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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84 - 보성전문 인수

운영자 2019.07.29 10:27:44
조회 96 추천 1 댓글 1
친일마녀사냥


84


보성전문 인수


어느 날 성북동 집에서 회사로 출근하던 김연수 사장이 골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까까머리 소년을 발견했다. 출퇴근 때 몇 번 본 낯익은 얼굴이었다. 

“너, 이 동네에 살지?”

김연수 사장이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말이 없었다.

“학교에 지각할 텐데 왜 그러고 있니?”

김연수 사장이 다시 물었다. 소년은 풀죽은 목소리로 들릴 듯 말듯 대답했다.

“학비가 없어서 오늘부터 학교에 못 가요.”

소년과 헤어지고 회사로 출근한 김연수 사장은 비서에게 아침 골목길에서 만난 소년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며칠 후 김연수 사장은 소년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 학비를 건네주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김연수는 송금되어 오는 생활비를 주위의 가난한 친구와 나누었다. 쓰고 남은 돈으로 남을 돕는 성격이 아니었다. 스스로 변두리의 싸구려 하숙집으로 옮기면서 그 차액으로 주변 친구들을 도왔다. 김연수 사장은 장학사업을 하는 재단법인 육영회를 만들었다. 고정적인 장학금 수혜자로 대학생 82명, 고등학생 256명, 전문학교생 252명, 모두 590명을 지정했다. 

그는 장학대상자를 국내 재학생과 국외 유학생으로 나누었다. 국내 재학생의 경우 대학생에게 매월 40원, 고등학생이나 전문학교생은 매월 35원을 지급했고, 국외 유학생의 경우 대학생이 매월 50원, 고등학생이나 전문학교생은 매달 45원을 지급했다. 그는 자연과학과 공업기술에 특히 장학금을 많이 제공했다. 그 외에도 경성제국대학이나 교토제국대학에서 물리학과 합성섬유 및 약리학을 연구하던 우리나라 연구생들에게 각각 500원씩의 연구비를 보조해 주었다. 

당시 교토제국대학 조교수 이학박사 이태규(李泰圭)는 조선인 출신 교수로서 ‘촉매작용 이론’을 연구해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경기중학교의 전신인 제1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교토제대 응용화학과에 입학해서 조선인 최초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 동반자인 교토대학 조교수 공학박사 이승기(李升基)는 섬유부문의 대가로 ‘섬유조직체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서른한 살에 학위를 받았다. 김연수 사장은 교토제국대학 화학연구소의 조선인 학자들을 위해 섬유기술연구 지원금을 기부했다. 김연수의 장학사업은 형 김성수(金性洙)의 교육사업과 연계되면서 체계화됐다.

어느 날 형 김성수가 동생 김연수를 계동 집으로 불렀다. 오랜만에 형제가 사랑에 마주앉았다. 

“교육사업을 좀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구나. 전문학교나 대학도 설립해서 종합교육기관으로 말이다. 중등교육기관과 고등교육기관을 연결해서 일관된 민족교육을 할 수 있는 학원을 하고 싶다는 거지. 그렇게 하려면 재단법인을 설립해야 하는데 말이야.”

“형님께서는 전에도 한양전문학교를 설립하려다 못하셨죠?”

“그건 동아일보를 설립하느라 실현을 보지 못했지. 또 다른 유지들하고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하려다가 제대로 일이 되지 못했지. 고등교육기관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아. 재단법인을 하려면 처음부터 아예 큰 규모로 시작해야 하는데 설치기준도 까다롭고 말이야. 또 이미 경성제국대학이 관학(官學)으로 서 있고, 사학(私學)으로는 보성전문과 연희전문도 있어.”

“그 학교들은 그 학교들대로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고, 우리 집안에서 는 순수하게 조선인들만을 위한 학교로 합시다. 재단법인 정관에 조선인 학생만을 교육시킨다는 걸 분명히 하는 게 어떨까요? 재단법인은 우리 집안이 하는 교육기관의 모체가 되게 설립자도 외부인이 끼어들지 못하게 합시다.”

“그렇게 하자. 재단법인의 설립자는 우리 형제들과 아버지 형제로 하지. 그런데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중앙고보에 땅을 기부한 박용희 씨나 장현식 씨만은 설립자로 참가시키도록 하자. 그분들은 인격도 훌륭하고 또 너무 집안 사람들로만 하면 곤란하니까.”

형의 교육사업에 아버지 형제나 동생 김연수 사장이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지금 중앙고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되죠?”

김연수가 물었다.

“교사(校舍)건물로 본관, 동관, 서관 총 건평 200평이 되는 2층 벽돌건물 3개 동이 있고 소유토지가 4311평, 박용희 씨가 기부한 농지가 있고 철원에 임야 90만 평이 있지.”

“재단을 만들려면 기본재산이 더 있어야 하겠네요?”

