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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프로테스탄트의 시조

운영자 2020.12.14 09: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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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프로테스탄트의 시조



소송을 맡은 계기에 우연히 한국의 부자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백 년의 전통을 가지면서 지금도 그 명맥이 유지되는 건 두 집안이다. 두산그룹과 삼양사그룹이다. 유명했던 경주 최부자 집안은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부자의 반열이 아닌 것 같았다. 삼양사그룹의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된 인물은 구 한 말의 김경중이란 인물이었다. 고창지역에서 농사를 지었던 그는 쌀을 일찍이 상품화했다. 명치 유신후 일본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그 농민들이 공장노동자가 됐다. 그리고 쌀값이 폭등했다. 그걸 안 구한말의 김경중이란 인물은 일본에 쌀을 수출해서 부자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근면과 철저한 검약으로 부를 이룬 한국 최초의 프로테스탄트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학자 에거트의 연구논문 대상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가 되도 그의 부는 줄어들지 않았다.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 지주가 되고 농장회사를 차렸다. 그는 전라도 지역에서 자기의 논과 밭을 묶어 ‘삼양사’라는 농장회사를 차렸다. 오늘날 삼양사그룹은 할아버지가 지은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는 농장회사에서 머물지 않고 변신을 시도했다. 당시 한국인들이 민족회사로 세웠다가 위기에 몰린 경성방직을 인수 했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그는 철종의 사위인 구한말의 박영효 대감을 바지사장으로 앉혔다. 일본 귀족이 된 왕가의 사람들이 대외적인 교섭에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아들을 이사로 임명해서 실질적인 경영을 하게 했다. 그는 경주 최부자와도 친했던 것 같다. 최준과 공동투자를 해서 동아일보를 설립했다. 그는 중앙학교와 고려대학의 실질적 설립자였다. 그러나 그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대신 두 아들을 내세웠다. 당시 이십 대의 청년인 아들 김성수에게는 교육과 언론사업을 맡겼다. 그리고 둘째 아들 김연수에게 경성방직과 농장회사 삼양사를 운영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를 운영하던 큰 아들은 민족의 지도자가 됐다. 경성방직을 경영하던 둘째 아들 김연수는 일본사업가들과 경쟁을 벌여 조선인으로 유일하게 ‘재벌’이라는 반열에 올랐다. 그 많은 부자들이 명멸했는데도 삼양사 집안은 지금까지 부와 명성을 유지해 오고 있다. 나는 아들들의 뒤에 숨어있던 구한말의 김경중이란 인물이 궁금했었다.



이천팔년 오월이십육일 저녁 여섯시경이었다. 나는 가회동 길가에 있는 작은 파스타 집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인 김경중의 손자를 만났다. 그가 삼양사 그룹의 김상하 회장이었다. 그는 재벌 회장들의 모임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 역시 자식들에게 경영을 시키고 한 발 물러난 팔십대 말의 노인이었다. 손주의 생일에 그가 선물로 증여했다는 주식이 엄청난 거액이라는 기사가 떠돌기도 했었다. 그가 앞에 놓인 와인리스트를 보면서 말했다.

“면세점에 가면 삼십불이면 좋은 와인을 살 수 있는데 서울의 레스트랑에 오면 여섯 배 일곱 배를 받아 도대체가 너무 비싸.”

대를 이어 내려오는 부자의 경제관념을 그 한마디에 알 것 같았다. 잠시 인사말을 나누다가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되시는 김경중 선생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일제 강점기에도 우리는 조선의 부자였어요. 성북동에 삼천평의 대지에 한식 양식 건물을 집으로 가지고 있었죠. 미국에서 뷰익 승용차를 수입해서 자가용으로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에 우리들은 그 차를 ‘비꾸’라고 불렀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차를 타지 않고 고무신을 신고 직접 걸어 다녔어요. 더러 시내를 다니는 전차를 타도 절대 자리에 앉지 않았죠. 왜 그런가 짐작하겠어요?”

“왜죠?”

나는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 당시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어요. 자리에 앉으면 그게 구겨진다는 거지. 그걸 숯불을 사용하는 다리미로 구김을 없애야 하는데 숯이 사용되는 것도 아깝다는 거지. 그만큼 지독한 양반이었다니까. 집을 넓고 크게 자리잡고 외제차를 가져다 놓은 건 일본인 사업가들에게 기가 눌리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는 자식이 비싼 걸 사드리려고 해도 절대 응하지를 않았어요. 일제 강점기인 그 시절 한번은 할아버지를 경성에 딱 한군데 있는 양식집으로 모셨죠. 이름이 ‘미장 그릴’이었지. 할아버지가 거기서 잡수신 스테이크가 맛이 있었는지 값이 얼마냐고 물었어요. 그 성격을 뻔히 알기 때문에 이원짜리를 반으로 줄여 일원이라고 속였어요. 할아버지는 그 가격이면 괜찮은데 하곤 나중에 친구들을 그 집에 데리고 가셨죠. 그때 계산을 하면서 거짓말이 들통이 난 거지.”

“그 할아버지의 취미는 뭐였어요?”

내가 물었다.

“가끔씩 창을 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듣기를 좋아했어요. 당시 남도창의 최고 명창은 박녹주라는 여자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인물도 박색이고 목소리도 허스키했지. 할아버지가 자주 불러서 마당에서 공연하게 했어요. 당시 할아버지를 더러 찾아오던 키가 작고 단발머리를 한 삼십대쯤의 여자가 있었는데 해방 후에 보니까 그 분이 김활란씨더라구.”

김상하 회장도 구십대의 노인으로 몸이 불편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직접 전해 들었던 조선 프로테스탄트의 한 조각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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