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많이 길어 미리 미안해

지호씨 어디에요 나 집앞에 나왔는데

언젠가 한번은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안녕?"

그런데 하필

"어 안녕"

"여기 살아? 이 동네에?"

왜 이순간 마주쳤을까

"어. 넌 여기 어떻게"

지호 너와 마주칠지도 모를

"난 나는 그냥 여기 지나가는 길에"

이 곳에서

"그렇구나. "

 짧은 순간

"며 명함주까?"

"어? 아. 어."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나 나중에 차나 한잔 하자. 내가 지금 경황이 없어가지구"

지호 니가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오해할텐데

"그래 그러자. "

 혼자 상처 받을텐데.

지호 너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수동적인 대답들만 늘어놓다 그곳을 벗어났다

고정민

니가 받았다던 그 명함

내게 보여줬던 그 명함

불길한 예감은 늘 빗나가지 않는다

"여보세요"

"지호씨 어디에요"

 이제야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기에요"

"네?"

"왜이렇게 전화를

또 한번 마음 졸였던 짧은 순간들이

안 받으세요"

대답과 함께 쏟아져 나온다.

"경황이 좀 없었어요 미안해요 전화하려고 했는데. 들어가요"

다른때와 달리 지쳐보이는 

하늘거리던 그때의 모습과는 다른 너의 뒷모습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오늘 술이 좀 쑥쑥 들어가드라구요 오래간만에 마셔서 그런가"

 너는 아무렇지 않은듯 말하고 

"그러셨군요 같이 드셨어요? 그 제작사"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은듯 묻지만

"네. 대표님도 술을 잘하시더라구요. "

나의 눈을 피하며 대답하는 너는

이미 평소와는 다르다는걸 

나도 그리고 너도 잘 알고있다

"아 찬물 드시지 말고 이거 드세요 내일 속쓰려요."

"이거 침대 옆에 두고 주무세요 새벽에 숙취때문에 깰 수도 있으니까"

"따뜻하네요. 감사합니다."

"주무세요." 

"잘자 "

"지호씨 "

 왜인지 오늘은

"네?"

"오늘두 같이 잘까요?"

옆에 있어줘야 할것 같았다.

"아. 아니요 오늘은 좀."

그런데

"아. 네 죄송 합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오늘 좀 피곤해서요 그런날은 코를 더 심하게 골거든요."

"알겠습니다. 차 더 끓여 놓을 테니까 필요하시면 더 드시구요"

 너에겐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고정민

흔치않은 분이었다며 기분좋게 말하던 너에게 어떻게

"여보세요"

"접니다"

"네 알아요"

"늦었는데 죄송해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나는

"네 "

"글 다시 쓰게 되신거 축하드려요"

 고민하고 있다.

"다시 시작하셔서 "

두려워 하고 있다.

"정말 다행입니다."

불안해 하고있다.

"고맙습니다."

"잘자요. 지호씨"

너의 마음에 또 상처를 낼까봐

"네 세희씨두요."

"고정민?"

"으악씨!!!!!!"

"정민이?"

"하..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만나냐 제수씨 아니 지호씬 알고?"

"하긴 어떻게 알겠냐 이 기가막힌 상황을 그래서 뭐 같이 일한대?"

"아마두"

"니가 먼저 그 얘기 해야되지 않을까?? "

"그냥 오다가다 일하는 사이도 아니고

제작사대표랑 작가면은 서로 볼일이 많을텐데"

"뭐라고 해야할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길 해야하는건지"

"예전에 만났던 사이였다고 "

그냥 누구나 다 하는 흔한 연인관계였다고

"아니면"

"내 오기와 치기로 얼룩진 시간들이었다고"

상대방에게 상처만 남긴 나쁜놈이었다고

"뭐라고 얘기해도 상처받을거야 지호씨는 "

나는 비혼이라 얘기했던 지난날 언젠가.

그랬던 내가

뭐라고 얘기하든 나의 그 과거들이 사라질까

"투명한 사람이니까 "

"그 투명함에 내 얼룩을 담기는 싫어"

"아니 나 지호씨 얘기한거 아닌데 나 정민이 얘기한거야"

"정민이한테 지호씨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거 물어본건데"

아.. 정민이

"너 정민이 못잊은거 아니었어? 그래서 결혼도 그렇게 계약으로 한거고"

"어차피 지호씨는 그냥 계약관계잖아 너한테 그냥 세입자 아니었어?"

그래 그냥 계약관계였다

그냥 세입자일 뿐이었다

"정민이를 걱정한게 아니었구나."

어쩌면 살면서 한번쯤은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연습도 했었다. 

잘 지냈니 오랜만이네

하지만 만난 순간부터 내가 걱정했던건 단 한사람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였을까

내 인생에 남은건 이제

잃어버린 것인지 버린것인지 모를 시간들의 끝에는 

마르고 마른 잎들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혼자가 되어버린 현재만 남았고

남은 시간은 그 잎들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얼마나 허락될지 알 수 없는 날들엔

혼자 조용히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혼자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짐하며 살아왔는데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짓는 일은 더이상 하고싶지 않았었는데

너를 만나

누군가를 울리는 일은 더이상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너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은 없길 바랐는데

"어 저기오네 401호!!"

"그 일전에도 온적이 있었는데"

"네 압니다. 짐 놔두고 가신거"

"네 작가님이 결혼을 하신줄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그날 진짜 너무 취해서 기억이 잘. 진짭니다 믿어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보상하겠습니다 합의금은 원하시는대로"

무슨

"아 그러니까 일단 고소취하부터 어떻게 좀. 아 제가 지금 작품도 좀 들어가야되고"

"네?"

