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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72 - 염전의 두 번째 탈환

운영자 2019.07.08 10:45:33
조회 110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72


염전의 두 번째 탈환


시대적 폭풍이 가치관을 뒤흔들어 공중으로 날려버리고 있었다. 자랑이 치욕이 되고 거센 바람 앞에 고개 숙인 풀같이 모두 움츠리고 있었다. 내가 1973년 대학에 입학할 무렵 교수들은 대부분 일제시대 일본 유학생 출신들이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조선 말 지주였거나 양반관료였다고 가문(家門)을 자랑했다. 상당수의 교수들이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고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과거를 훈장같이 자랑했다. 그들은 해방 후에도 관직에 있다가 법과대학 교수로 노년을 맞고 있었다. 

학장은 대학 신입생이었던 내게 기차를 타고 동경까지 가서 고등고시를 치른 얘기를 무용담같이 들려주기도 했다. 유명한 헌법교수 한 분은 일제 때 고문(高文)에 합격하고 군수가 되어 자기 고을로 말을 타고 들어갈 때 사람들이 길가에 엎드려 있던 걸 자랑하기도 했다. 그들의 영광과 자랑이 치욕으로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들이 모두 친일파가 되어 버린 것이다. 

판사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도 일제시대 판사였다. 代를 이어 법관 집안인 그가 부러웠다. 이제 그 할아버지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됐다. 일제시대 판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법관이라면 친일로 찍혀도 납득이 갔다. 그러나 단순히 절도범이나 강도범 같은 파렴치한 죄인들을 심판하는 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임무였다. 친일의 문제와는 관계없었다. 그런데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낙인을 찍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행위가 아니라 그들의 이론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나 후손들까지 분류되고 있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친일파가 아니에요”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주장하는 자체로 자기 집안이 친일파인 것이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김씨가를 변호하는 나에 대한 비난의 글들이 뜨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친일파의 집안을 변호하느냐는 공격이었다. 나는 살인범도 변호하는 변호사다. 친일파라고 못 할 게 없었다. 다만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짓말은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건 윤리와 양심의 문제였다. 법적으로 함부로 친일의 낙인을 찍을 게 아니었다. 법조문을 보면 ‘적극적으로’ 친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위원회는 많은 실적을 올리는 것 같았다. 친일파로 찍힌 사람들이 쉬쉬하며 사무실을 찾았다. 가난한 사람도 많았다. 약간의 밭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 아버지가 일제시대 주민모임에서 반장을 했다고 농사짓던 밭을 빼앗겼다. 

친일로 찍혀 할아버지의 묘지를 환수당한 경우도 있었다. 항변 한 번 제대로 해 볼 힘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40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老부부가 찾아왔었다. 민비 집안과 먼 친척이던 할아버지는 구한말 군수(郡守)로 있다가 한일합방이 되면서 토지조사위원이 됐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조선조부터 가지고 있는 땅을 그대로 소유하다가 일제 중기에 선산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인과 토지를 교환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조상의 묘지가 친일재산으로 지목되어 위원회가 환수해 갔다는 것이다. 老부부는 법적인 항의절차도 몰랐다. 

국민감정과 여론이 만들어낸 법과 위원회 깃발 아래 일어나는 부작용이 보였다. 나는 위원회와 집요하게 싸우고 있었다. 조선 말부터 고창 갑부 김씨가의 역사를 치밀하게 써서 제출했다. 수천 필지의 토지 구입과 이동과정을 폐쇄된 등기부까지 살펴 세세히 밑줄까지 쳐 위원회에 제출했다. 직접 위원회에 가서 변론을 했다. 수시로 조사책임자와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위원장과 위원들도 만나 설득했다. 민주주의란 그래도 제도에 의해 권력이 통제받는 사회다. 타협과 설득이고, 다수결이었다. 위원들의 표가 내 쪽으로 기울도록 찾아다녔다. 

그날도 위원회에서 김씨가를 담당한 조사책임자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나를 귀찮아하고 싫어했지만 어느새 미운 정도 든 것 같았다. 싸움은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았다. 나는 프로고 역사학자인 그들은 아마추어다. 그들의 흠은 법을 모르면서 법의 집행책임자가 됐다는 것이다. 위원들 역시 역사학자가 많고 조사관들에 의해 사실상 휘둘린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건 사람만 의미하는 겁니까? 아니면 법인도 포함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거야 당연히 사람만 의미하는 거죠.”

역사학자인 조사책임자의 의식 속에 회사가 친일파라는 관념이 있을 수 없었다.

