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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리뷰 : 기다리는 일

이응(119.204) 2020.02.06 16:16:13
조회 522 추천 0 댓글 4






3
기다리는 일




모연은 그렇게 시진을 보내고 나름대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교수 면접을 준비했어. 몇 년 동안 고배를 마신 면접인 만큼 많이 떨긴 했지만 무사히 잘 치러냈지. 면접을 보고 나온 뒤 아빠 빽 믿고 병원놀이 하는 무능한 동기가 내뱉은 말에 기분이 영 께름칙했지만 외과장이 설마 저 답도 없는 애를 나 대신에 뽑진 않을 거라고 애써 믿었어. 그 답도 없는 동기가 그녀가 어시스트를 서는 외과장의 수술에 대신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과장님이 손 바꾸셨어. 박교수님 대신 내가 집도의야. 넌 내 어시고.”


외과장은 모연이 써준 논문을 들고 학회에 가면서 정작 메스는 그녀가 아닌 김은지에게 넘겼어. 모연은 집도는커녕 어시도 제대로 못 서는, 허구한 날 의료소송에 걸리는 못난 동기의 어시가 된 거야.


자존심이 상하는 건 둘째 치고 뭔가 아주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수술은 진행되어야 하기에 모연은 어시스트로서의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기로 했어. 하지만 김은지는 평소 모연에게 담아두었던 악의를 수술방까지 끌고 들어와 연신 그녀를 비아냥댔어. 수술방에서의 감정적 잡담은 환자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입은 서슴없이 주절주절 떠들어댔지.


“너 지금 뭐해? 뭘 건드린 거야!”


그러다 모연의 되받아치는 말에 냉정을 잃은 김은지가 사고를 쳤어. 수술 환부의 덧난 곳만 보아주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었는데 대동맥을 건드린 거야. 순식간에 수술실 안은 요란스런 경고음으로 가득 찼어.


이후로도 김은지는 항상 자기 머리 위에서 놀던 모연을 어시로 놓고 자신이 집도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감을 버리지 못했어. 자기가 수습에 나섰다가 더 큰 사고를 치고서야 그녀는 물러났지. 그리고 메스를 넘겨받은 모연이 수술을 끝낼 때까지 벌벌 떨고만 있었어.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병풍처럼 서 있는 은지를 지나쳐 나오며 모연은 다 들리도록 소리쳐 말했어.


“손이 둔하면 연습을 하든가. 머리가 둔하면 주제파악을 하든가! 왜 되도 않는 욕심을 부리고 지랄이야!”


모연은 저 입만 나불댈 줄 아는 김은지가 집도하는 수술에 자신이 어시를 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기보다, 실수를 수습할 깜냥도 안되는 게 제 자존심 지켜보겠다고 부득불 고집을 부리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 미친 짓에 더 화가 났어. 냉정을 지켜야할 수술실 안에 제 열등감을 끌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 내가 집도의라며 메스를 쥐고 놓지 않던 저 정신 나간 인간이 모연은 경멸스러웠어.


모연은 그렇게 하루하루 평소와 같은,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병원 생활을 보내고 있었어. 미혼모 후배가 정말 미혼모로 남을까봐 걱정하고, 되도 않는 욕심을 부려서는 환자 한 명의 생명을 앗아갈 뻔한 멍청한 동기의 실수를 수습하며 매일의 다사다난한 사건사고를 겪어냈지.


하지만 그렇게 바쁘고 힘든 나날을 받아넘기면서도 모연의 마음 속 한구석은 언제나 한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마치 마음 속 가장 깊은 방에 촛불 하나가 항상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고단하고 피곤한 하루 속에서도 부드럽게 밝혀진 그 촛불 하나를 의지하고 있었지.


그녀를 바람맞히고 옥상에서 홀연히 날아가 버린 그 남자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연은 내내 그게 궁금했어.


