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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 린치버그 강연 풀버젼

헬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01.07 14:35:22
조회 3186 추천 2 댓글 6

리처드 도킨스 - 린치버그 강연 풀버젼


출처 : <U>http://blog.daum.net/nighthag12/12129606</U>

 
사회자:
안녕하세요? 저는 이 곳 Randolph-Macon 여대의 생물학과 교수인 더글러스 쉐드입니다. 올해의 필립 테어 기념 강연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강연은 고 필립 테어 교수의 업적과 오랜 공헌을 기리기 위해 그의 동료와 친구들이 마련한 것입니다. 올해로 6번째를 맞이한 이번 강연의 연사는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아 온 분으로서 필립 테어 교수 자신이 세웠던 지적이고 도전적인 강연의 전통을 잇는 분입니다. 영광스럽게도 저는 테어 교수님을 개인적으로 알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생각을 사랑한 훌륭한 분이셨던 교수님도 오늘 밤 강연자가 누군지 알면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강연자는 리처드 도킨스입니다.

도킨스는 옥스퍼드 대학의 \'과학의 대중적인 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석좌교수입니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태어났으며, 7세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노벨상 수상자인 니코 틴버겐의 밑에서 동물학을 공부했으며, 거기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67년에서 69년 사이에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동물학과 조교수로 일했고, 1970년에 옥스퍼드에서 강사로, 90년엔 동물학과 주임강사(Reader)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에 이 대학의 첫번째 \'과학의 대중적인 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교수가 되었습니다. 또 1970년 이래 옥스포드대 뉴 칼리지 단과대의 특별 연구원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도킨스의 기념비적인 저서 \'이기적 유전자\'가 세상에 나온 지 30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대중들에게 진화론의 새로운 중요 학설들을 명료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놀라운 책은 몇 세대가 지난 지금도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진화론을 이해하는 지침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그 자체로 현대 과학 저술의 진정한 고전이라 불러 손색이 없습니다.

도킨스는 그 뒤에도 뛰어난 책들을 계속 발표했는데, \'확장된 표현형\', \'눈먼 시계공\' -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아끼는 책이기도 합니다 -, \'에덴밖의 강\', \'불가능의 산을 오르다\', \'무지개 해체하기\', \'악마의 사도\', \'조상들의 이야기\', 그리고 가장 최근에 \'신이라는 이름의 망상\'을 썼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도킨스의 과학에 대한 열정은 그의 탁월한 문학적 재능에 의해 뒷받침된다\' 라고 했고, 뉴욕 타임즈 서평은 그를 \'주제를 너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도 할 수 없이 그를 따라오게 만드는 대단한 작가\' 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도킨스는 런던의 동물학회가 주는 은메달, 왕립협회가 주는 마이클 패러데이 상, 나카야마 인류 과학상, 국제 코스모스 상, 키슬러 상 등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문학과 과학 양 분야의 명예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계속해서 통찰력있는 발언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지식인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오늘 자신의 책 \'신이라는 이름의 망상\'에 대해 강연하실 이 분을 기쁜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도킨스 교수님~


리처드 도킨스:
감사합니다. 제 말이 잘 들리시나요? 저는 오늘 저녁의 하이라이트는 2부의 질문/대답 시간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제 책에서 몇 부분을 발췌해서 읽는 걸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올 질문들을 미리 정리하는 역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우선 저는 제 책의 1장의 앞 부분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1장: 마음 속 깊이 경건한, 하지만 신을 믿지 않는 사람 (A deeply religious non-believer)

소년은 잔디 위에 엎드려 턱을 손으로 받치며 누워 있었습니다. 불현듯 그는 몸 아래 얽히고 ㅅㅓㄺ힌 풀뿌리 속에 숨은 세계의 존재를 깨닫고 압도당해 버렸습니다. 그 세계는 아주 작은 것들의 숲이며 개미와 딱정벌레의 나라였습니다. 또한 -- 소년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 흙속에서 마이크로 생태계를 떠 받치는 몇십억 박테리아의 왕국이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이 작은 숲은 무한히 커지더니 우주 그 자체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감동에 찬 소년의 마음은 이 놀라운 기적을 묵상했습니다.

