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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59.12) 2015.12.24 11:17:24
조회 96 추천 1 댓글 4

스무 살 여름, 다니던 대학에서 초청 강연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인생에 있어서 뭔가는 해야겠는데, 뭘 해야 될 지는 모르겠는, 어쨋든 자기 계발에 대한 의욕이 넘치던 청춘이었는데 그런 나와 여러모로 비슷했던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강연회라는 곳을 가보게 되었다.

강당에는 빈 좌석이 안쓰러울 정도로 눈에 띄었는데 축제 기간이라 사람이 많이 빠진데다 강당 자체가 워낙 넓으니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 보였던 것 같다. 정장을 빼입고 나타난 강사는 나보다 고작 다여섯 살 많아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어색하게 인사를 했던 것이 아마도 강연 경험이 그다지 없었거나, 생각보다 적은 청중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뻣뻣한 인사를 마친 그는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마주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해드리고자 합니다."라는 멘트로 강연을 시작했는데 강연의 내용은 동네서점의 아무 자서전이나 펼치면 있을 법한 흔한 성공담과 자기자랑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는 '나다운 것을 찾아, 나답게 살으세요.'라는 멘트로 강연을 마무리하는 듯했고, 나 역시 '별거 없구나.' 하는 생각에 무의미한 박수를 보내려던 순간, 옆에서 열심히 메모하며 경청하던 여자친구가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나다운 것이 뭔가요?"라는 질문을 했고 강사는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것이 나다운 것이라는 일차원적인 대답을 만족스러운 듯이 내놓았다. 그녀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분명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그것을 대체하곤 내 손을 끌고 그대로 강당을 나와버렸다.

그날 밤, 술을 마시다 그녀가 심각하게 말했다. "나답게 사는 것이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라면, 도대체 늦게 살기 시작한 사람은 얼마나 손해보고 시작해야 되는 거야?" 그때는 적당히 웃으며 흘려들었지만 그녀는 그 후로 늦게나마 '그녀답게' 살기 시작했고, 수년이 더 지난 지금, 나는 더 큰 손해를 보고 나서야 그녀가 했던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아 글좀 빨리 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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