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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설가의 고문당했던 이야기

운영자 2020.12.21 09: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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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설가의 고문당했던 이야기



이천팔년 유월이십칠일 나의 일기장 속에 원로 소설가 정을병씨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목소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날 점심 무렵 광화문 뒷골목의 매생이탕 집에서 나는 그와 만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소송 관계의 일로 변호사인 나와 친해지게 된 그는 한 달에 한 번 쯤 나와 만나면서 그의 인생 경험과 소설작법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말에 성실하게 귀를 기울이면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칠십대 중반인 그는 군살 없이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푸른 색 계통의 티셔츠를 입은 예술가 다운 세련된 차림이었다. 언론이 떠드는 세상의 흐름은 그때도 권력 특히 대통령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이었다.

“지금 시대는 대통령이 드러났기 때문에 권력을 남용하지 못해요. 그러나 중간에 있는 존재들은 예전이나 마찬가지죠. 권력의 그늘에서 기생하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판사가 검사 같은 그룹이 있어요. 그들은 전문가라는 보호그늘 아래서 제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면이 있어요. 명분은 공익을 위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개인의 야심과 공명심이죠. 재력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돈이면 모든 게 다 된다고 생각하죠. 사실이 그래왔고 그것도 중간권력이죠. 이런 자들의 전횡을 고발하는 것도 소설가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엄 변호사가 소설가가 되어 한 번 멋있게 써 보는 게 어떻겠어요?”

“그런 소설을 썼다가 문학적 순교를 하실뻔한 분이 정을병선생 아닙니까? 그때 어떻게 혼이 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박정희 정권 초기 권력의 서슬이 시퍼럴 때였다. 혁명정권은 불량배나 깡패 등을 잡아 도로 건설등에 투입해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정을병씨는 그 현장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개새끼들’이라는 소설을 썼었다. 정권이 움찔할 정도의 적나라한 고발이었다.

“보안사령부에 잡혀가 맞기도 엄청 맞고 간첩으로 꾸며진 거죠. 그러다가 검찰로 송치됐어요. 최 검사가 나를 담당했어요. 그 때 내 고향 선배인 김일두 검사장이 서울지검장으로 있었어요. 김일두 검사장의 아버지는 고향 남해의 교회 목사였고 권사인 우리 어머니는 순교를 각오할 만큼 독실 한 신자였죠. 우리 집은 남해에서는 만석군 부자였어요. 교회 재정의 대부분을 담당했어요. 저는 고향 선배인 김일두 검사장이 힘을 써 줄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박정희가 중앙정보부를 통해 직접 조지는 거기 때문이죠. 나는 간첩이 아니라고 부인했더니 저녁이면 보안사로 다시 끌고 가서 때리는 거예요. 주먹으로 맞고 발로 채이고 죽도록 터졌어요. 한번은 나를 담당하는 최검사에게 이렇게 검찰에 송치됐는데도 고문을 하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최 검사는 그럴 리가 있느냐고 얼버무리더라구요. 최검사가 보는 앞에서 바지를 훌떡 내렸어요. 시퍼렇게 멍든 자국이랑 뱀 껍질 같은 굴배미를 보더니 최검사가 얼굴이 빨개지더라구요. 그때 보안사에 재미있는 수사관 한 명이 있었어요.”

그는 자신의 얘기를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소설가라 어떤 일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것 같았다.

“재미있는 수사관이라뇨?”

내가 되물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일제 강점기 헌병 오장출신이라고 했어요. 한번은 나를 따로 불러내 조용히 말하는 거예요. 검사 앞에서 간첩이라고 자백을 하면 징역 이십년은 틀림없으니까 인생 조지지 않으려면 아무리 얻어터져도 목숨 걸고 부인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버텨서 육 개월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죠. 나와서 나를 기소한 최 검사를 권력의 주구라고 욕을 하고 글을 썼죠. 검찰청 유치장을 그때는 비둘기장이라고 했는데 그 벽에 최 검사가 제일 악질이라고 한맺힌 글씨가 적혀 있었어요. 최고 악질한테 내가 걸린 거죠.”

독재정권시절 인권유린의 생생했던 모습이었다. 우리 세대는 그런 세상을 통과해 왔다. 오늘 사회를 흐르는 자유는 투명한 빛깔이 아니다. 그 뒤에는 핏빛이 배어 있다는 생각이다. 죽은 지 오래된 그가 천국에서 슬며시 웃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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