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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미국 각 주별 가장 아름다운 주택들 (1편)
Alabama (앨라배마)
앨라배마 주지사 관저1907년에 앨라배마 대법관이었던 로버트 라이건 주니어가 건축가 웨더리 카터에게 의뢰해서 몽고메리에 지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저택이야.
라이건 가족이 약 43년 동안 살았고, 부인 아일린이 사망하기 전 이 집을 주지사 공식 관저로 쓰자는 제안을 했다고 해. 이후 논의 끝에 1950년 주 정부가 매입했어.
현재는 일반인에게 개방돼 있어서 응접실, 거실, 선룸, 리셉션 홀 같은 내부 공간을 둘러볼 수 있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우아한 분위기의 건물이야.
앨라배마에서 가장 상징적인 주택 중 하나로 꼽혀.Alaska (알래스카)
Russian Bishop’s House알래스카 시트카에 있는 역사적인 주택으로, 러시아 제국이 북태평양 지역을 지배하던 시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건축물이야.
1842년에 지어졌고, 당시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의 공식 거주지로 사용됐어.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이 심하게 낡아 1969년에 폐쇄됐는데, 이후 National Park Service가 매입해서 무려 16년에 걸쳐 복원 작업을 진행했대.
지금은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돼서 일반인 관람이 가능한 상태고, 알래스카 식민지 시대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주택 중 하나로 평가받아.Arizona (애리조나)
Riordan Mansion1904년에 시카고에서 이주해 온 두 가문이 애리조나 목재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지은 대저택이야.
러스틱한 크래프츠맨 스타일 건물로, 방이 무려 40개에 전체 면적도 13,000스퀘어피트가 넘는 대형 주택이야.
중앙에 있는 ‘렌데부 룸’이 특히 유명한데, 남서부 풍경과 원주민 초상화를 담은 반투명 유리창이 인상적이야.
현재는 일반에 개방돼 있어서 애리조나 초기 부유층 주택 분위기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으로 평가받아.Arkansas (아칸소)
The Arkansas Governor’s Mansion1950년에 지어진 조지아 식민지 양식의 주지사 관저야. 처음 입주한 인물은 당시 주지사였던 시드니 맥클루스였고, 건물 완공에 약 30만 장의 벽돌이 쓰였다고 해.
3층 규모에 대형 홀과 아트리움을 갖춘 꽤 웅장한 저택이야.
리틀록에 위치해 있고, 과거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도 실제로 거주했던 곳이야.
아칸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공 주택으로 평가받아.California (캘리포니아)Hearst Castle로스앤젤레스랑 샌프란시스코에서 각각 차로 약 4시간 거리인 샌시미언에 있는 초대형 저택이야.신문 재벌이었던 William Randolph Hearst가 건축가 Julia Morgan에게 의뢰해서 만든 일종의 ‘꿈의 성’ 같은 곳이지.수영장이 두 개나 있고, 와인 저장고에 개인 동물원, 심지어 전용 비행장까지 있었어. 진짜로 활주로가 딸린 저택이었음.허스트는 이 성이 자리 잡은 언덕을 직접 ‘라 쿠에스타 엔칸타다(La Cuesta Encantada)’, 즉 ‘마법에 걸린 언덕’이라고 이름 붙였고, 지금 봐도 과장 아닌 이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케일이 압도적인 곳이야.Colorado (콜로라도)Highlands Ranch Mansion덴버 도심에서 남쪽으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대저택이야.원래는 1891년에 지어진 소박한 농가였는데, 이후 여러 유력 가문과 소유주들이 계속 증축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어.현재 규모는 약 27,000스퀘어피트에 방만 14개 이상, 욕실도 11개나 되는 꽤 큰 저택이야.지금은 개인 주택이라기보다는 웨딩이나 파티 같은 행사 장소로 주로 쓰이고 있고, 콜로라도의 역사적인 주택 중에서도 규모랑 보존 상태가 특히 좋은 편으로 평가받아.Connecticut (코네티컷)Lockwood-Mathews Mansion1864년부터 1868년 사이에 지어진 대저택으로, 처음 주인은 철도 재벌이었던 LeGrand Lockwood야.
이후 뉴욕의 유명 수입상이었던 Charles D. Mathews에게 넘어가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었대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노워크에서 지어진 집인데, 방이 무려 62개나 되는 초대형 주택이야.
