐도 병합전과는 놀랄만한 발전이다. 일본인에게는 그만큼의 문화와 자본과 기술이 있었다. 35년만에 이만큼의 발전을 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일본은 조선을 아래와 같이 발전시켰다.
 
 
- 조선의 막대한 빚을 인수해 없던 것으로 했다.
- 일본의 예산으로 학교, 재판소, 상하수도, 공원, 병원, 경찰서, 도로, 수력 발전소, 농지, 철도 등의 인간적인 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만들었다.
- 일본의 자본으로 조선 전역에 5000개의 근대식 소학교를 건설해 근대 교육을 실시하였고, 한글을 필수로 가르쳤다.
- 일본의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여 2차 산업을 9배 성장시킨 것은 물론, 1차・3차 산업도 크게 향상되었다.
- 의료와 위생 환경을 향상시켜 평균 수명을 26세부터 42세로 늘렸다.
- 인구를 2배로 늘렸다.
- 대손(貸損)을 감수하고 가장 싼 금리로 조선에 돈을 빌려주었다.
- 발전에 필요한 자금이나 자재 등의 '물적 지원'은 물론, '인적 지원'과 '기술 지원'도 동시에 시행했다
 
 
이렇듯, 일본은 조선반도에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대폭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일본의 공적을 모두 은폐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은 조선을 수탈하여 발전을 지연시켰다', '일본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더욱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등 국민들에게 세뇌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본이 조선을 독립시켰던 일이나, 조선의 궁핍했던 과거도 숨기고 있다. 조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일본이 조선의 원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겠지만, 조선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했던 것뿐 아니라, 기술도 자원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힘 없이 급성장이 가능했을리가 없다. 황폐한 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며, 위생마저 불량했던 조선이, 수십년만에 빌딩이 줄지어 선 거리에 살고, 쌀과 고기를 먹으며, 청결한 환경에서 사는 국제적으로도 풍부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것이다.
 
여기서 하나 우스운 사실은,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일본을 '궁핍하게 문화도 뒤떨어진 야만스러운 후진국이며, 조선이 전수해 준 문화와 기술을 통해 성장한 나라'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예를들어, 江戸時代의 일본은, 서양과 교역을 하며, 학문・교육・문화・예술 등이 세계 일류 수준으로 발전되어 있었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알지 못한다. 수도인 江戸는 런던, 파리 등과 달리 청결하고 치안이 안정되어 있었으며, 상하수도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나아가, 1801年의 런던의 인구가 약 86만명, 1802年의 파리의 인구가 약 67만명이었던 것에 비해, 江戸는 1725年에 이미 100만을 넘기는 인구를 가지는 대도시였다. 이러한 江戸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 물론, 발전했던 것은 수도인 江戸뿐만이 아니라 大坂와 京都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 세도시는 당시 일본의 발전된 육상・수상 교통으로 연결되어, 편지, 특산품, 어음 등을 운수하는데에 용이했다. 또한 당시의 일본은 에코 선진국이기도 했다. 江戸時代에는 이미 재활용을 하는 문화가 존재하였으며, 생활 쓰레기를 바다에 매립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높은 문화와 풍요가 존재하던 일본이지만, 한국에서는 '조선보다 뒤떨어진 후진국'이라고 가르치며, 일본을 업신여기고 있다. 정작 조선의 진짜 모습이 어땠는지, 그들은 완전히 모르는 것이다. 그럴것이, 한국인들은 전원이 같은 내용의 반일교육으로 공부하는 것은 물론, '한국은 5千年의 역사를 가진 문화 선진국이었다'를 알리는 다큐나 시대극을 사실인 것처럼 방영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이렇게 거짓말로 굳어진 사회인만큼, '이만큼 우수한 한국이 세계 제일이 아니다. 심지어 일본에도 뒤지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악랄한 침략과 식민 통치 때문이다'라는, 간단히 말해, '조선은 선진대국이었는데, 일본이 비겁하게 앞질렀다'라는 논리가 통하게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애시당초 일본은 조선에 앞서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병합의 진실. 그것은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원래 조선반도에는 자원 따위는 없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착취는 존재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한국인이 외치는 '극악 무도한 일본'은 조선에 막대한 자금과 기술, 인적 지원을 통해 발전을 시켰다. 심지어, 일본의 조선 병합은 국제적으로도 '가장 좋은 통치'로 평가되고 있다. 당연히 일본의 조선 통치가 한국 북조선 이외의 외국으로부터 비난받았던 일도 없다.
 