모연도 여느 여자들과 다름없이 요즘 만나기 시작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많이도 했어. 시진과의 남다른 첫 만남부터 그가 비나 눈 대신 총을 맞고 다닌다는 것도, 헬기가 막 데리러 오기도 하더라는 것까지 숨김없이 이야기했지. 절친한 친구에게 못할 이야기란 그녀의 인생 중에 없었으니까.


“근데 그 남잔? 연락 없고?”
“없어. 전화 자주하는 스타일 아닌가봐.”
“정체가 뭘까. 군인, 총상, 헬기……. 간첩인가?”
“그런가?”


이제 내일이면 약속한 주말인데 그렇게 떠난 남자는 아직까지도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이 없었어. 말마따나 정말 간첩이기라도 해서 헬기 탄 그대로 북으로 돌아가 버리기라도 한 건지 아무 연락이 없었지.


모연은 지수의 컴퓨터로 접속해 간첩남 시진의 엑스레이 사진을 불러왔어. 어느 곳 하나,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띄워놓고선 그걸 마냥 넋 놓고 보았어.


“너 뭐봐?”
“그 남자 사진. 그 남자 사진이 이거 밖에 없네.”
“어이구. 저 또라이, 저거.”


모연도 남이 보면 자기가 어디 많이 모자란 인간처럼 보일 거란 걸 알지만 그래도 어떡해. 보고 싶은데 볼 방법이 없잖아. 제대로 데이트 한 번 아직 못해본 남자인데도 모연은 믿기지 않을 만큼 시진에게 끌려. 시진의 엑스레이 사진을 갖다가 그래도 이것도 그의 사진이라며 보고 싶을 만큼.


모연에게 전화도 문자도 없는 남자인데도 그녀는 그게 서운하기보다 조금은 불안하고 많이 궁금하고 더 많이 보고 싶고 그보다 더 많이 만나고 싶어. 모연은 빨리 그와 약속한 내일이 되어서 시진이 병원 앞에 그녀를 만나러 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어.


* * *


“Mission complete. Hostages are safe.”


그 남자, 시진은 남들 보기에 무척이나 이상한 자신이 한 여자를 참 많이도 고민하게 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을 손꼽아 기다리며 일을 하느라 아주 바빴어. ‘누군가를 죽이거나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을 말이야.


새로 부임했는지 처음 대면한 델타포스팀 팀장과 작전회의도 했다가 우격다짐도 하다가 함께 꽤 성공적인 작전 수행까지 끝마쳤어. 모연이 수술실에서 생명을 구하던 시각, 시진도 무고한 사람의 죽음을 막아냈지.


두 사람은 그렇게 각자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어.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다른 나라의 땅 위에서 같지만 다르게 생명을 구하고 평화를 지켜낸 거야.


{아프간 UN 인질 2명 무사히 구출}


시진이 목숨을 바쳐 해결한 사건이 흘러나오는 뉴스를 뒤로 하고 모연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털레털레 병원을 나왔어. 아직까지 뉴스는 모연에게 있어서 자신과는 딴 세상 이야기야. 지금의 모연에게 TV뉴스는 그녀의 삶과는 어떤 것은 나름 가깝고, 또 많은 것이 멀고 먼 바보상자 속 신문 같은 거지.


반면에 시진은 모연이 관심 없어 하는 뉴스 속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사람이야. 모연을 두고 떠나선 시끄러운 세상 속에 또 하나의 뉴스를 던져놓고는 시진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녀 앞에 불현듯 나타났어. 도대체 언제부터 기다렸던 건지. 그녀가 언제나 나올 줄 알고 무작정 그러고 있었던 건지 병원 앞에 차를 세워놓고 시진은 빙글빙글 웃으며 모연을 바라보고 있었어.


“잘 지냈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총질을 하고 수류탄을 던지던 군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시진은 그저 해맑게 웃고 있어. 시진은 그가 지키는 조국 하늘 아래에서 하얗고 말랑말랑한 배를 내놓고 체조를 하는 모연을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


당신이 이렇게 평화로우라고, 이렇게 마음 편하게 귀여운 체조하라고 내가 조국을 지키나보다.


