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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관련 내용 3

ef(218.156) 2007.09.09 11: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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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배운 것도 본 바도 없었다. 그런데도
          지족은 경험 많은 뭇사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손을 놀렸다.
            지족은 여자의 몸을 취하고 있었다.
            쓰다듬다 보면 머물러 만져야 할 것이 저절로 솟아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뿌리는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겨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황진이는 지족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받아들였다. 뭇사내가 스쳐간 몸이지만 더없이
          고결하고 순결한 처녀처럼 부끄러움과 자랑으로
          빛나고 있었다.
            황진이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의 몸은
          언제나 본능적으로 남자를 원했다.
            그렇지만 지족은 역시 사십 년을 선만 닦아온
          큰스님다웠다. 그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깊고 그윽한 손길로 작은 기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지족은 황진이를 쓸고 닦았다. 평생 단 한번의
          교접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모두 내던질
          듯이. 지족은 서서히, 그리고 집요하게 희열의 극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빗소리는 끈질기게 문풍지를 두드렸다.
            아침이 밝았다.
            지족은 황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진이의 얼굴은 그대로 완전했다. 그렇게 지족의
          눈에서 살아 움직였다. 세상에서 더없이 평화롭고
          맑고 정결했다.
            황진이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찍 일어났다.
            지족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가 새벽송으로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새벽송을 따라도는 동자승들이
          키들거렸다. 늦은 밤에 웬 여인이 방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족은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지족이 방장으로 돌아왔을 때 황진이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불도 어제 그 자리에 정갈하게 개켜져
          있었다. 황진이가 다녀간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후-. 지족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족은 바랑을 꺼내 짐을 꾸렸다.
            지족이 떠난 뒤 송도에는 지족에 관한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다. 지족이 황진이 앞에 무릎
          꿇었다더라.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도력 깊은 지족
          선사가 무너졌을 리 없다. 아니다. 그때 충격을 받고
          절을 떠났다. 그게 아니다, 파계한 스승을 수좌들이
          내쫓았다. 아니다, 황진이를 찾아나선 것이다.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가 속절없이 스러졌다.

.............................

박지화가 잠시 말이 끊긴 틈을 타 지족에게
          번개같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천불천탑 얘기보다
          지족과 황진이에 얽힌 소문에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지함도 화담도 궁금한 얘기이긴 했다.
          그렇지만 지족의 묵은 상처를 건드릴까 싶어 모르는
          체 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어떻게든 알고 지나야
          발을 뻗고 잠을 자는 박지화가 그만 눈치없이
          물어버린 것이었다.
            지함은 자못 긴장하면서도 호기심을 어쩌지 못하고
          지족을 응시했다.
            "허허. 오늘 아무래도 못된 손님을 치르게 된 것
          같습니다. 기다리시지요. 과실이란 저절로 익어
          떨어지게 마련이고 꽃도 시들면 지게 마련이랍니다."
            지족은 술을 제법 능숙하게 들이키고는 손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
            "무엇을 알고 싶으신 게요? 설마 고명한 화담
          선생의 제자께서 세속 사람들의 호기심으로 묻는 것은
          아닐 테지요."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말에 박지화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재미 섞인 호기심이 없지 않았던
          지함까지도 얼굴이 붉어졌다. 화담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박지화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세속 사람들의 입방아가 아마 대부분 옳을 것이오.
          자, 무엇을 더 알고 싶으시오?"
            박지화는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람의 호기심이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오. 내 말
          한마디에 중죄인처럼 쩔쩔맬 것 없소. 설령 그대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해도.
            호기심이란 무엇이요?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욕망이
          아니겠소? 내 그대에게 자신을 의심할 기회를 잠시 준
          것뿐이오."
            지함은 술 몇 잔에 조금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녁 어스름을 등지고 나타났던 지족의
          그림자만 보고도 손을 모았던 것처럼.
            "그렇소. 내 입으로는 누누히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되뇌어 왔지요.
          그러나 막상 색을 눈앞에 대하고 나니 사십 년 수도가
          그야말로 공(空)이었소. 그 아이가 내게 말합디다.
          당신은 부처가 누군가를 가리켜 도적이라 하면,
          알아보지도 않고 그에게 손가락질부터 하겠느냐고.
