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깜빡하고 안 챙긴 관계로 인증은 없음.


우선 슈타인웨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작은 홀에 풀콘서트 그랜드피아노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얼마나 위풍당당한지. 음향이 좋은 자리는 아닌 듯하여도 손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개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op.27

1악장 베토벤이라는 거장의 압박감에 약간 주눅이 들었거나 첫 곡이라 긴장했거나 둘 중 하나 같다. 팔에 힘이 들어가서 떨리는게 보였다. 터치 중의 미스로 음이 불안정하게 떨리는 부분이 좀 있긴 했으나 그래도 피아니스트는 피아니스트. 해석은 좋았다.
2악장 좋았다. 도돌이표를 적용한 게 내게는 가산점.
3악장 내맘에 안들었다. 1악장에서 2악장 3악장으로 넘어오면서 점차 손이 풀려가고 첫 부분의 고조되는 감정을 잘 살린 것은 좋았으나, 6도로 미미미미미레#도#~ 하면서 8분음표를 치는 부분에서 너무 절제해서 친 것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다. 또한 F#dim7과 Gdim7 페르마타 부분을 포르테시모로 친 것은 좋았지만 그 직전부분까지를 너무 사려서 치는 바람에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ff를 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슈타인웨이 풀콘서트 모델을 완전히 살린 것 같지는 않은 타건.

그러나 다음 곡들을 듣고 나서 월광은 그저 손풀기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 "사계" Op.37b

1, 3, 4, 6월을 연주했다. 각 곡의 동기가 된 시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어주고 연주했다. 1월 시를 읽고나서 1월만 연주했고, 3, 4월 시를 읽고 이어서 연주했다. 6월 시를 읽고는 6월과 리스트 타란텔라를 이어서 연주했다.

1월 정말 깔끔한 1월이었다. 슬라브의 감성과는 다른 1월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이후 곡들에서도 로씨야 감성이랑은 다른 백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3월 역시 깔끔했다. 종달새 소리를 잘 표현했던 게 포인트.

4월 ㅁㅊㄷ ㄹㅇ ㅁㅊ... 미친감성이라고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4월 시를 읽으면서는 스노우드랍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봄헌병꽃이라 낭송할때 봄헌병꽃이라고 하면 이상해서 꽃이름을 말할 때는 스노우드랍꽃이라고 말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다.
6월 뱃노래. 좋았다. 특별할 것 없이 그냥... 사실 더 좋았는데 그 다음에 바로 친 타란텔라에 묻혔다.


리스트 순례의 해 제2년 "베네치아와 나폴리" S.162 中 3번 "타란텔라"

타란텔라 ㅁㅊ 베토벤을 좀 이렇게치지... 숨도 안쉬고 지텨봤다. 러닝타임 대충 7분? 8분? 동안 명연설 하나 들은 기분이었다. 고작 1부 끝인데도 커튼콜을 두 번이나 했을 정도. 타건은 힘이 있었고 유려한 테크닉에... 반할 뻔했다. 끝나고 나서 수줍은 듯이 인사하지만 않았어도 더 좋았을 텐데. 갭모에인지 뭔지로 좋아할 인간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곡이 끝나도 위풍당당한 모습을 원했다.

인터미션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그림을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띄우고 그 앞에서 피아노를 쳤다. 프롬나드는 그림 안보여주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그림자로 발걸음을 표현한 듯했는데 좀 신박했다.
연주는 정말... 진짜 개대박이다 시발. 이 씨발! 욕나오게 잘쳤다. 처음 프롬나드에서 힘차게 들어가는 것부터 마지막 키예프의 성문 끝음까지 어느 음 하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마치 무소르그스키가 자기 작품을 연주했다면 이렇게 연주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연주였다. 특히 키예프의 성문의 템포가 정말 맘에 들었다. 키신이나 조성진이나 관현악 편곡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뭣때문인지는 몰라도 템포를 정말 빨리 잡는 경향이 있는데, 정말 'Modest'한 템포로 나를 휘어잡더니, 여유있고 확실한 타건에서 묻어나오는 위풍당당함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클라스를 증명했다. 중간에 템포가 조금 빨라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결국 그것마저 납득이 가게 되는 연주...

그러나 역시 끝나고 인사할 때 보여준 수줍음은 좀 깼다.

앵콜

차콥 사계와 리스트 헌정을 쳤는데 역시 시를 읽고 쳤다. 잘 기억은 안 난다. 전람회의 그림 임팩트가 좀 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