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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리자드맨 단편] 그을린 왕의 노래를 들어라-03

냉동고등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10.26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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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링크: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arhammer&no=1724033&page=2&search_pos=&s_type=search_name&s_keyword=고등어








그을린 왕의 노래를 들어라-03



날카로운 이빨로 장식한 하얀색 수염이 인상적인 드워프 레인저가 탁자 위로 뛰어올라 선창했다.


“바위와 보석과 곡괭이의 이름으로!”


맥주잔들이 거세게 부딪쳤다. 건배라기보다는 파성추가 성문을 향해 돌진하는 기세다. 쨍, 이나 짠, 도 아니고 쿵쾅거리는 소리가 홀 안에 가득했다. 귀가 아프다. 이게 무슨 건배야? 마르셀은 탄식한다.


“이름으로!”


이어진 후창은 후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음을 이룬다.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좀 전의 건배에서 하늘로 솟구쳐 오른 맥주방울들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소리다. 


“촌구석에서 온 짐승 사냥꾼들에게 건배!”


구석에 앉아있던 마르셀은 애매하게 웃으며 예의상 술잔을 들어보였다. 차마 마실 수는 없었다. 잔 안에서는 부글부글하고 끓는, 어떻게 봐도 맥주보다는 용광로에서 방금 튀어나온 쇳물처럼 보이는 액체가 담겨있다. 이걸 어떻게 마셔? 불가능해. 죽을 거야. 적어도 죽는 것보다 민망한 모습을 보일 게 분명해. 

그러나 마르셀의 고용주는 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건배!”


거친 드워프들의 목소리를 제치고 소녀 같은 발랄한 목소리가 짜랑거렸다. 담셀 델린느 드 아일이 기세 좋게 술잔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촌구석에서 온 나를 위해 건배! 약속한데로 한 번에 다 마실 거니까 잘 봐요, 땅꼬마들!”


드워프 맥주는 거친 노스카 장정도 쓰러뜨리는 독주고, 거기에 덧붙여서 담셀이 집어든 건 술잔 중에서도 가장 큰 종류였다. 마르셀이 보기에 저건 분명 자살시도다. 

그러나 드워프들은 환호했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움기 처녀! 수염은 없어도 배짱은 있단 걸 증명해봐!”


담셀이 킥 웃곤 치마를 걷어 올렸다. 테이블 위로 뛰어오른다. 저 망측스런 모습을 본 마르셀은 마르엔부르크의 정숙한 귀족 처녀들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그년들은 허세가 하늘을 찌르고 건방지고 무식해도, 적어도 저렇게 테이블 위로 뛰어올라 낄낄대진 않았는데.

드워프들보다 겨우 머리 둘 큰 정도로 덩치가 작은 담셀에게 레인저가 술통을 가져온다. 맥주통을 기울이기 직전, 인상적인 하얀 수염의 레인저가 씩 웃곤 몸을 숙여(안 그래도 작은 덩치가 더 작아졌다) 델린느에게 충고했다.


“오기부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포기하시지, 움기! 이건 블랙마운틴 특제 맥주야. 움기 따위가 한 모금이라도 했다가는 조상신들을 뵈러 가게 될 거다.”


델린느는 태연히 대답했다.


“어머, 좋은 소식이네! 나 할머니 보고 싶었거든. 그러니까 가득 따라요, 가득! 쫀쫀하게 굴지 마!”


“허, 용감하군, 움기 처녀! 저기 밖에 앉아있는 양철통들보다 몇 배는 낫다! 자, 다위 친구들! 움기가 어디까지 마실 수 있나 걸어봐라!”


“한 모금!”


“세 모금!”


“두 모금 마시고 토할 거라는데 내 수염과 다리털을 건다!”


거대한 맥주잔이 가득 찬다. 마르셀은 그 모습에서 저 먼 나가로스의 마녀들이 타고 다닌다는 피의 가마솥을 떠올린다. 그 정도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저걸 인간이 마실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불가능해…. 인간사의 모든 불가능함을 경고하는 격언들이 정신없이 떠오른다.