          그것이 옳고 그른지 당신 발로 직접 걸어보라고
          합디다. 내가 사십 년 수도를 통해서도 깨닫지 못한
          것을 한낱 기녀인 그 아이는 알고 있었던 게지요.
          내가 육체의 욕망 때문에만 무릎을 꿇었던 것은
          아니오. 그쯤이야 뿌리칠 수도 있었소. 그 아이의
          말이 내 가슴을 찌릅디다.
            부처가 색즉시공이라고 했을 때는 나처럼 색 앞에
          눈을 감으라는 뜻은 아니었을 게요. 색을 색으로 볼
          줄 아는 것도 진리가 아니겠소. 색을 색으로
          이겨보려고 했던 거지요. 그러나 남은 건 외려
          공입디다. 나는 그날 그 아이를 통해서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의미를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오."
            호기심으로 빛나던 박지화의 눈빛이 어느새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도 나직한 지족의 말에
          빨려들고 있었다.
            "내가 떠난 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는 모르겠소.
          그러나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하겠소? 어쩌면 나는
          소문대로 그 아이를 찾아 떠난 것인지도 모르오. 그
          아이의 육체가 아니라, 그 아이가 눈 뜨게 해준
          진리를 찾아서 말이오."
            지족은 마지막 남은 술 한방울까지 쥐어짜듯
          남김없이 잔에 따랐다. 그리고 마치 부처가 내린
          감로수라도 마시듯 정성스레 들이켰다.
            "때로 나는 그 아이야말로 미륵의 현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헛된 미망에 사로잡혀 도 아닌 도를 ㅉ아 평생을
          허비할 뻔했소. 그 아이가 내게 온 것은 아마
          부처님의 높으신 뜻이었을 거외다."
            지함은 문득 화담을 찾아왔다 홀로 화담 계곡의
          적막을 밟아가던 황진이를 머리에 떠올렸다. 그
          쓸쓸한 웃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지족은 색인 줄 알면서 그녀를 받아들였다. 화담은
          그날 황진이를 기로 다스렸다. 황진이의 색을
          받아들인 지족은 환골탈태(換骨脫胎)하는 변신을
          했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쌓는 석공이 된 것이다. 그리고 화담, 그는 황진이가
          다녀갔어도 언제나 그렇듯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함은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색이 곧 이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 아닌가.
          사람이란 색에 끌리고 집착하면서 평생을 보낸다. 그
          색이 곧 공임을 깨닫는 것, 그것은 공허한 말이
          아니다. 색을 극복하는 그 자리에 공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색을 알지 못하고 어찌 공을 알 수 있겠는가.
          색 없는 공은 그야말로 헛된 공일 뿐이다.
            "황진이도 선사께서 떠나시고 얼마 후 송도를
          떠났습니다."
            황진이의 이름이 나와도 지족은 별로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황진이가 화담에게 들렀었다는 얘기를 더 꺼낼까
          했으나 지함은 입을 다물었다. 지족과 화담의 차이를
          아직 확연히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내게 머물며 나를 깨우쳤소. 정작 도를
          깨쳤다는 나는 그 아이에게 준 것이 없소이다. 그
          아이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어쩌는 수 없이 색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었소. 그 아이만큼 절실하게 진리를
          찾는 이도 없을 것이오. 그 아이의 뜨거운 몸짓은
          색이 강해서가 아니었소.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찾아보려는 몸부림이올시다. 혹 모르지요. 그 아이도
          나를 통해 색의 무상함을 느꼈는지… 그렇기를 바라고
          있소만…"
            지족의 표정이 점점 법당의 미륵불을 닮아갔다.
            지함은 둔중한 쇳덩이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했다. 그 충격이 지함의 온몸 구석구석을
          짜릿하게 훑어내렸다.
            그렇다. 고통 없이 어찌 공을 알겠는가. 무릇
          세상사란 고뇌의 덩어리다. 도를 얻으려면 천길 나락
          같은 고뇌 속을 헤매지 않으면 안 된다. 고통 없이
          얻은 도는 단지 도의 그림자, 허상일 뿐… 고뇌하는
          미륵불, 고뇌하는 지족의 모습은 바로 모든 사람의
          모습이다. 그만큼 진실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송도에서는 사람다운 사람이 다
          빠져나갔군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화담은 시선을 먼 곳으로
          향한 채 아득하게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 아이가 나를 찾아왔습디다. 선사가 떠나신 뒤
          얼마 후였을 겝니다."