 그리고 일본이 패전해, 조선이 독립하였다. 그런데 어쨌든 그때까지 일본령으로서 함께 싸워온 '전우'가 되어야할 조선은 일본과 연대 책임을 물게 되는 것이 두려워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반일로, 조선 민족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싸웠던 것이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그 당시 남북 조선은 서로 자신측을 '전쟁의 책임이 없는 정당 정부'라고 주장하며, 서로를 강하게 비방하고 있었다. 즉, '반일을 주장하는 세력이 정통성이 있는 정부'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한국정부가 두려워한 것은 바로 국민들이 '일본통치시대가 좋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당시는 아직 일본인으로서 살아온 조선인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친일파가 현행 정부를 부정하고 나설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즉, 반정부 세력이 확대해 국가가 뒤집힐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보통이라면 정부가 노력을 통해 국력을 회복하겠지만, 한국정부는 더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일본은 조선을 피폐하게 만든 비열한 악마'라는 거짓을 전파해 국민을 세뇌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교육으로 이어져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 예시는 아래와 같다.
 
- 일본에게 받은 막대한 돈이나 설비, 기술이나 인적 자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 '일한기본조약'을 은폐한다.
​- 다케시마에 대해 일본의 의견을 서술하지 않고 한국의 입장만을 서술한다.
​- 일본이 자학사관으로 한국에 항복하는게 한국이 생각하는 우호이다.
 
- 일본의 약탈로 조선인들이 굶어 죽었다고 가르친다.
 
- 토지를 40%나 수탈당했다.
 
- 조선인들을 대량으로 강제 징용하였다.
 


