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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28)

유희자(118.43) 2017.08.06 00:21:26
조회 676 추천 17 댓글 6








전작 -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27)









인간이 함부로 접할 수 없는 심해(深海). 제 욕심을 위해 온갖 걸 파괴하고 쟁취했던 인간조차도 닿을 수 없었던 깊은 바다에는 기괴한 것들이 질서를 지키며 살고 있다. 광활하고 위압적인 바다를 마음껏 누비며 사는 생물체는 몇 되지 않는다. 지금, 네버랜드 아주 가까이에서 밤 그림자와 같은 색깔로 완벽히 몸을 은신하고 있는 이 괴수는 능히 바다의 지배자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으리라.

거대한 몸집은 마치 산과 같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무릎이 꿇릴 정도로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괴수의 모든 것이 다 어마무시하게 컸기 때문에, 음성조차도 일개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지진과 같은 진동이 괴수가 울부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붉은 빛이 잠시 사라졌다 나타났다.
쿵! 쿵!



거대한 몸체가 네버랜드를 둘러 싼 보호막과 부딪혔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둔탁한 굉음이 바다 전역에 널리 퍼졌다. 놀란 심해 생물들이 몸을 움츠리고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보호막이 요동쳤다. 괴수는 다시 ‘발’을 들어올려, 보호막을 내려쳤다.



쿵!
쩍, 쩌적.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 사이로 바깥바람이 들어왔다.



네버랜드에 새 바람이 불어들었다.















은은한 방울소리와 함께 기억이 사라졌다.



“-”



안나는 제 목을 움켜쥐었다. 기억 속 안나 P. 팬이 그랬듯, 그 기억을 보고 있던 저 자신도 말 대신 방울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결국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어, 켁켁 하고 제대로 된 기침소리가 나올 때까지 진득한 사투를 벌였다. 손가락이 침 범벅이 되었다. 안나는 퉷 하고 침을 뱉었다. 검은 물 탓인지 제 침 색깔이 금색으로 번쩍거렸다. 무심코 길을 잃으면 침을 뱉어서 이정표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빛이 났다.



“켁켁. 오. 오? 좋아. 내가 요정처럼 말하면 대화가 안 되잖아.... 아... 대화가, 되는구나.”



그나마 있는 기억을 주워 담아보니, 후크가 팅커 벨과 ‘대화’를 나눴던 걸 몇 번 본 것 같았다. 근데 그걸 의문 없이 받아들인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른들이나 선택받지 못한 아이들은 요정과 대화할 수 없는데, 후크는 그게 아니었다.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담 후크는 어른이 아닌 건가? 아니면 아직... 웬디인걸까?”



혹은 둘 다 이거나.
안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갑자기 10배는 똑똑해진 것 같았다. 생애 제일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있어도 제 성정이 어디 안 간다고, 금세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똑똑해! 하고 자랑이 하고팠다. 말끝마다 멍청이 멍청이 하는 후크도 아무 소리 못할 것 같았다. 곧 1분도 안 가서 어깨가 축 처지긴 했지만.



“음. 기억을 다 찾으면 더 똑똑해질 거야. 지금은 더 단서가 필요해.”



그래도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 가셨다. 안나는 다시 한 발을 내딛었다. 모험을 많이 한 만큼 환상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급류에 휩쓸리듯 환상에 떠내려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간절해지지 않으면 된다. 환상이 현실이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으면 된다. 현실에 발을 담근 채로, 멀찍이 떨어져서 환상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그게 어려운 건데. 요정들은 다 바보인가?”



요정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곰곰이 생각에 몰두한 안나는 괴리감을 느꼈다. 요정과 저 자신을 따로 구분해서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안나 P. 팬은 요정의 사랑을 받는 아이라는 특별한 취급을 받아왔다. 요정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인간, 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럼 난 어느 쪽이지?”



똑똑해졌다 싶었는데 도로 멍청이가 된 것, 아냐, 난 멍청하지 않아. 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기억을 더 봐야겠어.”



안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검은 물 천지였다. 하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요정 가루를 탈탈 털어서 마구잡이로 뿌려댔다. 가루의 반 이상이 안나 콧속으로 들어갔다. 엣취 엣취 하고 재채기가 나왔다. 눈물이 글썽였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을 비벼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가려진 안나는 요정 가루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요정 가루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안나의 몸을 감쌌다. 서늘했던 몸이 따뜻해졌다. 요정 가루의 일부가 안나의 귀속에 들어가, 요정처럼 소리를 내었다.