            화담 역시 황진이를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참으로 절색이더군요. 나야 불가와 달리 교접을
          계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를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저도 그 아이가 단지 색을 밝히는
          계집이 아니라 무언가를 절실하게 갈구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를 나누었지요. 그 아이가
          넘쳐나는 기로 허덕이는 것을 제가 다른 기로
          꺼주었습니다."
            "기로 끄시다니요?"
            "불을 다스리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물을 끼얹어 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맞불을
          일으켜 그 불을 쇠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늙어
          물을 길어낼 기운이 없어서 맞불을 일으켜 그 아이의
          불을 끈 것이지요."
            "허어. 화담 선생께서는 그렇게 해서 그 아이의
          색을 다스리셨군요. 내 색은 그 아이가 깨뜨렸건만
          정작 그 아이의 색은 화담 선생님이 깨주셨군요…
          아프오이다. 가슴이 아프오이다."
            "선사께서도 그것을 깨지 못한 것은 아니오. 오히려
          정으로 그 아이를 도닥거려 주신 거지요."
            촛불이 일렁거리며 검은 그을음을 남겼다. 문이
          닫혔건만 어디선가 바람이 새들어오고 있었다.
            술이 떨어진 지 벌써 오래 되었다. 밤은 깊어만
          갔다. 그러나 누구도 침묵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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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송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황진이가
          홀연히 산방에 찾아왔다.
            "저어, 박지화 선비님을 찾아왔습니다."
            박지화가 놀란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천하의 황진이가 그를 찾아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황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지함 선비께서 지금 임꺽정이라는 산적에게 잡혀
          있습니다. 산적들은 저를 먼저 풀어주는 대신에 이
          선비를 잡아놓았습니다. 곧 계책을 써서
          뒤따라오시겠다고 했지만 걱정이 되어서 왔습니다."
            황진이는 초췌한 행색이었다. 옷은 해지고, 얼굴은
          창백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오히려 그의
          아름다움을 더 해주는 것 같았다. 전에 보았을 때는
          양반가 후원에 피어 있는 화사한 모란 같더니, 지금은
          들에 피어 있는 한 떨기 들꽃마냥 청초해 보였다.
            "이지함을 만났소?"
            "예. 한동안 같이 다녔습니다."
            "그래요?"
            "그러다가 구월산에서 저 먼저 내려오는 길입니다.
          이 선비는 여드레까지 산방에 오지 않으면 박지화
          선비께 말을 전해도 된다고 했는데, 제가 마음이 급해
          미리 왔습니다."
            "내 당장 놈들을 요절내야지."
            박지화가 흥분하여 분기를 돋구자 황진이가 손을
          저어 말렸다.
            "고정하십시오. 이 선비께서 여드레가 되기
          전까지는 걱정 말라고 하셨습니다."
            "걱정을 말라니요, 어떤 고초를 겪고 있을지
          모르는데... 당장 가서 구해야 합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시옵소서. 소녀,
          물러가옵니다."
            이야기를 마친 황진이는 다시 산방을 떠나갔다.
            박지화는 지함이 걱정되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쩌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박지화가 좌불안석이 되어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어느새 여드레가 되었다.
            화담 계곡에는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이미 춘분이 열흘여 지난 뒤라 봄빛이
          푸룻푸릇해졌다. 하늘에는 종달새가 높이 날고 나비가
          나풀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가자 박지화는 오기는 다 틀렸다며
          더욱 불안해 했다.
            "난 선생님 묘에나 다녀오겠소."
            지함이 돌아오지 않으면 날이 밝는 대로 당장
          구월산으로 달려갈 기세로 박지화가 말했다.
            드디어 화담이 말한 유시(酉時)가 되었다.
            "저길 보게. 선생님 말씀이 틀림없잖은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사람은 틀림없는
          지함이었다. 처음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려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정휴는 곧 그가 바로 지함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형님!"
            정휴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지함을 맞았다.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지함이 환히 웃으며 정휴의 손을 잡았다.
            "작년, 형님이 길을 떠나신 직후에 금강산을 떠나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예 있었단 말인가?"
            "화담 선생님을 뵙고는 다시 공주 용화사로
          갔습니다."