소년은 이 경험을 종교적 의미로 해석했고, 자라서 결국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영국 국교회의 사제였던 그는 바로 제 어린 시절 교구 담임목사셨고, 또 제가 좋아했던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장소와 시간이 달랐다면, 그 소년은 바로 제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별들을 올려다보며 오리온 자리, 카시오페아좌와 북극성에 감탄하고, 은하수가 들려주는 우주의 음악에 감동하여 눈물 흘리고, 협죽꽃과 나팔꽃 향기가 진동하는 아프리카 정원의 밤에 취했을 것입니다. <I>(소개에서 나오듯 도킨스는 어릴 때 아프리카에서 자랐습니다.)</I>

왜 같은 경험이 저와 그 사제를 서로 다른 길로 이끌었을까요? 대답하기 결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는 과학자나 인본주의자라면 흔하게 보이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건 인격신에 대한 종교적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전 종종 아주 종교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미국의 한 대학생이 제게 편지를 보내 와 자신의 지도교수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려주었습니다. 그 교수는 \'도킨스의 과학관은 종교와는 양립 불가하지만 그의 견해 속엔 자연과 우주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가 숨어 있어. 내가 보기엔 그건 또다른 하나의 종교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종교\'란 단어를 쓰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는 종교를 말할 때 \'아인슈타인의 종교\'와 초자연적 존재를 믿는 종교를 구별하지 않고, 그 때문에 많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옵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주 \'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고(그런 습관을 지닌 무신론 과학자는 그 혼자가 아니었죠), 그 때문에 언제든지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럼으로써 그와 같이 뛰어난 이를 같은 편이라 부르고 싶은 세력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스티븐 호킹도 자신의 책 <시간의 역사>의 마지막을 아주 웅변적으로(혹은 장난기로?) \'그 땐 우리는 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라고 끝맺었죠. 이 구절은 갖은 억측을 낳았고, 물론 오해에 불과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호킹이 종교인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흔히 종교인이라 오해받는 우리 시대의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견해를 자세히 뜯어보면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아인슈타인과 호킹 역시 예외가 아니구요.

아인슈타인의 말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없는 종교는 장님이나 다름없다"입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나의 종교적 신념 운운하는 기사는 물론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은 끊임없이 체계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인격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말을 바꾸거나 애매하게 표현한 적도 없다. 만약 나에게 있어 종교적이라고 부를만한 게 있다면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낸 이 세계의 질서에 대한 끝없는 경외심일 것이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가 자기 모순에 빠졌던 걸까요? 해석하기에 따라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는 말을 한건가요?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종교는 우리가 아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강연에서 저는 이 아인슈타인적 종교와 초자연적 인격신을 믿는 종교를 엄격히 구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망상\'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이 초자연적 인격신을 향한 믿음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2장: 신의 존재에 대한 가설 (The God Hypothesis)

구약의 신, 야훼는 모든 소설의 주인공들 중 아마 가장 메스꺼운 존재라 부를만 합니다.
질 투의 화신이면서도 그걸 자랑스러워 하고; 째째하고 불공평하면서도 까다롭게 시시콜콜 참견하기 좋아하고; 보복을 일삼고 걸핏하면 피를 보는 인종청소범이며; 여성혐오자, 동성애혐오자, 인종차별주의자, 유아살해범, 친자살해범, 과대망상증에 사도마조히즘에 빠진 정서가 불안한 잔악한 악당입니다. (웃음, 박수)

우리들 중 아기때부터 세뇌당해 온 이들은 이 끔찍함을 잘 알지 못합니다. 만약 때묻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 본다면, 좀 더 분명한 그림이 잡힐 겁니다.

