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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3 - 역사의 岐路에 서서

운영자 2019.04.01 16:01:46
조회 142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13


역사의 岐路에 서서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방적으로 주입된 역사관이 있다. 앵무새같이 외워대던 내용은 이렇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시대는 암흑이었다. 3·1운동 때 일제의 경찰과 헌병은 우리 민족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들은 놋그릇까지 빼앗아가 총알을 만들고, 우리를 전쟁에 끌고 나가 총알받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런 붕어빵같은 동일한 의식이 우리들을 지배했다. 학생시절 우연히 술집에서 일본 사람을 만나면 미워하고 시비를 걸어야 뭔가 의무를 수행한 것같이 여겨졌다. 

한 방송에서 이영훈 박사가 우리에게 주입됐던 역사인식은 잘못됐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서울대 안병직(安秉直) 명예교수는 일제시대가 오히려 더 깨끗했다고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걸 봤다. 그들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안병직 교수와 이영훈 박사의 대담집 《역사의 기로에 서서》라는 제목의 책을 구입해 읽어 보았다. 일제시대 때 우리가 근대화되었다는 주장이었다.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안병직 교수와 이영훈 교수는 조선이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상업이 발달되고 자본주의의 기초가 성립됐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萌芽論)’이 과장이라고 했다. 미국학자 에커트와 일치하는 맥락이었다. 

서양인들은 동양의 차(茶)와 실크에 관심이 많았는데, 조선에는 그게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선 왕조의 개항이 중국보다 36년, 일본보다 22년 늦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두 학자는 외국인들의 관찰이 편견만은 아니라고 솔직히 인정을 하고 있었다. 안병직 교수는 해방 후 아버지가 쌀을 지게에 지고 가서 담임선생님에게 드리는 걸 목격했다. 인정이라고 변명하며 죄의식이 없었지만 사실상 그것은 우리 아들만 잘 봐달라는 뇌물이었다. 일제시대 학교 선생들이 학부모로부터 그렇게 뇌물을 받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일제시대엔 오히려 교육의 부정부패가 없었다. 관료사회도 그렇다. 일제시대 상급자가 전근을 가면 테이블에 둘러서서 사이다와 과자를 놓고 송별식을 했다. 그런데 해방 후에는 기생집에서 떡 벌어지게 요리를 차려놓고 이취임식을 하는 게 유행이었다. 안병직 교수는 일본에 의해 억눌려 있던 조선 말 부정부패의 유전자가 해방이 되자 다시 병균같이 고개를 쳐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경우는 에도시대에 부정부패가 많이 청산되었는데 한국은 조선시대의 부패문화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잠복해 있다가 해방 후 다시 발현했다는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서울대 교수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난 40년간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많은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토지조사 사업 때 농지의 40퍼센트를 빼앗겼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동안 누구 한 명도 그 수치가 왜 어디서 나왔는지를 따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연도의 교과서에는 농지의 40퍼센트, 어느 연도의 교과서에는 국토의 40퍼센트,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혼란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임야(林野)조사 사업에 대해서도 안병직 교수는 교과서의 잘못된 내용을 지적했다. 조선 말 임야는 거의 다 국가의 소유였다. 일제가 들어오면서 그 국가소유의 임야를 대부분 국유림으로 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임야에 대해 일제가 어떤 수탈행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30년대까지 총독부는 임야의 연고자가 일정한 조림실적을 거두면 사유림(私有林)으로 불하해서 전국 임야의 7할이 오늘날 사유림이 되었다. 이런 잘못된 교과서의 내용들은 일부 학자들이 통계를 정확히 읽어낼 능력이 없이 감정적인 민족주의에 치중해서 쓴 잘못된 역사서술이라는 것이다. 

안병직 교수와 이영훈 교수는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일제의 수탈론은 객관적으로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는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안병직 교수는 일제시대인 1924년과 1925년 조선이 무역흑자를 낸 통계를 제시했다. 일제시대 조선의 경제성장률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36년간 일본인들이 투자했던 것을 점령자인 미국에 모두 빼앗긴 채 한국에 고스란히 두고 간 일본을 얘기하고 있었다. 투자한 걸 모두 뺏긴 일본이 과연 한국을 수탈했느냐는 것이다. 