모연을 보며 시진은 그런 생각을 했어. 그가 총칼을 들고 싸우는 대가로 모연의 안전과 평화가 지켜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아주 썩 괜찮은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시진은 작전 내내 많이도 보고 싶었던 모연에게 잘 지냈냐고 다정하게 물어. 그렇게 모연을 두고 떠나면서 미안하고 아쉬웠던 마음을 담아서…….


하지만 모연에게는 잘 지내고 자시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지. 제대로 밤잠도 못 자고 일만 하는 바람에 ‘화장은 사치요, 씻는 건 물낭비로다.’하는 몰골을 이제 막 만나기 시작한 남자한테 온몸으로 보여주게 생겼잖아. 모연은 어디 숨을 데라도 있으면 숨고 싶어. 부스스한데 떡진 기묘한 머리에 완전 민낯을 숨김없이 보여주기엔 눈앞의 남자는 이 상황이 화딱지 나도록 너무 잘생겼으니까!


눈만 빼꼼 내놓고는 최선을 다한 방어 자세를 취한 그녀에게 시진은 너무도 성큼성큼 다가 왔어. 모연은 가려진 그녀의 얼굴을 보겠다고 기웃대는 남자를 원망했어..


“왜 벌써 왔어요? 약속 시간까지 두 시간은 남았는데? 내가 잘못 안 거 아니죠?”


모연은 눈앞의 이 남자가 제발 좀 저기 저 먼데다가 눈을 돌려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마지 않는데, 시진은 요리조리 그녀의 팔 사이를 들여다보며 포기를 모르고 고개를 들이댔어.


“제가 많이 일찍 왔어요.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괜찮더라구요.”
“그렇다고 두 시간 전에 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정말 너무 괜찮더라구요.


나를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내가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두 전부 다.


내 생각보다 정말 너무 괜찮았어요.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여자는 언제쯤 나올까, 언제쯤이면 나와서 얼굴을 보여주려나, 기다림조차도 그를 행복하게 했어.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려 기웃대는 걸 멈출 수가 없는 거야. 보면 닳기라도 하나 그 예쁜 얼굴 아껴서 뭐한다고. 보고 싶은데 왜 안 보여 주는지 남자는 여자의 복잡한 사정을 알아채지 못해.


“근데 왜 자꾸 눈 피해요?”
“자신감이 떨어져서 그래요. 나 지금 쌩얼이란 말예요. 집에 가서 머리 감고 옷 갈아입고 나올라 그랬죠.”


그녀가 말하는 내내 시진은 계속해서 이리저리 기웃거렸어.


“이미 아름다우신데.”
“그래요? 왜지? 내면이 아름다워 그런가?”


참 놀라운 일이지. 쌩얼이든 아니든, 머리를 감든 안 감든 모연은 그에게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야. 그의 진심어린 찬사를 그저 농담으로만 들었는지 얼굴을 붉히기보다 장난을 거는 모연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시진의 입가엔 미소가 끊이질 않아.


모연은 여러모로 정말 놀라운 사람이었어.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남자를 무려 첫 데이트에 자기 집에 데려온 거야. 잠깐 집 앞 카페나 차 안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해도 큰 무례는 아니었을 텐데 모연은 시진을 집 안에 들였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고 대학시절에도 친한 남자 동기들이 그렇게 술 처마시고 골골대도 그들을 길바닥에 내버리는 한이 있어도 절대 집에는 들인 적이 없었는데, 고작 세 번 만난 남자를 모연은 그녀의 집에 데려온 거야.


그가 절대 허튼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이제는 모연이 믿고 있기 때문이었어. 처음 만난 날 시진을 조폭에 양아치에 두목에 온갖 나쁜 놈 취급을 했던 여자는 어딜 가고, 그사이에 모연은 부쩍 시진에 대한 신뢰를 굳힌 후였어. 그녀는 한술 더 떠서 나 준비할 동안 좀 기다리라며 용감하게도 남자를 집 안에 두고 씻으러 들어가겠다고 해.