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던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지난 어느날

"가도가도 끝이 안나는 길을 걸어가는 꿈을 꿨어요"

너는 그렇게 끝을 모를 길을 걸어 나에게 왔고

"아 저는 그러니까 아시는줄 알고.."

부서진 마음으로 모든걸 포기했었구나

"그 작가님이랑 얘기해야할 부분인것 같네요 그럼 실례 많았습니다 작가님이랑 얘기할게요"

타의에 의해 부서져버린 너의 꿈

"앉아 나랑 얘기해 똑바로 다."

나를 진짜 남편이라 믿었던 너의 어머니의 부탁

"세희씨 내 부탁 딱 두개만 해도 되겠습니까?"

"지호가 나중에 글 쓰고싶다 하면 글 쓰게 해주면 안되겠습니까 "

"나중에라도 다시 글 쓸수 있게 지 꿈 포기 안하고 엄마처럼 안살게 그리 해주소"

"여보세요?"

"좀 많이 때렸더라"

"피해가 갈까 지호씨한테"

 너에게 폐가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괜찮을거 같아 마침 그 쪽 대표랑도 방금 만나고 왔구 친분이 좀 있어 일 더 크게 만들지 않을거야"

"그래 고맙다."

"저기 내가 지호씨 남편인거 그게 너한테 영향이 있을까. 지호씨 글 쓰는 일에"

그리고 그 약속을 앞으로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온거야? 내가 옛사랑의 앙금때문에 혹시라도 작가님 일을 망칠까봐? 해할까봐?"

"어 "

"나 결혼할 때 지호씨 어머니께서 부탁하신게 있어 지호씨가 다시 글 쓰고 싶다고 했을 때 글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셨어"

"근데 사실 난 걸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폐가 되지 않겠다고만 약속했어. 근데"

 하지만

"너는 알잖아 지호씨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

지금의 나는 해줄 수 없는 일

"그래서 나를 찾아온거구나. 12년만에 만난 엣연인한테 한다는 말 하고는. 쫌 밉다."

"미안해 "

"근데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더라고"

"글 쓰는걸 왜 그만두게 됐는지 오늘 알게 됐는데" 

 그날밤 왜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내게 왔는지

"휘두를 수 있는게 주먹밖에 없드라고"

이제야 알게된 지금 

"좋은 제작자라고 들었어"

"정민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아내가 아닌 작가로 봐달라고 부탁할게"

이것뿐

말은 사람의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12년동안 내 마음속에서 살아남았던 말들이 

어느순간 이렇게 없어졌을까.

그렇게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던 말들이었는데

"나도 물어볼게 있어"

"너 작가님한테 고백해본적 있어?"

"어?"

"고백"

"좋아한다. 아니면. 뭐 그런 비슷한 고백같은거 해본적 있냐고"

"아니 난 뭐 굳이 그런걸 말로"

너와 나의 마음이 닿았고 너의 눈빛만으로도 알수 있다 그런데.

"없구나"

"그거 알아?"

나는 지호 너에게

"너 나한테도 한번도 해준적 없다. 고백"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구나

"가볼게"

"그래"

"말도 사람 마음에 가야 살아남는거 알아? 

입밖으로 뱉어야만 마음에 가서 닿는다고"

우연이 아니었다.

그 말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일부러 선 긋는거 하지 마세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중에 어떤 해는 그냥 흘러가고 또 어떤 해는 부서지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되는거에요. 그러니까"

그사람의 따뜻한 말들이 쌓이고 쌓여

그런 너의 마음이

"세희씨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제를 살아봤다고 오늘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내 죽은 마음에 대신 살아남았다.

나에게 와 닿았구나

"그래 나도 알아 엄청 어색한거. 그래도 생각보다 잘어울린다."

 오늘은 나도 너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도록

"오늘 한번 잘 해보자."

말할게.

"수지씨네 갔다 오신거에요?"

"네 맥주한잔 했어요"

"그러셨군요"

손을 잡고 싶은데.

"오늘 계약은 잘 하셨어요?"

"네 대표님이 워낙 좋은 분이시라."

"네. 다행이네요."

"피곤해 보이시네요?"

"좀 지치네요 오늘따라."

지친 너를 위로해주고 싶은데

오늘 너는 내게서 너무나도 멀다.

"어 고양이. 마중나왔어?"

 우리.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 마침 저도 있습니다 드릴말씀."

너에게 상처를 주었었던 그 말.

"이게 잘 안보이나?"

 이제 그 상처를 보듬을 수 있게

"저 이제"

"우리."

"아 먼저 말씀 하세요."

"네 "

"그러니까 이제 우리."

조금 지쳐보였던 너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아닙니다 지호씨 먼저 말씀 하세요."

"이제 우리. "

그런데 너는 내게

"계약을 그만 종료했으면 좋겠어요."

이별을 고한다.

말은 

후회는

언제나 

언제나

마음보다 

늦다.

늦다.

세희 너의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는 말할 수 없다 

너의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겠지.

이해하려고, 닿으려고 노력해도 

너를 오롯이 이해할 수도, 가 닿을 수도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니가 겪었을 사랑의 아픔, 

그로 시작된 12년의 외로웠던 자신과의 싸움.

우리는 쉽게 널 이해해. 이해할 수 있어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모두 다 알고 있지.

그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걸.

같은 일을 겪는다 해도 니가 살아온 세월의 쌓임과 내가 살아온 세월의 쌓임이 달라서 그 어떤 같은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다만 너의 모습과 마음의 소리만으로도 내마음이 이렇게 우는건 너의 그 시간들을 내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일까

이제 다시 불이 꺼진 너의 마음이 

언제 다시 그 빛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미리 말을 안했었더라고. 내가 올리는 회차 리뷰는 세희 시점이야. 감안하고 봐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