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도움을 거부하는 개결한 자존심(2)

운영자 2021.01.04 09:58:40
조회 116 추천 1 댓글 0

도움을 거부하는 개결한 자존심(2)


나이 칠십이 다 된 친구가 겨울바람이 들이치는 강가의 퇴락한 집에 혼자 사는 것이 안 스러웠다. 더구나 그는 몸이 불편했다. 몇 년 전 임대아파트에 혼자 사는 내 나이 또래의 강태기 시인의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폐암에 걸려 혼자 살고 있던 그를 도우미들이 이따금씩 들려 몸을 씻어주기도 하고 이웃 학교에서 남은 밥을 주기도 하고 성당에서 반찬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죽어가던 시인은 세상이 너무 고맙고 좋다고 내게 말했었다. 시인은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동차수리공을 하면서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학의 천재였다. 방송작가를 하면서 평생 책을 읽고 인도여행을 많이 했었다. 시인의 삶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다리가 불편한 친구에게 말했다.

“도움을 청하면 여러 가지 복지혜택을 받을 텐데?”

“아직은 아니야.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내가 모든 걸 직접 하게 했어. 일부러 하나도 도와주지 않은 거야. 그래서 굼벵이가 기어가 듯이라도 천천히 내가 할 일은 내가 했지. 어머니는 내가 힘들더라도 혼자 살아가라고 교육을 시킨 거야.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까 어려서 어머니 옆에 항상 앉아서 살림하는 걸 어깨 넘어 봤어. 그래서 내가 김치도 담글 줄 알고 청소도 세탁도 변기 청소까지 못하는 게 없어. 앉아서 해도 난 다 해 낼 수 있어. 도움이 필요 없어.

그런데도 나이를 먹어가니까 남은 한쪽 다리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한 다리로 서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제는 양 팔꿈치를 싱크대에 받쳐야 돼. 나도 몰랐는데 요전에 집에 들렸던 한 사람이 싱크대에 팔을 받치고 밥을 하는 나를 보고 자기가 대신 해 주겠다고 나서더라구. 그제서야 내가 그렇게 했구나 하는 걸 자각했지.”

그가 티 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노인이 이렇게 혼자 사는 걸 알면 복지담당들이 와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내가 문 앞에 비싼 독일차 아우디를 세워놨잖아? 이만큼 아직은 잘 사니까 들어오지 말라는 나의 의사표시지.”

신세지지 않고 혼자 살아내겠다는 그의 개결한 자존심을 보고 나는 가슴이 섬뜩했다. 그가 씩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말이야 도서관을 왔다가 한번은 집으로 돌아가는데 버스 토큰조차 하나 없는 거야.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가난했어. 등록금이 없어 대학도 휴학을 한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차비가 없던 날 목발을 짚고 거의 스무 정거장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니까. 그런 날이 여러 번 있었지.”

그의 말은 나의 느슨해진 영혼에 찬물이 되어 부어진 것 같았다. 얼마간 그의 손발이 되어주면서 일을 배우고 가야하겠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내가 쉬운 청소부터 해 보면 어떨까?”

내가 그에게 제의했다. 파출부와 아내가 청소를 했지 내가 직접 해 본적이 없었다. 그걸 눈치챈 듯 친구가 말했다.

“내가 먼저 청소기사용법이랑 시범을 보이지. 나도 다 할 수 있어. 다만 앉아서 궁둥이를 끌고 다니면서 하는 청소니까 먼지 묻은 바지를 따로 빨아야 하는 불편한 점은 있지.”

그는 옆에 있던 진공청소기를 끌어다 놓고 군대 생활 시절 훈련된 조교같이 세밀하게 작동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둥이를 끌고 다니면서 손이 닿는 영역을 청소하고 다시 움직여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진공청소기에서 먼지통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 먼지들도 따로 잘 싸서 쓰레기 봉지에 넣어 처리해야지. 남보다 몇 배 시간이 들고 힘이 들어서 그렇지 난 모든 걸 다 직접 할 수 있어.”

그를 보면서 나는 건강한 두 다리가 얼마나 축복인가를 느꼈다. 동시에 노인이 되어서도 혼자 버티는 그의 강인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3365 국민 앞에 사과하셔야죠 운영자 24.05.27 39 1
3364 절망감이 들었다 운영자 24.05.27 30 0
3363 능숙한 연기와 거짓말 운영자 24.05.27 29 1
3362 방송이 만든 가면들 운영자 24.05.27 28 1
3361 나는 세상을 속인 사기범 운영자 24.05.27 28 0
3360 귀신을 본다는 빨간 치마의 여자 운영자 24.05.27 30 0
3359 얼떨결에 성자가 된 도둑 운영자 24.05.27 25 0
3358 종교 장사꾼 운영자 24.05.20 71 2
3357 주병진 방송을 망친 나는 나쁜 놈 운영자 24.05.20 64 0
3356 대도를 오염시키는 언론 운영자 24.05.20 42 1
3355 세상이 감옥보다 날 게 없네 운영자 24.05.20 50 1
3354 악인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운영자 24.05.20 45 1
3353 서민의 분노와 권력의 분노 운영자 24.05.20 40 0
3352 쥐 같은 인생 운영자 24.05.20 51 2
3351 좋은 사람의 기준을 깨달았다 [1] 운영자 24.05.13 120 2
3350 너도 도둑이지만 윗놈들이 더 도둑이야 운영자 24.05.13 67 0
3349 국무총리와 도둑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운영자 24.05.13 92 0
3348 도둑계의 전설 운영자 24.05.13 57 1
3347 바꿔 먹읍시다 운영자 24.05.13 55 0
3346 반갑지 않은 소명 운영자 24.05.13 56 1
3345 대도 사건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운영자 24.05.13 50 0
3344 재판을 흥미성 보도자료로 만듭니다. 운영자 24.05.06 82 1
3343 부자들의 비밀금고 운영자 24.05.06 91 2
3342 죄 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있나? 운영자 24.05.06 69 0
3341 입을 틀어막히는 분노 운영자 24.05.06 73 1
3340 변호사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운영자 24.05.06 79 1
3339 도둑 일기 운영자 24.05.06 96 1
3338 숯불 나르는 청년의 외침 운영자 24.05.06 85 1
3337 당신은 꽂히면 바로 내 지르는 사람이야 운영자 24.04.29 108 1
3336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세요 운영자 24.04.29 86 1
3335 도대체 저의가 뭡니까? 운영자 24.04.29 91 1
3334 기억 사진첩 속 어떤 재판광경 운영자 24.04.29 79 1
3333 내가 체험한 언론의 색깔 운영자 24.04.29 84 1
3332 변호사란 직업의 숨은 고뇌 운영자 24.04.29 89 1
3331 저세상으로 가는 법 운영자 24.04.29 102 1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112 1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102 1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114 1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116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109 1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105 1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143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143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120 1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122 1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144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126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115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122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132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