아아, 그런데 여신이여, 그대가 가르친 담셀이 지금 저걸 마시려고 하고 있나이다. 자기 팔뚝만한 거대한 술잔을 머리 위로 들어 휘두르고 있습니다. 저년이 진정 당신의 교육을 받은 작자가 맞는지요? 이건 뭔가 잘못됐습니다. 저 여자는 절대로 담셀이 아니에요. 아니면 당신의 교육이 정말 비극적으로 틀려먹은 거라고요. 마르셀은 마침내 주인을 만류하기로 한다. 저 망할 담셀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저년이 죽으면 내 월급은 누가 주느냐는 의문이 떠올라서였다.


“저, 아가씨….”


“마르셀, 잘 봐! 한 번에 비울 테니까!”


마르셀의 짐작대로 말리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담셀 델린느는 호탕하게 웃어대곤, 들어 올리는 것도 힘겨울 거대한 전을 들어 시원스럽게 비우기 시작했다. 하얗고 가느다란 목이 꼴깍거리며 드워프 맥주를 들이마신다. 턱에서 흘러내린 시커먼 맥주가 목을 타고 흘러내려 옷을 적신다. 이윽고 담셀의 시원스럽게 드러난 어깨와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꼴깍꼴깍, 꼴깍꼴깍. 마르셀은 경악에 차 그 움직임을 본다. 잔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드워프들은 킥킥대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이내 술렁거렸다. 잠시 후 드워프들이 발을 맞춰 구르기 시작하자 홀이 온통 들썩거렸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이윽고 맥주잔이 허공을 난다. 델린느가 잔을 집어던진 것이다. 아주 잠깐, 정말 기적처럼 그 시끄러웠던 홀이 침묵에 잠긴다. 모든 드워프와 인간 여자 둘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잔은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쳐 깨졌다. 깨끗이 비어있었다. 담셀의 머리가 이리저리 휘청거리다가, 삐딱한 각도로 멈추고는, 숙였던 얼굴에서 히죽 웃음이 그려졌다.


“히, 싱거워.”


우레 같은 함성이 홀을 뒤흔들었다. 


“들었어? 싱겁단다!”


“진짜로 다 마셨잖아!”


“그룽니의 수염이여! 저건 움기가 아니라 수염 깎은 다위로군!”


“수염만 있었어도 자식 놈이랑 결혼시켰을 텐데!”


“수염 깎은 다위 처녀를 위해 건배!”


잠시 후 모든 드워프들이 테이블 위로 뛰어오르더니, 흘린 맥주에 젖어 빛나는 담셀을 어깨위에 올리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촌구석에서 온  짐승 처녀! 수염 깎은 다위 처녀! 처녀를 위해 건배!”


델린느가 시뻘겋게 된 얼굴로 새로 받은 맥주잔을 휘둘렀다.


“냐하하하, 나를 위해 건배! 한잔 더! 야, 마르셀! 너도 이리 올라와!”


마르셀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게 어디가 교양 있고 품위 있는 교섭이라는 거야?


***


마르셀이 고용주의 정수리를 맥주잔으로 내려치는 사항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12시간 전, 브레토니아 갈레온 ‘야수의 최후’는 사우스랜드의 해변에 정박해있었다. 한 달에 걸친 여행 끝에 마침내 밟게 된 육지는 아름다웠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게 빛나는 백사장 너머에서 끝없이 펼쳐진 장엄한 정글. 나무들은 모두 늙고 강건하다. 그 어떤 성벽보다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는 나무들 안에서는 이따금 들리는 이국적인 새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세상의 마지막 남은 신비가 도피처를 찾는다면, 그것은 분명 사우스랜드의 모습을 한 은신처를 만들 것 같다. 

고요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불길했다.

