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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64 - 법률가 위원

운영자 2019.07.01 10:27:50
조회 91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64


법률가 위원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아셈타워 22층에 도착했다. 위원회의 위원으로 있는 박 변호사가 있는 로펌이었다. 로펌의 입구는 검정색과 하얀색의 고급 대리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놋쇠에 새겨진 간판이 조명을 받고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예약이 되셨습니까?” 

안내 데스크에 앉은 여직원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박 변호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위원인 그에게 위원회의 판단기준이나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서 왔다. 변협회장 선거에서 함께 일을 한 인연이 있었다. 컨퍼런스룸으로 안내되었다. 깔끔한 현대식 인테리어를 한 자그마한 방이었다. 나무로 된 회의탁자 끝에 앉았다. 

“차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여직원이 물었다. 

“커피면 좋겠습니다.” 

“박 변호사님은 지금 미팅 중이십니다. 10분만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여직원이 깍듯이 얘기하고 사라진다. 대형로펌의 컨퍼런스룸을 둘러본다. 장방형의 긴 나무 탁자가 카펫 위에 놓여 있다. 양쪽으로 가죽의자들이 줄지어 있다. 한쪽 벽은 투명한 유리칠판이다. 잠시 후 여직원이 도기(陶器) 찻잔을 조심스럽게 앞에 놓고 갔다. 그 뒤로 박 변호사가 오는 모습이 문틈으로 얼핏 보였다. 

“여어, 오랜만입니다.”

박 변호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맞이했다.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의 미소에도 사교성 친절이 엿보였다. 그의 시간을 빼앗지 않기 위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로펌 변호사는 시간이 돈이다. 

“위원회 위원이시던데 정보 좀 얻으려고 왔죠.” 

찾아온 자체가 그의 우호적인 표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가 순간 주저하는 표정이었다. 부담 없는 어느 선까지만 얘기해 주고 매끄럽게 끝을 내겠다고 결심한 얼굴이었다. 상관없었다. 

“친일파 명의로 된 부동산은 일단 친일재산으로 법이 추정하고 있어요. 그 재산들을 빼앗는 게 소급 입법으로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이라 법에 문제는 있죠.” 

법률가들은 모두 동의하는 사항이었다. 

“친일파는 어떻게 선정하죠?” 

“일제 때 중추원 참의에 임명된 사람과 작위를 받은 사람 400명가량을 일단 친일파로 정했어요. 조사과에서는 그 사람 자손들의 상속재산을 조사하는 중이죠. 저도 가서 여러 건 심사를 해 봤어요.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일제시대 보험료조로 총독부에도 돈을 내고 독립운동에도 비용을 부담하면서 생존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어디까지가 친일파인가 애매한 경우가 있더라구요. 

실제로 살펴보니까 친일파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디다. 이완용같이 처음부터 친일파인 경우가 있고, 처음에는 민족주의자였다가 나중에 변절해서 친일파가 된 경우도 있어요. 한국인들을 만주로 내쫓으면서도 일제는 한쪽으로 이 땅의 상층부를 회유하는 교활한 정책을 썼어요. 작위나 땅을 주면서 말이죠. 

이완용이나 송병준같이 드러난 친일파 자손은 지금은 오히려 못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처음에 반대하다가 변절한 사람의 자손들이 조상 땅 덕으로 지금 땅 부자 노릇을 하는 경우를 봤어요. 그런 경우 눈꼴이 시죠. 위원회에서는 그때 그때 심사를 해요. 나는 법조인이라 비교적 이해하는 편인데 사학자들은 굉장히 강경하고 엄한 것 같아요.”

“심사는 어떻게 해요?”

“위원이 모여 심사하고 투표로 결정을 하죠. 위원장과 상임위원, 직원들은 위원회에 상주하고, 우리 같은 비상임위원들은 회의 때마다 참석해 표를 던지지요.”

“다른 위원들을 소개해 줄 수 있어요? 좀 만나야 돼요.” 

“물론이죠.”

“사학자들도 설득할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건 힘들 거예요. 아예 머릿속에 친일파의 관념이 화석같이 박혀 있으니까. 우리 같은 법률가하고는 다르죠. 확신범들이에요.”

“친일파라는 증거들은 얼마나 수집되어 있어요?” 

“거의 없어요. 명단만 있을 정도지.”

“안병직 교수는 책에서 ‘뼛속까지 일본화한 진정한 의미의 이데올로기형 친일파는 그리 많지 않다’고 썼던데요.”

“하긴 그럴 겁니다.”

그가 긍정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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