윈스턴 처칠의 아들인 랜돌프는 성인이 될때까지 이런 경전의 오염(?)을 피한 드문 경우였습니다. 2차 대전 중 에블린 워와 그의 형이 랜돌프와 같은 병영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형제는 랜돌프를 정숙하게 만드려는 목적으로, 바이블 전체를 2주만에 다 읽으면 돈을 주기로 내기를 걸었습니다. ... 하지만 운 나쁘게도 상황은 형제의 예상과 달리 전개되었습니다. (웃음) 전에 한번도 바이블을 접하지 않았던 랜돌프가 책에 완전히 빠졌을 뿐 아니라 거의 흥분해 버린 겁니다. 그는 구절들을 반복해 읽으며 "이봐! 이런 구절이 바이블에 있을줄 누가 알았겠어"라고 외치거나 혹은 무릎을 치며 "오마이갇!! 하나님이란 작자 이거 완전 xxx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웃음)

그보단 상황이 나았던 토마스 제퍼슨 또한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신을 기분나쁜 캐릭터로, 잔인하고, 복수심에 붙타 있으며, 성격 나쁘고 불공평한 인물로 묘사햇습니다.

하지만 사실 구약의 신만큼 공격하기 쉬운 상대도 없으며, 따라서 여기서 그친다면 좀 불공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신이라는 가설에 대한 판단을 야훼라는 가장 인기없는 대상만을 통해서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 대척점을 이루는 신약의 신, 즉 \'부드럽고 온화한 예수\'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을 겁니다. 참고로 이 부드러운 예수의 이미지는 예수 자신보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향이 더 큽니다. \'모든 기독교인 어린이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부드럽고, 순종하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알렉산더 여사의 말에 잘 드러났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저는 특정한 신의 한 측면만을 짚어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야훼, 예수, 알라 혹은 바알, 제우스, 보탄 등 어떤 신이든 말입니다. 그 대신 저는 신의 존재에 대한 가설을 좀 더 엄격하게 정의하려 합니다. 그건 <초인간적, 초자연적인 힘과 지성을 가진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 존재가 이 우주와 인간을 포함한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설계하고 창조했다>는 가설입니다.

물론 저는 이 가설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설계하고 만들 정도로 충분한 지능을 가지고 있고, 필요한만큼 복잡한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틀림없이 오랜 시간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된 진화의 결과물일 것입니다. 지성을 가진 이 \'창조자\'는 진화의 끈을 따라, 이 우주에 시간적으로 나중에 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존재가 이 우주의 조물주가 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가정한 신은, 그 정의상,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뒤에 말하겠지만 아주 질이 나쁜 망상입니다.

이런 종교는 과학적 증거 없이 순전히 개인적인 영적 체험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역/집단의 전승에 의존해 발전해 왔습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지역/집단마다 그들 머리 속의 신의 모습이 제각각이란 게 조금도 놀랍지 않습니다. 종교역사학자들은 종교가 고대의 부족신앙에서 그리스 로마, 북구유럽의 다신교로, 다시 유대교와 거기서 파생된 기독교, 이슬람의 유일신교로 발전해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유일신이라는 주장은 가끔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를 둘러싸고 셀수없는 희생과 엄청난 저작들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아리우스파의 이단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납니다. 4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는 예수가 신과 같은 \'본체\'를 공유함을, 혹은 같은 \'질료\' 혹은 \'핵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생각을 부정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게 데체 무슨 얘기인지 궁금하실 겁니다. 질료? 무슨 질료? 또 핵심? 이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지? 아마 가장 이성적인 대답은, 이런 모호한 말들이 실제로 무슨 뜻인지는 거의 알기 힘들다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매한 개념을 둘러싼 논쟁은 거의 한세기동안 기독교 세계 전체를 둘로 갈라 놓았고, 급기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아리우스의 모든 책을 불태우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겨우 결말을 보았습니다.