그리고 마르셀은 앞의 두가지를 빼고 마지막 하나의 감상만 느꼈다. 지금 ‘야수의 최후’는 고요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불길했다. 왜냐하면 간신히 정박한 해안가에 발도 디디지 못한 상태로 배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모두 삼엄한 경비태세를 취하고 랜스를 꺼내 무장한 상태였으며, 브레토니아 갈레온의 옆구리에는 투박한 화살들이 잔뜩 박혀있었다. 화살들을 쏘아 보낸 존재는 해안와 숲의 경계선에서 바위같은 표정을 지은 채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있었다. 서른 명 정도의 드워프 레인저들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굵은 신경줄을 가진 것인지 이 끔찍한 더위 속에서도 완전무장하고 거기에 덧붙여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기사들도 질 생각은 없는지 완전무장한 상채로 갑판에 도열해있었으며, 활을 꺼내온 농노들이 불안한 얼굴로 해변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지독하게 더운 날씨였다. 마르셀은 땀을 닦아내며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드워프들이 우릴 환영해주질 않네요.” 


속옷차림으로 그늘에 누워있던 담셀이 는지럭거리며 고개만 들어올렸다. 땀에 젖은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 마르셀. 그런데 저 친구들이 내 배에 화살을 잔뜩 꽂아댄 것만 봐도 그건 알 수 있거든.”


“네, 네. 그런데, 옷 좀 입고 계시면 안 되나요? 보기가 민망하거든요. 더워도 옷은 좀 입고 계세요. 담셀이잖아요.”


델린느는 혀를 내밀어보이곤 속옷 위에 얇은 드레스를 걸치기 시작했다. 옷을 다 입자 담셀은 드워프들의 방진을 내려다보곤 혀를 찼다.


“아-더워! 이 날씨에 도대체 왜 저러는 거래? 저쪽이 우릴 안내해주기로 되어있던 거 아니었어?”


“아, 그게, 사실은….”


마르셀의 설명을 들은 델린느는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지었다. 이번만큼은 마르셀도 그녀에게 동조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올드 월드 각지에서 맹수들을 잡아 명성을 높인 야수사냥꾼 기사단은 당연히 맹수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물론 이 명제에는 사소한 전제가 하나 붙는데, ‘올드 월드’의 야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기사단장 랄도경은 미친 듯 날뛰는 미노타우루스의 모가지를 자르는 방법은 빠삭하게 알았지만 머나먼 사우스랜드의 정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랄도경은 브레토니아 기사답게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끗이 무시했다. 그래서 사우스랜드로의 원정이 결정되었을 때 랄도경의 종자들은 필사적으로 사우스랜드 근방의 야생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들을 수소문했다. 존경하옵는 기사들은 몰라도 자기 자신이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정글에 뛰어드는 것은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찾아낸 것이 ‘기쁜 수염 정찰대’였다. 검은 산맥에 있는 드워프 요새인 카락 히른 출신의 드워프 레인저들이 사우스랜드에서 탐험 중이었던 것이다. 몇 차례의 서신이 오간 끝에‘기쁜 수염 정찰대’는 몇몇 물자를 ‘안전히’ 배송 받는 것을 대가로 야수사냥꾼 기사단에게 정박지와 길 안내, 그리고 사냥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종자들은 안심했다. 좀 지나치게 안심한 나머지 랄도경이란 돌발요소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랄도경은 또 호수의 레이디에게 야수의 머릴 바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는 좀 지나치게 기분 좋았던 나머지 드워프의 보급품 중 하나를 건드렸다. 선창에 있던 드워프 맥주통 중 하나가 개봉되었다. 그렇다. 드워프의 맥주통이다. 아마 드워프의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어도 맥주통을 건드리는 것보단 덜 화낼 것이다.

브레토니아 갈레온이 사우스랜드에 도착했을 때 정박지를 확보하고 있던 기쁜 수염 정찰대들은 하역 과정에서 맥주통 하나가 따진 것을 발견했고, 이 계약 위반에 대해 지극히 드워프식으로 반응했다. 


‘맥주통 하나가 열렸는데 너희 배에 다고라키가 숨어든 게냐, 아니면 네놈들이 도둑놈인 게냐?’