“근데 저 오늘 한 끼도 못 먹어서 배가 너무 고픈데……. 밥 시켜서 같이 먹으면 안 될까요?”
“더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는데……. 배달음식으로 괜찮아요?”
“같이 먹을 사람이 근사해서 괜찮아요.”


밥이 뭐면 어떻고 장소가 어디면 어때. 두 사람에겐 서로가 송로버섯이고 7성급 호텔 레스토랑인데. 어딜 가서 뭘 먹든 서로 외에 눈에나 들어오겠냔 말이지.


“뭐 좋아해요?”
“돌비 돌비!”
“되게 특이하네. 되게 예쁘고.”


허영도 내숭도 없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모연은 시진에게 있어서 이제껏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앞으로도 더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되게 특이하고 되게 예쁜’ 여자야. 그래서 더욱 놓칠 수 없는 사람이지.


씻고 나온 모연과 얌전히 기다려준 시진은 모연이 좋아하는 돌비를 앞에 놓고 첫 식사를 했어. 비싸고 좋은 음식도 화려하고 고급스런 식당도 아니지만, 두 사람에겐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가 않지. 말리느라 풀어놓은 머리에 편한 옷을 입고 있는 모연은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보송보송 앳된 얼굴이야.


그녀는 시진의 눈을 피해 자신 앞에 놓인 그릇만 죽어라 쳐다보고 있어. 요 바로 전에 단수라든가 생수라든가 뭐 그런, 모연으로 하여금 접시물에 코 박고 콱 죽고 싶게 하는 사건이 있었거든. 그런 그녀를 보는 시진의 눈도 웃고 입도 웃지. 아까까지만 해도 또랑또랑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그를 마주보던 모연이 이제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지만, 그것조차도 시진에게는 그저 귀여울 뿐이야.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냥 모르는 척 해줄 걸 괜히 아는 척 했다 싶기도 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눈앞의 모연이 좋아서, 귀여워서 자꾸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시진은 주야장천 모연에게서 눈을 뗄 줄 몰랐어. 그러다 문득 아주 중요한 것 하나가 시진은 궁금해졌어.


나는 이렇게나 당신이 보고 싶었는데 당신도 그랬을까? 당신을 만날 오늘을 나는 몹시도 기다렸는데 당신도 내가 만나러 오길 조금이라도 기다렸을까?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궁금해 하지 마요.”
“……내가 뭘 물어볼 줄 알고?”


모연은 시진의 입 밖으로 나올 짓궂은 말들이 뻔히 보이는 것 같아. 들으나마나 아까 그 생수사건에 대한 말이겠지 싶어서 냅다 말을 가로챘어. 시진의 마음은 이미 저만큼 앞서 가고 있는데 모연은 아직 민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던 거야.


‘잊어줄 수 없을까. 육사 졸업했다는 저 좋은 머리로 생수를 잊어주긴 힘들겠지’하는 생각에 모연은 좌절스러워.


“지금 나 놀리고 싶어서 죽겠는 얼굴이잖아요 딱.”
“어디가요? 이건 그냥 잘생긴 얼굴이죠.”


시진은 잊은 척 넘어가줄 생각이었는데 모연이 자꾸만 그를 부추겨. 어린 남자애들이 여자애들 치마를 들추고 밀어 넘어뜨려서 울리던 장난기를 모연은 서른 넘은 남자한테 자꾸 돋우는 거야. 장난치고 싶고 놀리고 싶고, 모연은 자꾸만 시진을 첫사랑에 빠진 까까머리 소년처럼 만들어.


“치, 물어볼 거 뭔데요.”


말하며 협탁 위 성냥을 집는 모연에게 시진은 갑작스레 물었어. 장난기 묻었던 말투는 잠시 그만두고 덤덤한 척 그렇게.