당시로서는 드물게 실내 수돗물, 가스 조명, 중앙 난방까지 갖춘 최첨단 주택이라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앞서 있었어.
1971년에 미국 국가 사적지로 지정됐고, 미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세컨드 엠파이어 스타일 저택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아.Delaware (델라웨어)Nemours Estate델라웨어 윌밍턴에 있는 프랑스 고전 양식의 초대형 저택이야.5층 규모에 면적이 약 47,000스퀘어피트로, 주택이라기보다는 거의 궁전에 가까운 스케일이지.1907년에 듀폰 가문의 인물인 Alfred duPont이 두 번째 부인 알리시아에게 선물하려고 지은 집이야.건물 자체도 크지만, 정원과 조각상으로 꾸며진 야외 공간이 특히 화려해서 이 저택의 핵심 포인트로 꼽혀.델라웨어에서 가장 상징적인 대저택이고, 미국식 ‘유럽풍 맨션’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야.Florida (플로리다)
Whitehall20세기 초에 지어진 팜비치의 초대형 저택으로, 면적이 약 10만 스퀘어피트에 달해.
스탠더드 오일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산업 재벌 Henry Morrison Flagler가 겨울 별장으로 사용하던 집이야.외관에는 대리석 기둥이 줄지어 있고, 내부 방만 무려 75개나 되는 말 그대로 괴물급 규모의 저택이지.
1902년에 뉴욕 헤럴드에서는 “유럽의 어떤 궁전보다도 더 대단하고,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개인 주택”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야.
이 저택 덕분에 팜비치가 ‘부자들이 겨울을 보내는 곳’으로 유명해졌고, 지금도 플로리다를 상징하는 역사적 맨션 중 하나로 꼽혀.Georgia (조지아)Forsyth Park Mansion사바나에 있는 19세기 남부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저택 중 하나야.원래는 1888년에 지어진 건물로, 근처에 있는 포사이스 파크가 조성된 지 약 40년 뒤에 세워졌어.한때 장례식장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고급 호텔로 리모델링돼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가 됐어.내부에는 아트 갤러리랑 풀서비스 스파가 있고, 바로크풍 객실이랑 빈티지 모자 컬렉션 같은 독특한 요소도 있어.사바나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랑 잘 어울리는 건물이라, 조지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맨션 중 하나로 자주 언급돼.
Hawaii (하와이)Shangri La오아후에 있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대저택으로, 1938년에 지어졌어.
담배 재벌 가문 출신 상속녀였던 Doris Duke가 개인 소장품과 취향을 반영해서 만든 집이야.
건축은 마리온 심스 미에스랑 H. 드루리 베이커가 맡았고, 인도·모로코·이란·시리아·하와이 등 여러 지역의 예술가와 장인들이 참여해서 전체 분위기가 굉장히 독특해.
부지 면적도 약 4.9에이커로 꽤 넓은 편이고, 이슬람 예술과 장식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는 게 특징이야.
지금은 개인 주택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이슬람 예술과 문화를 알리는 걸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야.
하와이에서 자연 풍경이랑 예술, 건축이 동시에 어우러진 곳으로 손꼽혀.Idaho (아이다호)