            지함은 화담이 보이지 않는 것에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전우치와 남궁두를 가리키면서
          누군지를 물을 뿐이었다.
            "예, 계룡산에서 수도하던 도인들인데 산방 소식을
          듣고는 저를 따라왔습니다."
            "화담 선생님은 이미 선화하셨는데, 늦으셨구려."
            "아닙니다. 이지함 선생님의 고명을 듣고
          왔습니다."
            "내게도 고명이라고 할 만한 이름이 있소?"
            "형님, 전우치는 병법에 남달리 관심이 많은데
          지리, 천문을 더 배우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남궁두,
          이 사람은 역학을 오래도록 연구하여 제법 앞길을 볼
          줄 안답니다."
            "볼 줄만 알아서는 술(術)에 머물게 되오. 그런
          술을 잘못 쓰면 안 배우니만 못하다오."
            "그래서 감히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
            두 사람이 지함에게 큰절을 하면서 제자로서 예를
          올렸다.
            "병법에 관심이 있는 것은 그럴 듯합니다만..."
            지함이 전우치를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함은 지리산 산천재에서 만난 다른 두 사람을
          생각했다. 정개청, 서치무. 그리고 정휴를 따라
          나타난 두 사람, 전우치와 남궁두. 이들 모두가
          화담이 불러모으는 인연임에 틀림없었다.
            지함은 두 사람을 산방에 입실토록 했다.
            그때 박지화가 화담의 묘소에서 돌아왔다.
            "지함, 용케 돌아왔군. 반갑네, 반가워. 그래, 몸은
          무사한 거고?"
            "잘 다녀왔습니다. 형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많이 좋아졌네. 그건 그렇고, 그래 어떤
          도적떼에게 잡혀 있었나?"
            박지화는 지함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며칠째 굳어
          있던 얼굴을 폈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도적의 무리라고
          해야 헐벗고 굶주린 유랑민들이 대부분이어서
          포악하기는 하나 기운이 약하지 않습니까?"
            "자초지종을 말하게. 답답하이."
            "구월산 근처 안악을 지날 때 마침 날이 어두워
          어느 양반가에 잠시 몸을 의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날 밤에 도적들이 몰려와 그 집 재산을
          다 털어갔습니다. 이 도적들이 객방을 들여다보더니
          황진이를 보고는 얼굴이 반반하다고 생각했는지
          산채로 끌고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이튿날 제가 산채로 달려갔습니다."
            "제발로 도둑의 소굴로 들어갔다고?"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개마산에서부터 쭉
          함께 다닌 여잔데 목적지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어야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박지화, 정휴, 남궁두, 전우치는 귀를 바짝 세우고
          지함의 무용담을 들었다.

            지함은 도적들이 숨어 있다는 구월산으로 단신
          잠입했다. 그러나 산채에 다 들어가기도 전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도적들에게 붙잡혔다. 도적들은 사냥에서
          노획한 산짐승 다루듯 지함을 산채 마당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지함을 새끼줄로 꽁꽁
          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도적 한떼가 산채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지함이 쓰러져 있는 쪽으로 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인두(人頭) 세 개가 툭 떨어졌다.
            "하하하하."
            벽력 같은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말등에 올라탄 채 손에 묻은 피를
          바지춤에 썩썩 문지르며 껄껄 웃고 있었다. 그는
          몸집도 거한인데다 눈알이 부리부리하여 과연 도적의
          수장다운 면모가 있었다.
            "네놈들은 무얼 털어왔느냐?"
            "예, 안악의 양반집을 털어 쌀 닷섬하고 금 한 관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두목이 좋아하는 물건도
          가져왔습니다."
            "그게 뭐냐?"
            그러자 졸개들이 나무를 엮어 짠 창고로 들어가더니
          한 여인을 끌고나왔다. 황진이였다.
            황진이와 지함의 눈이 마주쳤다. 황진이는 지함이
          그곳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곧이어 황진이는 얼른 시선을 거두어갔다. 아는 체를
          하면 지함에게 해라도 끼치게 될까봐서였다.
            "핫핫핫. 물건 하나 제대로 골라왔구나. 어디
          보자."
            두목이 말에서 내리더니 황진이의 저고리 고름을 꽉
          움켜쥐고 단숨에 잡아뜯었다. 그러자 하얀 젖무덤이
          봉긋 튀어나왔다.