​진실된 역사를 학교에서 올바르게 전하고 있는 대만이나 싱가폴 등과는 대조적이다. 후술하겠지만, 대만이나 싱가폴 등에는 당연히 한국과 같은 비뚤어진 반일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봐 왔듯이, 한국은 반일교육이 수십년간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을 업신여기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과거를 속이는 것이 목적이었던 반일교육을 받은 세대가 한국 사회를 이끄는 주류 계층이 되었다. 이제 진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조차, 사회적 매장이 두려워 거짓을 주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왜곡과 날조의 역사는 근현대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고대사에서조차 제멋대로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예를들어, 임나일본부. 이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자세한 부분에는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고대 일본이 조선반도 남부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증거도 다수 남아있다. 심지어 이 증거 중에는 한국 내에서 발견되는 유물이나 비문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임나일본부를 '일본의 억지이다'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백제가 일본의 종주국이었다는 말도안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참고로, 백제는 일본에게 왕자를 인질로 보내고, 조공을 바치고, 땅을 할양받는 등 오히려 일본에 예속되어 있었다. 또한, 한국 최고(最古)의 역사서는 12세기 완성된 삼국사기(三國史記)이고,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는 일본과 중국의 사료를 참고하고 있지만, 이 중 자신들에게 유쾌한 부분만을 추려낸 뒤, 일본과 중국이 고대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日本書紀'의 내용 중, '백제가 임나일본부를 통해 일본에 문물을 전파했다'라는 부분에서 백제의 문물 전파 부분만을 인정하고 그 전제가 되는 임나일본부를 부정하는 모순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조선인들은 원래 모순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날조와 왜곡이 심한 한국의 역사 교육이지만,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은 '외국(한국과 중국)의 교과서에 어떻게 쓰여져 있든지, 그것은 타국의 문제이며, 일본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자세를 관철해 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쓴 날조의 역사를, 일본에게까지 강요하고 있다. 어째서 그들은 자신들의 반일교육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일본의 역사 교육을 고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단 한개의 국정 역사 교과서를 검증할 방법이 없을 뿐 아니라, 검증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다. 교과서 뿐 아니라, 한국인이 생활하면서 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한국의 상식'을 주입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상식에 부합하는 교과서는 곧 '진실'이 되며, 내용이 올바른가 그른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인들은 그 교과서에 내용을 증명하는 자료가 없다는 치명적인 결함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철저한 학력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학업을 위해서는 열심히 그 교과서의 지식을 공부할 수 밖에 없으며, 그 결과, 사회의 권위있는 사람들조차, 날조된 교과서의 내용이 단단히 박혀 있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어디의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지식과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지식 이외의 것들은 모두 '왜곡이다!', '날조다!'라고 부정하며,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업신여긴다. 즉,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교양이며, 그 비정상적인 사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조선 민족인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스스로의 인식에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거짓말이 들켜버렸을 경우의 대처도 끝마쳤다. 바로,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쟁이 비겁자'라는 반일교육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거짓된 진실에 의심을 갖지 않으며, 그것이 들키는 일이 있더라도, '비겁한 일본의 더러운 책략'으로 비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인에게 근거를 제시하며 진실을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무슨 말을 해도 일단 믿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자신들의 비겁한 행위와 도의적 책임을 감추기 위해, 모든 문제를 일본의 탓으로 하는 것으로 정당화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반일교육에서는 '언제나 일본은 나쁜 대상이어야 한다'인 것이다. 이것이 반일이 한국의 국책이 된 원인이다. 예를들어,
- 「조선 황제의 비준을 받은 합법적인 병합이었다」를 「일본이 무력으로 위협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라고 했다.
- 「일본은 조선의 물건을 고가로 사주었다」를 「일본은 조선을 착취, 강탈했다」라고 했다.
- 「민비가 호화 삼매로 조선 정부의 6년 분의 국가 예산을 다 써버려 병사의 급료를 13개월간 지불하지 않아, 그 불만으로 일어난 폭동인 임오사변」을 「일본이 조선에 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를 병립시킨 탓으로 불만을 가진 구식 군대고 폭동을 일으켰다」라고 했다.
- 「반정부 반외세의 집단인 동학당이 일본인을 학살했다」를 「동학당은 일본의 경제 침탈에 반발해 폭동을 일으켰다」라고 했다.
- 「중립 선언을 하고 있었음에도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에 도망치고, 만주 철도를 부산까지 연장해, 러시아가 일본을 침략하기 위한 도움을 주었으므로 일본이 격노했다」를 「중립 선언을 했지만 일본이 부당하게 침략했다」라고 했다.
- 「일본을 배반하고 러시아에 붙어 있던 한국이 1907年에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 회의에, 초대되지도 않았는데 돌연 방문해 국제 조약까지 무시하고 유력국의 대사에게 몰래 면회해, 일본을 규탄하고 대한제국의 독립 유지를 옹호받으려고 했지만, 결국 어느 나라에도 상대되지 못했고, 반대로 일본에게 알려져, 사절이 증거 인멸을 위해 자살한 헤이그 밀사 사건」을 「한국은 사절을 보내 일제의 침략을 온 세상에 알리려고 했지만, 일본이 압력을 넣어 사절의 신청을 거부시키고, 심지어 사절을 살해했다」라고 했다.
- 「국제 상식과 어긋난 배신 행위인 헤이그 밀사 사건에 伊藤博文가 격노해, "이렇게 음험한 수단으로 일본의 보호를 거부할 정도라면, 정정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라"라고 항의해, 고종이 겁을 먹고 퇴위했다」를 「악랄한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내정에 간섭하고 고종을 퇴위시켰다」라고 했다.
​이러한 거짓의 역사가 한국의 교과서에는 당당히 쓰여져 있다. 한국의 의도적인 날조 교육에 대해 예를 들면 끝이 없지만, 여기서는 그들이 일본 비난에 자주 이용하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창씨'란, 氏(가족이 공유하는 이름)을 만드는 것, '개명'은 이름을 고치는 것은 의미하는 말이며, 조선이 일본의 통치를 받았던 시대에 호적 관리의 일환으로 시행된 정책이다. 조선인은 이것에 대해, "악랄한 일본은 강제로 민족의 이름을 빼앗았다"라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사실 무근의 오해이며, 일본이 그들의 이름을 빼앗았던 일 따위는 없다. 왜냐하면,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바랬기 때문에 얻은 권리이며, 그것도 희망자가 신청하면 일본식의 이름의 사용을 허가하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우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종주국인과 같은 이름의 사용이 금지되고 있었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조선인과 대만인 등이 일본식의 이름을 자칭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인들은 조선인은 일본국민이었던 것에 기인해, 개명의 요청도 증가해갔다. 또, 조선인과 일본인은, 용모가 일본인과 매우 닮아있어, 그들이 마음대로 일본식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그런 이유로, 본래 금지하고 있던 개명을, 1940年의 紀元節을 기념해, '특례'로서 허가했다. 참고로, 창씨는 2月 11日부터 8月 10日까지의 반년간만 허용되었고, 개명은 언제든지 가능했다.
​이것은 당시 조선인에게 고지된 '창씨개명의 법원 공고'이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창씨 신고는 8月 10日까지입니다. 그 후 창씨 신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름의 변경에는 기한이 없습니다.
2. 8月 10日까지 氏의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은, 종래의 호주의 姓이 그대로 氏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호주의 姓이 金이면, 金이 氏가 되어, 처 尹貞?는 호주의 氏에 따라 金貞?가 되고, 며느리 朴南祚은 金南祚이 되어, 분잡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 결과는 氏를 설정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氏와 姓의 혼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氏는 집의 칭호이며, 姓은 남자계의 혈통을 나타내는 것으로, 양자의 성질은 전혀 다릅니다.
4. 氏를 설정하면 종래의 姓이 없어진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氏 설정 후에도 姓 및 本貫은 그대로 호적에 존치될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5. 門中 또는 宗中은 동일한 氏를 설정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큰 오해입니다. 氏는 집의 칭호이기 때문에, 각 집이 다른 氏를 설정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6. 氏 선정에 대해 심사숙고중 같습니다만, 지나치게 생각하면 오히려 헤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간단 명료한 것으로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이상적입니다.
7. 기한도 다가왔습니다. 궁금한 점은 빨리 府面邑이나 법원에 문의해 주십시오.
 

