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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외 조선시대..얼음의 진실..
조선시대 얼음...하면 다들 석빙고만 떠올릴 것이다교과서 에서도 석빙고만 잠깐 언급하고,마치 조선 정부에서만 얼음을 통제했다, 정부에서만 얼음을 사용할수 있었다..이렇게 알텐데 사실일까? 물론 아니다 실제로는 돈 된다니까 우르르 몰려들었다. 원래 조선 초에는 개인이 얼음 캐는(장빙) 걸 법으로 금지했음. 국가 자원이었으니까. 근데 15세기 넘어가면서 나라에서 캐는 걸로 공급이 딸리니까 그냥 니들도 캐라 하고 규제를 풀어주게됨이때 누가 뛰어들었냐?왕족(월산대군 같은 성종 형님급)이나 권세가들이 한강 변(지금 마포, 망원동 쪽) 알박기 하고 창고를 지었음초반엔 그냥 지들끼리 시원하게 먹고 남는 거 좀 파는 수준의 부업이었고대체로 이런 개인이 지은 얼음 창고를 사빙고 라고 불렀음특히 역사쪽에 관심이 있을 싱붕이라면 들어봤을법한 강희맹의 집안은 300여년간 얼음을 민간에 판매해 큰 이익을 봤는데, 조선 정조 때 후손인 강경환은 한양 일대 얼음 사업의 '큰 손'으로 위세를 떨쳤음이는 밑에 후술그러나 이는 후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음양란으로 인해 국가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정부는 백성들 사이에서 장빙군의 징발이 어려워졌기 때문임여기에 더해 한양의 인구는 증가하고 상업은 발달하면서 얼음에 대한 수요는 크게 늘어나게 된것도 원인임무엇보다도 생선을 파는 어물전과 고기를 파는 푸줏간은 많은 얼음이 필요했음특히 이때 빙어선(氷漁船) 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배에 얼음 꽉 채워서 서해 바다로 나간 다음, 생선 잡자마자 얼음에 재워서 가져온것임이전엔 쩔어버린 젓갈만 먹던 한양 사람들이 싱싱한 생선 맛을 보게 된거지이는 대히트 상품이었고, 얼음은 부르는게 값이 되었음이에 개별적으로 얼음을 채취해 보관하는 사빙고 역시 늘었다.사빙고에 저장됐던 얼음 역시 개별적으로 판매되었고, 이러한 경우가 관청에서 채취되는 얼음보다 몇 배가 많았다는 것이 문제였음조정에서는 민간에서 얼음을 채취, 보관 후 판매하는 것을 통제하고자 이들에게 얼음 독점권을 주었고,이들 입장에서는 얼음을 독점하고자 조정에서 필요한 얼음을 공급해줬음 이들을 빙계라고 불렀는데, 정조때 한강 주변 서민들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창설된 단체임 한성부의 서리,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 하급 공무원과 돈 좀 굴리는 일부 큰 손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임 이들은 정부에 얼음 1만7000정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대신 한양 얼음 사업의 독점권을 따낸거이들은 1만냥을 투자해 한양에 8개의 빙고를 건설하고 100만 정의 얼음을 저장했는데 당시 권력자들이 곳곳에 만든 사빙고에 비해 10배나 큰 규모였다고 함 또 당시 정부가 소유한 동빙고와 서빙고 그리고 내빙고의 총 얼음 저장량(20만 정)보다 5배나 큰 규모이기도 했음 이는 당시 한양에서 민간의 얼음 소비량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함 빙계는 이익을 단단히 챙겼음 얼음 사업(장빙업·藏氷業)을 독점한 이들은 한강 일대 설치된 불법 사빙고를 철거하는 한편 겨울에 물 위에 떠 있는 얼음을 싣는 고기잡이배들까지 단속했음그러면서 한양의 얼음 가격은 점차 치솟기 시작함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비싼 돈을 내고도 얼음을 구하지 못한 상인들은 생선과 고기가 상해가는 걸 봐야 했고, 얼음 가격은 재차 오르는 상황이 반복됨이 시기를 다룬영화로 이런 영화가 있음 그렇다면 얼음 사업은 얼마나 이익이 남았을까?