불행히도 기사단 측에서도 지극히 브레토니아식으로 반응했다. 


‘용맹하고 긍지높은 우리 기사들을 지금 도둑이라 불렀느냐, 땅 파먹고 사는 두발 달린 벌레들아?’


결과적으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몇 차례의 언성이 오고 간 후엔 무수히 날아오는 도끼와 화살이 서로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사상자는 기적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지만 짐을 내리던 농노들은 황급히 갈레온 안으로 도망쳤고 하역작업은 중단되었다. 드워프들은 내려진 짐들을 이용해 순식간에 바리케이드와 방진을 구축했고 기사들은 검을 뽑아들었다. 그렇게 벌써 반나절 째 삼엄한 대치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간만에 육지를 밟을 생각에 즐거워하던 담셀 델린느는 이 한심한 대치에 간단한 평을 내렸다.


“결국 랄도가 잘못한 거잖아.”


“본인이 인정하질 않는 걸요. 실제로 맥주통을 따기만 했지 마시지도 못했다고 하고.”


“마시지도 못할 맥주통은 도대체 왜 딴 거래?”


“너무 독해서 못 마셨다는 모양이에요.”


“그 인간이 못 마실 정도야? 그럼 한 번 마셔보고 싶네.”


해변에서 투박한 고함이 울려 퍼졌다. 드워프들의 요구가 또 시작된 모양이었다.


“브레토니아 양철 돼지들에게 고한다! 그룽니의 맥주 묻은 수염에 맹세코, 보급품을 배상하기 전에는 해변에 발도 못 붙일 줄 알아라!”


갑판 위에서도 랄도경의 반격이 이어졌다.


“이 추악한 난쟁이 놈들, 네놈들의 안내 따위는 필요 없다! 이번 원정에선 야수 대신 드워프 머리를 여신께 바치리라!”


“말에다 박는 양철통들아,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지금 감히 양철통이라 불렀느냐?”


고래고래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러대는 드워프와 기사들을 보던 담셀이 질렸다는 얼굴을 했다.


“양철통에 반응하네. 보통은 거기보다 앞부분에 반응해야 되는 거 아니야? 계속 저렇게 소리만 질러대다간 원정이고 뭐고 없겠는데. 내가 해결하는 게 낫겠어.”


“어떻게요?”


“교양 있고 품위 있는 대화로. 마르셀, 나갈 테니까 따라와.”


잠시 후 담셀은 콧수염까지 시뻘겋게 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랄도경 옆에 서있었다.


“랄도경?”


타르 때문에 좀 변색됐지만 그래도 근사한 갑주를 걸친 랄도경은 옆에서 말을 거는 담셀도 무시하고 드워프들에게 폭언을 퍼붓기 바빴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갑판에서 해변으로 뛰어내릴 기세였다. 사건의 원흉을 제공한 작자가 저러고 있으니 실로 모범적인 적반하장이다.


“이 빌어 처먹을 땅꼬마 놈들, 내 랜스맛을 봐야 세상이 넓고 높은 줄 알겠구나. 그래, 너희 대가리를 모두 잘라-.”


“랄도경?”


“-돛대에 매달린 후에야 네놈들의 멍청함을 깨달을 거 같구나! 가서 내 말을 가져 오거라!”


“랄도경?”


“젠장, 뭐야? 앗, 담셀 아니십니까?”


간신히 정신을 차린 랄도경은 꽤나 짜증스런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은발의 처녀를 마주했다. 곧 그의 얼굴이 곤혹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아무리 기사단장이라도 호수의 레이디의 제자, 나아가 그녀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담셀을 무시할 수는 없다.


“네, 담셀 맞아요, 랄도경. 세 번이나 불렀는데 이번엔 대답해주실 건가요? 랄도경.”


“아, 예. 물론입니다. 호수의 레이디의 제자여.”


“계속 이러고 있을 거예요? 나 더운데.”