머리카락 하나를 가르는 것보다 작은 차이가 기독교 전체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신학의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하나님은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한명의 신인가요? 아니면 하나로 합쳐진 세명의 신인가요? 이런 알쏭달쏭한 신학적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데는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가톨릭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친절히 설명해 주더군요. "유일한 하느님 안엔 세개의 위격이 자리잡고 있으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다. 이 세 위격은 명확히 서로 구별되며 또한 별개이다. 그러므로 아타나시우스의 교리에 의하면 \'성부도 하느님이시고, 성자도 하느님이시며, 성령도 하느님이시다. 하지만 하느님은 세 분이 아니시고 오직 한 분만 있을 뿐이다.\'"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꼈는지, 백과사전은 3세기의 신학자인 \'기적의 일꾼\' 성 그레고리의 말을 인용합니다. ".. 그러므로 삼위일체 안에서는 그 어떤 위도 다른 위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으며, 우열이란 것도 없다. 처음엔 없었는데 나중에 추가된 위도 없다. 따라서 성부는 성자없이 존재한 적이 없고, 성자는 성령 없이 존재한 적이 없다. 삼위일체는 처음부터 영원까지 변하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다." 어떤 기적 때문에 성 그레고리가 이런 별명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단순하고 명쾌한\' 기적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그의 말에선 신학적 수사 특유의 애매모호함이 넘칩니다. 신학은 다른 모든 학문분야와는 달리 18세기 이후 사실상 발전을 멈춘 분야죠.

바른 말을 많이 한 토마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이성적 주장에 대처하는 유일한 무기는 조롱 뿐이다. 어떤 주장의 타당성을 이성적으로 검토하려면 우선 그 주장의 대상부터 명확히 정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껏 이 \'삼위일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건 그냥 예수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약장수들의 횡설수설 헛소리에 불과하다." 이런 비판은 제퍼슨이 캘비니즘의 삼위일체설을 공격하는 와중에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다신교적 요소\'를 누구보다 열심히 극단까지 부추기는 교단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로마 가톨릭일 것입니다. 그들은 \'천상의 여왕\'인 마리아에게 사실상 여신의 지위를 부여하고 이 세명의 신과 합류시켰습니다. 이 여신은 기도의 대상이 되는 횟수로도 신에게 별로 뒤지지 않는 2등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만신전\'의 외곽에는 성인들로 이루어진 군단이 자리잡고 있죠. 우리의 기도를 신에게 전달한다는 독특한 능력 때문에, 반신의 위치는 아니더라도, 그들만의 특정한 전문분야를 정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가톨릭 평신도 포럼 사이트에 가면 고맙게도 이 모든 성인들의 명단을 각각의 전문분야별로 볼 수 있는데요, 그 중엔 복통, 학대 피해자, 거식증, 무기 판매상, 대장장이, 부러진 뼈, 폭탄제거 전문가, 탈장등의 수호성인도 있습니다. 이 예들은 알파벳 \'B\'로 시작하는 항목만을 살펴본 것입니다. (웃음)

세상을 떠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임 교황들이 그 이전 몇세기동안 만든 숫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성인을 양산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동정녀 마리아\'에 대해 품은 신앙심은 아주 특별했죠. 거의 \'다신교\'의 수준에 이른 그의 열정이 두드러지게 표출된 계기는 1981년 로마에서 암살시도를 당해 목숨을 잃을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파티마의 성모\'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신 덕분에 자신이 살아났다고 해석했습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손길이 총알을 움직여 급소를 빗나가게 만들었다\'는 거였죠. 그렇다면 그 손길이 왜 처음부터 교황의 몸을 비껴가게 하시지 않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편으론 6시간 동안 교황을 살려내기 위해 분투한 외과의사들도 그 신비한 손길 못지않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그 의사들의 손 또한 신비한 힘이 인도하셨을지도 모르지만요..

여기서 흥미로운 건 교황이 보기에, 총알을 움직인 손길의 주인공은 단순히 \'천상의 성모\'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황은 특별히 \'파티마의 성모\'를 지목했습니다. ... 아마 그 시간에 루르드의 성모, 과달루페의 성모, 메주고리예의 성모, 아끼다의 성모, 자이툰의 성모, 가라반달의 성모, 노크의 성모께서는 다른 업무로 바쁘셨나 봅니다.