딸랑. 딸랑딸랑.



“뭐?”



안나는 눈을 감은 채로 되물었다. 딸랑 딸랑. 요정이 뭐라고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요정들이 제각기 다르듯이 요정들의 목소리, 그러니까 방울소리도 잘 들어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방금 들린 방울소리는 틀림없이 팅커 벨의 것이었다.



“벨이니?”



이번에 또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앞이 안 보이는 이상 환상이고 뭐고 가릴 때가 아니었다. 손으로 더듬어 봐도 잡히는 건 물 뿐이었다. 안나는 귀를 기울였다. 눈이 없어도 귀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딸랑. 딸랑딸랑딸랑.



“아 정말! 너 뭐라고 지껄이는 건데 이 바보 멍청이 요정아!”



딸랑딸랑!
안나는 본능적으로 방울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기분이 팍 상하는 게, 분명 욕이다. 안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을 뻗어, 허공을 낚아챘다.



<이거 놔!>
“흥, 내가 못 잡을, 어 진짜 잡혔네?!”



왜 잡혔어! 안나가 황급히 손을 풀었다. 그러자 흐릿했던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필 제일 먼저 보인 게 표정이 잔뜩 구겨진 팅커 벨이다. 그것도 기억 속의 ‘팅커 벨’이다. 또 다시 주인공은 모르는 연극이 시작된 것이다.



“하는 수 없지. 보긴 봐야하니까.”



안나는 욕을 잔뜩 퍼붓는 팅커 벨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빨리 대응해라, 나 자신! 그리고 저 요정을 가만 놔두지 마! 하고 안나 P. 팬을 응원하면서 말이다.



“미안. 네가 잡힐 줄은 몰랐어.”
<흥!>



그러나 안나 P. 팬은 착한 아이처럼 굴었다. 안나는 저도 모르게 “잠깐, 뭐?”라고 말해버렸다. 하지만 팅커 벨은 이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뾰롱통해하기까지 했다.



<나한테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미안하다니까? 그러니 얼른 앞장서도록 해.”
<어휴, 진짜 내가...>
“히히. 역시 벨 밖에 없어.”



팅커 벨은 제 신세한탄을 해대며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뒤를 따르는 안나 P. 팬은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안나도 저들을 따라 날아올랐다. 



“아-”



유난이 달이 밝게 떠올랐던 밤. 쌀쌀했던 밤공기. 차가웠던 요정들. 유일하게 제 의견에 따라 준 팅커 벨. 거대하고 견고한 성. 맨 꼭대기 다락방.



<왜 이렇게 먼데까지 온 거야?>
“‘그녀’가 있으니까!”
<내 말은...>



네버랜드 역사상 ‘팅커 벨’이 ‘웬디’를 좋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웬디를 죽이려고 한 팅커 벨도 종종 있을 정도다. 이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천하 태평한 안나 P. 팬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너도 보면 좋아할 거야. 아니, 그 어떤 사람도 그녀를 감히 싫어할 순 없을 거라구.”
<너, 바보니? 네 입으로 말했잖아. 그 계집앨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가둬놨다고!>



아 맞다. 안나 P. 패는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러다 변명하듯 재빨리 팅커 벨의 말을 되받아쳤다.



“그건 나쁜 어른들의 음모야. 내가 그녀를 네버랜드에 데려가지 못하게 꽁꽁 숨겨두는 거라구!”
<말이 안 되잖아! 네버랜드는 어른들에게 버려진 아이만 데려올 수 있다고 이 멍청아! 그런데 쫓겨나기는커녕 그 앨 숨겨둔다고? 이러니까 여왕님이 그 앤 안 된다고 하신 거야>
“아무튼 데려갈 거야. 왜냐하면... 그녀는 너무 슬퍼보였는걸. 매일 밤마다 운단 말이야. 내가 그녀를 구해줘야 해.”



안나 P. 팬의 결심은 확고했다.
경비병의 눈을 피해 다락방 창문을 연 안나 P.팬은 안으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소녀가 살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방이었다. 안나 P. 팬은 이 소녀를 반드시, 꼭, 절대로 데려가기라 다짐했다.



“피터 팬.... 정말 왔네요?”

“난 약속을 잘 지켜요. 헤헤.”



팅커 벨은 심술이 났다. 뭐든 새로운 것만 보면 홀딱 빠지는 안나의 습성을 감안해도, 저렇게까지 정신 나간 모습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저 계집앤 내 적이다-팅커 벨은 작은 심장에 이 문장을 깊이깊이 새겨 넣었다.



