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시 내용의 변화와 불변
1990년대 이후 신설 또는 개장된 7개의 자위대 관계 대규모 전쟁박물관의 전시 내용은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또는 변하지 않았는가?
(ㄱ) 전쟁사(戰爭史) 박물관형과 자위대 광보관형(廣報館型)
전시 내용과 관련하여,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구 일본군의 전쟁 역사에 관한 전시를
가지고 있는 곳과 경찰 예비대 및 안보대를 포함하여 전후의 자위대에 관한 전시만을 한 곳
과의 구별이다. 우선, 구 일본군에 관한 역사 전시를 가지고 있는 곳은 가노야 항공기지
사료관, 사세보 사료관, 이치가야 기념관, 호쿠친 기념관 등 4개 박물관이고, 나머지 3개 박
물관인 항공 자위대 하마마츠 광보관, 육상 자위대 광보 센터, 해상 자위대 구레 사료관은
자위대 관련 전시만 하고 있다. 전자를 전쟁사 박물관형, 후자를 자위대 광보관형이라고
편의상 부르기로 하겠다. 참고로, 사세보 사료관은 자위대 홍보관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또한 항공 자위대 하마마츠 기지에는 지난 번에 언급하였던 하마마츠 기지 자료관이
있으며, 또한 육상 자위대 아사카(朝霞) 주둔지에는 신부타이시로(振武台代) 기념관이라는
구 일본군의 전쟁 역사를 전시한 전쟁박물관이 별도로 있어, 각각 별개의 시설이 역할을 분
담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전부터 설치된 각 지의 소규모 또는 중규모의
자위대 관계 전쟁박물관 대부분은 구 일본군 전시와 자위대 전시 양쪽을 가지고 있다.
(ㄴ) 전쟁사 박물관형 ― 국수주의적 전시에서 가짜 ‘객관적’ 역사 전시로 ―
1990년대 이후에 신설 또는 확대 개장된 자위대 관계 대규모 전쟁박물관 중에서, 구
일본군 및 해상 자위대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상 아래 정비가 진행되었다.
“해상 막료감부(幕僚監部)를 중심으로, 사료관을 해상 자위대에게 진정 의미가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상을 재검토하여, 항공기를 중심으로 한 사료관을 가노야(鹿
屋)에, 함정(艦艇)을 중심으로 한 사료관을 사세보(佐世保)에 정비하고, 각 지에 산재
해 있는 구 일본군 관련 사료를 에타지마(江田島)에 모으는 계획을 진행하여, 가노야
에 대해서는 1993년 7월 24일에 개관, 사세보에 대해서는 1997년 3월 10일에 개관
하겠습니다.”(2)
이 세 박물관 중에서, 가노야 항공기지 사료관과 에타지마의 교육 참고관의 전시 내용
및 전시 사상은 전몰 장병의 영정이나 유품 전시와 현창(顯彰), 및 무기 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미 살펴본 기존형의 박물관, 다시 말해 유슈칸 형(遊就館型)과 기본적으로
달라진 점이 없다. 다른 두 박물관과 달리, 사세보 사료관의 전시는 전몰 장병의 유품이나
영정 전시가 아니라, 구 해군의 포괄적인 역사 서술을 중심으로 한 전시를 하고 있어, 그
전시 내용에도 새로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가노야 기지 사료관의 ‘설립 목적’에는, “가노야 항공기지 사료관은 구 해군 항공의 흥
망의 궤적 및 전후 해상 자위대 항공부대의 행보와 그 속에서 활약한 대원의 모습을 전달함
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일의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개설하였다” 고 기재되어 있다.(3)
그러나 여기에는 통사적(通史的)인 구 해군항공의 역사 서술은 없고, 그 전시 내용은, 앞에
서 언급하였듯이, 해군의 특공 공격의 중심 기지였던 역사를 배경으로, 복원된 진품 제로센
(레이센[零戦])을 전시 중앙에 놓고, 주변 벽면에 많은 전몰 특공 병사의 영정과 유서를 배
치하는 것이 전시의 주요 내용으로, 예과연(豫科練) 기념관이나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유
슈칸(遊就館)의 전시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즉, 박물관으로서의 형식은 새로우나, 내
용은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또한, 에타지마의 교육 참고관은 거대한 건물과 함께 1926년 이래의 전통을 가진 구
해군 관계를 대표하는 전쟁박물관인데, 최근 개장(改裝)을 하였으나, 그 전시 내용 및 전시
사상은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머리카락을 모시고,
특공 병사를 비롯한 전몰 장병의 유서와 영정 전시 및 현창을 중심으로 한 전시 내용으로,
기본적으로 전전(戰前)의 전시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
이 밖에, 구 육군 관계의 대규모 시설로서는 이설(移設) ․ 보존된 이치가야 기념관이
있는데, 그 전시 및 가이드의 설명 내용도 일본의 전쟁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비판적
시각을 결여한 구태의연한 것이다.