“지금 환수하려는 100만 평의 염전은 누구의 소유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김연수 회장의 땅이죠.”

“법으로 따지면 그게 아니죠. 일제시대부터 삼양사라는 회사 땅이죠. 회사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토지조사사업 때 일본놈들도 그 땅을 어떻게 하지 못했어요. 이제 법대로 한다는 대한민국은 어떤 태도를 취하실 건가요? 친일파 청산이라는 깃발 아래 법은 과감히 뭉개버리실 건가요? 하기는 법을 만드는 자체에서 이미 소급입법으로 그렇게 불법적인 절차를 취한 면이 있으니까요.”

“저는 역사학자라 법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김연수라는 인물이 친일파라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법인명의로 된 땅이라 하더라도 사실상 김연수 개인의 땅을 포장만 법인소유로 한 본질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땅은 환수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땅만이 아니라 김연수 회장이 일제시대 때 이룩한 경성방직이나 삼양사가 지금도 있으니까 그것도 다 국가가 환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논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위원회에서 지금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저는 김연수란 인물은 훌륭한 민족기업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써서 제출한 그의 일생은 진실 그대로입니다. 분장하거나 꾸미지 않았습니다. 권력은 일시적이고 유한한 걸로 생각합니다. 위원회가 지금 휘두르는 칼도 곧 칼집에 들어갈 겁니다. 그후로 오는 역풍도 한번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저는 이 법의 제정 과정이 포퓰리즘과 감정에 입각해 문제가 있는 법이라 보고 있습니다. 또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서도 ‘이래도 되나?’ 하는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념과 선입견으로 권한을 행사한 조사관이나 위원들에게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한 논리적 답변과 책임을 지는 시절도 올 걸로 봅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신중하게 위원회에 저의 의견을 올리겠습니다.”

조사과장의 태도가 적대적에서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조사과장은 역사 중에서 어떤 쪽을 전공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근세사로 미국에 간 이승만(李承晩)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앞으로 학계에서 활동하실 거죠?”

“그렇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날 때는 밥이라도 함께 먹는 좋은 관계였으면 합니다.”

피차 직업상 만난 사이였다. 그가 처음에 말한 대로 적(敵)이 아니었다. 

위원회의 표결 결과에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얼마 후 조사과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김연수 회장에 대한 재산환수 조치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가격이 나가지 않는 개인 명의로 된 몇 필지는 제외하고요. 형식적인 거죠. 염전을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희 위원회에 대해 소송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미 위원회에서 결정이 났으면 자체적으로 번복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첫 번째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더 높은 고지(高地)가 남아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김씨가(家)는 땅 못지않게 명예를 중요시하는 집안이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김씨가에 위원회의 뜻을 전달하기는 하죠.”

“위원회의 뜻이니까 강력히 전달해 주세요.”

그들은 아직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도 여론도 법원조차도 그들의 편이었다. 잘못 건드리면 재산조사가 전방위로 퍼져나갈 위험성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김씨가의 김한(金翰) 회장에게 전했다. 

“못 믿겠는데. 조사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잖아? 또 결정은 위원회에서 하는 거 아니야?”

김한 회장의 대답이었다. 나는 친구인 김병진(金炳進) 회장에게도 그 소식을 알려 주었다.

“위원회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땅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수 있고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그 역시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다시 위원회의 조사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앞으로 다른 땅에 대해 조사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실질적으로 모든 조사가 끝난 것으로 보셔도 될 겁니다.”

“도대체 왜 봐준 겁니까? 보조금을 받은 비율만큼이라도 염전을 국가환수시키겠다고 큰소리치셨잖아요? 전체를 국고환수시킬 듯이 처음에 말하기도 했고?”

“이의신청서에 철저히 주장하셨잖아요?”

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김연수 회장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닙니까?”

“아닙니다. 친일파라는 것은 당연하죠.”

나는 한번 과감히 도발해 보기로 했다.

“김연수 회장 개인명의의 땅은 장성(長城) 여기저기 아직도 땅이 많아요. 위원회에서 더 조사해 보시지 그래요?”

“그렇게 하려고 마음 먹고 김연수의 조사를 제일 후순위로 해놨었어요. 그러다가 안 하기로 했습니다. 더 아시려고 하지 말고 이제 그 정도로 해두시죠.”

“확실하죠?”

“그렇다니까요. 이 정도 해드렸으면 앞으로 저희 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은 하지 않는 거죠?”

저쪽에서 다시 확인해 왔다.

“그건 장담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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