Standrod Mansion아이다호 포카텔로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 저택으로, 1902년에 드루 스탠로드와 엠마 스탠로드 부부를 위해 지어졌어.방은 총 16개이고, 공식적으로는 프랑스 르네상스 리바이벌 양식으로 분류돼.이 저택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가, 아이다호에서 처음으로 중앙 난방이랑 전기 조명을 갖춘 주택 중 하나였다는 점이야.설계는 고전주의 리바이벌 건축가였던 Marcus Grundfor가 맡았고, 완공까지 무려 7년이 걸렸어.건축비는 당시 기준으로 1만 2천 달러였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적어 보일 수 있어도 20세기 초엔 꽤 큰돈이었지.아이다호 역사 주택 중에서는 기술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의미 있는 저택이야.Illinois (일리노이)The David Davis Mansion1872년에 완공된 중기 빅토리아 양식 저택으로, 블루밍턴에 위치해 있어.연방대법관이자 Abraham Lincoln의 측근이었던 데이비드 데이비스가 처음 거주한 집이야.‘클로버 론(Clover Lawn)’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프랑스 출신 건축가 알프레드 피케나르가 설계를 맡았고, 데이비스의 아내 사라 데이비스도 디자인에 꽤 깊이 관여했다고 해.3층 규모에 방이 무려 36개나 되는 대저택이고,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앞선 설비였던 가스 조명이나 양방향 호출 시스템 같은 최신 기술도 들어가 있었어.일리노이에서 정치·건축 역사 둘 다 잡은 상징적인 주택으로 자주 언급돼.Indiana (인디애나)Lanier Mansion인디애나주 매디슨 역사 지구의 ‘왕관 보석’ 같은 존재로 불리는 대저택이야.1844년에 사업가 제임스 프랭클린 더티 라니어와 그의 가족을 위해 완공됐고, 설계는 건축가 프랜시스 코스티건이 맡았어.그리스 리바이벌 양식이라 정면에 2층짜리 포르티코랑 코린트식 기둥이 딱 눈에 들어와.내부도 꽤 공들여서 만들었는데, 특히 화려한 나선형 계단이 이 저택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어.규모나 디자인 모두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수준 높은 주택이라, 인디애나를 대표하는 역사적 저택들 중 하나로 평가받아.Iowa (아이오와)
Brucemore1884년에 캐롤라인 싱클레어를 위해 지어진 퀸앤 양식의 대저택이야.설계는 건축가 맥시밀리언 알라르트가 맡았고, 아이오와에서는 꽤 상징적인 역사 주택으로 알려져 있어.전체 면적은 약 15,000스퀘어피트이고, 4층 구조에 방이 21개나 돼.벽난로만 해도 무려 14개나 있어서 당시 상류층 주택다운 스케일을 제대로 보여줘.시더래피즈에 있는 26에이커 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넓은 정원과 야외 공간 덕분에 집 전체 분위기가 거의 귀족 저택 느낌이야.아이오와에서 가장 ‘저택답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 중 하나로 자주 언급돼.Kansas (캔자스)The Evah Cray Historical Home1882년에 지어진 빅토리아 양식 저택인데, 3층짜리 탑이 있어서 전체 실루엣이 거의 성처럼 보이는 게 특징이야.캔자스 애치슨에 위치해 있고, 방은 총 25개로 규모도 꽤 큰 편이야.내부를 보면 스테인글라스 창문이나 정교한 목조 장식, 화려한 샹들리에 같은 요소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당시 상류층 주택 분위기가 잘 살아 있어.캔자스에서는 보기 드문 ‘성 느낌’ 맨션이라서, 주 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역사 주택 중 하나로 자주 언급돼.Kentucky (켄터키)Federal Hill루이빌에 있는 19세기 플랜테이션 저택으로, 흔히 마이 올드 켄터키 홈(My Old Kentucky Home)’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이 이름은 작곡가 Stephen Foster의 동명 발라드에서 따온 거야.원래 주인은 판사였던 존 로완이고, 당시 미국의 연방당(Federalist Party)을 기념해서 집 이름을 ‘페더럴 힐’이라고 지었어.저택 규모는 약 7,500스퀘어피트인데, 부지가 무려 1,200에이커라 주변 환경까지 포함하면 스케일이 엄청난 편이야.특히 이 집은 당시 실제로 쓰이던 미술품, 가구, 개인 소장품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서, 미국 내에서도 역사적 자료 보존 상태가 뛰어난 저택으로 평가받아.켄터키의 역사랑 문화를 한 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보면 돼.반응 좋으면 2편도 이어서 써볼게!
작성자 : 아메리카만고정닉
[하우스 오브 겔랑]겔랑 가문의 역사를 알아봅시다.