랄도경은 자신 있는 동작으로 주먹을 들어올리더니 가슴 앞에 마주 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귀한 담셀이여! 이제 곧 전투 준비가 끝날 것입니다. 이 랜스 끝에 저 건방진 드워프들을 꿰어 오겠습니다.”


당연히 델리느는 기사들의 용맹함에 감격해 탄성을 내뱉거나 하진 않았다. 그보다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드러냈다.


“랄도경, 맥주통 하나 때문에 일어난 전투는 명예고 뭐고 없을 거 같은데요.”


“예?”


“저 드워프들이랑 싸워 이긴다고 치고, 그 뒤엔 어쩔 작정이에요? 누가 길안내를 할지 궁금한데요.”


“아니 그건….”


“애초에 보급품에 손댄 건 이쪽 잘못이잖아요. 미안하다고 말하고 넘어가죠. 더워요.”


“그건 불명예입니다, 담셀이여!”


랄도가 억울하단 얼굴로 항변하려 했지만 이미 담셀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농노들이 들고 있는 방패 너머로 드워프 방진을 보던 그녀는 짧게 중얼거렸다.


“술 때문에 생긴 싸움은 술로 해결하는 게 좋겠지. 드워프 맥주도 한 번 마셔보고 싶었고.”


***


세상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그 분쟁의 원인도 엉망진창이었지만 해결은 그 이상이었다. 기쁜 수염 정찰대는 하도 황당한 나머지 담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따버린 맥주통 대신 재미있는 술상대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에 따라 그들은 해변가에 천막을 설치했다. 기쁜 수염 정찰대 입장에선 감히 드워프와 술상대를 할 인간이 있긴 했나 궁금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저쪽에서 나온 것이 드워프보다 겨우 머리 하나 큰 조그마한 처녀와 죽을상을 한 하녀라는 조합도 그들의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살벌했던 회담장은 담셀의 능청스런 화술에 금방 술판으로 바뀌었고, 그리고 그 결과 벌어진 것이 지금의 광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맥주잔, 비처럼 쏟아지는 맥주방울, 그리고 사방에서 일어나는 주먹질과 터지는 웃음소리. 그리고 그 광란을 주도하는 담셀인 것이다.

나중에 듣자하니 드워프 레인저 측에서도 이런 날씨에 방진을 짜고 있는 건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쓸데없는 전투가 일어나지 않고 사태가 해결된 것엔 고마워해야겠지만 그 결과가 이런 난장판이어서야 그럴 수도 없다. 지금쯤 기사들은 천막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나 궁금해 미칠 지경일 것이다.


“파핫하하하! 움기, 그것도 여자 중에 이런 물건이 있는 줄은 몰랐군!”


누군가가 허벅지를 텅텅 두들겨서 마르셀은 기겁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호탕한 인상의 드워프 레인저 하나가 맥주잔으로 마르셀의 허리를 두들기고 있던 것이다. 마르셀은 그가 담셀에게 맥주를 따라줬던 레인저 대장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맥주는 처음 마셔보는 데-, 포도주보다 괜찮네에-.”


“포도주? 그건 엘기 계집들이나 먹는 오줌물이다!”


“동의, 동의! 포도주 따윈 엘기나 먹으라고 해!”


혀가 꼬일 대로 꼬인 델린느가 휘청거리며 다가오더니 맞은편에 주저앉아, 결과적으로 마르셀은 술에 취한 드워프와 담셀 사이에 끼어버렸다. 아아, 차라리 트롤과 자이언트 사이에 끼이는 게 정신적으론 편안할 거 같았다.


“자네 정말 다위 아닌가? 으음, 자넨 다위가 분명해! 수염은 왜 깎았나?”


“이히, 너무 더워서-. 야! 마르셀! 너도 더 마셔라아.”


“됐거든요.”


“히, 멍청이. 아, 대장. 이쪽은 인생의 즐거움을 모르는 불쌍한 마르셀. 내 하녀에요.”


“하녀라고? 잔소리가 하도 심하기에 엄마인줄 알았다네!”


