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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운영자 2020.03.09 10:02:13
조회 110 추천 1 댓글 0
한 독신의 젊은 의사가 지방에 있는 병원에 근무했었다. 진료가 끝나면 외로웠던 그는 근처의 찻집을 꾸려가는 여인과 자주 만났다. 젊은 의사는 서울로 가고 여인은 일 년 후에 아들을 낳았다. 서울에서 좋은 집안의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의사는 뒤늦게 그 여인에게서 그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의사는 그가 사귀었던 여인과 아들이 살 수 있도록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는 그 모자에게서 발을 끊었다. 세월이 흘렀다.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의학적인 검사를 했다. 그들은 부자 관계가 거의 확실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판결이 나왔다. 과학적인 검사결과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부자 관계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다시 세월이 삼십년쯤 흐르고 아들은 장년이 됐다. 아버지도 팔십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혼자 살고 있었다. 아들은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변호사인 나에게 소송을 의뢰했다. 나는 전에 있었던 판결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과학적 검사결과를 판사가 배척하고 그들은 부자관계가 아니라고 판결을 한 것이다. 담당판사는 눈앞에 주어진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그 배경은 알 수 없었다. 그 아버지를 만나 물어보았다.

“과학적 검사결과가 99.9999퍼센트 아들이 맞다고 하면 아들 아닙니까?”

“아니죠. 0.0001퍼센트가 아들이 아닐 수 있는 거죠.”

“평생 의사를 하신 분이 검사결과를 부인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일부러 진실 앞에 철저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남은 여생이 얼마 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나중에 저 세상에 가셔서 후회하지 않으실까요? 아들이 혹시라도 묘지에 와서 왜 그러셨어요? 하고 울면서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실래요?”

“괜찮습니다. 이제 그 정도 나이가 됐으니 혼자 잘 살아가라고 하세요.”

그 얼마 후 나는 그 늙은 의사의 아들을 만났다. 옆모습에 그의 아버지가 그대로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 때 제가 아버지의 병원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입구에서 병원직원들이 내쫓더라구요. 아버지는 안에 있었어요. 뭐 제가 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습니까? 저 혼자 힘들게 살아 왔어요. 제가 아버지 같이 의사가 됐더라면 아버지가 나를 아들이 아니라고 부인했을까요? 저는 제 자격이 모자라서 아버지가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소송을 하면서도 정말 서럽더라구요. 검사결과가 아버지 아들이 맞다고 나왔는데도 담당 판사님은 저의 청구를 기각해 버리더라구요. 아들이 아니라는 거죠. 세상에 진실을 그렇게 판사가 부인하는 경우가 어디있습니까? 증거가 그렇게 명확한데 말이죠.”

다시 제기한 소송에서 그 아들은 다시 패소했다. 법원의 논리는 간단했다. 이미 전에 판결을 했기 때문에 같은 사안으로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굳이 하려면 재심절차를 밟으라는 것이었다. 그 청년은 다시 법원에 재심을 제기했다. 그의 청구를 접수한 법원은 이미 재심 기간이 경과되어 재판을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어 버렸다. 아버지는 아들을 모르겠다고 하고 법은 진실을 뭉개버린 경우였다. 인간의 머릿속에 다른 것이 들어있으면 눈은 주어진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달라지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마음이 열려야만 눈이 열리고 보이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인 그 의사는 평생 하던 의업을 접고 지금은 집에서 혼자 궁색하게 살면서 병에 시달리고 있다. 아들은 험한 세상을 달려가면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판사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되는 것인지 그 판사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 판사는 현재 대형 로펌의 대표가 되어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뒤늦게라도 아들과 아버지가 포옹을 하고 처절하게 우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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