 이것을 보면 알겠지만, 우선 '창씨'와 '개명'은 별도로 행해지고 있다. 즉, 창씨(가족명을 만드는 것)는 의무이지만, 원래 氏를 가지고 있던 양반 계급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관계없었고, 개명(개인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가족명을 만드는 김에 일본풍의 이름으로 바꾸어도 좋지만, 바꾸지 않아도 괜찮은 권리였다.
 

 그렇다면 왜 이 문제가 까다로워졌을까. 그것은 조선에는 원래 가족명이 없었던 것에 기인한다. 여기에 가족을 단위로 거주자를 파악하는 시스템인 '호적'을 도입할 경우, 그 단위가 되는 '가족명'이 조선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공유하는 가족명을 스스로 생각해 등록하라는 것이 '창씨'이다.


예를들어, 徳川家康라는 일본인을 호적에 등록한다고 했을 경우, 徳川家康는 '清和源氏'라는 씨족명을 자칭하고 있었으므로,  
氏族名:清和源 + 家族名:徳川 + 個人名:家康 
즉, 清和源氏+徳川+家康가 된다. 그리고, 일본의 호적 제도에서 등록에 사용하는 것은 가족명과 개인명뿐이므로, 호적의 이름은 '徳川+家康'가 된다.
 그런데 조선에는 가족명이 없었기 때문에, 김정일(金正日)이라는 조선인을 호적에 등록하는 경우, 
氏族名:金 + 家族名:없음 + 個人名:正日
이 된다. 이것으로는 무슨 正日인지 알 수 없다. 즉, 일본 본토와 같이 가족 단위로 거주자를 파악하는 형식의 호적을 만들려고 했을 즈음, 가족명이 없는 것이 불편해서 그것을 만들도록 했던 제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씨족명을 폐지했던 것은 아니다. 氏(가족명)를 새롭게 만들었거나(左藤, 鈴木 등), 姓(씨족명)을 일본풍으로 개명했거나(金→金井, 高→高田 등), 姓(씨족명)을 그대로 조선식으로 사용했다고 해도(朴, 崔 등), 어느 경우에서도 호적에는 기존의 姓이 새로운 이름과 함께 그대로 기재되었다. 姓(씨족명)은 단지 나라가 가족 단위로 호적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만 사용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더욱이, 이름이 없던 여성이나 천민이라면 모르되, 원래부터 씨족명과 이름을 가지고 있던 양반 계급이라면 이야기는 더 간단하다. 만일, 어떠한 이유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던 姓인 金이나 李 등의 씨족명이 자동적으로 가족명으로 등록되었던 것이다. 현대의 한국인들 대부분이 스스로 양반 계급의 출신이었다고 자칭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대로라면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므로, 창씨개명에 덤벼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만 봐도, 일본이 조선의 이름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은 명백하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지금까지의 조선식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싶었다면, 굳이 신고의 기한을 반년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즉, 한국인들이 분노에 타오르며 외치는 "일본이 이름을 빼앗았다"라는 것은, 사실, 조선인에게도 일본풍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창씨'에 대해서는 새로운 호적 제도로의 이행을 위해, 가족명을 새로 만드는 것만이 강제였고, 부당하게 빼앗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나머지 '개명'에 대해서는 더 간단하다.