“아버님과 큰아버님께도 말씀드렸는데 형제분이 지금 중앙고보 인접지 588평을 사서 운동장을 확장해 주시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아버님이 학교 뒷산 국유임야 6300평을 매입계약하셨어. 그걸 사서 학교로 사용하게 하시려고 말이야. 큰아버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학교 부근의 국유임야 1530평짜리 한 필지를 사서 보태시겠다고 하더라.” 

“그러면 제가 법인에는 명고농장을 기부하고 중앙학교에는 교사(校舍)를 증축하고 인접 대지들을 사들여 운동장을 만들죠. 국유림인 학교의 뒷산을 사서 넣을게요. 그리고 일본의 일류학교들같이 석조 이층의 체육관을 만들게요. 이번에 기부하는 재산들을 합치면 학교재단 가운데는 건실한 편에 속하겠네요.”

명고농장은 고창군 흥덕면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한참 내려간 해리면 왕촌리·동호리 근방의 명고포의 드넓은 벌판으로 연평균 1500석을 수확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나는 유럽이나 미국을 다녀오려고 한다. 중등학교까지는 나라 안의 지혜로 어느 정도 꾸려갈 수 있지만 고등교육기관은 아무래도 세계 여러 나라의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고등교육기관을 하려면 설립자 자신이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겠고,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는 사립대학을 만들어야지. 그동안은 네가 재단운영을 해주면 좋겠다.”

김연수는 재단법인의 설립자가 되었다. 

그 무렵 경영난에 처해 있던 보성전문학교에서는 재력가를 물색하다가 김씨가에 학교를 인수해 줄 것을 부탁했다. 

보성전문은 1905년 당시 이용익(李容翊)이 설립한 학교로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었다. 이용익은 원래 북청 출신의 비천한 신분이었다. 배우지 못한 그는 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 그는 종로 수송동에 보성전문학교를 세웠다. 개교한 지 몇 달 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이용익은 러시아로 망명했다. 

천도교의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보성전문을 인수했다. 그러나 손병희가 3·1운동에서 투옥되는 바람에 보성전문은 다시 우여곡절을 겪게 됐다. 재단법인이 설립되었으나 기부를 약속한 사람들은 돈을 납입하지 않았다. 학교시설이란 송현동의 120평의 2층건물이 전부였다. 김씨家 형제가 보성전문의 인수에 대해 의논을 했다. 형 김성수가 의견을 말했다.

“김병로(金炳魯) 선생이 와서 보성전문을 인수하라고 하는데 말이다. 내 생각은 새로 전문학교를 하나 세우는 게 낫지 기존 학교의 인수는 달갑지 않은 것 같아. 왜냐하면 기존 학교들은 아무래도 파벌이 있어서 운영에 장애가 있거든.”

“형님, 제 생각에는 인수하는 게 좋겠어요….”

동생 김연수가 다른 의견을 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보성전문이 문을 닫으면 다시 학교설립 인가를 얻어 내기가 힘들 겁니다. 만약 폐교 된다면 공연히 민족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 하나를 잃는 거 아닙니까? 형님, 문제점들이 있다면 이쪽에서 조건을 내세우기에 달렸습니다. 인수하는 방향으로 하십시오.”

“그래도 그 재단의 내막이 복잡하거든. 30년의 오랜 전통을 생각하면 그 학교를 일단 살려놓고 싶지만 한편으로 그 학교 학생들이 환멸을 느껴 관립학교로 옮기는 걸 보면 그게 아니고 말이야. 또 그 학교를 인수해도 학풍을 우리 뜻대로 만들 수도 없고, 너는 인수를 하자는 의견인데 그러면 누적된 많은 문제점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우선 현재의 재단이사와 감사를 전부 사직시켜야 하겠죠. 그리고 후임 이사진은 전부 교장이 될 형님의 지명에 의하여 선임하도록 한다고 조건을 다세요. 그래야 재단의 경영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부행위를 규정한 정관이 문제야. 그걸 보면 재단이 성립됐을 때 다액 기부자인 두 사람은 종신이사로 되어 있어, 그 사람들의 발언권이 강하기 때문에 재단분규가 있어 왔지. 그런 고질(痼疾)을 그대로 두고 재단을 인수하는 것보다 새로 전문학교를 하나 설립하는 편이 낫겠어.”

김성수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형님, 그거야 정관을 변경하라는 조건을 내세우면 그 고질적인 두 사람의 이사도 없어질 거 아닙니까? 조건으로 정관개정을 내세우세요.”

보성전문 이사회는 김씨家 이외에 달리 대안이 없는 실정이었다. 기존재단에서는 김연수의 조건에 모두 동의했다. 김연수는 학교를 위해 인수기금과 농장을 내놓았다. 큰아버지 김기중(金祺中)은 500석이 나오는 땅과 대지 6000평을 내놓았다. 아버지 김경중(金暻中)이 5000석을 추수할 수 있는 땅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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