【 사세보 사료관의 가짜 ‘객관’ 전시 】
이 사료관은 전전의 일본 해군의 역사부터 전후의 해상 자위대 역사까지 전체를 전시한
해상 자위대의 중심적인 홍보 시설로서 그 위치를 규정할 수 있다. ‘기본 이념’의 ‘(1) 해상
방위에 대한 인식’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해군의 역사와 해상 자위대의 행보를 함정(艦艇)을 중심으로 한 기술의 발
전을 포함하여 알기 쉽게 해설, 전시하여 대원의 교육에 도움이 됨과 동시에, 일반 사
람들이 해상 방위에 대한 인식을 심화할 수 있는 시설을 목표로 합니다.”
이 이념에 따라, 종래의 자위대 관계 전쟁자료관 등의 전시 내용이 전전 ․ 전시 중의 전
쟁관을 그대로 계승하여, 전몰 장병의 현창 ․ 찬미를 중심으로 한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세
일 타워의 전시에는 에타지마의 교육 참고관에서 전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도고 헤
이하치로의 신격화나 특공 병사 등의 전몰 장병에 대한 노골적인 찬미는 없고, 전쟁 역사
전시에도 국수주의나 애국주의적 요소는 자제하여, 전문 전시업자에게 위탁한 덕분에 세련
된 전시 형식과 함께, 언뜻 ‘객관적’인 역사 전시처럼 보인다(2010년 3월 현재). 이렇게 바
다에 둘러싸인 일본 국가를 방위할 임무를 담당해 왔다는 점에서 전전의 일본 해군과 전후
의 해상 자위대가 무리 없이 연계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전시이다.
• 중경(重慶) 폭격의 무시
그러나 이 언뜻 ‘객관적’인 역사 전시에도 본질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즉, 일본
의 근대 대외 전쟁, 특히 중일 전쟁에서부터 태평양 전쟁에 걸쳐 안팎에서 수 천만 명을 비
명황사하게 한 ‘전쟁의 참화’에 대해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 느낄 수 없다는 점이
다.
일본 해군이 깊이 관여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 대한 침략 전쟁과 가해의 역사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번에는 육군에 의한 중경 폭격을 예로 들었는데, 이 중경
에 대한 세계 최초의 대규모 장기간에 걸친 도시 무차별 폭격은, 잘 알다시피 해군 주도로
전개되었다. 해군의 시마다 시게타로(嶋田繁太郞), 이노우에 시게요시(井上成美), 야마구치
다몬(山口多聞),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二郞) 등을 중심으로 하여 입안 ․ 실행된 ‘백일호 작
전’ ‘백이호 작전’ 등으로, 96식 육상 공격기(‘중공(中攻’) 등에서 투하된 소이탄으로 인해
여성이나 아이들을 포함한 만 명 이상의 중경 시민이 살해당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전시되
어 있지 않다.