“약속한대로 데리러 왔어요!”



소녀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난 갈 수 없어요.”
<것 봐. 안 간대!>
“왜요?”



안나 P. 팬은 팅커 벨을 말 따윈 씹어버리고, 소녀에게 집중했다.



“난 저주받았는걸요. 난 이 저주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께서 죽어도 용서치 않겠다고...”



소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안나 P. 팬은 그녀를 안아주며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소녀는 안나 P. 팬을 밀어내었다.

 


“만지면 안 돼요! 당신도 저주를 받는다고요!”
“저주? 안 받아요! 무섭지도 않고. 난 안나 P. 팬, 세상에서 제일 용감하고 잘난 아이란 말이에요.”



안나 P. 팬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소녀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렸다. 팅커 벨이 옆에서 꽥 소리를 질렀다.



<너 손!>



안나 P. 팬은 제 손이 조금씩 얼어붙는 걸 쳐다보았다. 동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저릿저릿한 통증이 왔다. 그러나 안나 P. 팬은 콧방귀를 뀌며 얼어붙어가는 손을 핥았다. 당연히 낫지 않았다. 소녀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서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기가 막혀서 정말. 팅커 벨은 한숨과 함께 안나 P. 팬의 손 위로 요정 가루를 뿌렸다. 얼어 붙은 부분이 빠르게 녹아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픔도 사라졌다. 하지만 팅커 벨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나 P. 팬이 뭐라고 말할지 뻔했기 때문이다.



“봐요! 괜찮다니까!”
“그, 그래도...”



폼이라는 폼은 다 잡으면서 소녀를 회유하는 꼴은 참 웃겼다. 그 꼬드김에 홀라당 넘어간 소녀도 웃겼다.



<도망가는 거네>



소녀는 아직 팅커 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설사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막다른 길에 몰려있던 소녀에게는, 그 말이 들려도 들리지 않은 척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녀의 상황은 벼랑 끝에 내몰려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빴다. 선택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기 위해선.



<도망가는 거야. 비겁하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시끄럽게 방울 소리를 내는 요정이 못마땅하게 여겨진 안나 P. 팬은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날렸다. 언제는 벨 밖에 없다면서 노래를 부르던 주둥이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팅커 벨은 속으로 화를 삭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팅커 벨은 안나 P. 팬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 가요!”



안나 P. 팬은 소녀의 몸에 요정 가루를 뿌렸다. 그러나 소녀의 몸은 떠오르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안나 P. 팬의 품에 안겨 가야 했다. 물론 안나 P. 팬는 입이 찢어질 듯이 좋아했다.
팅커 벨은 이 꼴을 견디다 못해 먼저 네버랜드로 폴폴 날아가 버렸다.



새벽을 가로질러서야 간신히 네버랜드에 도착한 둘은 몹시도 지쳐있었다. 그래도 안나 P. 팬은 힘든 내색을 감추고는 끝까지 신사다운 모습을 유지했다.



“맛있는 걸 가져올게요. 여기서 잠깐 기다려요!”



안나 P. 팬은 소녀를 나무의자에 앉힌 다음, 성큼성큼 숲으로 들어갔다. 안나는 저 자신을 쫓아가기로 했다. 소녀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안나가 막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가지 말아요.”



소녀가 안나를 붙잡았다. 안나 P 팬이 아닌 진짜 안나를 잡고, 눈을 마주하고, 애원했다. 안나가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자, 소녀의 형상을 한 기억이 다시 애원했다.



“가면 안 돼요. 부탁이야. 나와 함께 있어줘요.”
“이건, 그... ‘기억’이 아닌 거야?”
“가지 말아요! 제발!”



안나 P. 팬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놓친다. 초조해진 안나는 붙들린 손을 떼어내고 말했다.



“미안해. 나, 가야 돼.”
“기억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내가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구요! 알아선 안 돼요!”



미련을 가진다거나 뒤를 돌아보면 영영 헤어 나올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안나는 처음으로 소녀를 무시하고 달렸다.



뒤에서 기억이 절규했다.














그곳은 낯선 숲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수십, 수백 그루의 키재기 나무였다. 안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키재기 나무는 단 한 그루밖에 없을 터인데, 그 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룰 수 있을 만큼 많이 있었다.
안나는 나무 가까이 갔다. 그곳엔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잠이든 한 남자 아이가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낯이 익었다.