            "그 여자한테 손대지 마랏!"
            지함이 소리를 질렀다.
            "뭐얏! 이 녀석이 어느 안전에서 발악이야. 죽고
          싶어?"
            졸개 하나가 지함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욱!"
            "더러운 양반 새끼! 백성들에게 들러붙어 피땀이나
          빨아 쳐먹고 사는 거머리!"
            졸개 몇이 더 달려들어 지함을 마구 짓이겼다.
            "왜 이리 소란한가?"
            그때 산채 쪽에서 노인 하나가 걸어나오면서
          물었다. 몸집이 작고 깡마른 사람이었다.
            그러자 두목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사부님, 돌아왔습니다."
            "수고했네. 그런데 이자들은 왜 여기까지
          끌고왔는가?"
            "저년을 잡아왔다는데 이놈이 제발로
          기어왔습니다."
            "당장 죽이지 않고?"
            "조금 더 있다가 두 연놈을 한꺼번에 죽여
          없애겠습니다."
            두목이 졸개를 불렀다.
            "얘들아, 이놈은 나무기둥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저년은 찬물에 헹궈서 방에 던져넣어라."
            "예."
            졸개들이 두 패로 나뉘어 지함과 황진이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곧 지함은 나무기둥에 거꾸로 매달리고,
          황진이는 계곡 쪽으로 끌려갔다. 졸개들이 황진이를
          끌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사라지자 사부란 자가
          두목에게 말했다.
            "화담 소식은 알아봤는가?"
            "예. 벌써 작년 봄에 죽었답니다."
            "죽었다고?"
            "예. 틀림없습니다. 송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데요."
            "할 수 없군."
            화담이라는 소리에 지함의 귀가 번쩍 열렸다.
            "화담 선생을 말하는 자, 나 좀 보시오."
            돌아서서 산채쪽으로 걸어가던 사부란 자가 우뚝
          멈추어 섰다.
            "화담 서경덕이라면 내 스승인데, 그대는
          누구시오?"
            "화담의 제자라고?"
            "그렇소. 작년에 화담 선생님을 모시고 팔도를
          주유했소."
            "뭐라고?"
            "지난해에 화담 선생과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까지 함께 다니다가 선생님은 경주에서 송도로
          돌아가시고, 난 계속 주유를 했소."
            "핫핫핫. 저놈이 모가지가 아까워 말을
          꾸며대는구나. 이보게, 임꺽정. 화담은 틀림없이 작년
          봄에 죽었겠다?"
            "옛. 화담 선생은 작년 사월에 죽었답니다."
            "그런데 팔도를 주유했다고? 이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렷다! 지체말고 저놈의 목을 치게."
            "바쁠 것 없습니다."
            그때 계곡으로 끌려갔던 황진이가 졸개들의 어깨에
          들려 올라왔다. 물에 흠뻑 젖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년을 방에다 집어던져 이불로 덮어놓거라."
            졸개들이 황진이를 들고 산채로 들어가자 사부란
          자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가더니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년도 목을 잘라야 하네."
            "아무렴요."
            임꺽정이라는 두목은 허리춤을 풀면서 산채로
          뛰어들어갔다.
            한낮이 되어서야 두목이 방에서 나왔다. 사부란
          자는 그때까지 마당에서 조바심을 내며 서성거리고
          있다가 두목을 채근했다.
            "자, 빨리 연놈들을 처형하고 풍천, 율은 쪽으로
          가세."
            "사부님. 급하실 것 없습니다. 이놈은 며칠 더
          여기다 잡아놓았다가 쓸 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년은 본시 기생이라니 살려보내야겠습니다."
            "살려둔다고?"
            "예. 기생까지는 죽이지 않겠습니다. 양반놈들
          모가지만 자르기로 맹세했잖습니까?"
            "끄응."
            사부란 자가 불편한 심기를 참지 못하고 신음을
          냈다.
            곧 황진이가 방에서 나왔다. 그러자 황진이를 본
          두목이 졸개를 시켜 지함의 결박을 풀라고 했다.
            "이 선비님. 저를 구하시겠다고 여기까지
          오셨더랬나요?"
            "그렇소."
            "제가 선비님을 두목에게 잘 말해 놓았으니 일단
          염려 놓으십시오. 저는 양반이 아니라고
          풀어준답니다."