이 책의 3장은 신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을 담았습니다, 다른 한편 4장은 \'왜 신이 존재할 확률이 거의 없는가?\'를 얘기하고 있구요.. 하지만 이 것들을 간단한 발췌로 줄이기는 좀 힘들군요. 이 강연에선 건너 뛰겠습니다. 5장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에 빠지는 이유를, 6장에선 사람들이 도덕법칙을 지키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7장은 \'좋은\' 책과 도덕적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인데 이 장에서 몇 부분을 읽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부터 듣다 말고 나가는 사람의 수를 세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한 3명쯤 되는군요. (웃음)



7장: \'좋은\' 책과 도덕적 시대정신 (The \'Good\' Book and the changing moral Zeitgeist)

경전의 글귀가 도덕의 지침이나 삶의 법칙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직접적인 명령을 통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십계명이 그렇습니다. 미국 바이블 벨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전쟁의 대상이기도 하죠. 다른 하나는 모범을 통해서입니다. 신, 혹은 바이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 현대의 용어를 빌리면 -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가지 길은 모두, 종교인이든 아니든 상식을 가진 문명인이 보기엔 어이없고 끔찍한 수준의 도덕률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3대 유일신교의 시조입니다. 믿음의 아버지라는 역할 모델로서 그가 누리는 위치를 넘어서는 존재는 신 자신밖에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현대적인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그를 따라하고 싶을까요?

신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아끼는 외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충직한 아브라함은 제단을 세우고, 장작을 올려놓은 다음, 아들 이삭을 끌고 왔습니다. 그의 칼이 아들의 목숨을 막 끊으려는 순간,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극적인 뉴스를 전했습니다. 계획이 막판에 변경되었다구요.. (웃음) 결국 신의 말은 농담에 불과했으며, 아브라함을 꾀어 그의 믿음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도덕 관념을 가진 현대인이라면 이 어린아이가 이런 끔찍한 심리적 상처에서 어떻게 헤어날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 기준으로 볼 때, 이 황당한 이야기는 아동 학대인 동시에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이용해 상사가 부하를 핍박한 사건입니다. 또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온 변론 수법이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난 그저 윗 분의 명령만 따랐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는 모든 3대 유일신교의 기초를 이루는 위대한 전설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이 얘기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는 건 부당하다고 반박할 지 모릅니다. 제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심지어 21세기에도, 아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얘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과 이슬람권에서 말입니다. 둘째, 이 얘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데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비유? 무엇에 대한 비유? 비유의 대상이 무엇이건 칭찬할만한 것 같지는 않군요. 도덕적 교훈? 이 어이없는 일화에서 어떤 교훈을 끌어낼 수 있습니까?

알아 두십시오. 제가 지금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도덕법칙을 배우는 곳은 종교의 경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설사 종교경전을 뒤적이더라도 우리는 \'좋은\' 말씀만 뽑아서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립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려면 무언가 독립된 기준이 따로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무엇이든 경전 자체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그런 도덕 기준은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호교론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 신이라는 캐릭터에서 어떻게든 좋은 면을 건져보려고 애씁니다. 어쨌든 마지막 순간에 이삭의 목숨을 건진 건 신의 자비가 아니었던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논리에 설득당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혹시나 해서 여기 또 다른 인신공양 사례를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해피 엔딩이 아닙니다.

판관기 11장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이스라엘의 장군 입다는 신에게 "암몬인들을 쳐부수게 해 주신다면, 제 집 문에서 저를 맞으러 처음 나오는 것을 번제로 바치겠습니다." 라고 맹세했습니다. 전쟁은 판관기의 다른 내용이 으례 그렇듯, 이스라엘의 큰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승전가를 부르며 집에 돌아왔을 때 그를 처음 맞은 것은, 슬프게도, 소구를 잡고 춤을 추는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입다는 옷을 ㅉㅣㅅ으며 슬퍼 했지만, 맹세를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신은 이번에는 약속대로 제물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딸은 기꺼이 제물이 되겠다고 동의하며, 침착하게 아버지를 위로했습니다. 그녀가 내 건 유일한 조건은 두 달 동안 산에 들어가 처녀로 죽는 한을 푸는 것 뿐이었습니다. 두 달이 지나자 딸은 얌전히 돌아왔고, 아버지는 딸을 요리해 신에게 바쳤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신은 이 일에는 자비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가 봅니다.

