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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꿈. 2006년 늦은 봄 YVR-ICN앱에서 작성

곱쓰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4 07:51:20
조회 138 추천 3 댓글 9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는 건 3년 반만이었다.

부모님 없이 외지에서 3년반을 보내면서
나는 어린 나이에도 지쳐있었고, 그래선지 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이륙하며 발밑에서 내는 진동이 사뭇 설레었다.
외계인으로 살아온 업보를 신발털듯 간단하게 지우고 푸른별 지구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몽롱한 기분에 취한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내 또래의 여자애였다. 나처럼 얇은 선의 타원형 안경을 끼고 그 당시의 아이들처럼 부모님이 사준 게스, 리바이스같은 캐주얼 브랜드 로고가 박힌 긴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척 봐도 나같은 유학생이었다. 중학교에서 중국인이나 인도인 친구 한 명, 백인 친구 한 명쯤과 같이 어울려다니고 학기말에 성적우수상을 받았을 것 같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13시간 비행에서 대화를 트게 된 건
부스스 잠에서 깨 조식을 먹고 난 뒤부터였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부터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다가 덮길래 나같이 부모 손에 떠밀려 유학온 가엾은 업생인지 물었을거다. 답변은 기억안나. 나도 질문 몇개 답변해주고 나보다 나이 몇 개 많다길래 말 편하게 놨지.

그 다음엔 무슨 책 읽냐고 물어봐서 말을 걸었을거다.
뭐라뭐라 설명하던데 내 둔한 뇌로는 이해도 안됐고 기억도 안난다. 대충 듣다가 학교에서 읽은 책 얘기로 받아치고 말았을거다.
사실 술에 물탄 것같은 대화내용따위는 기억도 안난다.
(썰 읽는데 대화내용이 적혀있다면 그건 90프로 창작일거야.)
근데 기억나는 건, 그 사람 말을 듣는 게 재밌었다.
살짝 빠르다가도 느긋한 발음으로 책 내용을 설명해주는 게 나같은 코묻은 범생이에게도 순수하게 다가왔고
책 말고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조금씩 졸기 시작했는데 졸지 말라고 했던지, 자기가 한 얘기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을 했던 것 같다.
도착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 그렇게 졸다가 대화를 이어가다가 또 간식을 먹고 졸고.

그러다가 도착하기 30분쯤 전, 귀국에 대한 설렘이 다시 차오를때쯤. 서울 어디에 사냐고 물어보고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당황하더라.
아니, 왜? 진지하게 물어보기에 그냥, 대화가 재밌었다는 말로 답했던 것 같다. 닮은 부분이 느껴져서 형한테 시달리던 나한테는 없는 누나같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뭐든지 잘 풀릴 것 같은 막연한 희망도 섞여있었을 것 같다.
조용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친구들 연락처가 적힌 수첩을 보여주자 별 말 없이 자기 이름과 연락처를 수첩 연락처 칸에 작게 적어주어 돌려주었다.
앞좌석에서 꼬마애 둘이 연락처 공유하는 꽁냥거림을 재밌게 보며 뒤돌아볼 때쯤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했고, 나는 한국에 도착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빙긋이 웃으며 언제 연락할거냐고 묻길래, 글쎄? 바로? 바로는 좀 힘들대서 한달 뒤? 한달 뒤면 까먹지 않을까?하길래 그럼 그 중간에 하지 뭐, 웃고 대화를 마쳤다.
그렇게 입국심사대, 수하물 찾는 곳에서 어색하게 헤어지고 나도 짐을 찾고 아빠랑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이성이라고 인식하기에는 어렸지만 처음으로 낯선 이성에게서 연락처를 받아낸 경험이었다.
이성적인 호감이 있었냐면 없진 않았을텐데, 난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 관심으로 이어지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별다른 생각 없이 접근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잊게 되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연락처가 적힌 수첩은 서랍에 넣어졌다. 몇 번 이사를 거치면서 아마 잃어버렸을것이다. 연락을 하더라도 무슨 얘기를 할지도 몰랐고 이성에 관심을 갖기에는 로봇처럼 주어진 입력값대로 살던 어린애였기 때문에 연락을 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새벽 꿈에 그 일이 나타난 건 어제 대화를 나눈 사람에게서 비슷한 인상을 받아서일거다. 푸른 별 지구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 나란히 앉아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었던 유년기. 당신에게서 느낀 친절함은 햇살 냄새 묻은 이불같이 포근해서 언제까지고 안겨있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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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혹시나 프리맨형이 쓴 글 본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말하는 건데, 나 물리치료사 아님
그냥 취미?랄까 개인적 수요로, 건강, 취미, 공부의 목적으로 이것저것 배우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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