Guerlain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 뷰티 하우스중 하나이자70살 할머니부터 MZ세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팬덤을 거느린 하우스인 겔랑그 역사를 알아보자긔1. 겔랑 비긴즈[겔랑의 초대 향카게 사진]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1798~1864)은 화학자이자 의사, 그리고 조향사였긔.1828년, 파리에 첫 향수공방을 두 아들과 함께 열고선 판매하기 시작했고탁월한 조향 실력으로 유럽 상류층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긔.겔랑옵빠는 향수공방을 만들기 전에 영국에서 비누 제조도 배우고 이것저것 다 할 줄 아는 천재 올라운더여서1830년에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의 꼭쥐쓰를 위해 제작된밤 드 라 페르떼는 성능이 너무 좋아 립밤으로 각광받았고겔랑은 2010년대 초반까지 모양만 바꿔서 팔았긔...(다시 내줘 제발)이런 겔랑의 명성이 최정상에 오르게 된 때는 1853년나폴레옹 3세의 와이프이자 프랑스의 마지막 황후, 외제니 황후에게 결혼 선물로 오 드 콜론 임페리얼 향수를 진상하면서임.(오 드 콜론 임페리얼은 아직도 판매중이긔. 근데 국내는 단종시킨듯. 뻐킹 LVMH 코리아 ㅗㅗ)고급스럽게 황실의 상징인 꿀벌이 양각된 겔랑의 상징, 비(bee) 바틀은 이때 처음 만들어졌고외제니 황후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했긔. 이 향수만 뿌리면 두통이 사라졌다나 뭐라나?아무튼 미인으로 유명했던 외제니 황후웅니는 파리 사교계의 중심이자 패션의 트랜드를 이끄는 최고의 인플루언서였는데 당시 귀족들의 가방을 만들고 패킹해주는데 천부적인 솜씨를 갖고 있던 서른살의 루이 비통을 자신의 전속 패커로 밀어준 것도 외제니 황후였긔.이런 외제니 황후의 마음에 쏙 들었으니 겔랑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유럽 각국의 왕실에서도 자신을 위한 향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게 되었긔빅토리아 여왕이나 이사벨라 2세에게도 향수를 만들어줬고겔랑은 폐하의 공식 조향사로 자리매김했음이때부터 겔랑은 자신의 제품에 프랑스 2제국의 상징이자 황실의 상징인 꿀벌을 붙일 수 있게 되었으며 벌과 벌집은 겔랑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긔.이런 전성기를 누리게 된지 10년이 좀 넘었을 때, 초대 향카게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옵빠는 66살의 나이에 눈을 감게 되었고겔랑의 사업은 두 아들에게 넘어갔음.2. 겔랑 라이즈2대 공동 향카게 에메 겔랑(2대 공동 향카게 가브리엘 겔랑)겔랑 하우스는 이제 두 형제, 에메 겔랑(1834~1910)과 가브리엘 겔랑(1841~1933)에게 넘어갔는데.형인 에메 겔랑은 상품 개발을 맡고 동생인 가브리엘 겔랑은 사업적인 매니지먼트를 맡아 투탑시스템으로 회사를 굴렸긔.이 당시 나온 겔랑의 향수는전설의 오리엔탈 푸제르 향수. 과감하게 바닐린과 쿠마린이라는 합성 향료를 사용한 지키를 1889년 출시했긔.처음에는 여성 향수로 출시했지만 남성들도 쓰기 시작했고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용한,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가버린, 웅니오빠들이 다 뿌리고 다니는 젠더리스 향수였긔 ㄷㄷ이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뷰티 용품도 선보였는데Ne m'oubliez pas-느 무블리에 빠 (뜻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립스틱을 1870년에 출시했음.뭐야? 그냥 립스틱 아님? 싶겠지만이것이 세계 최초로 둥근 튜브형 용기에 담긴 리필형 립스틱이긔.3. 겔랑 익스트림 라이즈(3대 향카게 자크 에두아르 겔랑)1890년대, 이제 가브리엘옵빠의 두 아들인 피에르 가브리엘 겔랑(1872~1961)과 자크 에두아르 겔랑(1874~1963)이 사업을 이어받음(에메옵빠는 자녀가 없어서 조카인 자크에게 조향을 전수했긔.)