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북경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나라 유수신문의 북경특파원이라고 소개 하면서 대하사극 ‘연개소문’에서 당태종의 죽음을 고구려와의 전쟁, 특히 안시성싸움에서 눈에 화살을 맞고 죽은 것처럼 묘사 된데 대하여 중국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으니 사실이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이 난을 통하여 말했지만 그러한 기록은 후대에 우리나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료를 믿을 수 있는지는 아직 저로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시청자는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려고 하면 될 것입니다.
시청자들이 궁금할 것 같아서 당태종 이세민의 병력을 자치통감에서 뽑았습니다.
1. 종기 : 이 시대에 종기는 무서운 병입니다. 후백제의 진훤도 이 병으로 죽었으니까요.
2. 풍질 ; 요즈음의 중풍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이것도 무서운 병이고요.
3. 이질 ; 요즈음도 무서운 병인데 태종은 이질로 죽은 것 같습니다.
자치통감 198권 ~ 199권
회군하는 이세민
황상은 요좌(遼左, 요동성)지역에는 일찍 추워지고 풀은 마르고 물을 얼어서 병사와 말들이 오래 머물지 못하며 또한 양식이 장차 떨어지려 하기 때문에 계미일(18일)에 군사를 회군하도록 칙령을 내렸다.
먼저 요주(遼州, 요녕성 요양시)와 개주(蓋州, 개모성; 요녕성 무순시) 두 주(州)의 호구를 뽑아서 요수(遼水)를 건너게 하고 마침내 안시성 아래에서 군사를 시위하면서 선회(旋回)하였는데, 성 안에서는 모두가 흔적을 감추고나오지 않았다. 성주(城主)는 성에 올라가서 절하며 인사하니 황상은 그가 굳게 지킨 것을 칭찬하고 비단 1백 필을 내려주면서 임금을 섬긴 것을 격려하였다.
종기가 난 이세민
임진일(28일)에 거가(車駕)는 정주를 출발하였는데, 12월 신축일(7일)에 황상은 종기가 나는 병에 들어 보연(步輦)에 올라서 갔다. 무신일(14일)에 병주(幷州)에 도착하니 태자가 황상을 위하여 종기를 입으로 빨았으며 연(輦)을 부축하여 걸어서 좇기를 며칠 동안 하였다. 신해일(17일)에 황상의 병이 나아서 백관들이 모두 경하하였다.
풍질이 난 이세민
이 달에 황상은 풍질(風疾)을 얻었는데 경사가 무더운 것을 고생스럽게 생각하였다. 여름 4월 을축일(9일)에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태화폐궁(太和廢宮)을 수리하여 취미궁(翠微宮)으로 하라고 명령하였다.
계속 병중인 이세민
황상의 병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오로지 보양(保養)만 하려고 하였는데, 경오일(8일)에 군사와 국가의 기밀에 관한 것을 나란히 황태자에게 위임하여 처결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이에 태자는 하루건너 한 번씩 동궁에서 정치에 관한 사무를 보고받았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들어와서 약과 음식 먹는 것을 시중을 들면서 옆은 떠나지 않았다.
이질로 죽은 이세민
황상은 이질(痢疾)이 심하여 고생을 하였는데, 태자가 밤낮으로 옆을 떠나지 않고 혹은 여러 날 먹지를 않았으며, 머리칼은 흰색으로 변하였다. 황상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네가 능히 효성스럽고 사랑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나는 죽어도 한스럽지 않다.”
정묘일(24일)에 병이 심하여져서 장손무기를 불러서 함풍전(含風殿)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황상이 누워서 손을 이끌어 장손무기의 턱을 어루만지니 장손무기는 우는데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황상은 끝내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이로 인하여 장손무기로 하여금 나가게 하였다.
기사일(26일)에 다시 장손무기와 저수량(褚遂良)을 불러서 침실로 들어오게 하고 이들에게 말하였다.
“짐은 지금 모두 이후의 일을 공들에게 맡기고자 한다. 태자는 어질고 효성스러운 것은 공들도 아는 바이니 그를 잘 보필하여 이끌어 주시오.”
태자에게 말하였다.
“장손무기와 저수량이 있으면 너는 천하에 관하여 걱정하지 말라.”
또 저수량에게 말하였다.
“장손무기는 나에게 충성을 다 하니 내가 천하를 갖게 된 것은 대부분 그의 힘이었다. 내가 죽으면 참소하는 사람이 그를 이간시키게 하지 말라.”
이로 인하여 저수량으로 하여금 유조(遺詔를 초(草)하게 하였다. 조금 있다가 황상이 붕어하였다.
태자는 장손 무기의 목을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통곡하는데 곧 기절하려 하자 장손무기는 눈물을 훔치며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여 안팎을 안정시키도록 청하였으나 태자가 슬피 울부짖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장손무기가 말하였다.
“주상께서는 종묘와 사직을 전하께 부탁하시었는데, 어찌 필부(匹夫)를 본받아 오직 울기만 하십니까?”
마침내 비밀에 붙이고 국상(國喪)을 발표하지 않았다.
경오일(27일)에 장손무기 등이 태자에게 먼저 돌아가도록 청하였고, 비기(飛騎)와 경병(勁兵)과 예날 장수들이 모두 좇았다. 신미일(28일)에 태자가 경성에 들어왔다. 대행은 마여(馬輿)에 실었는데, 시위하는 것이 평일과 같았으며 태자의 뒤를 이어서 도착하여 양의전에 머물게 하였다. 태자좌서자인 우지녕(于志寧)을 시중으로 삼고, 소첨사인 장행성을 겸시중으로 삼았으며, 검교형부상서이며 우서자이고 겸이부시랑인 고계보를 겸중서령으로 삼았다.
임신일(29일)에 태극전에서 국상을 발표하였으며 유조(遺詔)를 선포하고 태자가 즉위하였다. 군사와 국가에 관한 큰일은 중지하거나 빠뜨릴 수 없었지만 평상적인 세세한 업무는 이를 유사에게 위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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