더구나 3년 동안에 걸쳐 당시 해군 항공 전력이 모든 노력을 동원한 적국 수도에 대한
이러한 대규모 작전 자체에 대해서, 이 사료관에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함정
을 중심으로’ 전시한다고 앞에서 제시한 ‘기본 이념’에는 기재되어 있으나, 이 전시에는 ‘해
군 항공대’라는 제목 아래에, 1909년부터의 항공기 연구를 시작으로, 1916년의 요코스카(橫
須賀) 해군 항공대 개설, 1922년 이후 가스미가우라(霞ヶ浦)에서의 예과련(豫科練) 교육,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청도(靑島) 공략에 대한 항공기 실전 참가 등, 해군 항공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어, 항공대를 포함한 구 해군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리고 기사라즈(木更津), 오무라(大村), 가노야(鹿屋) 등의 해군 항공대 형성에 관한 전시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지에서 편성된 부대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중경 등에 대한 중
국 오지 폭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겨우 도양(渡洋) 폭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짧은 언급이 있을 뿐이다. “해군은 96식 공격기를 타이완(臺灣), 오무
라(大村), 제주도에서 출격시켜 동중국해를 건너 중국의 주요 도시를 공습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 옆에, 산악 지대를 비행하는 비행기의 사진이 한 장 전시되어 있다. 단지 이
전시물 뿐이다. 폭격당한 상하이(上海) 및 남경(南京) 등의 도시나 시민의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사진도 없다. ‘무차별 폭격’ 이나 ‘전략(戰略) 폭격’ 또는 ‘정전략(政戰略) 폭
격’이라는 표현도 없다. 중국 대륙의 깊은 오지, 도쿄에서 직선 거리로 3,000 킬로미터 이
상 떨어진 대륙의 오지 도시에 대한 일방적인 대규모 무차별 폭격의 역사는, ‘해양국가 일
본을 지켜 온 일본 해군 및 해군 자위대’라는 박물관의 선전 이미지와 너무나도 거리가 먼
모습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그것이 해군이 온갖 노력을 기울인 작전이었다고 해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 마닐라 시가전(市街戰) 문제
또한, 1945년 2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와부치 사부로(岩淵三郞) 소장(少將)을 사령
관으로 한 마닐라 해군 방위대가 육군인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사령관의 마닐라 철
수 권고를 거부하고, 마닐라에서 미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고문 등을 가해 살해하는 등 한
달 동안에 걸친 전투 중에, 마닐라 시민 약 10만 명을 위험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결
과를 낳은 점에 대해서도, 전혀 전시되어 있지 않다. 이 사세보 사료관의 전시 ‘감수자’로
서, 방위대학 교수인 다나카 히로미(田中宏巳) 씨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그의 저
사 중 하나인 ≪B C급 전범(BC級戰犯)≫(치쿠마 신서[ちくま新書], 2002년)에서는, 이 마
닐라 해군 방위대가 마닐라 시민에 대해 ‘학살 행위’을 자행한 점, “마닐라 시가전에서 시민
을 위험에 빠뜨리며 전멸하였다”고 한 점, 나아가 마닐라 해군 방위대의 ‘용서 없는 파괴와
살육의 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182쪽~183쪽). 그러나 자신이 ‘감수’한 이 전시에서는,
그 해군의 범죄 행위에 대해 전혀 전시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전의 일본군 행동을 노골적으로 긍정하는 국수주의적 주장이나 전사한
특공 병사에 대한 찬미 등을 자제하고 있어, 언뜻 ‘객관적’ 또는 ‘학문적’인 역사 서술인 것
처럼 인상을 던져주고 있으나, 해군이 일반 시민 등에게 가한 가해 행위를 은폐하고 있다는
점과, 침략 전쟁에 가담한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대부분의 자위대 관계
박물관의 전시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공습 피해의 무시
가해 역사의 은폐와 아울러, 또 하나, 이 전쟁 역사 전시의 기본적인 문제점은 현지
또는 자국민이 입은 공습 등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세
보는 해군 기지와 해군 공창(海軍工廠)이 있었다는 이유로, 미군의 공습 목표가 되었다. 사
세보 시내 중앙공원에는 사세보 공습 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1945년 6월 28일 심야부터 이튿날 미명에 걸쳐, B 29 폭격기 140여 기에 의한 공습
으로, 시세보 사료관의 ‘건립 유래’의 기술에 따르면, 시가지의 3분의 2가 소실되었고,
1,200 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사세보 공습을 기억해 계승하는 모임’에 의
해 사세보 사료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내 도노오초(戶尾町)의 전 초등학교 교실 자리를
이용하여 ‘사세보 공습 자료관’이 2006년부터 설립되어, 사세보 공습에 의한 시민의 피해를
자세하게 전해주는 손수 만든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사세보 시민의 공습 피해에 대
해서 사세보 사료관에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사세보 사료관은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막말(幕末) 이래 일본 전체의 해군의 역사와
