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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이어주는 끈

운영자 2024.04.01 12:30:57
조회 221 추천 2 댓글 1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봤다.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야심에 불타 몇몇 인물들과 함께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단지 야심만으로 쿠데타가 가능할까. 당시 그들은 정의와 국가의 안전을 내세웠다. 그것도 다 믿지 않는다. 명분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된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이학봉씨가 살아있을 때 그가 털어놓는 속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총애하면서 키운 심복의 장교그룹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보스가 아니라 거의 아버지 수준으로 생각했죠. 그런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 장소에 육군참모총장이 있었어요. 당시 저희들은 ‘욱’하고 질러버린 면이 있어요. 사실 우리보다 열 살 많은 전두환 대통령이 우리를 말렸어야 하는데 같이 저질렀어요. 왜 그랬는지 몰라.”


쿠데타나 혁명의 배경에는 그런 끈끈한 인간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수도군단 사령부의 장교로 있다가 다음해 신라말 반란군 사령관인 궁예의 왕궁이 있었던 철원지역의 법무참모로 갔었다. 군사정권인 그 시절 전방 장군의 위세는 대단했다. 수많은 참모와 지휘관들이 충성을 맹세하고 그 지역의 기관장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명령을 받들었다. 어느 날 결제가 끝난 후 사단장인 장군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수 많은 부하들이 충성하는 것 같지? 위기시 정말 내 명령에 복종할 부하가 서너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행복할 걸.”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군 장교마다 두 종류의 상관이 있는 것 같았다. 형식적인 소속 부대의 지휘관이 있고 마음으로 충성하는 보스가 있었다.

그 다음해 나는 서울을 지키는 사단의 참모로 옮겨갔다. 사단의 군사력이 대단했다. 한 지역에 탱크부대, 포 부대와 만 명이 넘는 전투 병력을 가지고 있는 부대였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정권을 흔들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단장인 장군이 내게 속마음을 얘기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느 날 사단장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부대는 막강하지. 대통령이 충정 부대라고 해서 돈이라는 당근으로 잘 쓰다듬어 주시지. 나는 이 부대의 지휘관이지. 그런데 겉만 그렇지 실상은 그렇지 않아. 나의 참모나 부하라고 하는 저 장교들이 뒤로는 다 자기들의 사적인 보스가 있어. 나의 말과 행동이 바로 그들의 사조직을 통해 퍼지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진짜 내 사람은 몇명도 안돼.”

군대만 그런 것일까. 내가 아는 신도가 십만명이 넘은 대형교회의 목사가 있다. 그가 움직일 때면 수십명의 부목사가 그를 수행한다. 그런 교회 내부에 분쟁이 생겼다.

변호사인 나는 그 목사에게 물었다. 십만명의 신도중 그를 진심으로 도울 다섯 명만 알려달라고 했다. 목사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다 무엇일까. 허깨비나 그림자 같은 존재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만명의 직원을 가지고 있던 재벌 회장이 있었다. 그 회장이 구속이 됐었다. 재판 때마다 그 회장에게 수많은 직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회장이 탄 호송버스가 도착할 무렵 그 앞에서 회장님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곤 했다. 징역형이 확정되고 몇 년 후 그 회장이 있는 지방 교도소를 찾아갔었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충성하던 그 많은 사람 중 몇 명이나 옆에 남았습니까?”

“지금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게 뭐지?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오래전 일이다. 대통령이 재벌들로 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가 됐다. 어느 날 대통령의 아들이 별 볼일 없는 변호사인 나를 찾아왔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대법관이나 장관을 시켜주면 평생 충성하고 은혜를 갚겠다는 사람이 많은 걸로 알고 있었다. 정치적 동지라는 수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모두 도망가고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화를 걸어도 아예 받지조차 않는다고 했다. 그런 게 이면에서 본 세상의 한 모습이었다.

세상은 냉냉하고 사람들은 모래알이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보였다. 지난해 만났던 한 장군 출신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예 회복을 위해 여러명의 장성 출신이 규합했다고 했다. 인생의 마지막으로 그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시대조류를 거스르면서 죽은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는 강직한 성격의 법무장교 선배였다. 군사법원에서 김재규 재판을 할 때 그는 계엄사령관이 은근히 뒤에서 김재규 편인 것 같다고 내게 말했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을 조사하려면 최규하대통령의 진술을 받아야 하는데 당시 전두환 합수부장이 언짢아 한다고 했다. 그는 그 가운데 있는 군검사였다.

또 다른 장군 출신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하나회였고 전두환의 심복이었다. 그는 군사 반란이 일어날 당시 수도권부대의 연대장이었다. 그는 전두환 장군이 명령만 내리면 병력을 이끌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서울로 진격할 각오였는데 명령이 없어서 유감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 그렇게 충성하게 만들었느냐고 솔직히 말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대대장 때였죠. 전두환 장군이 우리 집에 와서 냉장고조차 없이 가난하게 사는 걸 봤어요. 다음날 우리 집으로 냉장고가 왔어요.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까 김치 냄새가 배어 있더라구요. 자기 집에 있는 걸 그냥 보낸 거죠.”


인간을 이어주는 끈끈한 끈은 명령 복종의 지휘체계가 아니다. 야심을 함께 한다고 뭉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뭉치고 한 마음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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