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그들의 욕

운영자 2020.08.03 10:09:30
조회 209 추천 2 댓글 0
나의 아파트 바로 앞에는 거대한 유리 건물의 대형교회가 있다. 십만 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교회다.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었다. 목사파와 장로파가 나뉘어 싸움이 시작됐다. 매주 교회의 예배시간이면 반대파가 거리로 나와 목사에 대한 공격을 했다.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확성기를 들고 온갖 비난과 욕을 했다. 그 목사의 인격이 철저하게 찢어발겨 지는 것 같았다.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고 목사 자격이 가짜이고 졸업했다는 대학도 허위라는 등 한 인생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반대파 신도들은 목사라고 하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몇 년간 그렇게 악을 쓰고 외치는데도 공격을 받는 목사는 바위같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 보였다. 나같이 약한 보통의 인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봤다. 당장 그 교회의 목사직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표를 내고 도피할 게 틀림없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목사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몇 년간을 끈질기게 버티는 모습이었다. 진실이 어떤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태껏 그렇게 강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욕을 하던 사람들이 지쳐 나가떨어진 것 같아 보였다.

몇 년 전 광우병 사태가 벌어지던 때였다.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선동방송으로 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국의 소고기협상대표를 매국노라고 하며 그의 인형에 대해 화형식을 하고 그를 잡으려고 날뛰었다. 시위가 아니라 내란 수준의 폭동이었다. 그 소고기 협상대표가 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와 가장 친한 친구중의 한명이었다. 그는 변장을 하고 도망을 다녔다. 그의 신상이 털리고 그는 물론이고 가족의 핸드폰으로 욕들이 폭포같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느 날 밤 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그가 씩 웃으며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에 대한 쌍욕들이 끝도 없었다. 알아보니까 초등학생들이 보낸 욕도 많이 들어있다고 했다. 그는 억울함을 힘겹게 겪어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욕을 많이 먹었다. 변호사의 운명자체가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소송에서 패소하는 원인은 대부분 의뢰인 자신에게 있다. 그 자신이 살인을 해 놓고 형량이 무겁다고 변호사를 탓했다. 사기를 쳐놓고도 왜 석방 시키지 못했느냐면서 무능한 변호사라고 욕을 했다. 소송에서 상대방을 짓눌러 뭉개버리지 않는다고 욕을 했다. 그들이 변호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법망을 교활하게 빠져나가게 해 주지 않는다고 욕을 하기도 하고 판사를 매수하지 못했다고 무능한 놈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직접 귀에 들리지는 않아도 지난 삼십년 동안 한 사건에서 욕을 먹지 않은 사건은 없었던 것 같다. 승소를 해서 나의 의뢰인에게 칭찬을 받을 때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상대편은 엄청난 욕을 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로 살다보니 ’인권변호사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실 ‘인권변호사’라는 말의 이 면은 불쌍한 광경이 스며있다. 육칠십 년대 반독재 투쟁 때 인권변호사들은 법정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이길 수가 없었다. 판사들은 출세를 위해서 자발적이든가 아니면 시퍼런 권력에 주눅 들어 정권의 시녀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의 외침은 법정이 아니라 세상과 미래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들은 글로 책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남겼었다. 나도 지난 삼십년 동안 법과 정의로 포장된 재판의 모순과 불의 그리고 불공정을 글로 써 왔다. 법의 두터운 담장 저쪽의 비밀은 아무나 볼 수 없었다. 봐도 발표하지 못하도록 자물쇠가 채워져 있기도 했다. 그 속에서 스는 곰팡이에 밝은 햇볕을 쐬게 해야만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글에 대한 욕은 일반 변호사업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맵고 강했다. 조사도 많이 받고 법정에도 여러 번 섰다. 그런데 늙은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욕을 먹고 있다. 그래도 내가 성경같이 읽고 있는 백 년 전 어떤 노인의 글이 있다. 그 노인의 영혼이 글 속에서 내게 이렇게 위로를 해 주고 있다.