“내 생각 했어요?”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당신은 내 생각을 했어요? 나를 기다렸나요? 당신도 나를 보고 싶어 했습니까?


시진은 그런 마음으로 모연의 진심을 물었어.


그의 물음에 놀란 것도 잠시, 모연은 솔직해서 시진을 더 행복하게 하는 답을 해주었어.


“했죠 그럼.”


했다고. 그렇게 가버린 당신이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고. 모연은 시진의 물음에 그렇게 답했어.


“유시진씨는요?”
“난 많이 했죠. 남자답게.”


많이 하는 게 왜 남자다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많이 했다기에 모연은 믿어보기로 했어. 안 믿으면 손해잖아. 모연은 성냥불로 켠 양초를 자신의 뒤쪽에 놓으며 말했어.


“명색이 첫 데이튼데 분위기 좀 내려구요. 여기다 놓을게요.”
“아니, 가운데다 안 놓구요?”
“여잔 자고로 역광이죠! 여기에 놔야 제가 예뻐 보여요. 움직이지 마요. 유시진씨 시선 각도 다 계산해서 놓은 거니까?”


어디서 본 건 있는지 가운데다 놓자는 시진에게서 온몸을 다해 양초를 사수하며 모연은 천연덕스럽게 말했어.


당신한테 예뻐 보이려는 거니까 방해 말라고. 이 자리에서 당신 눈에 내가 가장 예뻐 보일 최적의 위치를 벗어나지 말라고.


시진이 그녀의 가감 없는 솔직한 말이 귀여워서 웃는 사이, 모연은 그의 얼굴에서 전에 없던 상처를 발견했어. 어디서 뭘 하며 사는 사람이기에 몸에 상처가 끊이질 않는 건지 모연은 점점 시진에게 묻고 싶은 게 늘어만 가.


“근데 또 다쳤네요? 이번에도 삽질하다 다쳤어요?”


상처는 시진이 지난번 연합 작전을 위한 시뮬레이션 도중, 델타포스팀 팀장과 주고받은 정다운 첫인사였어. 그가 모연에게 말해줄 수 없는 상처 중에 하나지.


“삽질하다 얼굴 다칠 확률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쵸? 아니죠?”
“제가 그 힘든 걸 해냈습니다.”


처음 만난 날 그녀에게 보인 옆구리 총상을 라이언 일병으로 눙치더니, 시진은 이번에도 이마 상처를 삽질하다 다쳤다고 넘겼어. 모연도 그게 참말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당장은 굳이 답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이 없어.


언젠간 말해주겠지. 이 남자와는 다음이 있을 테니까.


오늘의 이 첫 데이트가 잘 끝이 나면 시진과 더 많이 가까워질 거고 그가 더 많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에 모연은 시진에게서 그 답을 듣는 날을 조금 미루어 두기로 해. 아직은 그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배려한 거야. 시진이 감추고 있는 비밀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서운 거라는 걸 모연은 이땐 아직 모르고 있었어.


모연은 오늘 밤의 끝이 시진이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어. 앞도 뒤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 저번 병원 옥상에서의 헬기로 끝이 난 줄로 알았던 거야.


묻고 싶은 질문을 잠시 접어두고, 모연은 그녀의 실수를 신사적으로 눈감아준 시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


“머리 감기 그거 모른 척 해줘서 고마워요. 커피는 극장가서 마셔요.”
“그래요. 아, 난 생수 마셔야겠다."
“야!”


신사는 무슨. 시진은 앞으로 모연과 함께 할 하고많을 시간동안 그녀를 놀려 먹을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놀리는 걸 그만두기엔 시진에게 그녀는 너무 사랑스러우니까.


* * *


두 사람은 영화를 보러 오는 내내 서로에게 빠져 단꿈에 잠겨 있었어. 이런 사람을 왜 지금에서야 만났을까 후회될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충족감마저 들었지. 작전을 막 끝내고 돌아온 시진도 며칠 간 병원에서 시달린 모연도 절대 피곤하지 않을 리 없는데, 피로감 따위 언제 느껴봤냐는 듯 두 사람의 눈동자는 생기로 반짝거렸어.


