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년 전이다. 내가 수사물에 맛 들인지 얼마 안 돼서 크리미널 마인드에 찝적거릴 때다.
누가 이미 자막을 올렸는데도 예쁜 자막을 만든 답시고 자막을 만드는 노인이 있었다.
이전 번역 스타일에 질려 새 자막으로 드라마를 보려고 예쁘게 잘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기간을 굉장히 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빨리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자막 하나 가지고 기간을 단축하려오? 느리거든 이미 뜬 자막이나 보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기간을 깎지는 못하고 제작이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번역하는 것 같더니,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수정하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아내와 빨리 가서 이번 화 크마를 봐야 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다음 내용이 궁금해 졌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수정하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볼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수정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니까……."
노인은 "이미 뜬 자막이나 보우. 난 안 만들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가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다음 화 보기엔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수정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하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만들던 것을 저장해 놓고 태연스럽게 다른 드라마를 켜서 보고 있지 않은가?
다른이에게 피드백(披讀絔)을 받는 걸 기다려야 한단다.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수정하기 시작한다. 또, 얼마 후에 자막을 켜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자막이다.
남들 감상할 시간을 놓치고 지금 감상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배포를 해 가지고 배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의 추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자막을 내놨더니, 아내는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야단이다.
전에 나왔던 자막들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면, 자막을 너무 길게 풀어서 번역하면 한 화면을 가득 채우기 십상이며,
주석이 많이 달린 경우 화면을 멈춰서 드라마를 감상해야 하고, 자막을 너무 간단하게 정리해서 번역하면
드라마를 보는 맛이 나지 않고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퀄리티가 좋은 자막은, 폰트나 글씨 색상만 해도 다르다. 어떤 색상에 나의 취향에 맞고 가독성이 좋은지
수만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고정적으로 특별한 색상을 써 다른 자막들과 차별화를 둔다.
인물간의 관계에도 서로 대하는 말투가 다르다. 양놈들은 버릇이 없어 여러 명의 친척을 구분하지를 않는다.
또한 상하관계에서 존대를 하는 것도 분명치 않다. 상황에 따라 다른 말투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글로 번역된 자막에는 번역가가 임의로 설정한 자연스러운 말투가 필요하다.
드라마에 애정을 가지고 두 사람의 관계를 미리 파악하고 배경을 숙지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피드백(披讀絔)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피드백을 받지 않은 자막과 피드백을 받은 자막을 걸리는 기간에 따라 구별했고,
또 이들을 X차 수정이라고 말머리를 달았다. 배포하기전에 미리 수정을 해본 것은 3배 이상 느렸다.
대게 수정(修整)이란, 피드백을 받고 돌려 보기를 아홉 번 한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돌려봤는지
열 번을 피드백 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보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이나 수정할 리도 없고, 또한 말만 믿고 3배나 느린 자막을 봐 줄 사람도 없다. 밧데리가 왕인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자막을 제작 하느냐 마느냐, 수정이나 배포는 어떤 식 으로 하느냐는 제각각이었지만,
자막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공예(工藝)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자막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번역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고 다른 제작자와 비교나 당하며 능멸당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자막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드라마가 방영하는 날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제작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제작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동대문의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 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자막을 번역하다가 유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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