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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나요-

ㅇㅍㅇ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12.24 16: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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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나요-


  슌카는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늘 그의 집을 나온 뒤에는 세상이 꺼질 듯한 허무함이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어두운 날이면, 그것은 더욱 넓고 깊게 마음으로 파고듭니다. 빛을 발하는 가로등으로도 이 마음을 밝게 비추진 못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슌카는 조금이나마 걸음을 빠르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슌카와 준영씨가 알게 된 것은 삼년 전 봄이었습니다. 둘은 첫눈에 반했다든가-, 아니면 운명처럼 이끌렸다든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 특정한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불특정한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했을 뿐이고, 우연히 그것을 서로가 알아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관계였음에도 그 둘은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꽤나 오래 관계를 지속했습니다. 그것은 슌카가 학교를 졸업하고, 또, 준영 씨의 부인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슌카의 집은 준영 씨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라의 3층입니다. 원룸이지만, 제법 값이 나가는 편이어서인지, 꽤나 넓은데다 주방도 따로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고, 3층까지 오르는 계단의 층층이 제법 큼직한 편이어서 오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 정말. 엘리베이터를 만들지 않을 거면 계단을 좀 낮게 하든지.”

  슌카는 오늘도 혼잣말로 투정하며 차곡차곡 계단을 오릅니다.

  방에 도착한 뒤에는 먼저 식탁 의자에 앉아 양말을 벗으며 발을 주무릅니다. 하이힐을 신고 빨리 걸은 탓인지 발목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습니다.

  슌카는 요즈음 뭔가 이상한 기분을 자주 느끼곤 합니다. 그 감정은 오묘한 것인데, 약간의 오싹함이라고 할까, 냉기라고 할까, 그런 것을 자주 느끼곤 합니다. 요즈음이라고 해도, 이런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거의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와의 관계를 갖지 못한 것도 1년. 슌카는 아마도, 양기가 부족해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방 안의 테이블은 은회색의 스테인레스로 된 것이었는데, 슌카는 오늘따라 그것이 유난히 더 차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발목을 문지르는 것을 그만두고, 슌카는 보일러를 32도에 맞춘 뒤,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화장실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는데, 그 창문 밖으로 몇 개인가의 별들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달도 보이면 좋을 텐데..” 슌카는 늘 그것이 아쉬웠습니다.



  절망은, 항상 고독과 함께 옵니다. 물론, 절망은 혼자일 때도 찾아오고 누군가와 함께 할 때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슌카에게는 그 둘은 뗄 수 없는 하나와 같습니다. 그녀는 절망으로 인해 고독을 맞이합니다. 절망은 늘 한 손에 고독을 들고 옵니다.

  열입곱 살 무렵의 절망도 그렇게 다가왔었습니다. 아빠와 엄마의 때 이른 죽음. 그것은 절망이었습니다. 당시의 슌카의 옆에는 친척이라는 사람들이 분명히 - 아마도 줄지어 - 서 있었으련만, 그녀의 기억 속의 그 곳은,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곳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마음으로 그녀의 곁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아버지의 변호사 - 아마도 센슈케 였던 걸로 기억한다 - 의 말을 듣고는 소리나 몇 번 치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집에는 절망이 한 손에 고독을 든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들을 뒤로한 채, 그녀는 그대로 집을 나와서 일본을 떠나기를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의 변호사는 비교적 충실하게 그것을 도왔기에, 그녀가 떠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을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여전히 그 절망은 여전히 고독을 한 손에 든 채, 그녀의 방을 찾아 옵니다. 그녀는 이럴때면, 침대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양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그 절망과 고독 속에 몸부림칩니다. 이것은, 슬프게도,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침대와 직선상에 위치한, 문이 열려있는 화장실의 창문에는 여전히, 별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달이 아닌, 달처럼 동그란 눈동자가 슌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눈동자는 처음의 살기어린 모습과 달리, 조금은 슬픈 듯, 아련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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