신은 자신의 선택된 백성이 라이벌 신과 \'외도\'할 때마다 격렬한 분노를 드러냅니다. 제가 보기엔 이런 신의 행동은 연인의 질투, 그 중 최악의 종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행동은 현대의 도덕 기준으로 볼 때, 본받을만한 무엇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배우자나 연인이 바람을 피울 때 화가 나는 것은 사실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입니다. 이런 얘기는 셰익스피어에서 3류 연애 소설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선택받은 백성들이 왜 이렇게 다른 신들의 꾀임에 끊임없이 넘어가는지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듭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희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아주 지키기 쉬운 계명인데두요... 가령 \'너희는 네 이웃의 아내, 혹은 당나귀, 혹은 수소를 탐내지 말라\'에 비하면 말입니다. 그런데 구약을 통틀어 이런 사건은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른 문학작품에서 잠자리 다툼 장면이 규칙적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이 잠깐만 한눈을 팔면, 이스라엘의 말썽꾸러기 아이들은 바알 혹은 목상에 새긴 다른 매춘부와 어울려 탈선으로 빠집니다. 그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은 금으로 만든 송아지와 어울린 스캔들이겠죠.


이 다음에 모세의 얘기를 다룬 장은 제일 마지막 얘기만 읽겠습니다.

모세의 시대에 시작된 인종 청소의 전통은 여호수아에 이르러 피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여호수아의 예리고 정복은 그 잔혹함에서도 그렇지만, 노골적인 이방인혐오증으로도 주목을 끕니다. 오래된 찬송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예리고 성을 향해 나아가자, 성벽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네. ... 예리고를 정복한 여호수아, 하나님의 종으로 이만한 이가 없네\' 하지만 이렇게 칭찬이 자자한 여호수아는 예리고 성벽이 무너진 뒤에도 칼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군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심지어 소,말,양과 나귀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칼로 쳐 죽여 버렸습니다. 여호수아 6장 21절입니다.

여기서 다시 신학자들은 제게 따져 물을지 모릅니다. 그건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요... 음.. 맞습니다. 바이블에 의하면 단지 고함치고 나팔을 불었을 뿐인데 예리고 성벽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죠? 그러니 이 일은 아마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제 요점은 그게 아닙니다. 요점은 이런 사건이 실재했건 아니건, 바이블의 내용이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도덕 지침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엄밀하게 말해, 바이블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예리고 함락, 혹은 이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해가는 과정은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것, 혹은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과 남부 이라크인들을 학살한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바이블은 아마 화려하고 시적인 문학작품임에 틀림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자녀에게 도덕책으로 권할만한 종류의 책은 절대로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얘기와 관련해서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죠지 태머린이 어린이들의 도덕관념에 관한 흥미있는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태머린은 1000명 이상의 8~14세 이스라엘 어린이들을 상대로 예리고 함락 일화에 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의 질문은 간단한 도덕적 판단을 묻는 것이었는데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인들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에 대해 세가지 항목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었습니다. A (전적으로 옳음), B (어느정도 옳음), C (완전히 잘못된 행동). 결과는 양 극단으로 갈렸습니다. 66%가 A를 택했고, 26%가 C를 택했습니다. 사이의 B를 선택한 비율은 8%에 불과했습니다.

여기 A를 택한 그룹의 전형적인 대답 중에서 세가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 내 생각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행동은 옳았다. 이유는: 야훼가 그들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정복해도 좋다고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 뜻을 따르지 않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면 이 땅의 이방인들과 섞여 동화되어 버렸을 것이다." / ""내 생각엔 여호수아는 옳은 일을 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과 어울려 못된 짓을 배울까봐 이들을 전멸시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 "여호수아가 옳았다. 그 땅에 살던 인간들은 야훼 아닌 다른 신을 섬기던 자들이니까.. 여호수아는 이들을 죽임으로써 이방의 신을 몰아낸 것이다."

이 모든 응답에서 동기로 작용한 것은 그들의 종교였습니다. 심지어 C를 택한 경우조차 이상한 종교적 이유를 그 근거로 댄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호수아의 행동이 나빴다고 대답한 한 소녀의 근거를 읽어 보겠습니다. "예리고 성을 차지하려면 우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난 이게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랍인들은 불순하기 때문이다. 더렵혀진 땅으로 들어가면 이스라엘 인도 같이 더러워지고 그들이 받은 저주를 함께 받게 된다."