냉동 기술이 열악했던 당시 보관된 얼음 중 3분의 2는 자연적으로 소모됐고 3분의 1만 판매가 가능했음다시 말해 18세기 정조 시대에 빙계는 연간 100만정의 얼음을 저장했으니,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3만 정 가량을 판매 가능한 상태로 확보했을 것이고, 이중 약 20만 정을 정부에 공급했음 1만 7000정은 무상으로 납품했고 나머지는 1정 당 1전씩 받고 팔았다고 함 그리고 남은 13만 정을 민간에 팔았음 당시 기록 등에 따르면 이를 통해 연간 최대 10만냥 정도를 번거지 그러니까 빙고를 설치하고 그 외에 이런저런 비용을 제하고도 1년에 10배가량 수익을 본거 얼음 사업이 얼마나 짭짤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임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그동안 얼음을 판매해왔던 장빙업자들이 이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리가 없겠지? 특히 300년간 얼음 판매업으로 번성했던 강세황의 집안에서는 더욱 그랬음 민간 장빙업자들을 대표해 강세황의 후손인 강경환이 나섰음그는 집안의 권세와 자본을 이용해 관료들을 움직일수 있었음 "지금 빙계가 다른 모든 빙고 영업을 일체 금지하고빙계가 설치한 8개의 빙고만 있으니 얼음의 양이 전보다 5분의 1로 줄어들어 얼음 가격이 올랐습니다. 얼음 가격이 오르므로 뱃사람은 얼음을 싣지 못하여 어물이 썩고 시전 상인들도 얼린 고기를 조달하지 못해 낭패할 지경입니다. 서울 주민들이 장차 어육의 맛을 모르게 되고 강변 주민들이 생계를 이어갈 방도가 없어졌습니다." (『정조병오소회등록( 正祖丙午所懷謄錄)』中)당시 금군 최덕우가 올린 상소 내용의 일부인데, 빙계를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임그러자 빙고 관련 업무를 총괄하던 빙고 제조 정창성은 최덕우가 민간 장빙업자들의 사주를 받고 저런 주장을 한다며, 얼음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음 반면 한성부에서는 민간에 얼음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보고함이렇게 정부 안에서도 빙계의 의견이 달랐던 것은 강경환 세력과 빙계의 사주를 받고 서로 움직였기 때문물론 사실을 보자면 얼음이 부족했던 것이 맞고빙계의 독점이 심했던것도 팩트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정은 결국 양화진을 기점으로 동쪽인 서강,마포,용산,뚝섬 등에서는 빙계가 얼음 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갖도록 하고 그 서쪽인 합정 등에서는 민간업자들이 자유롭게 얼음을 판매하도록 하는 절충안을 냄 절충안이긴 했지만 사실상 강경환 세력의 승리에 가까웠음 합정에는 강세황 집안의 얼음 창고가 있는 지역이라...한번 독점권이 깨지자, 민간 장빙업자들은 슬금슬금 마포·용산까지 진출해서 얼음을 팔기 시작했고, 이것은 빙계인들의 분노를 불러왔음 서로 조폭들을 동원해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 무렵 마포 일대는 관가에서 함부로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법보다 돈과 주먹이 앞서는 지역이었음거대 이익이 걸린 사업에서 지방 공무원과 민간 사업자들이 유착하고 지역의 조직폭력배가 개입되는 일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던거이렇게 시끄러웠던 얼음 사업을 둘러싼 각 세력의 충돌은 1787년 빙계의 얼음 사업 독점권을 허무는 것으로 마무리됨 정조는 1791년에도 신해통공(辛亥通共)을 발표해 한양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들이 가진 독점권을 폐지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임 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강경환 등 장빙업을 해오던 양반 가문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임하지만 결론은 결국 빙계의 독점이든, 권력과 유착한 양반 가문의 장악이든 어느 쪽도 조선의 상업 발달에는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훗날의 역사가 보여줌
작성자 : ㅇㅇ고정닉
한국군 장구류들의 유래.jpg