불과 몇 분 후면 평화는 끝이 나고 폭풍우가 몰아칠 텐데 아직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두 사람은 달디 단 행복에 젖어 있어. 둘은 10분 후면 시작할 꽤나 재미있다고 입소문난 영화보다도 서로의 눈동자를 더 많이, 더 오래 바라보고 싶어.


“난 극장에 오면 이때가 제일 설레요. 불 꺼지기 바로 직전.”


모연은 그 설렘이 옆에 앉은 유시진이라는 남자 때문에 더욱 더 커지는 신기한 경험을 지금 하는 중이야. 상영관의 불은 바깥만큼 밝지가 않지만 옆에 앉은 남자의 눈동자는 참 신기하게도 동공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잘 보여.


줄곧 그녀와 눈을 맞추고 그녀의 말을 들던 시진이 잠시 생각하더니 딱 자기 마음에 맞는 말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어.


“난 태어나서 지금이 제일 설레요. 미인이랑 같이 있는데, 불 꺼지기 바로 직전.”


딴 남자가 하면 분명 느끼하고 거북할 만한 말을 시진은 참 신기하게도 듣기 좋게 하는 재주가 있어. 사실 이건 시진이 재주 있다기보다 모연이 그만큼 그를 좋아하고, 시진이 그만큼 그녀에게 진심이기 때문이겠지. 두 사람 사이엔 매순간이 작업 멘트가 아닌 고백이야.


영화 시작 전의 기대감어린 설렘보다도 더 당신과 함께 있어서 설렌다는 꿀처럼 단 고백. 거듭되는 시진의 고백은 모연의 마음을 더 행복해지게 해.

“근데 아까 나한테 야! 그랬죠.”
“근데요?”
“몇 살입니까? 내 나인 차트 봐서 알 거고.”


내심 시진은 모연이 자기보다 어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저 얼굴로 나보다 나이 많다는 건 사기야. 아무리 많이 봐줘도 동갑? 그러면 내가 학교 빨리 들어갔으니까 오빠네.


안 어려도 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모연에게 오빠 소리를 꼭 듣고 싶으니까.


“아니, 아까 그 상황은……, 오빠가 먼저 약 올렸잖아요.”
“아, 내가 오빠구나.”


이제 계속 오빠라고 해주겠지 김칫국 한 사발을 들이키며 시진이 마구 흐뭇해해.


역시 오빠일 줄 알았어. 이제 오빠라고 불러주네. 어예!


좋아 죽는 시진을 보더니 모연이 확 재를 뿌렸어.


“뻥인데! 내가 누나예요.”
“아닌 거 같은데? 민증 까봅니다. 난 미성년자 아닐까 걱정했는데?”


결국 빵 터진 모연의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덩달아 시진도 함께 웃었어.


그런 두 사람의 불안스럽도록 너무도 완벽했던 행복 사이로 불청객이 끼어들었어.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모연의 웃는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시진의 눈동자를 결국 자신에게로 돌려놓았지. 액정에 뜬 발신자는 시진의 표정을 굳어지게 하기에 충분했어. 그가 [빅보스]로서 해야 할 일을 떠올리게 해서도 그렇고, 그 일을 하러 가기 위해 또 모연을 남겨두고 가야 해서도 그랬지. 하물며 모연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해줄 수가 없을 것이기에 시진은 이 상황이 더 낭패스러워.


“단결. 대위 유시진.”
“?”
“예, 그렇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단결.”
“무슨 일 있어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 어떻게 말을 하면 모연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상하게 할 수 있을지, 시진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렸어.


