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원희룡 에세이] 가을의 춘천에서 달리다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202.136) 2007.03.26 09:31:59
조회 1860 추천 2 댓글 4

  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1.
첫 번째 풀코스의 경험 - 가을의 춘천에서 달리다


  가을의 춘천은 정말 마라토너들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름다운 풍광과 러너들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춘천 종합운동장 앞의 은행나무에서 출발해 호수로 진입하는데 단풍이 한창이었다. 일년 중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호수를 끼고 달리며 단풍빛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내가 뛰는 것이 아니라 높은 가을하늘과 단풍 그리고 그 사이로 어우러진 바람이 나를 끌고 가는 듯 했다.


whr_008.jpg


  하프 코스를 넘어서자 새로운 시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0km지점을 돌파하면서 점점 시야가 흐려졌다. 아름다운 호수도 발갛게 물든 단풍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부터는 그간의 훈련과 체력, 의지와 인내심이 경기의 흐름을 주도한다. 발가락의 아픔 정도는 다른 고통 속에 묻혀 느낄 수도 없었다. 온몸이 이미 내 몸이 아니고, 다리 근육이 뭉쳐 있는지, 발바닥이 아픈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 지금 무슨 정신으로 뛰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발가락의 불편함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풀코스 완주를 달성해야겠다는 목표의식 뿐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날의 목표는 기록도 아니고 등수도 아니고 오로지 완주였다. 그런데 그조차 만만치 않았다. 다리에 힘이 빠졌고, 내내 불편했던 발가락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했다. 곧 절벽 같은 지점에 이르렀다.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르고, 신체의 균형이 깨지면서 처음과 같이 달릴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뛸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조금씩 걷다가 뛰기를 반복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런 방식의 달리기가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한다. 그 당시 나는 오로지 완주가 목표였기 때문에 걸을지언정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whr_009.jpg



  그 날 5시간 25초의 기록으로 힘겹게 완주를 해냈다. 그러나 42.195km를 달리기 위한 시간과 힘의 안배에서 이미 균형이 깨진 경기였다. 초반에 너무 많은 힘을 쏟는 바람에 전체적으로는 무척 고전이었다. 하지만  풀코스를 마친 후 내가 왜 달렸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의 한계에 도전했던 것이고,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다.


 

  고통을 억지로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맞이하고 돌파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용기이다. 용기를 내어 첫 걸음을 내딛을 때 풀코스의 피니쉬 라인이 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이다.

>>< src= width=1 height=1>>>>>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28 [원희룡 에세이] 아버지는 모질게 장사를 하지 못했다 [31] 운영자 07.06.29 4206 10
27 [원희룡 에세이] 목표에 대한 과정은 우리의 몫 [5] 운영자 07.06.28 1868 2
26 [원희룡 에세이] 아버지는 나를 믿으셨다 [5] 운영자 07.06.26 2169 3
25 [원희룡 에세이] 아버지는 생계보다 자식이 더 귀했다 [3] 운영자 07.06.22 2060 1
24 [원희룡 에세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라 [2] 운영자 07.06.20 1813 1
23 [원희룡 에세이] 최고의 운동선수 [2] 운영자 07.06.18 1858 2
21 [원희룡 에세이] 마라톤에서 정직을 배우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23 2155 4
20 [원희룡 에세이] 달리는 본능에서 생긴 존재감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11 1607 1
19 [원희룡 에세이] 마라톤을 향한 첫 발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04 1755 1
18 [원희룡 에세이]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30 2080 2
17 [원희룡 에세이] 운동에 대한 갈망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27 1781 2
16 [원희룡 에세이] 부산지검을 떠나던 날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24 1758 4
15 [원희룡 에세이] 마약과의 전쟁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20 2143 4
14 [원희룡 에세이] 각각의 사건이 하나의 사건으로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8 1852 2
13 [원희룡 에세이] 서울지검 원희룡 검사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6 3158 4
12 [원희룡 에세이] 삶의 가장 큰 선물 [5]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3 2157 4
11 [원희룡 에세이] 뚜벅이 청년의 아내과 두 딸 [7]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1 3094 2
10 [원희룡 에세이] 아내, 그리고 새 생명과의 첫 만남 [6]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9 2873 6
9 [원희룡 에세이] 나의 한계와 뜨거운 열정 [6]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6 2130 1
8 [원희룡 에세이] 노동자를 벗 삼아 지냈던 야학 교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4 2892 1
7 [원희룡 에세이] 노동자로서의 삶, 나에게 묻는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2 1996 1
6 [원희룡 에세이] 유기정학과 사글세 연탄방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30 2276 1
5 [원희룡 에세이] 새내기의 꿈, 그리고 험난한 여정의 시작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8 1969 1
[원희룡 에세이] 가을의 춘천에서 달리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6 1860 2
3 [원희룡 에세이] 더 쓰임새 많은 발가락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1 1927 1
2 [원희룡 에세이] 42.195km, 첫 풀코스의 경험 [5]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19 1909 1
1 [원희룡 에세이] 프롤로그- 달리기는 늘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29]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16 2678 3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