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1. 첫 번째 풀코스의 경험 - 42.195km, 첫 풀코스의 경험
2001년 10월 22일 춘천마라톤, 나는 스타트 라인에 섰다. 42.195km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처음으로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 해 3월 동아일보 마라톤대회 하프 코스에 참가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7개월 만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풀코스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달려본 사람들은 하프코스에서 풀코스까지는, 10km에서 하프 거리인 20km까지보다 곱절로 힘들다고 말한다. 거리상으로의 2배가 아니라 4배가 더 힘들다는 얘기이다.
나름대로 연습은 충분히 했다. 하프를 세 차례나 뛰었고, 밤 11시에 일과를 마친 후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국회의사당에서 목동 10단지 집까지 무조건 뛰면서 부족한 운동량을 채웠다.하지만 그것은 연습이고 준비였지 실전은 아니었다. 하프 이상의 거리와 시간은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것은 발가락이었다.
2000년 총선을 치를 때였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양말을 벗는 게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는데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수십 년간 부모님께 걱정과 괴로움만을 끼쳐 주었던 아들이 아닌가.
문득 멀찌감치 서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애써 내 눈길을 피하며 뒤돌아섰다. 나는 천천히 양말을 벗었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유세장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 만천하에 내 발가락을 공개했다. 무대에 올라 발가락을 보여 주어야 하는 그 어이없는 현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상대 후보 진영에서는 나의 병역면제 사실을 크게 언급하며 맹비난을 하고 나섰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유권자들에게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난감한 일이었으나 반드시 한 번쯤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기도 했다. 애써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세상을 향해 벌거벗은 발을 내밀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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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가락 기형을 의학용어로는 ‘우중족 족지관절 족지강직’이라고 표현한다. 발가락 관절의 움직임이나 근육이 뻣뻣해 진다는 뜻이다. 어린시절 리어카 바퀴에 발이 말려 들어가 부러진 발가락의 접합수술이 잘못되어 발가락 아래 관절이 밖으로 나온 채 붙여진 것이다. 때문에 발가락과 발가락 아래 관절이 튀어나와 있다.
발가락 밑의 관절 이상과 발가락이 위로 추켜세워져 있어서 행군이나 구보 등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병역 심사 때 ‘제2국민역 판정(5급)’을 받았다. 병역을 면제 받고 난 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구설수에 시달렸으나 나는 결국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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