태머린의 보고서엔 아주 재미있는 대조군 실험결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른 그룹에서 뽑은 168명의 이스라엘 어린이들에게 같은 내용을 들려주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다만 이번엔 여호수아란 이름 대신 임장군으로, 그의 군대는 이스라엘 인이 아니라 3000년 전 중국의 어느 왕국의 군사들로 바꾸었지요. 그러자 결과는 앞의 것과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임장군의 행동을 지지한 비율은 7%에 불과했고, 75%가 옳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교라는 꺼풀이 없어지자,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이런 행동이 현대인의 도덕기준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동의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행위은 정말로 야만적인 학살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종교라는 안경을 쓰는 순간 모든 것이 달리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다름\'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됩니다. 인종청소를 찬성하느냐 규탄하느냐의 갈림길을 만든 것은 바로 종교였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바이블을 최고의 도덕지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 책 안에 어떤 내용이 쓰여져 있는지 알고 있을까요? 레위기 20장에 의하면 다음의 행동은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할 중죄입니다: 자기 부모에게 악담하는 자, 간통하는 자, 계모 혹은 며느리와 잠자리를 함께 한 자, 동성애자, 모녀와 함께 결혼하는 자, 수간하는 자... 특히 이 경우엔 이 가엾은 짐승도 함께 죽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것도 이에 못지 않게 죽어 마땅한 중죄입니다. 구약은 이 점을 수없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5장에는 이 금지된 날에 광야에서 나무를 줍다가 붙잡혀 끌려나온 사람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인들은 신에게 이 남자를 어찌해야 좋을지 물었습니다. 신은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으셨던지 적당히 넘어갈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야훼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를 사형에 처하라. 온 회중이 그를 진지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쳐 죽여라\' 백성들은 명령대로 그를 끌어내 돌로 쳐서 죽였다." ... 장작을 줍던 이 불쌍한 남자에게 과연 울어줄 아내와 아이들은 없었을까요? 첫번째 돌을 맞았을 때 그가 느꼈을 공포, 아픔이 그의 머리를 꿰뚫었을 때 그가 질렀을 고통에 찬 비명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을까요?

저를 거듭 놀라게 만드는 건 이런 일이 실재로 일어났냐는 게 아닙니다. 아마도 그런 얘기들은 지어낸 예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야훼라는 역할 모델을 그들 삶의 지침으로 삼는다는 것, 나아가 이 괴물을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에게 강요한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이제 저는 나머지 장들은 건너 뛰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려 합니다.


마지막 장: 부르카 중의 부르카 (THE MOTHER OF ALL BURKAS)
<I>(이 장의 내용은 2005 TED 강연과 유사합니다.)</I>

오늘날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장면 중 하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을 뒤집어 쓰고, 눈 앞에 두른 얇은 베일의 틈을 통해서만 바깥을 내다보는 (이슬람) 여성들입니다. 제가 말하는 거리는 제가 산책하곤 하는 영국의 거리를 말하고, 아마 미국에선 보기 힘든 광경일 겁니다. 부르카는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그들의 자유와 아름다움을 잡아 가두는 종교적 족쇄이기도 합니다. 또 군림하는 남성과 순종하는 여성의 차별적 관계가 잔인하게 표현된 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 말고 부르카에 관해 조금 다른 얘기를 하려 합니다. 저는 이 얇은 베일의 가느다란 틈을 다른 것의 비유로 쓰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눈이 볼 수 있는 영역은 전체 전자기파 영역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마치 베일의 가느다란 틈처럼요.. 라디오 파에서 감마선에 이르는 이 광대한 영역 거의 대부분은 우리에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캄캄한 암흑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영역은 이런 어둠 속의 희미한 빛과 같구요.. 우리가 세상을 보는 이 가느다란 틈이 얼마나 좁은 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고,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아주 거대한 검은 부르카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틈을 표준 크기, 예컨데 1인치로 가정해 보십시오. 부르카 전체에서 이 틈의 윗부분을 단파장 영역으로, 또 아래부분을 장파장 영역으로 생각한다면 이 1인치를 같은 축척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부르카가 데체 얼마나 커야 하는 걸까요?

