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CBS의 <멘탈리스트></H2>

평론가들을 비롯해 골수 미드팬들의 CBS TV에 대한 불만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CSI> 류의 시리즈들만 내놓고 있다. 몇해 전 까지만 해도 “<CSI> 말고도 CBS에서 볼 만한 것을 만들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근래 <비바 래플린>이나 <스윙타운> 등 차별화한 시리즈가 참패를 당해서인지, 이번 시즌에는 다시 <CSI> 쪽으로 기울고 있다.새로 시작하는 영국 동명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일레븐스 아워>와 <멘탈리스트>도 모두 수사물 시리즈다. <멘탈리스트>의 파일럿 에피소드를 본 미드팬들은 이미 감 잡으셨겠지만, 현재 USA 네트워크에서 방송하고 있는 <사이크>와 종영된 <프로파일러>, 그리고 고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셜록 홈스를 뭉뚱그려 놓았다는 <버라이어티>지의 리뷰가 딱 맞아 떨어진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작가로 나왔던 그는 <멘탈리스트>에서도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멘탈리스트>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요소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주인공 패트릭 제인 역을 맡은 사이먼 베이커다. 그를 처음으로 본 것은 영화 <LA 컨피덴셜>에서였다. 어리버리한 배우 초년병으로, 성공하게 해준다는 말만 믿고 모텔방을 찾았다가 그만 비명횡사하고 마는 안타까운 단역이었다. 러셀 크로나 킴 베신져, 케빈 스페이시, 가이 피어스 등 쟁쟁한 배우들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부드러운 슈크림 같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슬픈 미소 때문이었다. <멘탈리스트>에서도 역시 그는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볕을 받은 바닷물처럼 빛나지만, 뒤끝이 짠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시청률만 따지며 안전한 수사물을 고수하는 CBS의 게으름을 증오하는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미소에 이끌려 매주 이 시리즈를 지켜보게 됐다.

패트릭 제인 (사이먼 베이커)은 과거 TV 점성술사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문제는 그가 진짜 점성술사가 아니라는 것. 피해자의 피로 벽에 자신의 로고를 남겨두는 ‘레드 존’이라는 연쇄살인범의 수사에 관여한 제인은 그의 거만함과 사기꾼 기질을 간파한 살인범에게 오히려 타깃이 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된다. 그 후 5년, 이제 “점성술사란 없다”고 선언하는 제인은 타고난 직관력을 이용해 CBI (California Bureau of Investigation)의 컨설팅을 담당하게 된다. CBI는 하이 프로파일 또는 중대사건을 담당하는 부서로, 팀 리더는 테레사 리스본 (로빈 튜니). 그녀는 제인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사기꾼 같아 보이는 그의 행동과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웃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제인을 보면 늘 미간을 구기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리스본 밑에는 신중하고, 약간은 고지식해 보이는 킴볼 조 (팀 강)와 지난 시즌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연대기>에서 터미네이터로 출연했던 엄청난 몸집의 소유자 웨인 리스비 (오웨인 요먼), 제인과는 상반된 믿음이 강한 신참 수사관 그레이스 반 펠트 (아만다 리게티) 등이 근무한다.

제인과 달리 깐깐한 CBI팀 리더 리스본(왼쪽)과 한인배우 팀 강을 비롯한 팀원들.

사실 CBI 팀이 있긴 하지만 이 시리즈의 제목이 <멘탈리스트>인 만큼 제인의 수사 또는 사고 방식이 에피소드의 주된 내용이다. 상대방을 사려깊게 관찰하면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제인은 가끔씩 CBI 요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 ‘폼’내는 것 처럼 시범을 보여준다. 이 중의 한 토막. 베이커는 신입 여수사원에게 자동차 열쇠를 몰래 숨기게 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사무실 가운데를 돌면서 그녀의 눈치를 살핀다. 그의 손 끝이 창가의 화분 쪽을 가르키자 그녀의 눈빛이 약간 흔들린다. 물론 시청자들은 창가 쪽으로 갈 것을 예상하지만, 제인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 열쇠를 찾아낸다. 이 외에도 처음 본 지역 경찰과 가위 바위 보를 10여차례 하지만, 눈빛만 관찰해 매번 이긴다. 일부 에피소드에서는 수사관들의 연이의 질문으로 방심하고 있는 사건 혐의자에게 “너가 딸을 죽였지?”라고 직설적인 질문을 하거나, “죽은 친구를 동물에 비유한다면 무슨 동물?” 처럼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이들의 반응을 살피거나 심증을 굳히는 결론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제인이 이 질문을 한 배경 설명을 찬찬히 해주기 까지 시청자들은 물론 CBI 요원들 역시 “저거 미친놈 아니야?”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뉴욕타임스>의 비유처럼 <레밍턴 스틸>의 피어스 브로스넌의 엉뚱함도 보이는 제인은 <멘탈리스트>를 포멧이 빤한 수사물 시리즈 사이에서 차별화하기에 충분한 요소다.

킴볼 조 역의 팀 강은 몇 년간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한인 배우 중 하나다. 그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샌드라 오, <배틀스타 갤럭티카>와 <더 클리너>의 그레이스 박, <덱스터>의 C.S. 리 등에 이어 인종에 상관없이 극중에 필요한 주요 캐릭터를 맡아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최근 방영됐던 미니시리즈 <사무라이 걸> 같은 내용이 아니라도 한인배우가 주연을 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한편 이 시리즈는 화요일, <NCIS>와 <FBI 실종수사대> 중간에 샌드위치로 끼어 방영하는 덕분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파일럿 에피소드를 1560만명이 지켜봤고, 두번째 에피소드 역시 1550만명을 기록해 이번 시즌 데뷔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따라서 CBS는 3번째 에피소드를 방영하기도 전에 시즌 전체를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