            "알았소. 내가 여드레까지는 송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거든 박지화 형님께 전갈을
          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두목은 졸개 하나를 붙여주며 황진이를 산아래
          마을까지 내려다 주고 오라고 명령했다.
            황진이가 산채를 내려가자 두목이 지함을 불렀다.
            산채로 들어가 마주 앉은 두목은 지함에게 정중하게
          용서를 구했다.
            "몰라 뵈서 미안하오. 그러나 화담 선생은 분명
          작년 봄에 돌아가셨다니 그 이야기는 하지 마소. 그
          여자 방중 솜씨에 반해 내가 그대를 살려주기는
          했소만 우리 사부에게 밉보이면 큰일나오. 알겠소?"
            "사부란 사람이 누구요?"
            "정해량(鄭海良)이라는 도사요. 김종직의
          문인이었는데 무오사화 때 유배갔다가 도망쳐 그뒤로
          쭉 도가 수련을 하신 분이오. 화담 선생하고는 잘
          아는 사이라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도적의 소굴에 있느냐 이거지요? 핫핫핫.
          그건 내 사부에게 물어보시오. 나같이 무식한
          산도적이 무얼 알겠소?"
            두목이 껄껄 웃더니 밖으로 나갔다. 곧 사부란 자가
          들어왔다.
            "자네, 바른 대로 대게. 누군가?"
            "난 화담 산방의 학인이오. 알아보고 나서 사실이
          아니면 죽여도 좋소."
            "흐음."
            "그런데 노사께서는 왜 그렇게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시오?"
            "..."
            "무오사화 때 당한 것을 양반들한테 분풀이하시는
          겁니까? 힘이 없으니까 무지몽매한 도적떼를 꼬드겨서
          양민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것이오?"
            "함부로 말하지 말게. 자네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걸 모르나?"
            정해량은 위압적으로 칼을 뽑았다.
            "그만두시오. 노사께서 무얼 바라는지 알고 있소.
          도적떼를 길러서 장차 역성 혁명을 꾀하려는 것일
          터!"
            "뭣이?"
            정해량이 칼끝을 지함의 목에 대었다.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게 된다면 역성 혁명인들
          마다하겠는가? 이 나라가 지금 백성이 살 수 있는
          나라던가? 조선 천지가 굶어 죽는 백성 투성인데
          양반이란 자들은 얼굴에 개기름이 줄줄 흐르고, 배가
          튀어나와서 잘 걷지도 못하는 형편 아닌가."
            "그러면 양반만 죽이면 나라가 잘 된다는 말이오?
          노사의 꿈은 무엇이오? 역성 혁명이 아니라면 한낱
          산도적일 터!"
            "그만하게. 내 나이 이제 오십이 넘었으니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 이제서 무엇을 도모하겠나?"
            "분풀이라면 잘못 하고 있는 것이오. 하려거든
          정말로 백성 편이 되어 하시오. 도적이 아니라 군대로
          기르시오."
            "무엇이? 자네가 내게 역성 혁명을 가르치려는가?"
            "저 두목의 사주를 대주시오."
            지함이 워낙 단호하게 말하자 정해량은 두목인
          임꺽정의 사주를 대었다.
            "군사를 일으킬 만한 재목이오. 장차 기미년에
          군사를 일으키면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경기도
          일대를 모두 장악하게 될 것이오."
            "그것 참 반가운 말씀이오."
            "그의 운수는 그렇게 시작해서 삼 년은 갈 터이니
          그것을 잘 쓰시오."
            "너무 짧소이다. 하기야 삼 년씩이나 끌 일이 아닐
          터..."
            "노사께서 사사로운 원한만 청산한다면 정말로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오이다. 이대로 두면 앞으로도
          저자는 사람만 죽이고 재물이나 빼앗는 도적의 무리로
          남을 것이나, 노사께서 가르침을 주신다면 의적이
          되거나 백성들이 기다리던 군주가 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자 정해량은 칼을 거두어 칼집에 도로 넣고는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장차 기미년이 되어 노사의 뜻이 바로 선다면 내가
          임꺽정을 도울 군사(軍師)를 한 명 보내든가 내가
          오든가 하겠소."
            "고맙소."
            그렇게 해서 지함은 임꺽정의 소굴을 벗어나 무사히
          송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박지화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황진이가 자네 목숨을 건졌군."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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