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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11 - 金昌國 위원장

운영자 2019.09.30 14:37:21
조회 115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111


金昌國 위원장


월요일 아침이다. 신문을 들고 화장실에 갔다. 대충 기사를 훑다가 낯익은 얼굴 사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위원장의 얼굴이었다. 은발에 테 없는 안경을 쓴 사진이다. 옆에 이력이 나와 있었다. 

1940년 전남 강진 출생, 목포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13회, 김근태 씨 고문사건 공소유지 담당변호사,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변호사. 민변 창립,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친일反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위원장. 

기사제목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역사적 범죄는 시효가 없다는 상징적 교훈 일깨우는 데 의의.’ 

한국일보 정진황, 이태무 기자가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인터뷰한 기사였다.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간 김창국(金昌國) 위원장이 사무실에서 지난 4년간 위원회 활동과 관련한 소회를 털어놓고 있었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12일로 4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법조인으로 복귀한 김창국 전 친일反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4평 남짓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라는 글귀의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해방 후 60여 년 만에 이뤄진 친일파 재산환수 활동을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 그간의 얘기를 가감 없이 들어봤다.

“4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나니 소회가 어떻습니까?”

기자가 질문했다. 

“흔히 하는 말로 시원섭섭합니다. 지침이라고 해야 2005년 제정된 친일反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뿐이니 어디서 시작하고 어떻게 할지는 순전히 위원회 몫이었습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다고나 할까요. 기한은 정해져 있는데 방대한 업무량에 비해 인원도 적었고 예산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직원들과 위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잘해 주어서 생각보단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해방 직후 반드시 해야 했을 일인데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어요.”

“친일재산 환수의 당위성 차원의 말씀인가요? 아니면 실무적인 어려움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당위성뿐만 아니라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일을 시작하다 보니 여러 자료가 이미 소실돼 규명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범죄행위는 아무리 오래 되어도 결국엔 심판받고 바로 잡혀야 합니다. 이게 정의의 실현입니다. 그래야 나라가 바른 길로 가지 않겠어요? 살인은 15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없어지지만 역사적 범죄는 시효가 없습니다. 지금도 나치들을 잡아 처벌하는 청산작업을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친일청산 문제도 마찬가지죠.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역사가 갖는 무게를 가벼이 볼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흔히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뜻과 반대되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도 새삼 깨달았어요. 역사의 수레바퀴를 보면 고장도 나고 덜컹거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바른 길로 가게 된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드는데 그런 뜻에서도 역사의 심판 운운하는 말들은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친일재산을 추적하고 환수하면서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습니까?”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을 조사했더니 남아 있는 재산이 별로 없었어요. 이완용은 일제시기 조선팔도 곳곳에 여의도의 2배나 되는 땅을 샀는데도 말이죠. 조사를 해보니 해방 직전에 그 땅을 일본인 4명에게 거의 다 팔았어요. 그 엄청난 돈으로 분명히 금도 샀을 테고 골동품도 샀을 텐데 이건 추적할 방법이 없어요. 물론 국가귀속대상에 동산도 포함되지만 수사권이 없으니 조사가 불가능하죠. 궁리 끝에 국보나 보물급 중에 국고귀속대상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문화재청에 의뢰해 목록까지 뽑아서 봤는데 없어요. 어쨌든 해방되는 줄 알고 땅을 다 팔았으니 이완용이 재테크를 잘한 거죠.”

단죄하는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열변을 계속 토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통역을 맡을 정도로 일본어를 잘했던 송병준은 나중에 일본에서 살려고 했는지 홋카이도에만 500만 평의 땅을 샀어요. 우리 직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일본에 출장까지 가서 조사해 봤더니 이미 처분한 뒤였습니다. 그런데 송병준 후손 중의 한 사람은 할아버지의 땅이 엄청나다면서 지금 돈이 없으니 소송비용을 대주면 나중에 나눠주겠다, 라는 식으로 재일동포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고도 하더군요. 

일제 때 최고부자였던 민영휘는 육영사업을 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요. 민영휘에게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긴 사람의 후손이 민영휘를 찾아가 법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을 테니 ‘이것을 하라’며 몇가지 요구사항을 냈는데 그중의 하나가 육영사업이었답니다. 그런데 민영휘는 그 학교 두 곳을 지으면서 각각 자기 이름과 둘째 첩의 이름을 교명(校名)에 넣었어요. 

친일파들은 당대에도 잘살고 후손들도 제대로 교육받아 후대에도 잘살지만 독립 운동가는 당대에도 재산이 없고 후손들도 교육을 못 받아 지금도 참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 아이러니죠. 이런 걸 잡아주는 게 정의입니다. 그런 일에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고 복 받은 일이죠. 

특별법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리스트를 1차로 만들었더니 462명이었습니다. 이들의 호적부를 뒤져 가계도를 만들고 가계도에 나오는 후손들의 재산을 다 조회했지요. 1922년 호적이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에 죽은 친일파는 재산을 추적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북한이 본적인 인사들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죠. 재산이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구요. 이런 것들을 다 제외하고 남은 친일파가 168명입니다. 적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의 99퍼센트를 다 동원해서 조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창씨개명한 인사 중에 아직도 이름을 고치지 않고 일본식 이름으로 등기해 놓은 땅 중에 국고환수 대상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역시 조사를 안 한 것은 아닌데 조선사람이 창씨개명을 한 것인지 원래 일본인인지 밝히기 어려워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친일파 후손 중에는 불공평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뒤늦게 시작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기자가 다시 위원장에게 물었다.

“재산환수가 결정된 친일파 후손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건 경우는 어떤가요?

“사법부가 우리 쪽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71건의 소송 중에서 패소한 경우는 한 건밖에 없고 2심 패소도 한 건입니다. 2심 패소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이번 일을 하시면서 다른 나라의 과거사 청산사례도 짚어 봤을 텐데요.”

“프랑스, 중국, 독일 같은 나라는 신속하고도 엄격하게 했지요. 특히 오스트리아는 나치 전범의 처벌은 물론이고 향후 나치와 같은 행동강령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처벌하겠다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미래까지 염두에 둔 것이죠. 이런 나라의 법들은 처벌에 시효가 없습니다. 우리는 1949년에 반민특위가 만들어졌지만 친일파 때문에 1년 만에 폐지됐어요. 이런 식의 왜곡된 역사청산이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줬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클 때만 해도 주위 사람들 중에 선조가 중추원 참의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위원회 활동이 끝나고 있습니다. 현 정부에 바라는 게 있습니까?”

“정부가 위원회 활동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지침을 내린 적도 없지만 제대로 된 지원도 없었습니다. 우리 위원회가 활동을 끝내면서 청와대에 이런 활동과 정신이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사회적으로 공론화돼야 한다는 건의서를 보냈습니다. 여기서 얻어진 결과물이 자료관 등에 보존돼야 하구요.”

“보수·진보세력의 극심한 대립에 대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얘기를 들을 줄 아는 자세를 가지면 사회통합이 될 걸로 생각합니다. 다만 기득권층이 이런 자세를 더욱 적극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자기 권리가 침해됐을 때 대응수단과 방법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 중에 누구를 먼저 배려해야겠습니까? 사회통합은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끌어들여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국가정책에 반영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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