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는 후지이 히데토씨의 기구한 이야기

다들 알다시피 1945년에 일본은 연합군에게 항복하였고

이런 판도를 자랑하던 일본 제국은 완전히 붕괴되어

일본은 본토를 제외한 모든 해외 영토를 상실했지

근데 말이야 일제가 상실한 해외 영토에는 수백만명의 일본인들이 살고 있었어
이들에게 일본 제국의 붕괴는 재앙 그 자체였지

그나마 미군이나 영국군이 진주한 지역은 상황이 나았지만
소련군이 진주한 만주국 같은 경우는
생지옥이 벌어졌어
일본인들을 지켜야 할 일제 고위 지도부들이
자기들 먼저 살겠다고 몰래 역돌격을 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모르고 대피하지 못한 일본인들이
소련군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거든

그래서 소련 점령지에서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학살, 강간, 약탈이 비일비재했지

물론 당시 한반도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어
일단 한반도 남부에 진주한 미군은
일본인들을 쫒아내다시피 일본으로 강제 귀국시켰지만
일본인들을 상대로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거든

다만 미군정이 일본인들을 일본으로 귀국시킬 때
일본인들이 가진 토지나 시설을 모두 동결하고
일본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재산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거지꼴이 되어 일본행 귀환선에 올라야 했어

그리고 일본 본국에서도 자기네 기반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저렇게 일본인입네 하고 기어들어오는 모습을
밥벌레들이 밥 축내러 왔다며 굉장히 멸시했고
이에 남한에 있던 일본인 중에서
일본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아예 한국에 남겠다고 할 정도였지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지금 말하는 후지이 히데토였어
물론 미군정도 바보가 아니고
미군정 이후 들어선 대한민국 정부도 일본이라면 지긋지긋하니까
어떻게든 일본인들을 찾아내서 사실상 강제로 일본행 귀환선에 태웠는데
후지이 히데토씨가 일본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보니
아무도 이 사람이 일본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대로 한국에 남아있게 된 거야

그러다가 6.25 사변이 터지고 말았지
사변 발발 직후 북괴는 사흘만에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했는데
당시 많은 서울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후지이 히데토도 미쳐 피난을 가지 못했어

그리고 어느날 시내를 걷다가 인민군들이 그를 붙잡고 끌고 갔지
당시 인민군들은 머릿수를 채우려고
자신들이 점령한 대한민국 영토에서 청년들을 마구잡이로 끌고가서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자원입대'를 시키는 판국이었는데
아무리 후지이 히데토씨가 눈치가 없었어도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일본인입니다! 나 조선인 아니에요!' 라고 하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고 있었어

당시 북괴는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일본인들에 대한 증오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던 상황이었거든
그래서 당시 남한 내에도 북괴가 일본인들을 어떻게 학대했는지 악명이 자자한 상황이었는데
전시에 일본인이라고 하면 바로 처형당할 판이었지

그래서 후지이 히데토씨가 '나는 일ㅂ..ㅏㄴ인 박념인 입니다.' 라며
한국인 행세를 했는데
인민군들이 후지이 히데토를 끌고 가서 인민군에 편입시켜버렸어

당시 인민군이 워낙 주먹구구식이라서 제대로 훈련도 시키지 않은 채로
후지이 히데토를 최전방 총알받이로 내려보냈는데
이 사람이 운이 좋게도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혀서
거제에 있는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어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후지이 히데토씨가
'나는 일본인입니다! 여기서 꺼내주세요!' 라고 계속 주장하였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
오히려 다들 쪽바리 컨셉 좆같으니까 닥치라고 욕이나 할 뿐이었지

결국 전쟁 끝날 무렵에야 반공포로 석방으로 풀려났는데
이 분이 한국 외무부에 '나 제발 일본으로 돌려보내주십시오' 라고 하소연하려고
부산역으로 가는 도중에
이번엔 병역 기피자 단속에 나선 국군 헌병대에 붙들린 거야
당시 그는 호적에 등록되어 있지 않기에 신분증이 없었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일본인입니다! 한국인이 아닙니다!' 라고 아무리 설명하였지만
오히려 구타당하고 '자원입대' 당해야 했어

당시 대한민국은 6.25 사변으로 행정이 완전히 마비된 상황이었고
60만 병력을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저렇게 해병문학마냥 길거리에서 헌병대가 사람을 납치하듯 입대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이 아무리 한국어를 써봐야 티가 나지 않냐' 궁금해 할텐데
당시 대한민국에는 한국어에 서투른 반면 일본어는 잘 하는 젊은 애들이 꽤 있어서
이상한 게 아니었어
이미 35년간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상황이라
193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일본어가 사실상 모어인 경우가 많았던 데다가
해방 이후 혼란과 6.25 사변으로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애들이 꽤 많았거든
그래서 후지이 히데토씨도 자기의 서툰 한국어를 이야기 하며
자기는 일본인이며 한국인이 아니라고 호소했지만
'이 새끼가 쪽바리 컨셉 참 좆같이 잡았네' 라는 반응일 뿐이었지
그 사람이 한국 군복무 시절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 사회상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28043) 을 생각해 보건데
상당히 시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이 사람은 국군으로 1년간 복무하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걸 적극 어필한 덕분에
반공 포상 휴가를 받고 사회로 나올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은 휴가를 받자마자
바로 서울행 열차를 타고 외무부로 달려나가서
자신의 기구한 상황을 외무부 관계자들에게 눈물로 읍소했어
이러한 읍소에 외무부 관계자들은
'이 새끼 진짜네' 라는 생각에
당시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일본 외무성에 어찌 어찌 타진을 했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일본에 연고가 있던 사람이 아니라서
일본에서도 이 사람이 일본인 맞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는지
일본 외무성에서 1년이 훌쩍 지나고서야
'이 사람 일본인 맞는 거 같다. 돌려보냈으면 한다.'
라는 답신이 왔고
결국 후지이 히데토씨는 10년여만에
일본행 배에 올랐다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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