좌파 역사관을 가졌었다고 스스로 고백한 안병직 교수는 그동안 이론을 가지고 현실을 설명하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진실은 현실 속에 있는데, 이론에서 진실을 발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조직운동을 하거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그런 편향된 역사관을 가졌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실분석에 몰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안병직 교수는 한국근대사 연구의 근본문제는 경제와 윤리를 구분 못 하는 데서 많은 흠이 생겼다고 했다. 경제는 어디까지나 경제논리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는 또 별도로 윤리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와 윤리를 섞으면 혼란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민지 기간에 경제성장이 있었다고 말한다면 모두들 제국주의를 미화한다고 돌을 던지는데 그렇게 되면 사실과 윤리는 구별될 수 없고 역사학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병직 교수 역시 식민지기(期)가 제국주의에 의해 수탈되어가는 암흑기라고 생각해 왔었다고 했다. 좌파 학자들은 식민지나 종속국에서는 자립적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는 ‘식민지 半봉건 사회론’을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해방 후 한국경제도 미국의 식민지로 본다는 것이다. 안병직 교수는 그가 신봉하던 ‘식민지 半봉건 사회론’을 과감히 버렸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조직 활동을 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의 학문이 이데올로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조직 활동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곧 학문의 과제였다고 말했다. 현실분석 역시 그런 프리즘을 통해 보아 왔다는 것이다. 그는 좌파학자들의 학문은 가치중립적이 못 되고 논증과 실증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안병직 교수는 열린우리당의 무리한 친일파 청산 추진에 대해서도 역사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사 청산을 한다면서 위원회를 만든 열린우리당은 우리 역사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을 발의한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의 모 의원의 부친이 친일파였다고 공격했다. 얼마 후 법안을 발의한 그 의원의 부친이 만주국에서 하급경찰관으로 종사했던 과거가 밝혀졌다. 입법을 주도한 열린우리당 대표의 부친도 일본 헌병 오장(伍長) 출신임이 드러났다. 

안병직 교수는 과연 누가 누구를 친일파로 단죄할 수 있는가라는 주체와 대상의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식민지기(期)에 농촌에서 단순한 농민으로 살거나 만주로 가서 무장독립운동을 하기보다는 근대부문에 종사하면서 자식을 공부시킨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들의 생활은 일본인과의 일상적인 접촉 속에서 이루어졌고, 그 때문에 일제와 어느 정도의 관계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뼛속까지 일본화한 진정한 의미의 이데올로기형 친일파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총독부나 부속관서, 은행, 조합, 학교, 회사 등의 근대부문에 종사하던 하급관료나 전문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식민지기에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그 성장 속에서 한국인 자본이 발전하고 각 산업분야가 점점 근대화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안병직 교수는 일제시대 한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는 친일파 청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애국자와 매국노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입법은 그 분류기준에 대해 철학적 확신이 미비된 상태라고 했다. 친일파 청산은 해방 당시부터 커다란 정치적 쟁점이었다. 조선공산당의 박헌영은 적어도 4000명 정도는 처형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에 반해 이승만은 일본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그래도 민족의 대통합을 얘기했었다. 그렇게 친일파 문제는 처음부터 좌우익 간의 첨예한 대립점의 하나였다. 좌우익만이 아니라 우익 간에도 친일파 문제는 분열의 소지가 있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임시정부의 인사들과 국내에 머물렀던 한민당 인사들의 입장이 달랐다. 

통치자인 美군정은 친일파 청산은 한국인의 합법적인 정부가 들어서서 할 일이지 자기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만약 미군정이 한반도에 진입하면서 큰 전투를 치렀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또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처럼 전쟁의 승리에 공로가 있는 레지스탕스와 같은 무장세력이 있어서 그들에 의해 한반도가 해방되었다면 민족반역자의 청산도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의 객관적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제를 해체하고 한반도를 해방시킨 것은 미국이었다. 이미 친일파 청산은 정치 군사적으로 해결할 여건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병직 교수는 60년도 더 된 과거사를 사법권도 없는 연구자들이 법률적으로 판단한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법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죽은 자는 자신을 변론할 수 없었다. 이미 법률적 처벌의 대상이 될 객체성도 떠나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료는 그의 인생 전체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했다. 당사자만이 말할 수 있는 진실은 이미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다. 적법절차를 거쳐 공평한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법률적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권이 몇 사람의 좌파 민족주의 역사학자에게 휘둘려 속은 꼴이라고 단언했다. 그들에 대한 기존학자들의 반발이 대단했다. 명동에서 안병직 교수의 인형(人形)이 화형식을 당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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