‘세상 인간들에게 욕먹어도 상관할 거 없어. 한마디 반박도 하지 마. 하나님께서는 불필요한 건 허락하시지 않아. 그들의 욕은 너를 좋은 조각품으로 만드는 정일수도 있어.’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1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경제관념 부족해서 돈 막 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13 - -
3051 노인이 돼서 꽃을 피웠다 [1] 운영자 23.07.17 128 5
3050 한 편의 영화찍기 인생 운영자 23.07.17 77 1
3049 이혼을 꿈꾸는 늙은 남자들 운영자 23.07.17 99 2
3048 인생 마지막 살 곳 [1] 운영자 23.07.17 115 0
3047 돌아온 재미교포의 질문 운영자 23.07.17 125 2
3046 손자가 공사 현장 잡부예요 운영자 23.07.17 85 4
3045 한 엑스트라의 운좋은 날 운영자 23.07.17 83 3
3044 노년에 혼자 행복해지는 방법 운영자 23.07.10 99 4
3043 기름집 벽의 윤동주 시(詩) 운영자 23.07.10 75 2
3042 사교육 전쟁은 왜 일어날까? 운영자 23.07.10 95 1
3041 품위 있는 노인들 운영자 23.07.10 75 2
3040 밤바다의 주인 잃은 신발 운영자 23.07.10 69 2
3039 소년 시절의 부끄러운 고백 운영자 23.07.10 80 2
3038 고시 출신 노무현이 좋은 세상 만들었나? 운영자 23.07.10 91 6
3037 노인들의 자기소개서 [1] 운영자 23.07.03 98 3
3036 저는 3류작가 입니다 운영자 23.07.03 70 1
3035 저승행 터미널 대합실 운영자 23.07.03 65 1
3034 지리산 수필가 운영자 23.07.03 74 1
3033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이야기 운영자 23.07.03 81 2
3032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자리 운영자 23.07.03 83 1
3031 고시 공부를 왜 했나 운영자 23.07.03 104 3
3030 하던 일과 즐거운 일 운영자 23.06.26 81 2
3029 좋은 사람 구분법 운영자 23.06.26 124 2
3028 내 엄마였어서 사랑해 운영자 23.06.26 68 3
3027 지팡이와 막대기 운영자 23.06.26 74 2
3026 참회한 악마 운영자 23.06.26 67 2
3025 대통령이 찾아간 국수집 운영자 23.06.26 76 4
3024 삼성가의 손자 운영자 23.06.26 80 2
3023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들 운영자 23.06.26 81 2
3022 빨간쟈켓에 백구두를 신은 수행자 운영자 23.06.19 69 2
3021 글쟁이 여행가이드 서현완 운영자 23.06.19 66 2
3020 냄새 운영자 23.06.19 70 2
3019 닷사이 술잔을 부딪치며 운영자 23.06.19 68 2
3018 선한 이웃 운영자 23.06.19 68 1
3017 진짜 군사 반란이었을까(2) 운영자 23.06.12 106 2
3016 전두환 심복의 고백(1) 운영자 23.06.12 108 2
3015 정치공작을 부인하는 그들 운영자 23.06.12 80 3
3014 마음이 넉넉한 사나이 운영자 23.06.12 68 1
3013 고문 운영자 23.06.12 69 1
3012 대학도 전문대도 다 떨어졌어요 운영자 23.06.12 92 1
3011 늙은 수사관의 고백 운영자 23.06.12 92 1
3010 김대중내란음모 사건 운영자 23.06.05 94 1
3009 노인 왕따 운영자 23.06.05 79 0
3008 노랑 신문 운영자 23.06.05 66 1
3007 내가 몰랐던 그들의 시각 운영자 23.06.05 67 1
3006 어항 속 금붕어 같은 법조인 운영자 23.06.05 75 1
3005 남산 지하실의 철학 운영자 23.06.05 69 2
3004 북파 공작원의 얘기 운영자 23.05.29 97 3
3003 멀리서 찾아온 친구 운영자 23.05.29 71 1
3002 정보요원들의 따뜻한 내면 운영자 23.05.29 30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