전후의 해상 자위대의 역사와 현재의 모든 것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며, 지방사로서의
현지 사세보의 전쟁 피해 등의 역사는 쉽게 무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전시 대상의
차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시의 시각 그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연재 ①〕에서 이미
서술하였으나, 전투 행위의 본질은 적의 전력 파괴이며, 적의 전력 중심은 무기 등의 장비
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 = 장병, 및 그것을 만드는 설비 = 군수공장 등과 인간 = 일반
시민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파괴된 적국 및 자국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전투의
역사, 나아가 전쟁의 현실적 역사를 보여줄 수 없다. 그런데, 사세보 사료관의 전시는 그렇
게 파괴된 인간의 모습을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겨우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장병의 사
망자 수만이 한 장의 표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더구나 거기에는 일반 시민의 사망자 수
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 ‘전쟁의 참화’를 전하지 않는 전쟁 전시
이와 같은 사세보 사료관의 전쟁 역사 전시의 시각이 가진 기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의 수단으로서의 전쟁, 이라는 19세기 이래의 오랜 전쟁관(戰爭觀)에
바탕을 둔 전쟁을 통한 정치적 투쟁의 역사 서술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는 국가의
정치적 이해, 즉 국익의 대립과 군사적 충돌의 경과와 그 결과가 서술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한 와중에 부상을 당하고 죽어가는 (적이든 자국민이든) 인간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수적 현상으로 보고 본질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 는 식으로, 전쟁의 정치적 및 군사적 시점에서만 역사를 말하면서, 그곳에서 파괴되
어간 어마어마한 수의 인간들의 모습은 전시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적뿐 아니라 현지 도시
의 사망자들도. 하물며 도시 무차별 폭격 등에 의한 수많은 일반 시민의 잔혹한 살해 등의
전쟁 범죄 사실은 더욱 주도면밀하게 지워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시점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 시점에 바탕을 둔 전쟁 전시는 인간에게 가한 전쟁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짜
‘객관적’인 전시가 되는 것이다.
사세보 사료관의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전시의 마지막에, 게시판을 4장이나 이용하여
해군의 교육이나 기술이 전후 일본의 부흥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하였는지 자세하게 기술하여
보여주고 있다. “항공 기술이 신칸센(新幹線)의 건설, 자동차, 바이크 등의 제조에 활용되
었다” 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여, “이와 같은 해군의 유산은 전후 일본 경제 부흥에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일본인 310만 명, 그리고 그 몇 배나
되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의 사람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전쟁의 참화가 남긴 역
사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전쟁을 위한 기술의 의의만을 상세하게 기술하는
이러한 자세는 파렴치하기까지 하다.
해상 자위대는 1994년 12월에, 직접 사료관 등에 관여하여, ‘해상 자위대의 역사 보존
에 관한 달(達)’ 및 ‘해상 자위대의 역사 보존에 관한 달(達)의 제정 취지 및 운용 방침에
대해서(통달[通達])’을 내놓았다. 이 통달이 있은 지 3년 후에 개관한 사세보 사료관은 분
명 이 통달들에 기초하여 설치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 내용과 문제를 자
세히 검토해 볼 여유는 없지만, 위의 통달에서는 제정 취지로서 “대원의 교육에 도움이 될
것”으로서, “과거를 펼쳐내서 이해하는 것은 자신이 현재 처한 입장의 중요성을 깨달아, 장
래를 생각하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원의 지적 교육에 도움을 주는 바가 크
다”고 언급하고, “해상 자위대의 홍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서 “역사적 자료를 활용한 홍보
활동이나 사료관 등 (중략) 을 통해, 국민의 해상 자위대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얻을 수 있
는 것이다” 고 기술하고 있다.
과연 구 일본 해군이 저지른 가해와 전쟁 범죄를 은폐하고, 자국민의 피해에 대해서도
무시하며, 해군의 작전 행동의 과오 등에 대해서 엄격한 비판적 검토를 하지 않은 채, 진정
한 의미에서 “대원의 지적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또한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
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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