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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52 - 김연수의 귀국

운영자 2019.06.13 10:13:08
조회 101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52


김연수의 귀국


1921년경 봄이다. 김연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했다. 줄포에는 두 아들이 있었다. 지난해 둘째 아들 상협(相浹)을 보았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련이 자본주의의 일부 방식을 받아들이는 신경제정책을 채택했다고 동아일보는 알리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이 정식으로 결성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국제연맹이 성립되고 미국의원단이 조선에 다녀갔다. 아버지 김경중(金暻中)은 파산할 수밖에 없던 경성방직의 65퍼센트의 지분을 사들였다. 여유가 있어서 산 게 아니라 민족기업을 망하게 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애국충정 때문이었다. 집안의 땅들을 대부분 식산은행에 담보로 제공해 인수자금을 대출받은 것이다. 

아버지는 형 김성수의 충정어린 말에 약했다. 아버지의 친구인 고희동(高羲東) 씨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친구에게 “경제력은 한계가 있는데 아들이 저러니 들어줄 수도, 안 들어줄 수도 없다”고 하소연을 하더라는 것이다. 고희동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아버지 김경중과 막역한 사이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전후 호황의 반동으로 공황이 오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파산자들이 속출하고 생사(生絲)와 면포(綿布) 가격이 폭락하고 있었다. 자금사정이 악화된 은행은 1년에 1할 이상으로 예금금리를 인상하면서 정기적금 등을 창설해 자금흡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일본에서 금융대공황의 기운이 돌았다. 경성방직은 폐업 직전이었다. 신용을 잃어 돈을 내놓으려는 주주들이 없었다. 동아일보도 기자들의 월급은커녕 하루하루 인쇄비가 걱정인 실정이었다. 일본에서 들여온 인쇄기계 값도 지불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상황이 그랬다. 경성의 행정을 담당하는 경성부에서 청사를 짓기 위해 자금 60만 원이 필요한데 조선은행에서는 행정청에 대해서도 융자를 해주지 않았다. 경성부는 일본의 야스다은행에 부탁해서 대부를 받는 형편이었다. 조선에 있는 은행의 금리는 연(年) 1할 내지 1할4부인데 비해 일본은 연 8부였다. 

경성방직이나 동아일보는 비싼 이자나마 돈을 끌어 쓸 데가 없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있어 잘못 투자한 조선지주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형은 김연수에게 경성방직을 맡아 경영해 보라고 했다. 김연수는 경성과 고향을 수시로 오르내렸다. 그는 어떻게 하면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신문을 읽고 있는데 평양의 일본 기업인들이 만주시찰단을 조직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시찰단은 서북지방의 일본인들로 구성되고 기간은 한 달, 그리고 목적은 만주의 산업시찰이라고 했다. 

그는 눈이 번쩍 트였다. 일본 기업인들이 만주투자를 저울질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거기 합류하면 많은 사업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광활한 만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곳은 매력적인 광대한 시장이었다. 이미 철도망이 깔려 있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이라고 해서 이미 만주까지 광범위하게 시장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만주에서는 조선 출신 기업인과 일본 출신 기업인의 아무런 차별이 없었다. 정책적인 세금감면 혜택도 많았다. 그는 시찰단에 끼고 싶었다. 평양에서 자혜의원을 하고 있는 개업의인 친구가 있었다. 당시 의사라고 하면 지역사회에서 유지였다. 그는 편지로 그 시찰단에 끼게 주선해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다. 의사친구가 시찰단에 대신 등록까지 하고 소식을 보내왔다. 시찰단은 9월 무렵 만주로 향할 계획이었다. 

시찰단을 태우고 평양역을 떠난 기차는 낙엽이 물들기 시작하는 골짜기를 빠져나와 국경인 철교 위를 가고 있었다. 드넓은 압록강의 물이 납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숨을 씩씩 뿜어대며 가는 검은 증기기관차가 처음 도착한 역은 신의주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중국의 안동(安東)이었다. 겨우 강을 하나 건넜을 뿐인데도 그곳은 낯선 이국(異國)의 풍경이 가득했다. 누런 먼지를 일구며 달리는 마차, 느릿느릿 움직이는 사람들의 길게 늘어뜨린 중국옷, 게으르고 가난에 찌든 주민들의 매 발톱 같은 깎지 않은 손톱이며 때에 절어 반질반질 기름이 도는 옷, 콧물을 흘리며 파리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편 중독자들이 보였다. 

건축양식과 거리의 풍경도 이국적이었다. 서구풍의 러시아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도 있었다. 레닌혁명으로 망명해 온 러시아 귀족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의 동네는 러시아 과자며, 양품들, 카페, 사파이어나 루비 등이 휘황찬란하게 진열되어 있는 보석상점들이 화려하게 길 양편으로 늘어서 있었다. 조선과는 전혀 다른 발전된 문화 도시였다. 상업계는 활기에 차 있고 물가도 싼 것 같았다. 그는 시찰단을 따라 봉천(奉天), 대련(大連), 푸순(撫順), 장춘(長春) 등 만주일대를 돌았다. 백두산 아래의 울창한 삼림지역과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보이는 광야를 지나갔다. 붉은 수수밭이 바다같이 펼쳐져 있었다. 호남평야의 한 귀퉁이에 살던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가 들린 푸순은 이미 인구 27만 명의 노천탄광을 가진 공업도시였다. 그는 탄광에 가 봤다. 지상에서 지하 200미터 가까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정연하게 갱들이 뚫려 있었다. 푸순은 풍부한 석탄을 사용해서 제철, 기계, 시멘트, 화학 등 근대적인 공업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안산은 중국 제일의 철광 매장량을 자랑하는 광업도시였다. 철광석 광산에 가보았다. 갱도가 특이하게도 나선형인 게 인상적이었다. 그는 시찰단과 함께 칸델라를 들고 갱내로 들어가 보았다. 불빛 하나를 의지하고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수직 동굴 같았다. 지하 어느 지점까지 갔을 때 갑자기 머리 위 까마득한 곳에서 햇빛이 띠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누군가 갱도의 출입문을 연 것이다. 빛이 갱의 밑바닥까지 갈 수 있도록 설계를 한 것이다. 그곳은 또 다른 지하세계였다. 현장사무실을 비롯해서 발전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그 엄청난 규모와 시설에 그는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가 본 장춘은 일본이 만주의 중심으로 삼으려는 교육·문화·행정의 도시였다. 가로세로 바둑판같이 정연한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곳곳에 푸른 공원이 보이고 전차가 파란 불꽃을 일으키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그 도시에는 중국 최대의 철도용 객차공장이 있었다. 거대한 검은 기관차들이 달릴 순간만 기다리며 줄지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막연하지만 어떤 꿈이 피어올랐다. 앞으로 진출할 곳은 만주대륙이었다. 그 넓은 광야에 농장을 만들고 붉은 수수밭을 파란 벼의 바다로 바꾸고 싶었다. 중국은 소수의 부자들만 빼놓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들이 옷을 만들어 입을, 싼 광목을 만들어 팔면 수요는 무궁무진할 것 같았다. 이미 중국의 행정력은 만주에는 미치지 못했다. 일본 기업들이 만주로 진출하려고 계획들을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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