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 너 돈 먹었지?
가벼운 운동을 하고 돌아오니까 김 목사가 나의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칠십을 넘었는데도 그는 아내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기독교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아내는 편집을 하고 그는 밖에서 사진 찍고 취재해서 글을 쓴다.
“정말 이 나이에 잡지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를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행복을 준다는 걸 알았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잡지지만 그는 다른 잡지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비교는 불행을 가져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상계동 쪽에 정부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를 얻었어요. 매달 내야 하는 돈을 보니까 임대료수준 밖에 되지 않아요. 그렇게 30년을 분할상환하면 아파트가 내 소유가 된다는 거야. 매달 월세 수준의 돈을 내고 내 집을 가진다는 건 정말 행복이죠.”
그는 그런 식이었다.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이 남들과 달랐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 꼭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며칠 전 그가 내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었다.
“칠십대 나이에도 잡지를 하니까 기자들이 끼워주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이 기자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엉터리인 거야. 모든 게 돈이야. 신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교회의 장로는 만날 때 마다 기독교계의 방송과 잡지에 대해 성토했다. 교회신도들의 헌금을 뜯어먹으며 독버섯처럼 교계 주위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목사님 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내가 물었다. 목사이자 기자니까 시각이 좀 달랐을 것이다.
“아들 뻘 되는 사십대 초쯤 되는 기자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엉터리 기사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너 돈 먹었지?’라고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바로 나한테 ‘이 개새끼야 한번 맞짱 떠 볼래?’라고 하면서 지하실로 내려가자는 거예요. 내가 젊었으면 몰라도 아들 같은 사람하고 싸울 수가 있겠어요? 그냥 피했죠. 그랬더니 다음날 나를 보자 또 아래로 끌고 내려가려는 거야.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같이 내려갔죠.”
“그래서요?”
그는 목사고 나이를 먹었지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역도를 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군산항에서 전도사를 하면서 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빌딩 지하주차장에 가더니 조폭영화 장면같이 세 명이 나를 둘러싸는 거예요. 나를 끌고 내려온 친구가 ‘이제부터 일어나는 결투의 결과에 대해 절대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라고 말하라는 거예요. 다른 놈들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핸드폰카메라로 녹화하려고 기다리고 있구 말이죠. 내가 ‘절대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지 내가 왜 안 묻겠어?’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저를 때리지 않고 그냥 위로 올려 보내더라구요. 그 대신 다음날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어요. 그 사건이 내가 사는 아파트 관할 경찰서로 이첩이 됐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담당형사의 반응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왜죠?”
“동네 경찰서 수사과 형사들한테도 입빠른 소리를 한 적이 있어요.
형사 완장을 차고 몇 푼 받아먹은 사람들을 좋게 해주려고 진실을 왜곡시키고 하더라구요. 기자들이랑 비슷했어요. 그래서 말을 해 줬던 적이 있죠. 그 형사들은 일단 앞에서 전전긍긍 하다가 이번에 제가 고소를 당해 조사하는 입장이 되니까 ‘너 이제 한번 제대로 잘 걸렸어’하는 눈빛이더라구요.”
그는 성경 속 세례요한 같이 틀린 걸 보고 말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세례요한은 바른 말을 하고 목이 잘려 쟁반위에 올라갔다. 김 목사는 고소를 당하고 여러 번 법정에 섰었다. 그때마다 내가 변호인이었다. 이제는 그의 삶과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 사회에는 그와 같은 사람도 꼭 필요했다.
“김 목사님은 스스로를 태우는 촛불같이 되어 빛을 세상에 던지는 사람입니다. 불의를 보고도 모두 눈을 감고 폭력에 비굴하게 무릎 꿇는 걸 거부하는 걸 잘 알아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저는 형사보고 저를 봐주지 말고 기소하라고 했어요. 법정에 가서 이 더러운 기자들의 행태를 고발하려구요.”
“대단하십니다. 법정에서 주장하시는 말들을 다른 기자들이 보도하게 하세요.”
“그렇게 하려고 몇 기자한테 말했더니 그런 기사가 나가게 하려면 또 돈을 내라고 하더라구요. 참 이렇게 더러운 판인지 몰랐어요.”
그를 통해 종교의 밑바닥을 흐르는 시궁창의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이제 늙은 나도 힘차게 그를 변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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