“아-”



처음 보는 아이가 아니다. 어째서 잊고 있었던 걸까.
안나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털썩 꿇고는 기다시피해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 아이의 이름을 한참이나 생각해내다가, 간신히 입 밖으로 이름을 꺼냈다.



“닙, 닙스... 닙스니?”



아이는 대답이 없다. 안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볼을 만졌다. 아이의 육신은 안나의 손이 닿자마자 한줌의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내를 풍기는 금빛 가루는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아냐- 닙스는 분명 요정들이 집으로... 돌려... 보냈...다고...”



안나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뇌며 눈앞의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다가 눈을 돌려 다른 나무들을 쳐다보았다. 한 그루에 한 명씩, 아이들이 닙스처럼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괴성을 지르며 아이들을 일일이 한 명씩 만져보았다. 홉킨스, 조, 에버린, 제이 주니어, 프랭크, 요셉... 아이들은 안나의 손이 닿자마자 요정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안나는 끅끅대며 울었다. 숨이 막혀 꺽꺽대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안나는 미친 사람처럼 무릎걸음으로 바닥을 질질 기어 다니며 숲을 헤맸다. 그러다 안나는 숲의 중심부에까지 들어갔다. 공터나 다름없는 숲의 중심부에는 단 한그루의 나무만이 있었다.

그 나무아래 소녀가 앉아있었다.



소녀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잠들어있었다. 소녀의 몸을 지탱해주고 있는 키재기 나무는 이제껏 봤던 키재기 나무 중에도 월등하게 컸다. 마치 소녀를 양분으로 삼아 몸을 비대하게 키운 것 같았다.
또 손을 대면 다른 아이들처럼 사라질까봐 겁이 나서 만지지는 못했다. 만지지 않는 대신 안나는 소녀를 불렀다.



“웬, 웬디.”



안나의 부름이 소녀를 깨웠다. 소녀는 눈을 감은 채로 밭은기침을 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기침을 멈춘 소녀가 상체를 들었을 땐, 웬디도 후크도 아닌 ‘엘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죽음이 한껏 드리워져 있어서 안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었다.



“웬디가 아니야.”



엘사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애써 말을 이었다.



“널 위해서라면 웬디라도 후크라도 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어. 널 기만하는 일이었어. 내가... 이번엔 내가 널 구해줄게.

-살아줘.”
“죽지 마!”



죽지 마! 죽지 마! 안나는 엉엉 울면서 엘사의 품을 파고들었다. 엘사는 뿌연 눈으로 안나를 응시했다. 엘사의 몸은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엘사는 양 손을 들어 안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살아서 어른이 되렴.”



엘사의 몸이 천천히 부서져 내려, 이윽고 한 줌의 가루가 될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나는 숨 쉬는 것도 잊고 요정 가루를 거머쥐었다. 차가웠다.



“추워. 추워. 아파...”



엘사의 온기에 전염이라도 된 듯, 걷잡을 수 없는 추위를 느낀 안나는 제 몸을 끌어안아 어떻게든 체온을 유지하려 했다. 숨이 가쁘다.



“아파...”



처음은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뚝뚝 끊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이내 팔이 떨어지고 목이 떨어졌다. 안나는 제 몸을 올려다보았다.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는 가루가 되어 이리저리 흩날렸다.












<피터>



어느새 요정의 성소에 와있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던 호수는 흉측한 검은 물로 바뀌어있었다.
안나는 요정 여왕의 품 안에 있었다.



<잘 잤나요?>



안나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요정 여왕의 품을 벗어났다. 그러자 아까 느꼈던 추위가 다시 찾아와 안나를 옥죄었다. 추운 곳으로 모험을 떠나거나 독한 감기에 걸렸어도 이정도로 추위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너무 추워서 요정 여왕의 품에 안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품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예전처럼-.



안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요정 여왕은 자애롭게 웃으며 양 팔을 벌렸다. 그러나 안나는 몸을 떨면서 요정 여왕과 거리를 더 벌렸다.



<그러다 죽을지도 몰라요>
“죽는 건 무섭지 않아!”
<그렇겠죠. 익숙해지면 공포가 옅어지는 법이니까요>



또 영문 모를 말을 한다. 안나는 요정 여왕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추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도 안나는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저게 다가 아니지? 내가 또 뭘 잊은 거야?”
<재미없고 시시한 것들이죠. 잊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일들>
“난 그, ‘시시해서 잊은 것’ 때문에 여기가 너무 아파. 괴로워.”