자크 겔랑은 60년간 겔랑의 퍼뮤머로 활동하며 향수계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고 신화를 만들었긔.샤넬 넘버 5를 만든 에르네스트 보(1881~1961)도 겔랑의 능력에 대해 찬사를 남기며 존경했을 정도였으니...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기가막힌 조합으로 그 이미지를 형상화 하는 자크 겔랑 옵빠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이 내린 재능 자체였긔.자크가 만든 향수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면1911년, 자크의 아내인 릴리를 위해 만든 뢰르 블루1차세계대전 직전, 벨 에포크 시대의 낭만을 담은 이 향수는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긔.전쟁 직전 식민지빨이로 최고로 번영했던 시대인 벨 에포크를 살아간 자크 겔랑은 몬가 몬가를 느꼈으며 그걸 향수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긔이 바틀 디자인은 크리스털 하우스 바카라(Baccarat)의 디자이너 조르주 슈발리에가 디자인했고 겔랑 하면 생각나는 대표 디자인이 되어버렸긔(tmi: 크리스털 하우스 바카라 250주년 기념으로 나온 콜라보 향수가 귀정의 바카라 루쥬 540이긔.)1919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온 향수인 미츠코전에 나온 향수와는 다르게 전쟁으로 개박살난 시대상을 반영하듯 어두운 분위기를 주긔일본해군 제독 와이프인 미츠코와 영국장교와의 비극적 연애 어쩌구가 내용인 끌로드 파레의 소설 [전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긔.1925년 샬리마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타지마할의 그 양반들 맞다)의 러브스토리(14째 애 낳다가 죽었다고 하니 얼마나 야스를 한거긔;;)에서 영감을 받고 샤 자한이 사랑한 정원에서 이름을 따서 만든 향수긔.바틀 디자인은 피에르 가브리엘의 아들이자 자크의 조카인 레이몽 겔랑이 맡았고 제조는 바카라에서 했으며 1925년 장식예술박람회에서 찬사를 받으며 수상했긔요 세개 정도가 자크 겔랑 시대를 대표하는 향수들이고 모두가 기억하는 겔랑의 올드스쿨 향수들이 자크 겔랑의 코와 손에서 나왔긔그리고 오리엔탈, 이국적 느낌의 겔랑 향수 방향성도 자크 겔랑이 퍼퓨머로 있던 시기 확립된거긔.출시된 향수들 말고도 미발표된 엄청나게 많은 조합들이 있다고 카더라.여담이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자크의 삼촌인 에메가 만든 푸제르 향수 [지키]는 자크의 어린 시절 별명을 따서 만들었다는 썰이 있긔4. 겔랑 폴링자크는 아들이 넷 있었긔. 그 중 나이 마흔 넷에 둔 늦둥이 아들인 피에르 겔랑은 2차 세계대전이 터져서 징집되고 치명상을 입고 돌아와서 20대 초에 죽게되긔. ㅠㅠ참척을 겪은 충격으로 자크는 활동을 중단했긔...ㅠㅠㅠ원래부터 사람이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사진도 노년 시절 몇장 있고(이것도 손자인 장 폴 겔랑이 좀 찍자고 해서 찍은거긔)인터뷰도 거의 없긔. 예술품 좋아해서 예술품 수집하고 혼자 농사나 짓고 정원을 가꾸었다고 하니 아주 대문자 I가 따로 없긔.아무튼 자크는 여러 일들과 노화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게 되고 자신의 후계자이자 제자인 손자 장 폴 겔랑과 함께 만든 Ode (1955년 작) 을 마지막으로 모든 활동을 접고 살다가 1963년에 죽긔활동을 접기 전, 자신의 손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긔“난 이제 노부인들을 위한 향수밖에 만들 수가 없구나...”ㅠㅠ 여담이지만 형인 피에르는 이미 2년전인 1961년에 죽었긔5. 라스트 겔랑(장 자크 겔랑)이제 사업은 피에르 가브리엘 겔랑과 자크 겔랑의 아들들인장 피에르 겔랑과 장 자크 겔랑으로 넘어가긔그런데 둘은 조향사가 아니고 그냥 경영자였고장 자크 겔랑 정도만 유의미하게 여기서 언급할 만 한데프랑스 명품 하우스들의 이권을 지키고 모조품을 단속하는 연합회인 코미테 콜베르를 설립했고 프랑스 향수협회의 회장이었으며가장 중요한 건세계 최고의 조향학교인 ISIPCA를 설립했긔윤.