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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합니다

운영자 2019.03.25 10:51:35
조회 143 추천 0 댓글 0
목사이자 신학대 총장까지 지낸 분의 변호를 맡았던 적이 있다. 흠 없는 인생을 살아온 증류수 같은 느낌이 드는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예수에 미쳤다고 했다. 신학대학에 들어가 학위를 따고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교수가 됐다. 평생 신학교수로서 목사로서 존경받는 삶을 살아왔다. 한 신학대학에서 그를 총장으로 모셔갔다. 그때부터 갑자기 여러 시험이 닥쳤다. 재단이사장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사적으로 특정인의 교수임용을 청탁했다. 신학대학교라고 하지만 곳곳에서 악취풍기는 위선과 부정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가 결심한 표정으로 변호사인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교인들 문제를 세상 재판관 앞에 가져가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의 얼굴은 정의감에 불타 올랐다. 그러나 변호사인 내가 겪어온 현실은 악마의 세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부정한 이익을 나누어 먹은 악인들의 결속과 그들의 모략이 만들어 낸 독이 더 강했다. 반대편의 조직적인 저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꾸로 총장을 중상 모략하는 고소장을 써서 검찰청에 제출했다. 그들은 가짜증인을 내세웠다. 그들은 또 학생들을 선동해서 총장실 문에 납땜을 하고 그를 학교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그가 느끼는 배신감과 모멸감이 어떨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나는 그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어느 면으로는 교수로 명문대학이라는 무풍지대에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조사를 받는 날 검사실로 따라갔다. 검사 앞 접이식 철 의자에 앉는 순간 그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인생에 ‘피의자조사’라는 주홍글씨가 붙어버린 것이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는 이미 반대파의 독이 퍼지고 있었다. 반대파는 대학재단 이사회 멤버들을 포섭해서 그를 파면시키는 공작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렇게 호소했다.

“파면이 되면 연금을 받지 못합니다. 나이 먹고 가진 재산은 없고 집사람과 저에게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살기는 살아야 합니다. 저는 내게 다가온 십자가를 지지 못하겠습니다. 항복하는 걸 이해해 주십시오.”

그는 서글픈 듯이 그렇게 말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의 기운빠진 뒷모습을 보면서 일본 작가 엔도 슈샤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막부시대 일본해변에 밀입국한 신부가 있었다. 그가 숨어서 선교를 하다가 마지막에 일본 관리에게 잡혀가 구덩이에 쳐 넣어졌다. 일본 관리는 예수를 배신하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능란한 일본 관리는 뱀같이 교활했다. 진짜 배신할 필요는 없고 배신하는 척만 하라고 그를 유혹했다. 마음으로는 예수를 계속 사랑하라고 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이태리의 교황청에 일본으로 간 신부가 배교했다는 보고가 들어갔다. 약한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나타내면서 작가는 하나님은 어디계시냐고 묻고 있었다. 추상적으로 모두 정의를 외치지만 그 문제가 개인에게 닥쳤을 때는 달라진다. 정의를 거부하고 세상이 그런데 하고 적당히 휘어진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더러 성경속의 예언자 같은 위인이 나타나기도 했다. 백 년 전 일본의 국국주의 시대 영성가인 우찌무라 간조는 한 설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가 행한 최대의 설교가 아닐까? 자기를 돕는 사람도 없이 모함이나 조롱이나 모멸 속에서 혼자 숙연하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진정한 용기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다시 세월이 많이 흘렀다. 바람결에 십자가 지기를 포기하고 항복한 그 대학총장의 근황을 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옆에 있는 부인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분이 이제는 겉의 눈이 아닌 속의 영안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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