안나는 체한사람처럼 가슴을 두어 번 두드렸다. 네버랜드의 아이들 모두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기억은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기억해야 할 사람이야. 잊어서는 안 돼.”



특별한 사람이야.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단숨에 맑아졌다. 특별하다. 그래서 이제껏. 이렇게나.



“간절해.”



말을 끝내자마자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고 몸 구석구석이 간질간질 거렸다. 안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견뎠다. 안나가 숨을 쉴 때마다 찬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요정 여왕은 눈앞의 안나가 아닌 먼 곳을 응시하듯 시선을 위쪽으로 두었다.



<그녀가 지금 당신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기대가 되네요>



이름 대신 ‘그녀’라고 말했건만 그게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느리게 뛰던 안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그... ‘그녀’가 여기에 있어?!”



끝끝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답답해서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그걸 왜 묻는 거죠?>
“난 ‘그녀’를 만나야 돼.”
<만나서 뭘 어쩔 거죠? 정의로운 아이, 피터 팬으로서 그녀를 죽이기 위해서인가요?>
“아니야!”
<다시 만나면 그녀는 또 당신을 아프게 할 거에요>
“아파도 좋아! 좋으니까 다시 만날 거야! 이제 더는 아픔을 잊지 않을 거야!”
<그게 당신의 선택이군요>



요정 여왕의 미소가 자애에서 조소로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당신은 피터 팬이 아니에요. 이제 더는 필요 없어요>













쿵! 쿵!
몸 전체에 울리는 진동이 엘사를 들쑤셨다. 엘사는 얼음에 몸을 기댔다. 이만하면 저를 공격한 요정들은 몽땅 다 얼어 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힘을 난사했다. 감정이 격해져 조절을 하지 못한 탓에 쇠갈고리며 발끝도 얼어붙어버렸다. 그래도 엘사는 괘념치 않아했다. 요정만 죽는다면 까짓것 제 다리도 잘라버릴 수 있다. 엘사는 끅끅하고 웃었다.



쿵!
또 다시 진동이 울렸다. 저 위에서 햇살 한줄기가 내리쬐어, 얼어붙은 검은 물을 비추었다. 마치 투명한 흑수정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번들거리는 표면은 엘사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담아내었다.
엘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불과 100미터도 떨어져있지 않은 아래쪽에 커다란 구멍, 요정의 성소로 통하는 통로가 있었던 것이다. 검은 물과 환상 때문에 통로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젠장!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니. 더는 시간이 없는데’


엘사는 재빨리 힘을 거둬들였다. 주변은 다시 검은 물이 되어 엘사를 붙잡았다. 그러나 통로의 위치를 확인한 엘사로서는 검은 물은 더 이상 장해물이 아니었다.

‘안나!’


엘사는 헤엄을 치며 통로 가까이에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 안쪽은 금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엘사는 인상을 쓰며 앞을 쳐다 보았다. 눈이 부셨다. 엘사의 옷에 묻은 검은 물이 강한 빛에 말라 증발했다. 그렇게 공기 중에 녹아든 검은 물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빛을 가렸다.



빛의 세기가 줄어들었다.
엘사는 앞을 향해 걷다가 제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검은 물속에 있었을 때 찔린 상처가 벌어진 것 같았다. 상처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 먹물보다 더 검은 빛을 띤 피는 엘사의 옷을 타고 내려와 땅을 적셨다. 쇠갈고리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이미 한계였다.



“요정 여왕!”



요정의 성소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엘사가 웬디였을 적에 안나 P. 팬이 우쭐대며 가르쳐준 것이었다. 온통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호수가 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 즐비한, 이른바 낙원과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검은 물로 가득 채워진 호수나, 시든 꽃들이나, 유일하게 금빛을 내는 요정 여왕이나, 그 옆에 장식된 얼음조각상 따위는 없어야 했다.
체구가 작고 날렵한 어린 여자아이의 얼음조각상 따위가 있어선 안 되었다. 안나와 똑 닮은 얼음조각상이 요정 여왕의 옆에 전시되어 있어서는 절대로, 결단코 안 되었다.



엘사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끔찍한 악몽이 현실로 나타나 버렸다.



<언제 봐도 참 놀라운 힘이에요>



요정 여왕은 얼음조각상을 매만졌다.



<멋지지 않나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엘사는 차마 더는 다가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섰다. 가슴의 통증도 이미 잊어 버린지 오래였다. 얼음조각상을 보는 이 시간들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 같았다. 1초도 하루처럼 느껴졌다.

