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좀 빌려줘.'

그는 쉽게 말했다. 액수는 적지는 않았으나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것. 나는 어렵지 않게 주었다.

'돈 좀 빌려줘.'

다음에도 그는 쉽게 말했다. 요구한 액수는 같았다. 역시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고, 전번의 돈과 합쳐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와 친구로 지내온 기간이 있기에 깊게 묻지 않았다. 계좌로 돈을 부쳤다.

'한 번만 더 빌려줘.'

세 번쯤 되자, 그도 더 이상 쉽게 말하지 않았다. 요구한 액수는 이번에도 같았다. 삼 회의 빚을 합치자 이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물어보았다.

'토토를 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멎었음에 그는 불안을 느낀 것 같았다.

'진짜 미안하다. 내가.'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다. 밥을 함께 먹고, 시간표를 함께 짰다. 술 마실 일이 없어도 술을 마시는 그런 사이였다. 아직 같이 어딘가로 놀러간 적은 없었어도. 동행하면, 좋을 친구다. 그렇게 생각한 그런 친구였다.

'다음에 따면 갚을게.'

다음. 다음...

너는 그 '다음' 이전에도 돈을 갚아야할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래, 너는 그냥. 나는 우정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재테크를 했던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금 수치스러웠다. 친구라는 것이 다 무엇인가.

'끊는다.'

볼에서 전화기를 떼어내자마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짐승같은 소리가 통화가 끊기기 전에 들렸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 했다. 나는 곧 뱅킹 어플리케이션을 열었다. 여태까지처럼 같은 돈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허나 마지막 송금이 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송금은 무척 쉽다. 손만 휘적여도 돈이 보내진다. 송금이 완료되려는 찰나, 메시지가 수신되어 마지막 버튼을 가렸다.



'내가 진짜 급해서 그래.'

'어지간하면 이렇게 안 할텐데ㅡ'



턱턱 한숨이 나왔다. 그 뒤에는 절로 웃음이 일구어진다. 결코 기쁨의 웃음은 아니다. 스마트폰 화면이 보이지 않게 테이블 위에 내려두고 냉장고에서 맥주, 아니 소주를 꺼내었다. 꼴꼴꼴꼴.

저 친구와 나는 이 술잔을 기울인 적이 많았다. 별 것 있어서도 마셨고, 별 일 없어도 마셨다.



'너한테 이러면 안 되는건데.'

'못 들은 걸로 해주라.'

'미안하다.'


하하.

사실 저 친구는 원래 저런 짐승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저 짐승을 키운 것이 나일지도 모르겠다.

답장 없이 메시지를 접고, 나는 보내주었다.

돈이던, 친구던.

그게 뭐던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