“실은 아내에요. 몰랐죠? 마르셀, 사랑해.”


“좋은 부부가 되도록 발라야께 기도드리겠네.”


“사랑하지 마세요. 기도하지 마세요.”


방금 만났으면서, 그것도 무기를 서로 겨누고 만난 주제에 어쩜 저리 밉살맞게 죽이 잘 맞을까. 마르셀은 히죽대는 고용주와 드워프를 번갈아가며 쏘아보았다. 담셀은 킥킥대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얹고 그 위에 턱을 얹었다. 드워프 레인저는 비슷한 자세를 취하려 했으나 팔이 짧아 실패했고, 그래서 대신 팔짱을 꼈다. 레인저가 웃었다.


“코슨 코퍼해머일세. 코슨이라 부르게.”


“델린느 드 아일. 델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수염 깎은 다위 델께서는 어인 일로 저 양철통과 함께 여기까지 오셨는가?”


“여기?”


“사우스랜드말일세.”


담셀이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는 여전히 주정뱅이의 미소가 그려져 있었지만 눈은 날카로웠다. 델린느는 술잔을 들어 올렸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손가락으로 컵 윗부분의 거품을 훑어내던 그녀가 되물었다.


“그쪽은요?”


“우리야 사라진 남쪽 형제들의 흔적을 쫓고 있다네. 내가 알기론 저 브레토니아 말박이들은 사냥을 위해 왔다던데, 자네 땅에 사냥감이 부족해서 이 끔찍한 땅까지 온 것은 아닐 텐데?”


“여기가 어떤 곳인데요?”


“다고라키의 똥구멍 같은 곳이지.”


다고라키가 뭐지? 듣고있던 마르셀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델린느는 그저 웃고있을 뿐이다. 코슨이라 이름을 밝힌 레인저는 어딘지 즐거운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200년 가까이 레인저 짓거리를 했지만 여기만큼 고약한 땅은 본 적이 없어. 날씨는 항상 지랄 맞게 덥고, 한번 비가 왔다 하면 물이 이마까지 차오르고, 숲이 얼마나 빨리 자라고 없어지는지 지도도 소용없다네.”


델린느는 ‘산책로에 잡초가 있더라.’ 정도의 얘기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러나 마르셀은 벌써부터 속이 메슥거리는 기분이다.


“어머.”


“어디 그뿐인가? 벌레들도 끔찍하게 크다네. 자네, 팔뚝만한 모기나 송아지만한 거머리 본 적 있나? 여기서 저 정글 안으로 100피트만 들어가도 그런 것들이 우글거린다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그런 것들이 귀여워 보일 정도지.”


마르셀의 얼굴은 이제 노랗게 질리는 단계를 넘어서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담셀은 히죽거릴 뿐이었다. 코슨은 이거 봐라, 라는 듯이 몸을 낮게 낮추곤 목소리도 그에 맞춰 내리깔았다.


“하지만, 뭣보다 끔찍한 건 리자드맨들이지.”


그제야, 담셀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그건 들어보고 싶네요.”


그녀의 질문은 조금도 혀가 꼬이지 않았다. 코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였다.


“브레토니아 양철통들이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지만, 우리 다위들은 술동무들을 귀중히 여기지. 그래서 자네에게만 충고하는 걸세. 여기 사냥을 하러 왔다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차라리 북녘의 혼돈 황무지를 가는 게 여기보단 안락한 사냥을 보장할걸세.”


코슨은 손을 들어올리더니 투구를 위로 제꼈다. 마르셀은 숨을 삼켰다. 가려져있던 이마와 뺨, 그리고 뒤통수까지 이어지는 긴 상처가 드러났다. 코슨이 입을 열자 흉터들이 꿈틀거렸다. 입 대신 말하는 것처럼.


“여기 동물들은 사냥 당하는데 취미가 없어. 사냥하는데 취미가 있지. 자네, 리자드맨이 어떤 놈들인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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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댕댕댕의 존나 커여운 팬아트.




출처: 워해머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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