사실 어떻게 말해도 이 상황은 모연에게는 참 당혹스러운 일이야. 이유야 어쨌든 무안스러울 거고, 실망스럽지. 투정부릴 만큼 그녀가 어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 유쾌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가봐야 될 것 같은데.”
“지금요?”
“예…….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시진은 해줄 말이 없어. 왜 가냐,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가냐, 뭐라도 설명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모연이 묻는다고 해도 시진은 말해줄 수 없어.


뭐라고 말을 하겠어. 그의 일을 설명해줄 수 있기는커녕, 그의 존재 자체가 기밀인데.


“나 또 바람맞는 거예요?”


감출 수 없는 실망과 황당함이 묻은 그녀의 말에 시진은 더 당혹스러워. 그래. 이건 확실히 모연을 바람맞히는 짓이야.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을. 세 번 만난 여자를 두 번이나 바람맞힌다니. 그것도 첫 데이트에서.


시진도 자꾸만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이 정말 미치게 답답한데, 그가 어떻게 해결할 수도, 모연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줄 수도 없는 일이라 시진은 유구무언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어.


“……정말 미안합니다. 이 영화는 다음에 꼭 같이 봅시다. 지금은 같이 나가요.”
“아니요. 전 그냥 보고 갈게요. 가보세요.”
“그러지 말고 다음에 같이,”
“아뇨. 괜찮아요. 가보셔도 돼요.”


‘나’에서 ‘저’.


상한 기분을 애써 티내지 않으려는 모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투에서부터 시진과 순식간에 멀어졌어.


내가 지금 제대로 웃고 있는 건 맞나. 화난 얼굴이면 안 되는데.


굳어지는 표정을 제대로 갈무리하지도 못한 채로 모연은 괜찮은 척 시진에게 말을 해. 일 때문에 가는 것 같은데 기분 상한 티를 내면 어른스럽지 못하잖아. 그녀에게 설명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없어보여서 더 당황스럽지.


이제는 모연도 조금씩 알 것 같아. 시진은 옥상에서 헤어지며 했던 나중에 설명하겠다는 말도 지키지 않았어. 이후에 그가 설명을 해준다 해도 아마 그녀가 원하는 만큼의 범위까지가 아니겠지. 그게 점점 명확해지고 있어.


그런 모연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다 결국 시진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어. 더 이상은 그의 사과만으로는 모연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안 거야.


지금 당장은 떠나야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고 난 후엔 반드시 그녀에게로 돌아와 방법을 찾아볼 거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오늘의 데이트가 부디 마지막이 되지 않을 방법을.


당신과의 오늘이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있을 처음으로 남기를.
당신과는 꼭 다음이 있기를.
당신이 나를 기다려주기를. 나에게 당신을 기다릴 기회를 또 한 번 주기를…….


“……전화하겠습니다.”


그는 일을 마치는 대로 모연에게 전화를 할 거야. 꼭. 반드시.


시진은 모연이 꼭 자신의 전화를 받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두고 떠났어. 그가 자리를 뜨는 내내 모연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고 있어. 따뜻한 단꿈에 잠겨 있다가 차디찬 현실 콘크리트 바닥으로 확 끌어올려 내팽개쳐진 딱 그런, 모연은 지금 딱 그런 기분이야. 꿈이 달고 따뜻했던 만큼 현실이 더 쓰고 춥게 느껴지지.


모연은 불안해. 시진이 돌아와 아무런 설명도 해줄 수가 없을까봐 불안하고, 설명해준다 해도 그 설명이 자신을 설득하지 못할까봐 불안하지. 그럴 것이라는 예감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더 싫고 실망스러워.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답을 얻고자 미루어 두었던 질문이었지만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어. 지금 떠난 저 남자에게 그녀는 언제 돌아오는지 묻지 않았고 그래서 알 수도 없지만, 돌아오면 꼭 물어야 할 말들이 있어. 그 물음에 답을 얻고 나면 분명해지겠지.


내가 당신을 앞으로도 기다릴 수 있을지.
당신이 나를 기다리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이어지는 글 : 당신을 놓쳐야만 하는 이유

수정 전 : 나를 기다릴 사람. 내가 기다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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