이 엄청난 크기는 로그함수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표현하기조차 힘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로그함수를 공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겠지요. 그냥 이 부르카를 \'부르카 중의 부르카\'라고만 부르겠습니다. 치마 끝의 라디오파에서부터 머리 끝의 감마선까지 몇십마일이 넘는 이 부르카 중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역은 보잘것없는 1인치에 불과합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해 준것은 바로 이 틈을 넓혀준 것이었습니다. 틈을 조금 벌린 정도가 아니라 이 거추장스러운 검은 부르카를 거의 걷어내 버리고, 우리의 눈에 무한하고 장엄한 자유를 주었습니다. 광학 망원경은 렌즈와 거울을 이용해 하늘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우리가 가시광선이라 부르는 영역으로 빛을 쏘아주는 별들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X선과 라디오파를 이용한 다른 망원경은 전혀 다른 밤하늘의 천국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역시 적절한 자외선 필터를 끼운 카메라로 꽃을 찍으면, 맨 눈으로는 알아 차리지 못했던 이상한 무늬와 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도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곤충이 볼 수 있는 영역의 넓이도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만, 다만 그 구간이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했다는 점이 틀립니다. 그들은 적외선에 가까운 영역을 잘 볼 수 없으나, 자외선에 가까운 영역은 우리보다 좀 더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꽃밭은 그들에게 \'자외선의 정원\'이 된 것입니다. <I>(\'자외선 정원\'은 1992년 도킨스가 왕립협회에서 어린이들에게 했던 과학강연의 제목이기도 합니다.)</I>

과학이 우리의 시야를 놀랄 정도로 넓힌 것에 대한 이런 식의 비유를 과학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없는 크기의 척도들이 전시된 통로의 대략 가운데 쯤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 기관과 신경 체계는 적당히 작은 크기와 적당히 느린 속도의 물체를 다루는 데 익숙하도록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대략 수km에서(산 위에 올라가서 보는 광경이겠지요) 1/10mm 크기의 물체(핀 끝의 크기)를 다루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우리의 상상력은 금새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도구와 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학습을 통해 이런 도움을 받는 법을 터득합니다만 ...

우리의 상상력이 무리없이 작동하는 이 크기-거리-속도의 영역은, 아래로 양자역학적 불확실성에서 위로 아인슈타인적 대우주에 이르는 무한한 크기의 벌판에 서 있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표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좁은 \'중간\' 영역의 범위를 뛰어넘는 거리를 가늠하는 데 절망적일 정도로 서툽니다. 우리는 전자를 작은 공과 같은 존재로 파악하려 합니다. 이 작은 공은 또 다른 작은 공인 양성자와 중성자가 엉겨붙은 큰 덩어리의 주변을 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이 세계의 실체와는 거리가 멉니다. 전자는 작은 공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가 묘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실재 세계의 경계선에서는, 그 \'닮았다\'는 말이 뭘 의미하는 지조차 흐릿해져 버립니다. 또 우리의 상상력은 양자역학적 세계의 언저리를 탐색할만큼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세계에선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상식에 비추어 \'당연히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방식으로 운동하지 않습니다. 광속의 대략 몇분의 일에 접근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상식\'은 우리를 속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은 모든 것이 적당히 빠르고, 적당히 큰 세계에서 진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평범한 세계를 \'중간 세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위대한 생물학자 J.B.S. 홀데인은 에세이 \'가능한 세계들\'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했습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우주의 괴상함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상상 뿐 아니라, 미래에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수준조차 뛰어넘는 게 아닐까? 천공과 이 지구엔 어떤 철학자도 생각한 적 없는, 또 앞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숨어있지 않을까" 홀데인의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아무리 지성이 발달한 존재라도 이론적으로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이 존재하는 걸까요? 아니면 중간세계의 제자인 우리 뇌의 진화적 한계를 말하는 걸까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우리가 이 중간세계의 감옥을 탈출한다면, 이 검은 부르카를 벗어 던진다면, 아주 작은, 아주 거대한, 혹은 아주 빠른 세계의 신비를 수학공식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직관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그 대답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가 바로 이 한계를 향해 도전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기쁘고 흥분됩니다. 그리고 바라건데, 언젠가는 그 한계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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