자 그럼 아들세대가 조향사가 아닌데 누가 조향사인가?바로 장 자크 겔랑의 아들이자 자크 겔랑의 손자인 4대 향카게 장 폴 겔랑(1937~) 이긔.아들 세대가 조향 능력이 없었는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자크는 자신의 재능있는 손자를 데려다가 훈련시키고 가문의 비법을 전수하여 겔랑의 마스터 퍼퓨머로 만들었긔.이 옵빠의 특징은 16살때 시력을 크게 잃어서 학교를 관두게 되었고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스승인 자크 겔랑 밑에서 냄새를 킁카킁카거리며 훈련받았는데...(시력을 잃고 방구석 백수가 되어버린 장 폴 겔랑)장 폴 겔랑 옵빠가 회상하길 시력 이상으로 인해 거의 앞을 못보게 된 상태에서 학교를 관두고 방구석에만 있자할아버지인 자크 겔랑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우리 식으로 번역하자면 히키코모리질 때려쳐라 이노무자슥아!) 라고 말하며 수많은 향료들로 가득 찬 겔랑 가문의 방으로 데려갔고그 향들을 본능적으로 킁킁 거리는 자신의 손자를 매우 흐뭇하게 지켜봤다고 하긔 ㅠㅜ손자의 재능을 알아본 자크는 장에게 몇달간 3천가지의 다른 냄새를 구별하고 암기하는 훈련을 시켰음 ㄷㄷ(자크 겔랑의 개인사 등은 자크 겔랑이 ㄹㅇ 극강 대문자 I 은둔파라서 교류가 있던 손자 장 폴 겔랑이나 그 가족들의 회상에서만 알 수 있긔윤)아무튼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장 폴 겔랑.(앞으로 JPG라고 하겠음)수 차례의 안과 수술로 시력도 일부 되찾았고 승마도 잘하고! (진짜 승마를 좋아해서 프랑스 마장마술 팀 국대 예선에도 출전한 적이 있긔) 요리도 잘하고! (르 꼬르동 블루에서 셰프 트레이닝 받음) 못하는게 없는이런 JPG의 커리어 첫 작품들은바로 남성용 향수인 베티베르 (1959) 빈티지 베티베르를 못맡아봐서 모르겠지만 지금의 베티베르도 매우 훌륭한 향수긔... 남자의 멋진...잘 빠진 양복쟁이의 향기긔그리고 1965년의 남성용 향수인 아비 루즈말박이인 JPG답게 빨간 승마복에서 이미지를 따왔다고 하긔그리고 JPG의 최고 히트작삼사라 (1989) 산스크리트어로 윤회 전생을 뜻하는 단어에서 따온 이 향수는단번에 레전드가 되었긔...리포뮬 되어서 오리지널 삼사라를 모르지만 리포뮬 삼사라도 진짜 좋긔 진짜로... 일랑일랑파워섹스...안맡아본 향붕이들은 꼭 맡아보긔근데 러브무현코리아개새기들아 삼사라는 왜 안보이냐?근본을 다 치우면 겔랑에서 뭐가남노? 아베이로얄? 시발아무튼 JPG는 가문의 유산을 이어받아 승승장구 했는데...문제가 생김...90년대 초...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수많은 패션하우스, 뷰티회사들이 인수합병되는 시기였으며 유럽의 경기침체를 겔랑도 피해가질 못했긔...회사는 서서히 기울어가고 있었고 위에서 언급한 4세대 겔랑 형제는 이제 나이가 90에 가까워지고 상속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긔...그 때 겔랑가문 상속인이 25명임ㅋㅋㅋㅋㅋㅋㅋㅋ거기에 나이가 60이 넘은 JPG의 후계자 향카게를 할 인재가 겔랑가문에 보이질 않았긔...그때...굶주린 늑대새끼가 겔랑에 침을 바르는데...바로 LVMH제국을 세운 베르나르 아르노였긔겔랑 가문이 지분 상속 관리를 하기 위해 지주회사를 세울 때아르노(라 쓰고 씨발놈이라 읽는다)는 14%의 지분을 매입하며 겔랑에 손을 댔고결국 불황과 이익감소에 버티지 못한 겔랑 가문은 아르노 회장에게 지분을 팔아 LVMH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긔.그리고 지주회사의 대빵이었던 에릭 겔랑(아까 샬리마 향수병 만든 레이몽 겔랑의 아들이다)은 디올의 이사회에 들어가고 부회장까지 맡게 됨.당시 겔랑의 강성 빠들-겔줌들은 겔랑이 좆망했다며 우울해했고탈겔랑 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하긔참고로 JPG는 이때 나갈려고 했는데 아르노 회장이 온갖 똥꼬쇼를 해서 붙잡았다는 말이 있긔...그래서 JPG는 조향사로 계속 남게 되고이제 겔랑의 향수는 겔랑 가문의 사람이 전부 만드는 것이 아닌 다른 조향사들이 만드는 것으로 바뀜90년대 말에 JPG와 현재 까르띠에 전속 조향사로 활동하고 있는, 마틸데 로랑과 함께 만든 것이 아쿠아 알레고리아 라인이당그러다가 2002년 메인 자리에서 은퇴하고 고문 직함으로 활동하긔.