탄띠의 유래한국군은 원래 미군에게서 받았고 이를 자체생산한 M1956 벨트 일명 황동박클 탄띠를 썼었는데미군이 베트남전때 빠른 생산을 위해 데이비스버클형 탄띠를 생산했던 것의 영향을 받아이때 탄띠를 그대로 사용하고있다.하지만 정작 미군에서는 체결이 금방 풀리고 사이즈조절이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잠깐 썼었던 물건인데 국군은 이걸 공식으로 채용해서 현재 예비군 및 해공군 일부 부대에서도 사용중이다.엑스반도의 유래한국군 x반도는 M1936이라는 미군 어깨 웨빙을 그대로 따온 것인데참고로 국군이 현재의 x반도를 대량채용할때 미군은 Y반도와 TLBV 등 변형을 거쳐서 썼다는 차이가 있다그리고 전투조끼와 탄티웨빙의 중간 단계로써 90년대 시험형전투조끼가 잠깐 나왔다가 사라졌는데이거는 미군 TLBV를 차용했던 것이다.그리고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에 보급된 신형특전조끼도 저 TLBV 형상으로 만든 것이다.괴나리봇짐 군장배낭의 유래이 군장의 원형은 위 x반도의 유래였던 M1936 웨빙 세트와 동일하다왜냐면 M1936의 전투배낭에서 그대로 따왔기 때문인데저거 써봤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저 배낭의 어깨끈이 X반도 어깨끈을 사용하도록 되어있는데 M1936도 이거랑 동일하다.근데 문제는 한국군은 월남전에서 엘리스팩 등 차세대 군장을 잘만 써놓고도 월남전 끝나고 와서 저 시스템을 1970년대 말에 채용했다는 점이다.시금치 군장배낭의 유래지금은 괴나리봇짐과 마찬가지로 해공군이 아닌 이상 육군에서는 거의 사라진 이 배낭의 경우미군이 월남전때 잠깐 썼던 ARVN 백팩을 그대로 차용하였다.그리고 주머니 1개 더 달려있는거 빼고는 큰 차이없는 구형특전용 배낭은지금도 올드스쿨 마니아들이 자주 찾는 엘리스팩에서 따왔다.문제는 저 2개 역시 월남전때 나온거를 1990년대 와서 채용했다는 점이 있다.구형 전투조끼의 유래구형전투조끼 일명 소총수조끼와 유탄수조끼의 경우는월남전때 쓰던 미군 유탄수조끼를 카피한 것인데차이점은 한국군의 경우 탄알집파우치까지 놓아서 저걸 완전한 전투조끼로 차용했다는 점이 있다.구형방탄복의 유래2000년대 매우매우 소수가 사용하던 구형 방탄복의 경우미군이 월남전 끝나고 개발해서 80~90년대 잠깐 썼던 PASGT 방편복에서 유래했다.다기능방탄복의 유래한국군에 사실상 GP GOP 말고는 구형전투조끼, 특전조끼, 엑스반도 3개만 있던 시절에 특전사에 보급됐던 다기능방탄복은90년대 미군 OTV 방탄복을 차용한 것이다.근데 비리 때문에 이후 다목적방탄복으로 통합되면서 잠깐 쓰다가 사라졌다.전투조끼의 유래지금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전투조끼의 경우는미군 FLC 조끼를 차용한 것인데파우치류의 경우 예전 디자인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운용상 변형이 되었기 때문에가령 권총탄알집파우치의 경우2차대전때 사용하던 M1911 더블맥 파우치를 몰리버전으로 바꾸고 디지털무늬를 칠한 것이고전투조끼 기본구성품목상 다용도 파우치라고 되어있는 물건은원래는 수통파우치인데 한국군에서는 기존 디자인의 수통파우치와 별개로 나가서 다용도 파우치로 쓰게 되어있다.K5 방독면의 유래K5 방독면의 경우 형상과 운용개념을 모두미군 M50 방독면에서 가져왔다.마이크핀과 통신잭연결, 정화통에 공기호스연결 등 운용방식도 동일하다.그러나 세부규격은 M50과 달리 독자규격이다.신형 전투배낭유래지금 육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신형 전투배낭의 경우는미군 ILBE 배낭에서 좌우측 날개배낭(보조낭)을 키운 형태로 차용하였다.방상외피(야상)의 유래곧 구형이 될 4포켓 방상외피의 경우미군 M65 필드자켓의 디자인을 따온 것인데한국군의 경우 저 디자인을 민무늬-개구리-디지털 3대에 걸쳐서 계속 유지하되, 기능성만 개선한 형태로 운용하였다.기능성방한복 상의외피(스키파카)의 유래한국군 스키파카의 경우2000년대 잠깐 사용했던 미군 ECWCS 방한용 상의에서 디자인을 차용하였다.그래서 가슴팍을 보면 한국군 스키파카의 경우도 계급장 장착대가 있는데, 한국군 계급장은 견장대나 일반계급장이나 규격이 안 맞아서 달 수가 없다.(간부들의 경우 일부 철제계급장을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복제규정 위반이다. 어깨에 견장계급장만 달아야 한다.)방한모의 유래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이 방한모(경계근무자용)의 경우6.25때 미군이 썼던 M1951 파일캡을 차용한 것이다.구형의 경우 앞 챙이 우샨카처럼 위로 올라가서 고정되었는데, 저걸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이고 신형의 경우는 그냥 일반 캡모자에 귀털을 단 형태로 바뀌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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