 
 개명은 임의, 즉, 자유로웠다. 만일 가족명만 일본풍으로 변경했다고 하면, 이름에 위화감이 있을 것이므로, 차별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통치자 측에서의 배려이며, 일본풍의 가족명에 맞춰 개명하면, 향후 일본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개명을 허가했던 것이다. 쉽게말해, 캘리포니아 공화국이 미국에 병합되어 아메리카합중국의 캘리포니아주로서 현재도 존속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는 일본의 패전 등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후 그들이 영원히 일본 국민으로서 살 수 있도록 한 배려라는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개명이 강제가 아니었다는 증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려 20% 정도의 조선인이 조선명을 그대로 사용한 채 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제도상의 불이익은 없었다. 심지어, 백홍석(白洪錫) 少将과 같이, 조선명인 채로 일본군의 장군직을 맡은 조선인도 있었고, 김석원(金錫源) 少佐와 같이 조선명인 채로 金鵄勲章(당시의 군인 최고 훈장)을 수상한 조선인도 있었다. 또, 홍사익(洪思翊) 中将 등은 지휘관이 되었을 때, "나는 조선인 홍사익이다. 이제부터 天皇 陛下의 명령에 의해 지휘를 한다. 이의가 있는 자는 신고하라."라고 훈시했다고 한다. 즉, 조선명인 채로도 완전히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통치받는 쪽인 조선의 국민이, 통치하는 쪽인 일본의 군대에 입대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출세하고 지위를 얻는 것어, 역으로 일본병을 지휘하는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구미제국의 식민지 통치'와 '일본의 병합 통치'는 제도와 이념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와같이 창씨개명은 조선인 스스로의 의사로 행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일본의 통치하에 있던 나라였음에도, 조선인과 같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 바로, 대만이다. 조선이 '병합'이었다면 대만은 '식민지'였기 때문에, 조선인에게 주어졌던 권리가 대만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창씨개명에  '권리'가 아닌 '허가'가 필요했던 대만인의 시선을 보자.
 

 「현재의 한국인의 성명은, 이미 조상의 성씨를 버리고, 중국의 성씨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제시대'의 창씨개명은 원칙적으로 자기 신고제였다. 대만에서 일본시대에 행해진 '허가제'에 의한 개명 운동에 비하면, 오히려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특권'이며, 매우 완만한 방식이다. 하물며, '일본'은 만민 평등 등의 원칙에 근거한 새로운 호적 제도를 창설해, 호적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천민 계급에게 성씨를 주었다.
​게다가 '황민화(皇民化)'는 근대 국민운동에 의해서 일본어나 한글 문자를 보급시켰던 것뿐만 아니라, 이조시대 이래, 양반으로부터 업신여겨지고 있던 한글 문자의 교육을 학교에서 채용해, 문장을 체계화시켜, 전통 문화의 연구와 재흥을 추진했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다.
 

 '생명을 빼앗았다'라는 것도, 실은 사실에 반하고 있다. 근대화에 의한 산업 발달에 의해 우생학적인 사회 개혁을 한 것으로, 유사(有史) 이래의 기아와 역병을 극복할 수 있었고, 식물 의존의 생태계까지도 바꿀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쌀의 생산량이 두배이상 증가해, 한국의 인구도 그에 따라 증가(1906年의 980만명이 1938年에는 240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것을 생명을 빼앗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우생학적으로도, 인구적으로도, 한국인의 생명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던 것이다.
 

한국인에 대해서, 자국사에 대한 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일본은 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七奪'이란, 한국인이 일본을 규탄하기 위한, 공격 재료를 기억하기 쉽게 크게 7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그 내용과 사실은 아래와 같다.
- 주권을 빼앗았다. → 한국 황제가 스스로 天皇 陛下에게 헌상했다.
- 국왕을 빼앗았다. → 王公族으로서, 일본의 皇族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 인명을 빼앗았다. → 기아, 병사자가 줄고, 식료 생산이 늘어, 오히려 인구가 증가했다.
- 국어를 빼앗았다. → 일본인의 세금으로 학교가 세워져, 하층민에게까지 한글이 보급되었다.
- 성씨를 빼앗았다. → 원래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고, 천민들에게도 호적을 주었다.
- 토지를 빼앗았다. → 한국 정부가 관리하고 있던 국유지가 당연히 일본 정부의 국유지가 되었다.
- 자원을 빼앗았다. → 애시당초 자원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이 산림을 가꾸고 , 농업과 산업을 길렀다.
후술하겠지만, 대만은 식민지 지배를 통해, 대만의 국력이 증강된 사실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은 대만 이상으로 권리나 혜택이 주어지고, 국토나 인프라의 개발은 일본 본토의 일본인의 세금에서 조달되었던 것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한국인은 일본에게 통치된 것을 원망하며, 모든 행위를 부정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반일교육은 국책
 
한국을 어떻게든 하나로 정리해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는 민족주의를 고무하는 것과 동시에, 반일선동을 주도해 왔다. 반일 사상을 선전하면, 일본과의 대항 의식을 심고, 경쟁심을 부추길 수가 있다. 절대악 '일본'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 한국인은 단결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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