엘사는 끝내 무릎을 꿇은 채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천천히 움직이던 시간의 흐름이 멈추었다.



<여긴, 네버랜드는 인간들에게 쫓겨난 요정들이 만든 곳입니다. 영역을 빼앗긴 수많은 요정들이 죽어갔죠. 동쪽으로, 동쪽으로 쫓겨난 우리들이 망망대해까지 내몰리고, 아무것도 없는 모래섬을 발견했을 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의 요정만 있었죠
광활한 바다를 지배하는 마녀의 눈을 피해 모래섬을 간신히 요정들의 영역으로 만들 수 있었답니다. 당신이 가진 힘을 우리들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럴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인간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요정들도 인간들이 요정 자신들에게 저지른 것만큼  인간들에게 손을 뻗칠 수 있었다. 인간 어른이건 아이건 요정들의 눈에는 똑같은 인간이었다. 피터 팬은 특별한 존재였다. 인간들의 손에 버려지고 요정들이 손수 키운 인간 아이였다. 요정에 가까웠지만 결국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쓸모가 다하면 버릴 수 있다.
요정 여왕은 얼음조각상을 매만지던 손을 떼고, 바닥에 주저앉은 엘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엘사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들과 함께 새 네버랜드로 가요>
“새 네버랜드, 라고?”
<이미 ‘이사’를 끝냈어요. 팅커 벨과 후크는 이미 있어요. 남은 건 새 네버랜드를 지탱해 줄, 새 피터 팬뿐이에요>



엘사는 숨을 집어 삼켜, 호흡을 멈췄다. 새 피터 팬. 그 말은 안나 P. 팬이 완전히 버려졌다는 걸 의미했다.



<눈을 감아요. 이번에야말로 달콤한 환상을 당신에게 주겠어요. 새 피터 팬으로서, 그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 언제까지고 즐거운 꿈을 맛보게 해줄게요>
“웃기지 마! 내가 그딴 수작에-”



요정 여왕은 입꼬리를 올렸다. 엘사가 안나를 살려달라고 빌었을 때마다 봤던 미소였다.



<그런가요. 아, 인간들한테는 역시 익숙한 쪽이 더 나은가 보군요>



곧이어 엘사로서는 감히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 주어졌다.



<이 아이를 살려주겠어요. 이 아이와 함께 새 네버랜드에서 사는 거예요. 진짜 낙원에서 함께>



엘사의 귀에 들린 건 단 하나였다. 그녀는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 내뱉었다.



“-안나를, 살려준다고?”
<물론, 당신이 ‘뭐든 다’한다면 말이에요>



요정 여왕은 두 손을 모았다. 손안에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요정가루가 한가득 쌓였다.



<이걸 다 삼킨다면 안나 P. 팬을 살려주겠어요>



비식비식 터지는 실소를 감출 수 없었다. 안나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나만의 안나’를 살릴 수 있다. 엘사의 입에서 광소가 피어올랐다.



“안나를...”



엘사는 떨리는 손으로 요정 여왕의 손목을 덥썩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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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얼굴, 피부가 빨개진다든지 달아오른다든지, 한기가 느껴진다든지, 헛소리가 들린다든지, 헛것이 보인다든지... 동사 직전의 증상.



덤으로 엘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중 하나는 자신의 저주로 안나가 죽는 것.



안나와 엘사 멘붕중. 멘붕파티.







psps. 소녀... 웬디가 되기 전 엘사가 날지 못했던 이유는, 즐겁거나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야 날 수 있는데 그런 기억이 읍어서 빼애애앵.






pspsps. 네버랜드에 온 소녀는 팅커 벨과 쟁탈! 안나P.팬사수궐기대회를 벌이게 되고... 는 본문에 밝혔듯이 이미 안나가 헬렐레 상태라서 팅커 벨이 백이면 백패 당하고 있음. 근데 엘사라고 마냥 행복하게 지낸 건 아님ㅋㅋㅋㅋ 빨래랑 청소를 해야했는데 엘사는 해본적이 읍어서. 애들 옷이랑 태워먹는다든가 요리를 엉망으로 한다든가, 네버랜드 애들이 꽤고생을 했다고 한다






pspspspsps. 좀더 잘 쓰고 싶어. 현퀘도 바쁘고 결말이라 조급해져서 스토리 진행에만 급급하다 ㅠㅠㅠㅠㅠㅠ 그래도 ㄱ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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