그렇게 JPG의 영향력 아래 겔랑의 유산이 유지되며 잘 굴러가나 싶더니...개좆같은 사건이 발생했긔6. 겔랑의 끝때는 2010년....프랑스 뉴스 인터뷰에 나온 장 폴 겔랑앵커: 삼사라를 만드실때 어땠나요?JPG: 어쩌구 저쩌구...그 한 번 나는 흑인(니*로)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모든 니*로들이 열심히 일했는진 모르겠지만 ㅋㅋLVMH: 미친새끼 아님? 저새끼 치매임?모든 사람들이 경악하게 된 사건이었긔...뉴스 인터뷰에서 저런 말을 대놓고 한 JPG 때문에파리의 겔랑 본사 스토어 앞에서는 시위가 이어지고 LVMH 보이콧 성명도 벌어짐개박살이 날 위기에 처하긔...결국 LVMH는 JPG와 손절 선언을 하고 모든 관계를 다 끊어버리고 직함도 전부 빼버리긔...결국 2012년 당시 환율 기준으로 840만원의 벌금을 물고 간신 감옥을 면하게 되긔...(tmi: 애인과 나는 JPG 할배 이야기 나올 때마다 아프리칸처럼 열심히 일한 할배라고 비꼬면서 말함ㅋㅋㅋㅋ)그 후 JPG는 조향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었는지 마이 익스클루시브 콜렉션 이라는 스타트업에 들어갔고17년도에 이런 희한한 병 모양의 향수를 런칭했긔향은 안맡아봐서 몰?루21년도에 나온 라인은 나도 한 병 갖고 있는데 되게 좋다가면네에서 아직 팔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회가 된다면 맡아보시긔...그리고 JPG는 알츠하이머를 조금 앓고 있는 가운데(알츠하이머 걸려도 조향을 하고 있다는게 무시무시하다) 또 시끄러운 스캔들이 터지는데...JPG에게는 2005년부터 만나던 21살? 연하의 애인이 있었긔...시발ㅋㅋㅋ 80대 노인네가 60대를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긔...아프리칸처럼 열심히 사랑하시는 장폴겔랑옵빠...아무튼 겔랑 가문의 구성원들, 특히 JPG의 아들은 아무리봐도 돈긁어내려고 접근한 것 처럼 의심되는 애인을 경계했고아들은 JPG의 알츠하이머를 사유로 법적 권리를 다 가져가고(금치산자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걸로 결혼을 무효화시킴ㅋㅋㅋㅋ이렇게 아들과 아빠 애인 사이의 서로 괴롭힘 폭행 어쩌구로 법적 싸움이 벌어지고...이거 관련 마지막 뉴스가 22년도인가 그런데 어찌됐는지는 잘 몰?루아무튼 장 폴 겔랑을 마지막으로 겔랑 가문이 조향하는 겔랑 향수의 스토리는 끝이 났긔.그럼 겔랑 가문 중에서 조향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냐?아니긔파트리샤 드 니콜라이가 있긔자크 겔랑의 형 피에르 겔랑의 증손녀이자 JPG에게는 촌수로 조카딸 정도 된다이 사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파딱 글 참고https://m.dcinside.com/board/hyang/339650그리고 또 누가 있냐면 JPG의 손자, 리얼 겔랑 가문의 적통이 있다.폴 겔랑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설립한 ISIPCA를 졸업하고 IFF에서 주니어 퍼퓨머로 일하고 있는미친향수저새끼응애겔랑이긔안느 플리포(입생 리브르랑 프말 신테틱 네이처 만든 웅니이긔) 밑에서 조향을 배우고커리어 시작한지 5년밖에 안됐는데 랑방, 크리스찬 루부탱, 드리스 반 노튼, 아무아쥬, 질샌더, 돌체 앤 가바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역시 조향사는 수저 잘물고 태어나는게 최고구나 라는걸 느끼게 하는 사람이긔-글을 마치며-사실 본 향붕이는 얼마 전 까지는 겔랑에 큰 관심이 없었긔그런데 얼마 전에 겔랑을 너무 좋아하는 겔줌단 애인이 생긴 이후 겔랑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겔랑 집안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정리해봤우길고 지루하지만 끝까지 읽어줬다면 너무 고맙긔
작성자 : 슬퍼하는자는복이있나니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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