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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만 아는 농담

솔롱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06 18:41:03
조회 1762 추천 53 댓글 9
														






※ 캡처 하나 없이 길기만 한 글이니 읽으실 분들만 읽어보세요!


















"인생은 아름다워"가 종영한 지 10년째가 되는 해라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되어 불쑥 글을 써봅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대로 쓰는 것이니 지루해도 이해해주세요.





제가 오랫동안 인아갤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을 쓴 것이

2010년 9월 9일이었어요.

그 전에도 좋아하는 드라마는 있었지만,

감상글을 쓰고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본방사수를 한 드라마는 처음이라

저에게는 인아라는 작품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이곳을 서성거리고 있는 거겠죠.



아마도 꽤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라 예상하지만,

저는 처음에 공중파 드라마에 남남커플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호기심이 생겨서 이 작품을 보게 되었었어요.

그때만 해도 퀴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지 않을 때였죠.

궁금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인데

어느새 그들의 일상에 푹 빠져들어 보게 되더라고요.





초반까지만 해도 경수의 분량이 많지 않았던 거, 생각나시죠?

그런데 반응이 좋아서 분량이 늘어난 것으로 기억해요.

태섭의 연인이라는 캐릭터에 김경수만의 서사가 생겨났었죠.



그림 같았던 결혼 생활, 아들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부모님,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까지.

저는 점점 세밀해지는 경수의 서사가 반가웠습니다.

극 중에서 경수는 아웃팅을 당했다고 나오는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게 늘 궁금했어요.

그리고 나연과 오랫동안 나누었을 이야기와 감정들도요.





최근에 "his"라는 퀴어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요,

대학생일 때 연인이었던 두 남자 중 한 명은 게이의 삶을 포기한 뒤

통역일을 하는 여자와 결혼한 뒤 딸을 낳고 살아가고,

한 명은 실연의 상처를 안고 시골마을에 와서 이웃들에게 벽을 쌓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떠난 남자가 이혼 조정 중에 옛 연인에게 찾아오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경태를 떠올렸어요.

경수는 이미 이혼을 한 상태지만,

이 영화 속 남자는 이혼을 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마치 경수가 지나왔을 지난한 날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나연이 수나를 데리고 처음 등장했을 때를 기억하세요?

분노가 아닌 안타까운 눈빛을 한 나연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게이인 걸 숨기고 결혼을 할 수가 있었느냐는 분노도

자신을 사랑했던 게 아니었느냐는 수치심도 아니라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만 더 붙잡고 싶은 미련이 담긴 눈이었죠.

저는 "his" 영화 속 이혼 재판 과정에 그 날것의 감정들이 담겨있다고 보았어요.



영화 주인공 중 한 명이 하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약하다고 생각했다, 는 말이요.

성소수자인 자신이 언제나 약자이고,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늘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마음 한 구석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있었다는 고백이었죠.

그 대사를 듣고 저는,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떠올렸습니다.

태섭이 민재에게 커밍아웃을 하던 장면을요.

죽으라고 하시면 죽겠다고 하던 태섭이를요.

당시에는 민재처럼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며 같이 울고 싶기만 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태섭이는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스스로를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같은 마음이 분출되었는지도요.







문득, 수나가 생각납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어색해서 엄마 뒤에 숨던 아이가

어느새 볼을 부비고 껴안고 뽀뽀를 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아..아이에겐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이구나 싶어서 짠했어요.



떡볶이가 매워서 물을 잔뜩 마시는 걸 보고는

그러다가 배에서 소리가 난다며 놀리는 말에,

"이렇게요? 이렇게요?"하며 몸을 흔들던 수나의 애교를 보면서

TV밖의 저도 함박웃음을 지었던 것은 몇 번이고 생각나네요.



수나는 이제 청소년이 되었겠어요.

태섭이가 경수에게, 나중에 같이 수나를 만나러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정말로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연은 딸에게 제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해줬을까요?

나연이라면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분명하게 그러나 다정하게 설명을 했을 것 같습니다.

네 아빠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버리고 떠난 게 아니라고,

다만 자기 자신으로 있기 위해서 지금의 삶을 선택한 것이라고요.

아빠는 여전히 수나의 아빠이고, 수나를 계속 사랑하고 있다고요.



태섭이는 경수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진 않을까 불안해했지만

경수는 이미 진작부터 결심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더욱이 다시 돌아간다면 경수는 더이상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제야 겨우 어두운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 조각을 보게 되었는데,

탕자야,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말하는 듯한 아버지의 시선을 외면할 수밖에요.

경수에게는 목숨이고 운명인 사람이 생겼으니까요.

끝을 내더라도 너덜너덜해지진 말자며,

태섭이가 받을 상처를 더 걱정하던 사람인데요.






병수가 경수를 불러 불란지에서 술을 마시던 날

미련 섞인 말들을 술의 기운을 빌려 털어놓을 때,

그래, 부모의 진심은 저런 거겠지..싶었습니다.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되돌릴 수 있는 거라면 되돌리고 싶은 거겠죠.

그 마음을 두 사람도 잘 알기에, 밤바다를 그토록 쓸쓸히 걸었을 겁니다.



태섭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일을 타이르던 지혜도 생각나요.

엄마를 따라온 자신을 싫어해서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 줄 알았던 태섭이,

사실은 그저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아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가여워했었죠.

짝짝이 삼촌의 무신경하고 폭력적인 말에 지지 말라는 응원을 해주기도 했었고요.





비행기 안에서 경수를 처음 만난 순간 이전까지

태섭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건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죽고 싶었다던 그 시간들이 너무 가여워서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경수로 인해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게 되고,

서른이 넘어서야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게 되고,

알콩달콩한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그 변화가 정말 기쁘기도 했습니다.



초롱이에게 들키지 않았더라면 아마 커밍아웃은 더 늦어지거나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랬다면 경태 커플의 연애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웠겠죠.

들키지 않으려고 늘 조심하고 긴장해야 하는 피곤한 연애였을 테니까요.







40대가 된 두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언약식까지 했으니 사소한 삐걱거림 정도로는 멀어지지 않았겠죠?

권태가 왔을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보듬어주고 애틋해하며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의 설렘은 없더라도, 이제는 가족이 되었을 테니까요.



그저 그런채로, 연인인 듯 부부인 듯 특별한 것 없는

보통의 날들을 그렇게, 잘 살고 있을 겁니다.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농담과 에피소드도 늘어났겠죠.

단어 하나만 꺼내도 눈빛을 주고 받으며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상상돼요.

그런 순간들을 쌓으며 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많은 성소수자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모습을 감추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직장에, 이웃에, 혹은 가족 중에 분명하게 존재하는데도

마치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살고 있진 않으신가요?



저의 부족한 감상글에 댓글을 써주셨던 퀴어 시청자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분은 커밍아웃을 하셨을까 문득 궁금해하곤 해요.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고 있나요?

따듯한 난로가 되어줄 사람 한 명이 없어서

그저 외롭기만 한 삶은 아니었길 바랍니다.

살아있어 주세요.

우리 같이, 웃으면서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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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드라마인데도 몇몇 장면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 신기합니다.

주절주절 혼잣말 같은 긴 글이었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다 읽으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10년이 또 지나면 새로운 장면이 떠오를까요?

기억은 힘이 없지만 추억은 힘이 세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추억의 힘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네요.

인아를 잊지 못하고 들러주신 분들 모두 안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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