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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024.04.15 10:26:21
조회 51 추천 1 댓글 0

이천십사년 이월 삼일의 일기내용이다. 그날 점심무렵 나는 광화문 네거리 옛 동아일보 사옥 앞에 서 있었다. 냉기 서린 칼바람이 기온을 영하의 날씨로 끌어내렸다.

허름한 졈퍼에 낡은 털모자와 등산화를 신은 나는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나는 이정훈 기자와의 약속 장소인 옛날 동아일보 사옥으로 들어갔다. 신문사가 옆으로 옮기고 옛 사옥이 까페로 변해 있었다. 나는 급한 김에 서 있는 웨이터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웨이터가 슬쩍 나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지금 저희 화장실은 수리 중이라 사용을 못합니다. 요 아해 지하철역 화장실을 사용하시죠.”

이상했다. 까페 안에는 사람들이 스테이크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있었다. 내 복장을 보고 손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급한 나는 그 까페를 나와 바로 옆에 붙은 화려한 동아일보 사옥 건물로 들어갔다. 검은양복을 입고 귀에 리시버를 꽂은 경비원청년이 눈에 띄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딥니까?”

그 청년이 나를 보더니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화장실 없어요.”

그는 나의 차림새를 보고 내쫓는 것이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당신은 싸지도 않고 산단 말이예요?”

그 청년은 내 말에 목에 걸려있는 신분증을 보이며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이런 차이죠. 이 카드를 가지고 저는 시설 안으로 들어가서 일을 보죠.”

그런 카드를 가진 사람에게만 입구의 기계는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카페의 웨이터나 신문사 건물의 경비원은 나를 노숙자로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입고 다니는 옷은 깨끗하게 빨아 입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곳에서 소변을 보고 다시 처음 들어갔던 까페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를 가지고 왔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바로 저긴 데요”

여성 종업원이 구석을 가리켰다.

“고장 나서 수리 중 아니예요?”

“아닌데요”

그 여성 종업원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나를 속였던 웨이터가 옆을 지나가기에 물어보았다.

“조금 전 나를 봤죠? 화장실을 찾으니까 수리 중이라고 했죠? 왜 거짓말을 하죠?”

“이상한 분들이 화장실을 쓰려고 하면 그렇게 합니다.”

소박한 옷을 입은 나는 그 웨이터의 눈에 이상한 사람으로 분류된 것 같았다.

잠시 후 내가 만나기로 한 조선일보의 이정훈 기자가 왔다. 내가 간단히 겪은 얘기를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완장이나 갑옷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기자신분증이 완장이죠. 그 많은 명품을 몸에 두르거나

명문학교 동창회나 변호사들이 검은 승용차에 기사를 쓰는 것도 다 갑옷이 아닐까요?”


그런 세상인 것 같다. 겉만 꾸미는 허영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었다.

한 변호사 모임에서 오십대쯤의 변호사가 손목에 찬 시계가 유난히 두툼하고 무거워 보였다. 스마트폰에도 시계가 있고 어디에서도 시간을 볼 수 있는데 왜 그걸 차나 궁금해서 물었다.

“제가 낡은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상담객들이 내 말은 듣지 않고 자꾸만 내 팔만 보는 거예요. 시계를 보고 나를 싸구려로 취급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비싼 시계를 사서 찼죠. 그랬더니 당장 태도들이 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양복이나 가방도 명품 그리고 디자인한 고급안경을 착용했죠. 그래야 돈을 많이 받아낼 수 있어요. 로펌들 보세요. 입구나 상담실을 비까 번쩍하게 만들고 사기를 치잖아요?”

그런 게 내가 사는 세상이었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변호사나 작가는 세상의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공감하면서 그들을 리얼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작가가 책상머리에서 머리만 굴리며 흰 손으로 글을 쓰면 사실성이 떨어진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속으로 무시하면서 법정에서 입에 발린 대사를 말하면 삼류 신파극의 배우로 전락한다. 같이 아파봐야 하고 연민 피로도 느껴봐야 세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죠지 오웰도 써머셋 모옴도 극한 상황을 체험했다. 한국의 소설가 정을병씨도 황석영씨도 노동 현장을 체험했다. 하나님도 아래로 내려와 인간이 되어 봤다. 비참하게 죽어봤다. 눈이 열리고 귀가 뚫리려면 그 아픔이나 슬픔을 조금이라도 맛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갑옷을 입지 않아도 인간을 존중해야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라고 그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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